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우리 주변에도 보노보노와 친구들 같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중략) 언젠가 우리가 마주치게 된다면 서로를 알아볼 것이다. 서로에 대해 실컷 투덜대다가 결국엔 좋아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보노보노를 좋아하는 사람 중에 이상한 사람은 있어도 나쁜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나처럼, 당신처럼, 그리고 보노보노처럼, 우리는 이상할지는 몰라도 나쁜 사람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보노보노 같은 사람들」중에서
야옹이 형은 특별한 일이라고는 없는 동네를 그저 걷는 걸 즐긴다. 포로리는 그런 야옹이 형이 신기해서 하루는 몰래 뒤를 밟아보기로 한다. 하지만 아무리 따라 다녀봐도 야옹이 형은 별다른 일을 하지도 않고 그냥 걷기만 한다. 딱히 재미있어 보이지도 않는 짓을 왜 계속하는지 궁금해하는 포로리에게 야옹이 형은 아무 일도 없는 게 제일 좋다는 말을 한다.
포로리: 왜 아무 일도 없는 게 제일 좋아? 그냥 걷기만 하는 건 지루해 보이는데.
야옹이 형: 응. 지루해. 난 그저 아무 일도 없는 걸 확인하기 위해서 걷는 셈이야. 걷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지거든. ‘아! 오늘도 아무 일도 없었구나!’ 싶어서. ---「인생이 꼭 재미있어야만 할까」중에서
보노보노: 아빠, 봄이 왔네.
아빠: 응. 그러네.
보노보노: 겨울 다음에는 꼭 봄이 오네.
아빠: 응. 세상에는 정해진 게 있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변하지 않는 일이 있어야 하지.
보노보노: 그렇다면 그건 누가 지키고 있는 걸까.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지나가면 가을이 오고, 매서운 추위가 극성을 부리다가도 어느새 봄은 온다는 것.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온 모든 것들이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밤이다. 세상에 저절로 되는 줄 아는 일은 있을지 몰라도 저절로 되는 일은 없다는 걸 얼마나 잊은 채 살아왔는지가 느껴져 멋쩍어지는 밤이다. ---「변하지 않는 것을 지키는 사람」중에서
열정이 백 퍼센트인 사람, 능력 또는 끈기가 백 퍼센트인 사람보다 더 가능성 있는 사람은 열정과 능력과 끈기가 삼십 대 삼십 대 삼십인 사람이다. 그도 아니면 언제라도 깨끗하게 포기하고,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결단력 백 퍼센트를 가진 사람이거나. 가장 멋진 사람은 꿈을 이룬 사람이 아니라, 꿈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자신을 미워하지 않는 사람이다. 꿈 같은 거 이루지 못한다고 해서 가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건 아니니까. ---「꿈을 이루지 못한 나를 미워하지 마」중에서
[보노보노]가 좋은 이유는 젠체하지 않기 때문이다. 심오한 이야기를 심오하게 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심오한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툭 내뱉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특히 일본어를 대강 번역해놓은 번역체도 마음에 들었다. 아무래도 어색한 문장, 잘 쓰지 않는 문법이 오히려 더 느슨하고 여유로워 보여서 보노보노다웠다. 그렇게 엉성한 언어로 가득 찬 만화책을 읽으면서 나도 그렇게 슬렁슬렁 살고 싶었다. 그리고 나도 이렇게 편안하게 글을 쓸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좋아하는 것은 이마 위에 붙어 있어」중에서
보노보노의 인생상담
포로리: ‘불쌍해’라고 하면 안 되는 거야. ‘불쌍해’라는 말을 들은 사람은 어쩐지 비참해지니까. 그런 말에 상처받거나 슬퍼지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거든.
보노보노: 나는 안 그런데.
포로리: ‘힘내’라는 말에 상처받는 사람도 있어.
---「아빠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어요」중에서
너부리: 왜 지금 당장 해결해야 되는 거야? 지금 해결 안 해도 조만간 어떻게든 될지 모르잖아.
포로리: 다들 계속 고민하는 게 싫어서겠지.
보노보노: 왜 조만간 어떻게든 되는 걸까?
너부리: 자기 혼자 사는 게 아니니까.
---「솔직해지지 못해요」중에서
보노보노: 나 말야, 다른 사람이 시켜서 일하는 것도 괜찮은 것 같은데.
포로리: 응응. 다들 뭐든 납득해서 하는 건 아니니까.
보노보노: 응. 하고 싶은 걸 하고 사는 사람도 얼마 없고.
포로리: 굳이 말하자면 다들 하기 싫은 것만 하고 살지.
보노보노: 세상은 하기 싫은 일을 해주는 사람들 때문에 굴러가는 거라고 생각해.
---「취업은 왜 하는 건가요?」중에서
포로리: 일을 잘하게 되면 아무도 칭찬해주지 않더라도 상관없어.
보노보노: 어째서?
포로리: 내가 이제껏 일을 제대로 해왔다고 생각하면 아무도 칭찬 안 해줘도 스스로 자신이 생기니까.
보노보노: 아, 그런 거구나.
포로리: 자기 일에 자신이 생기면 그다음부터는 자기가 자기를 칭찬해주면 돼.
---「일에서 보람이나 즐거움을 찾을 수 없어요」중에서
너부리: 스스로 솔직하게 살고 싶다고?
포로리: 그래 그래.
너부리: 안 돼. 그렇게 살 수는 없어.
포로리: 너부리가 그래?
너부리: 남한테 신경 쓰느라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게 잘 안 되는 거야. 말 안 하면 될 거를 말해버려서 다들 날 싫어한다구.
포로리: 하지만 미움받아도 아무렇지 않잖아.
너부리: 응. 아무렇지도 않아.
보노보노: 어떻게 미움받는데도 아무렇지가 않아?
너부리: 아무리 미움 안 받으려고 해도 어차피 누군가는 미워하기 때문이야. 그럴 바에는 날 미워하는 녀석이 다가오지 못하게 해두는 게 속 편하지.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 못 하겠어요」중에서
보노보노: 하지만 애 같은 사람은 행복하지 않아?
포로리: 앗. 그럴지도 몰라.
보노보노: 행복하다면 왜 어른이 되어야 하는 건지 모르는 거 아냐?
포로리: 오오. 보노보노 예리하네. 다들 뭔가 힘든 일이 있어서 어른이 되는 건가?
보노보노: 힘든 일이 있으면 왜 어른이 되는 걸까?
포로리: 힘든 일이란, 자기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남에 대해서도 이것저것 생각하는 거니까.
---「어른이 된다는 건 어떤 건가요?」중에서
보노보노: 야옹이 형은 자기 자신이 친구라고 했어.
포로리: 자기 자신이 친구라고?
보노보노: 응. 자기 자신이 자기를 가장 잘 알고 있고, 가장 잘 도와준대.
포로리: 어떻게 하면 자기 자신이 가장 좋은 친구가 되는 걸까?
보노보노: 자기 자신이랑 엄청 이야기를 많이 하는 거 아닐까? 그렇게 되면 진짜 친구가 필요 없을지도 몰라.
포로리: 필요 없다면 필요 없는 대로 괜찮은 거 아닌가? 무리해서 만들 필요도 없고.
보노보노: 난 말야. 어른이 되면 가끔 만나러 가거나 만나러 와주는 친구가 있으면 될 것 같아.
포로리: 그러네. 꼭 같이 놀지 않아도.
보노보노: 친구란 꼭 필요한 게 아닐지도 몰라.
---「친구 사귀는 법을 모르겠어요」중에서
보노보노: 내 생각엔, 이 사람이 모든 것에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자기 스스로 의미를 만드는 수밖에 없을 거 같아.
포로리: 응응응. 누군가 만든 의미 말고.
보노보노: 스스로 의미를 만드는 거야.
포로리: 힘들겠네.
보노보노: 하지만 재미있을 것 같아.
---「의미 있는 일이란 뭘까요?」중에서
포로리: 추억이란 숲속에 쌓이는 낙엽 같은 거야. (중략) 2년 전에 떨어진 낙엽 따위 필요 없으니 버려야지 생각해도 뭐가 새 낙엽이고 헌 낙엽인지 구분이 안 가잖아.
보노보노: 응 언제 떨어진 낙엽인지 모를 정도로 섞여서 쌓이니까.
포로리: 너무 뻔한 예일지는 몰라도, 추억은 그냥 낙엽이 아니라 진짜로 매년 쌓여가는 낙엽 같아.
보노보노: 점점 쌓이다보면 2년 전의 낙엽도 어느새 보이지 않게 될지도 몰라.
포로리: 아니. 그런 낙엽이 있었다는 사실은 못 잊어.
보노보노: 그렇구나. 보이지 않아도 기억하고 있는 건가. 하지만 낙엽이 점점 쌓이면 흙이 되잖아?
포로리: 아니. 흙이 돼버려도 그 낙엽은 생각날 거야.
보노보노: 그럼 평생 생각나? 못 잊어? 잊어도 또 잊어도 다시 생각나?
포로리: 그렇지 않을까.
보노보노: 그럼 어떻게 하면 좋아?
포로리: 매년 낙엽이 쌓여가는 것에 맡겨볼 수밖에 없지.
보노보노: 그게 무슨 말이야?
포로리: 살아가면 된다는 뜻이야.
---「그 남자를 못 잊겠어요」중에서
포로리: 이 상담을 하면서 알게 된 건데 다들 좋은 사람들이야. 좋은 사람들만 고민을 해.
보노보노: 그런가. 왜 좋은 사람들만 고민할까?
포로리: 그거야 좋은 사람이니까.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었어’ 아니면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해’ 하고 고민하잖아.
---「남 잘되는 일에 순수하게 기뻐하지 못해요」중에서
저는 인생은 자잘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은 ‘돈이 없어서 가족이 풍비박산된 인생’에 있는 게 아니라, 맛있는 라멘 안에 있습니다. 인생은 ‘가족을 암으로 잃게 된 인생’이 아니라 ‘동창회에 갔더니 즐거웠다’라는 자잘함에 있습니다.
저는 더 이상 책도 잘 안 팔리는 환갑에 가까운 만화가지만, 오늘 집에 돌아가면 녹화해둔 축구 경기가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걸로 오늘 하루를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생이란 참으로 자잘할 수밖에 없답니다.
---「작가 후기」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