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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의 기분

차의 기분

: 인생의 맛이 궁금할 때 가만히 삼켜보는

김인 | 웨일북 | 2018년 02월 14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9.0 리뷰 27건 | 판매지수 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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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2월 14일
쪽수, 무게, 크기 196쪽 | 270g | 130*190*20mm
ISBN13 9791188248162
ISBN10 1188248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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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MD 한마디

[인생의 단면을 깊이 우려내는 시간]삶에 대한 하나의 정갈한 태도로서, 차를 마시는 일에 대한 이야기. 다른 무엇이 아니라, 차를 마셔야 할 때가 있답니다. 외로울 때, 심심할 때, 편치 않을 때 불쑥, 차를 마시면 어지러운 일들이 찻잔 안으로 가라앉는다고요. 따뜻한 차 한 잔이 선사하는 고요한 시간을 충분히 누려보세요. - 문학MD 김도훈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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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울 때 마신다
차는 왜 마시는가? 외로워서 마신다. 정말이지, 외로워서.
추사도, 다산도, 외로워서 마셨을 것이다. 둘은 유배지에서 누구보다 외로웠다. 추사와 다산이 이뤄낸 성취들은 모두 외로움 이 잉태한 것들이다. 외로운 이는 외로움을 꺼려 하지만 외로 움에 끌린다. 차는 외로움을 달래면서도 외로움을 고양시킨다. 어떤 경지에 이른다는 것은 보다 높은 외로움에 이른다는 것. 외로운 이가 외따로 있는 듯 보이는 것은 그가 보다 높은 외로움에 있기 때 문이다.

편치 않을 때 마신다
차는 편할 때 마시면 그런대로 좋지만, 편치 않을 때야 말로 차를 마셔야 하는 적기라 할 만하다. 서럽고 분하고 눈물 이 멈추질 않고, 일은 꼬이고 엉켜서 퇴로가 보이지 않을 때, 불 쑥, 그러니까 불쑥 일어나 물을 끓이고, 어떤 차를 마실지, 어 떤 찻잔을 쓸지, 신중히 결정한 다음, 무엇보다 차를 우리는 데 전력을 다하고, 우린 차를 흘리지 않게 조심해서 찻잔에 따르 고, 차향을 맡고 차를 마시며, 찻잔의 기원이나 양식에 대해 골몰하는 이런 난데없는 허튼짓이, 불가피해 보이던 사태의 맥을 툭툭 끊는다. 내게는 걸레를 빠는 일이나 차를 마시는 일이나 다르지 않은데, 걸레를 빨아야 할 때가 있고 차를 마셔야 할 때 가 있다.

시간마다 다르게 마신다
아침에 깨어나 마시는 차는 꿈과 현실 사이에 가로놓인 향긋한 교량과 같다. 차를 마시다 보면 어느새 나는 꿈에서 현 실로 건너와 있다. 그럼에도 교량을 건너며 몇 번이나 뛰어내리고 싶었던가.
점심을 먹고 마시는 차는 산책과 흡사하다. 산책에 나서면 더 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차를 마신다. 우두커니, 나는 아직 여기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오후 네 시에 마시는 차는 호락호락 시간에 쫓겨 살지 않겠다는 문명인의 세련된 입장 표명이다.
저녁에 마시는 차는 기도하는 것이다. 간절히 모은 두 손이 찻잔을 쥐고 있다.

특별히, 오후의 차
하루의 반절을 보내며 한 모금. 나머지 반절을 보내기 전 한 모금. 아주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시간. 그처럼 아주 이르지도, 늦지 도 않은 시간. 시작과 끝의 관점에선 무엇을 내세우기에도, 무엇을 단념하기에도 어중간한 시간. 그러니 오후 네 시엔 결심을 미룰 것. 비관도 낙관도 하지 말 것. 대신에 부드러운 곳에 자리를 잡고 터무니없이 한가하게, 찻잔을 들어서 후후 불 것.

가만히 있는 시간이 는다
찻잔이 비었다고 성급히, 찻잔에 차를 다시 채워서는 안 된다. 비 갠 후 꽃의 향이 진해지듯, 차향도 차를 삼킨 후에 야 진해진다. 빈 찻잔을 보며, 가만히 있는 시간이 는다.

자세가 중요하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솟아나고 태풍이 휘몰아치고 전봇대가 휘어지고 염소가 날고 내 친구도 날고 하필이면 그때 헤어지자는 긴급 문자가 뜨더라도 차를 한번 마셨으면 흔들림 없이, 천천히 마신다는 자세가 중요하다.

찻잔을 더 좋아한다
책상보다 의자를 더 좋아한다. 그처럼 다관보다 찻잔을 더 좋아한다. 책상보다는 의자를, 다관보다는 찻잔을 더 좋아하는 까닭은, 이들이 내 고통을 그 어떤 사물들보다 더 잘 이해하고 있다는 믿음에서다. 실제로 나는 의자에 파묻혀 길고 어두 운 밤을 안전히 떠돌았다. 그 같은 밤이면 손에 쥐고서 하염없이 어루만지던 내 외로움은 다관이 아닌 찻잔이었다. 내가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 종잡을 수 없는 밤이면, 내 낡은 찻잔은 더없이 충실해 보인다. 자신을 의심하지 않는 사물의 내력에서 어떤 견고한 안도감을 느낀다.

책 읽는 사람 옆에 있어야 하는 것
책 읽는 사람 옆에는 찻잔이 있어야 한다. 한 세계를 여 행하는 데 찻잔이 빠져서야! 물론 차를 가득 채운 티포트도 있어야 한다. 고작 찻잔이 비었다고 우주의 미로나, 분홍빛 종탑 이 보이는 콩브레 언덕을 물이나 끓이자고 홀연히 떠나야 하겠는가?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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