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라는 시련의 근저에서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철학에 도전하다
도쿄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지만 탁상공론이 되어버리기 십상인 철학에 한계를 느껴 중퇴하고 교토 대학 의학부에 입학해 수련을 쌓은 끝에 정신과 의사가 된 오카다 다카시. 이렇듯 이색적인 경력을 지닌 저자는 “말뿐인 철학은 쓸모없다”고 하면서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이들에게 용기를 불어넣고 구원이 되어줄 철학을 줄곧 추구한다.
진로 문제로 방황했고 고학생 시절에는 불투명한 미래에 대해 고민하곤 했던 저자의 자전적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은 물론, 의사 초년생 때부터 만나온 환자들에 대한 깊은 연민과 진심 어린 걱정은 이 책에 진정성을 부여해주고 있다. 특히 불우한 환경 속에서 자란 탓에 정신적으로 불안정해져서 문제 행동을 일삼게 된 청소년들을 치유한 이야기들은 의료소년원에서 일했고 비행 소년의 갱생 및 교정에 힘써와 관련 상을 수상하기도 한 오카다 다카시의 전문가다운 면모가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그는 ‘애착장애’ 이론을 주장해오고 있는데, 이 이론은 청소년 범죄의 근본 원인과 해결책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저자는 삶에 고난과 시련을 가져오는 경우를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누어 5장에 걸쳐 서술한 후 마지막 두 장인 6, 7장에서는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철학은 어떠해야 하고, 살아가는 의미를 찾기 위한 철학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고찰한다. 그 과정에서 작가, 철학자, 예술가, 학자 등 스무 명가량의 저명인들 사례뿐만 아니라 열다섯 명에 이르는 일반인들의 사례(저자가 실제 케이스에서 힌트를 얻어 재구성한 것으로, 특정 케이스와는 무관하다)를 소개하여, 살았던 장소도 시대도 제각기였던 이들이 어떻게 역경을 딛고 이후의 인생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었는지 보여준다. 나아가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이나 삶에서 맞닥뜨리는 문제들은 예나 지금이나 얼마간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다는 것, 옛사람들이 시련을 타개할 수 있게 도와준 지혜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죽지 않고 살아야 하는 이유’를 되물으며 인생과 가족의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기회를 주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이유』. 인간을 대하는 저자의 따뜻하고 애정 어린 시선이 녹아 있는 이 책은 역사 속 실제 인물들의 사례와 풍부한 임상 경험을 잘 조화시켜 설득력을 더한, 색다른 철학 처방전이라 할 만하다.
가족이라는 굴레, 불행한 과거의 멍에에서 벗어나기까지
이 책에서 저자는 자신과 관련된 인물의 일화와 그에 비견되는 역사 속 인물의 일화를 나란히 혹은 교차해 서술하는 방식을 효과적으로 구사함으로써 사람을 궁지에 몰아넣는 상황은 시공을 초월해 공통점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1장 부모와 사이가 나쁜 사람에게〉에서는 (추정컨대) 어머니와 불화하고 어머니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아픔 탓에 몇 번이고 자살을 기도했다가 극적으로 회생하여 보람 있는 삶을 살게 된 저자의 지인 T의 사례에 이어, 역시 어머니와 평생 갈등을 빚으며 괴로워한 ‘염세주의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의 일대기를 소개한다. 어머니에 대한 애정 결핍으로 생긴 욕구불만은 아이러니하게도 쇼펜하우어에게 창조적인 에너지를 공급했다는 사실을 지적하여, 삶의 고통이 그만의 철학을 확립하는 데 원동력이 되었다는 점도 보여준다. 〈5장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에게〉에서는 18세기 사상가 장 자크 루소가 자서전 『고백』을 통해 밝힌 성장 과정을 살펴보고 그가 보인 문제 행동의 양상과 그 원인을 분석한다. 자신을 낳다 죽은 어머니의 부재 속에서 자란 루소는 어린 시절 거짓말과 도둑질을 일삼았는데, 이는 주위의 온정과 비호에 기대지 않고는 살아남을 길이 없는 아이가 남의 마음에 들도록 진심을 억제하고 자신을 꾸미는 과정에서 보이기 쉬운 행동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루소와 비슷하게 일찍이 어머니를 여읜 후 새어머니의 학대를 받으며 암울한 성장기를 보내다가 날치기를 하다 잡혀와 자신과 만나게 된 소년의 경우를 떠올린다. 그리고 그와 루소에게서 공통적으로, 어려서부터 애정과 돌봄을 받지 못하고 인간관계에서 아픔을 겪은 나머지 애초에 기대를 하지 않음으로써 상처받는 일을 피하고자 하는 ‘회피형’이라 불리는 애착 스타일을 발견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거나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 사람이 되지 않았을 때, 그 사람에 대한 집착을 버림으로써 고통과 외로움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일종의 자기방어이지만 이 또한 살아가기 위한 방어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2장 자기부정과 죄악감으로 고통받는 사람에게〉에서는 부모에게서 심리적 안정을 얻기는커녕 오히려 과한 기대를 받아 이에 부응하지 못하는 자신을 부정하고 죄악감에 사로잡혀 가출과 자살 기도로 점철된 청소년기를 보낸 작가 헤르만 헤세의 파란만장한 삶을 이야기한다. 비행 청소년의 심리와 행동 양상에 정통한 오카다 다카시의 전문성이 드러나는 이 대목은, 그가 늘 강조하는 ‘안전기지’의 역할을 해주지 못하는 부모가 자녀에게 속박을 가할 때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일깨운다. 안전기지를 갖지 못한 아이는 불안정한 정서 상태와 다양한 문제 행동을 보이는 ‘애착장애’를 일으키는데 소년 헤세가 바로 그런 경우라는 것이다. 문제아 취급을 받던 헤세가 어떻게 방황을 끝내고 안정을 되찾아 자신만의 창작 세계를 꽃피우게 되었는지, 그 여정을 감동적으로 그리기도 한다.
의무를 저버리지 않고도 자신이 자유롭게 선택한 인생을 살 수 있을까
저자는 〈3장 자신답게 살 수 없는 사람에게〉에서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지 못하고 가족에 대한 의무감이나 책임에 얽매여 살아가느라 번민하고 있는 이들에게 귀감이 될 만한 인물로 19세기 프랑스의 작가 조르주 상드를 꼽는다. 자신과는 다르게 문학과 예술, 독서에 관심이 없는 남편과의 결혼생활에 회의를 느낀 그녀는 본가가 있는 노앙과 파리를 반년씩 오가며 살기로 남편과 협상한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글을 쓰다가 어느새 유명한 작가가 된 상드는 문화예술계 인물들과 활발히 교유하고 연애를 즐기면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다. 반면에, 저자는 의무와 책임을 저버리고 자신의 욕망에 지나치게 충실히 따른 결과로 남편과 아이들을 버리고 외도한 남성과도 이내 헤어져 모든 것을 잃은 어느 여성의 사례도 제시한다. 진정한 행복과 만족을 얻으려면 자유와 책임,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양쪽을 추구해 적절한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교훈을 주는 부분이다.
〈4장 ‘굴레’에 속박된 사람에게〉에서는 영국 작가 서머싯 몸의 삶과 그의 자전적 장편소설 『인간의 굴레』속 주인공 필립의 삶을 교차해 서술하는 한편, 당시로서는 세간의 상식을 뛰어넘는 삶을 산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마거릿 미드의 삶을 이야기한다. 결혼생활에 얽매이기보다 연구를 위해서라면 먼 나라로 과감히 떠나 현지 조사를 진행할 뿐만 아니라, 그런 과정에서 만난 새로운 파트너와 행복해지고자 이혼과 재혼을 감행한 그녀는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게 행동함으로써 직업인으로서, 여자로서 행복해질 수 있었다고 한다.
한편, 아버지를 일찍 여읜데다 어머니의 재혼으로 성장 과정에서 애정을 충분히 받지 못해 결핍감을 느꼈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일대기는 〈5장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에게〉에 소개된다. 자신을 보호해주고 이끌어줄 존재를 끊임없이 원했던 그녀에게 교수 마르틴 하이데거는 연인이자 아버지로서 의지처가 되어주었다. 하이데거는 가정이 있는데다 사회적 위신상 제자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비밀로 부쳐야 했기에 결국 둘은 헤어진다. 하이데거가 나치에 협력하고, 유대계로 독일 태생의 아렌트는 유대인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두 사람은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되지만 전후 둘은 재회하고 아렌트는 스승 하이데거를 옹호함으로써 그의 복귀에 일조한다. 하이데거는 아렌트에게 현실에서 가질 수 없던 이상화된 아버지로, 평생에 걸쳐 영향을 미친 셈이다.
살아갈 의미를 되찾아 절망에서 다시 일어난 사람들
잇따른 불행과 불운을 겪었음에도 굴하지 않고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사색하는 삶을 살았던 에릭 호퍼의 인생을 상세히 소개한 〈6장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철학〉에서는 극복하기 어려운 절망을 어떻게 하면 희망으로 바꿀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해본다. 깊은 허무를 느낀데다 가진 돈마저 다 써버려 자살을 기도했지만 미수에 그친 일을 계기로, 호퍼는 삶의 기쁨을 다시금 맛보고는 평생 성실한 직업인으로서 독학하여 깨달음을 얻은 부두 노동자이자 사회철학자로 이름을 남겼다. 저자는 호퍼의 인생을 살펴보며 인간이라는 존재의 가늠할 수 없는 가능성에 놀라는 한편, 왜 호퍼가 오랫동안 세상을 등지고 자신을 일부러 멸시하듯이 살아야 했을까 의문을 제기한다. 그리고 호퍼가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줄곧 경멸당한 경험이 그에게 자기부정의 감정을 새겼기에 그랬던 것은 아닌지 추정하고, 그런 만큼 부모의 긍정적인 애정이 시련을 극복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 되새긴다. 성장 과정에는 별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으나 성인이 된 이후로 삐뚤어져 이상 행동을 보인 S 양의 사례에서는 부모의 변함없는 애정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우고,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옙스키의 곡절 많은 삶을 통해서는 바닥까지 떨어지는 경험이 결과적으로 당사자를 구원하는 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도 한다.
자살 충동을 억누르며 삶의 의미에 대해 사색함으로써 위기를 극복했던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일대기는 〈7장 인생을 살아가는 의미를 찾아서〉에 소개된다. 그는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말로 대표작 『논리?철학 논고』를 끝맺었지만,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 절대 침묵하려 하지 않았고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 불완전하지만 어떻게든 말로 표현하려고 함으로써 자기 나름의 답을 찾으려고” 했던 인물이었다고 저자는 평가한다. 1차대전에 참전했을 당시 적군의 맹공격을 받으며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비트겐슈타인은 정신을 유지하고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자신만의 철학을 추구하며 글을 썼다. 이때 쓴 원고는 일기로 묶여 그의 사후에 출간되었는데, 이 일기에는 삶의 의미에 대한 갈망이, 자신의 유한성을 뛰어넘는 무언가를 붙들려는 의지가 가득 담겨 있다. 비트겐슈타인을 전쟁터에서 살아남게 해준 것은 신의 존재를 느끼고 삶에 의미가 있다고 믿는 것이었던 셈이다.
저자는 약한 인간이 고난을 딛고 살아가려면 무언가 의미 있는 것을 찾아야 하는데, 그 대상이 부양할 가족인 경우가 많고 때로는 돌볼 반려동물인 경우도 있다는 점도 지적한다. 빈둥지증후군에 시달린데다 경제적으로도 타격을 입어 절망하던 중 버려진 강아지를 데려다 키우며 삶의 의욕을 되찾은 초로의 여성, 중증 지적장애를 지닌 딸을 부양하기 위해 글을 쓰다가 성공적인 작가가 된 펄 벅, 평생 독신으로 살았지만 조카 로사를 돌보며 부모 역할을 하면서 창작 의욕을 북돋울 수 있었던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의 일화가 그 예로 제시된다.
저자는 커다란 시련을 극복하고 삶을 개척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것은 운명을 수용하는 자세와 감사하는 마음이라고 강조하고, 그런 사람들은 기나긴 고난 속에서도 희망과 의미를 발견하고 작은 기쁨을 원동력으로 삼아 삶을 이어갈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살아간다는 것은 개인적인 행위가 아니라, 필연적으로 여러 사람이 얽혀 있는 일이라는 점을 일깨우며 이 책을 집필하면서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철학이란,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인생 속에만 있다”는 사실을 강하게 확신했다는 말로 이 책을 끝맺는다. 아무리 힘들어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자신답게 살기 위한 용기와 지침을 얻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이 절실한 마음이 저자로 하여금 이 책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이유』을 쓰게 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