나는 무력한 구경꾼이었다. 이 가족을 강타한 비극에서 한낱 불청객, 외부인이었다. 하지만 도망칠 수는 없었다. 우린 친구니까. 우리 중 하나가 하룻밤 사이에 집을 잃고 미망인이 되었다. 우리가 있을 곳은 오직 여기뿐이다.
“모든 걸 다 가진 것 같다가 다음 순간에는 모든 걸 잃지.”
누군가 중얼거렸다.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말은 그런 뻔하고 상투적인 말들뿐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바깥세상과의 대면을 최대한 미루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도저히 이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밖에서는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일상적인 소리들이 갑자기 끔찍할 정도로 멀게 느껴졌다. 우리는 계속 보드카를 마셨고, 담배가 떨어지자 시몬의 시가를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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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최근 몇 년 동안 생각해왔던 모든 것을 서로에게 이야기하고 싶어 안달이 나서 이따금 말을 더듬기까지 했다. 우리가 같은 처지라는 걸 알게 되자 굉장히 기뻤다. 한네커는 인테리어 디자인을 하는 덕분에 나보다 이 마을을 더 잘 알았다. 그녀는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의 학부모들에 대한 가십을 전부 말해주었고, 나는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였다. 토마토 수프를 만들고 아이들에겐 비디오를 틀어주었다. 미첼이 집에 온 8시 30분쯤에는 우리는 완전히 취해서 테이블에 엎어져 배꼽이 빠져라 웃고 있었다. 우리는 디너클럽을 만들기로 했다. 한네커는 자기 고객들 중에 ‘재미있는 여자들’을 몇 명 아는데, 그녀들도 사람들을 더 만나고 싶어 안달이라고 했다. 첫 모임은 집도 널찍하고 요리하는 걸 좋아하는 한네커가 자기 집에서 주최하기로 했다. 술기운에 얼굴이 벌게진 나는 굉장히 행복한 기분으로 이불 속에 쏙 들어갔다. 내가 이 마을에서 첫 친구를 사귄 건지도 모른다. 디너클럽은 정말 끝내주는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 p.42~43
잔을 내려놓으려 몸을 숙이는데 갑자기 타오르는 것 같은 두 손이 내 엉덩이를 만지는 게 느껴졌다.
“이제 나랑 출까?”
시몬이 내 뒤에서 몸을 붙이며 귀에다 속삭였다. 그의 발기한 성기가 세게 와닿는 게 느껴졌다. 무례하게 구는 그의 뺨을 때리고 싶다는 충동이 제일 먼저 들었지만,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돌아서서 그의 사타구니에 몸을 붙이고, 내 가슴을 그의 가슴팍에 대고 눌렀다. 샴페인 덕분에 대담해진 나는 그의 단단한 엉덩이에 손을 얹고 댄스 플로어 한가운데로 그를 끌고 갔다. 우리의 몸이 조용히 만났고, 주위에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었다. 시몬의 손은 잠시도 내 몸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내 남편과 자기 아내가 불과 일이 미터 옆에 있다는 건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가끔씩 그의 육감적인 입이 내 입에서 아주 가까운 곳까지 다가왔고, 그가 내게 키스를 할 것 같은 순간도 있었다. 만약 그가 키스한다면 나는 그 결과가 어찌 되든 간에 거부할 수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 냄새가 끝내주는데.”
--- p.89~90
우린 취해서 시몬의 시가를 뻐끔거리며 감상적인 헛소리를 지껄이게 될 때까지 계속 이야기하고 술을 마셨다.
“우리에게 서로가 없었다면 지금 어떻게 됐을까?”
시몬이 혀 꼬인 소리로 말하며 두 팔을 크게 벌려 미첼과 나를 안았다.
“제일 중요한 게 그거 아니야? 사랑, 우정…….”
그는 온 힘을 다해 우리를 끌어안고 나와 미첼의 정수리에 열정적으로 키스를 했다.
“사랑하는 친구들아, 돈은 나한텐 조금도 중요하지 않아. 믿어도 좋아, 난 이제 돈은 어찌 되든 상관없어. 내가 좋아하는 건 게 임이야. 리스크, 재빠른 행동, 배짱, 그런 게 정말 좋은 거지. 그리고 내 주위에 재능 있고 영감을 주는, 긍정적인 사람들을 두는 것도. 바로 너희들처럼.”
그는 장난스럽게 미첼의 뺨을 톡톡 치며 다른 손으로는 내 등을 쓸었다. 그의 손이 내 척추 아래쪽을 지나 청바지 속으로 들어가더니 내 끈팬티를 장난스럽게 잡아당겼다. 내 심장이 어찌나 거칠게 뛰는지 다른 사람들에게 소리가 들릴까봐 겁이 났다. 시몬이 비틀거리며 일어나 더듬거리며 집에 가야겠다고 말했다. 미첼도 일어나서 시몬이 지금 상태로 운전을 하면 안 된다고 웅얼거렸다. 그러더니 화장실로 달려가 위 속에 든 것을 하나도 빠짐 없이 토해냈다.
--- p.119~120
우린 계속 서로 더 재치 있는 농담을 던지며 더 크게, 더 날카롭게 웃었다. 에베르트가 병에 걸린 이후 내려앉은 묘한 불편함을 묻어버리려는 노력이었다. 우리가 한때 가졌던 친밀함과 믿음을 그리워하는 절박한 웃음이었다. 나는 그토록 강렬했던 친밀감이 다 어디로 갔을까 생각했다. 우리의 우정은 빛이 바랬고, 나는 이 우정의 진짜 기반이 무엇이었을까, 정말 존재하긴 했던 걸까, 우리 모두에게 똑같은 가치가 있었던 걸까 하는 생각을 점점 더 자주 하게 되었다. 어쩌면 나는 이 우정을 실제 이상으로 과대평가했던 건지도 모른다. 그전까지 우정이라는 것을 너무나 갈망해 왔으니까.
--- p.174~1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