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사하겠습니다>에서 발랄한 퇴사기를 보여준 이나가키 에미코는 신작 산문집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에서 전기 없이 생활하는 삶을 가감 없이 내보인다. 시작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문이었다.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하면서 일본 내에서 전력난이 일어난 것이다. 이나가키 에미코는 그 사건 이후에 원전 없이도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절전을 시작한다. 절전. 전기를 아끼는 것. 원전이 폭발하는 영상을 보고 값싼 전기는 그만큼 위험이 동반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알게 된 그녀는 '개인적 차원의 탈원전 계획'을 시행한다. 그때까지 그녀가 가지고 있는 가전제품은 텔레비전, 냉장고, 세탁기, 전자레인지, 푸드 프로세서, 드라이어, 에어컨, 다리미, 전등, 미니 컴포넌트, 고타츠, 전기카펫, 전기담요였다.
혼자 살기 때문에 다른 가정보다 가전제품은 적은 편이었다. 한 달 전기 요금은 2,000엔가량이었다. 목표는 전기세 1,000엔 이하로 줄이기. 마른 걸레를 쥐어짜는 심정으로 전기를 아꼈다. 그녀는 집안의 플러그를 하나씩 뽑는다. 안 쓰는 대기전력을 아끼기 위해서였다. 욕실 환기팬을 돌리지 않으려고 목욕 후에 수건으로 구석구석 물기를 닦았다. 결과는? 전기 요금이 줄기는커녕 미묘하게 요금이 올라 있었다. 그녀는 좌절하지 않는다. '파나소닉'의 창업자 고노스케 씨의 경비 절감 요령을 찾아낸다. 10퍼센트를 줄일 수 없다는 간부들의 말에 그는 50퍼센트 절감을 요구한다. 쪼잔한 발상의 지혜를 뒤집는 것이다. 10퍼센트와 50퍼센트는 큰 차이이다. 50퍼센트를 아끼기 위해서라면 발상 자체를 바꿔야 한다.
그녀는 전기를 아끼는 것이 아닌 '전기가 없는 것처럼' 생활하는 전략을 짜낸다. 줄이는 것이 아니라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사는 것이다. 전기가 없는 세계는 어떤 세계일까. 냉장고를 제외한 모든 가전의 플러그를 뽑았다. 엘리베이터는 타지 않는다. 전기가 없으니 엘리베이터가 가동될리 없지 않은가. 그녀는 집에 들어오면 현관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다. 어둠이 눈에 익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가로등과 달빛의 도움을 받아 집안을 조심히 돌아다닌다. 많은 것들을 할 수 있다고 그녀는 말한다. 텔레비전은 보지 않는다. '전기가 없'으니 당연히 볼 수 없다. 집에 들어와 리모컨 버튼을 누르는 대신 바람 소리, 풀벌레 소리를 듣는다. 바람의 흐름인 풍류를 느끼는 것이다.
청소기를 버리고 전자레인지를 버린다. 청소가 싫었던 것이 아니라 청소기를 꺼내고 돌리는 일이 힘들었던 것이다. 무거운 청소기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 자신이 즐겁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없어도 된다는 충격에서 헤어 나오자 아이디어가 샘솟았다. 밥을 전자레인지에 돌리는 대신 찜기에 넣어 데운다. 에도 시대 사람들의 식생활을 유심히 보고 실천한다. 편리함 대신에 가벼움과 고요함을 얻는다.
전기 없이 살아가는 것의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현재 그녀의 전기세는 150엔이다. 겨울의 맛과 여름의 정취를 느끼면서 그녀는 난방도 냉방도 하지 않고 계절을 보낸다. 최후의 가전제품인 냉장고까지 처분한 뒤 그녀의 삶은 한층 더 가볍고 여유로워졌다.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걱정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면 전기 없는 생활은 지금, 여기에 사는 삶이라는 것이다. 냉장고가 없으니 많은 식료품을 사지 못한다. 오늘 한 끼를 위한 재료만을 사서 먹어야 한다. 남은 야채가 있다면 베란다에 있는 소쿠리 위에 말린다. 말려서 절임 음식을 해 먹는다. 쓸모없는 식재료를 사지 않으니 부엌은 깨끗하고 요리 시간은 단축된다. 내일이 없는 삶이다.
물건들에 둘러싸여 있던 그녀는 시간을 쓸모없는 시간과 쓸모 있는 시간으로 나누었다. 집안일은 쓸모없는 시간으로 분류해 귀찮아하고 힘들어했다. 돈이 되지 않는 일을 쓸모없는 시간으로 구분해 자신의 시간을 차별해 왔던 것을 반성한다. 주변을 정리하고 빈 벽이 있는 집을 가꾸는 일들이 쓸모 있는 시간이라는 것을 깨닫자 놀랍게도 사는 것이 즐거워진 것이다.
믹서기를 사용해 과일을 갈아먹었다. 이나가키 에미코의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를 읽으며 전기가 없는 시간을 상상해 보았다. 그녀의 말처럼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과일을 갈아먹는 대신 잘게 잘라서 두유에 넣어 먹는 것. 위 속에 들어가면 과일들은 어차피 잘게 쪼개질 것이므로. 발전기가 돌아가는 대신 쓰지 않던 나의 뇌의 회로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방이 좁아서 의자를 움직 일 수 없다고 불평했다. 이불을 개고 전기장판을 반으로 걷었더니 의자를 자유자재로 돌릴 수 있게 되었다. 전기 없이도 생활은 계속될 수 있다. 물건이 많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다. 무거운 등 쿠션을 거실로 옮겼다. 그랬더니 거실에서도 책을 읽을 수 있다. 거실이라는 공간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건 하나를 움직였을 뿐인데 실로 많은 것들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소파를 사려고 했던 자신을 꾸짖었다.
이나가키 에미코 씨, 한국에 사는 저는 아직 냉장고는 못 버렸어요. 그 대신 믹서기를 쓰지 않기로 했어요. 올 한해 옷을 사지 않고 있는 옷으로 사계절을 지내려고 해요. 옷 냄새를 맡고 괜찮다면 하루 더 입기로 했어요, 당신처럼. 조리 시간이 긴 음식은 밖에서 가끔 먹기로 했고 바닥에 누워 있는 대신 책상에 앉아 의자를 힘차게 굴릴게요. 당신과 나의 생활이 계속되기를 바랄게요.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