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지 않은 사람이 어떤 책이나 또는 책과의 인연으로 인생에 영향을 받거나 심지어 운명을 바꾼 기억을 가지고 있다. 이 기억은 세월이 흐를수록 잊히기보다는 오히려 깨달음과 인생의 가치를 높이는 불씨가 되기도 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동력이 되기도 하며, 생명의 소중한 한 부분이 되기도 한다. 이 책은 책과 인류의 운명, 민족의 운명이 엮여 있는 묵직한 역사의 기억이다. 문자의 발명으로 인류 진보의 발걸음은 더욱 빨라졌고, 책의 출현으로 문명의 색채는 더욱 다채로워졌다. 책의 계승은 한 민족만의 독특한 문화 유전자를 만들어 냈으며, 인류를 더욱 단단한 운명 공동체로 묶어 주었다. --- p. 5
독일의 철학자 야스퍼스Karl Jaspers는 1949년 출판된 『역사의 기원과 목표』에서 ‘축의 시대’를 처음 언급했다. 그는 기원전 800년에서 기원전 200년까지, 특히 기원전 600년에서 기원전 300년까지를 인류 문명의 ‘축의 시대’라고 보았다. ‘축의 시대’가 발생한 지역은 북위 30도 정도로, 정확히 북위 25도에서 35도의 지역을 가리킨다. 이 시기 인류의 문명은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했다. 축의 시대, 각 문명에서는 위대한 정신적 지도자들이 나타났다. 바로 고대 그리스의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나 이스라엘의 유대교 선지자들, 고대 인도의 석가모니, 중국의 공자, 노자 등이었다. 이들은 저 마다 사상의 원칙을 수립하며 각기 다른 문화 영역을 창조해 냈고, 그 위에 각자만의 정신적인 색채를 채워 나갔다
--- p.99
유럽은 발전의 전환점에서 항상 책을 통해 동양 문명의 그림자를 찾아냈다. 동양 문명은 사상, 제도, 기술 등 각 분야에서 큰 영향력 을 미쳤다.
마르크스는 이런 말을 했다. “화약, 나침반, 인쇄술은 자산계급 사회의 도래를 예언한 3대 발명품이다. 화약은 기사계급을 무너뜨렸고, 나침반은 세계 시장을 열고 식민지를 만들었으며, 인쇄술은 새로운 교육의 도구로 바뀌었다. 이들은 과학 부흥의 수단이 되었으며, 정신세계 발전에 필수적인 전제 조건을 제공하는 가장 강력한 지렛대가 되었다.”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에는 성곽, 다리, 집, 나무, 나귀와 낙타 그리고 무지개다리 밑을 지나다니는 배들과 늘어선 상점들, 수많은 사람과 번화한 도시의 풍경이 등장한다. 이는 바로 영국의 사상가 존 홉슨 John Atkinson Hobson이 소리 높여 찬양한 ‘1차 산업혁명’의 모습이다.--- p.132~134
누군가가 꽤 흥미로운 리스트를 만든 적이 있다. 장원으로 과거에 급제한 수재들과 시험에 떨어지고 각 분야에서 공을 세운 인물들을 조사한 것이다. 이 리스트를 보면 한적한 시골에서 활동했거나, 인재 교육에 힘쓴 이들, 아픈 사람을 치료하거나 혹은 과거에 낙방하고 책 쓰는 데만 몰두했던 사람들 모두 후대에 큰 영향력을 끼쳤다. 특히 이어李漁, 홍승洪昇, 고염무顧炎武, 김성탄金聖嘆, 황종희 黃宗羲, 오경재吳敬梓, 포송령蒲松齡 같은 이들은 각 분야의 대가가 되었다. 이들은 한결같이 책 읽는 지식인으로서 자신의 생각과 포부를 밝혀 중국 문명의 단단한 밑거름이 되었으며, 오랜 풍파 속에서도 스러지지 않는 문명의 지지대가 되어 주었다. --- p.199
한때 선전 시민들은 ‘시간은 금이요, 효율은 생명이다.’라고 외쳤다. 하지만 지금은 ‘책을 사랑하는 도시, 존경받는 도시’라는 구호가 시 전체에 흘러넘친다. 선전 시민들은 이 구호를 ‘가장 영향력 있는 10대 관념’으로 뽑기도 했다. 선전서점 2층 옥상에 자리 잡은 24시간 북 카페는 2006년 11월 1일 문을 연 이래 지금까지 문을 닫은 적이 없다. 11년, 거의 4,000 일의 밤 동안 북 카페의 등은 꺼지지 않았다. 마치 문화의 등대처럼 도시의 밤을 밝혀 준 이 카페는, 물질의 충격 속에서도 오염되지 않도록 이 땅을 지켜 준 셈이다. 이 등불은 중국의 희망이기도 하다. GDP 세계 2위의 경제 거인이 된 중국은 이제 그에 걸맞게 문화도 발걸음을 맞춰 가야만 한다. 한 사회의 문화 수준을 높이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바로 독서 능력이다.
--- p.263~2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