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공간에서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으며 살아간다. 클림트는 분명 천재였고 두드러지게 혁신적인 예술가였지만, 그 이전에 빈 사람이었다. 그의 그림들은 모두
빈이라는 아주 특별하고 시대착오적인 공간이 아니고서는 잉태될 수 없는 종류의 것들이었다.
---「프롤로그」중에서
빈이 클림트의 도시인 것은 단순히 클림트가 빈에서 한평생을 살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클림트의 거의 모든 작품에서는 빈의 자취가 드러난다. 빈의 세기말 분위기, 빈의 귀부인들, 빈의 과잉 장식 취미, 빈의 과거 지향적 가치관, 빈의 화려한 궁정들, 그런 모든 요소가 클림트의 그림에 스며들어서 때로는 희미하게, 때로는 클림트의 사인만큼이나 선명하게 빛을 발하고 있다. 그래서 클림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모순으로 가득 찬 이 도시 빈과 오스트리아 제국을 먼저 이해해야만 한다.
---「2장 시대가 요구한 천재의 탄생」중에서
클림트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인간은 예술, 그리고 사랑의 힘을 통해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마저도 이길 수 있다고 외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이 벽화를 제작하던 당시의 클림트는 꼭 40세였다. 더 이상 젊지 않은, 그리고 자신의 나이에 대해 무게감을 느낄 시기다. 그는 서서히 다가오는 몰락과 소멸에 대한 공포를 감지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복합적인 감정들이 합쳐져서 예술의
영원한 승리를 찬양하는 〈베토벤 프리체〉를 제작하는 원동력이 되었으리라.
---「3장 새로운 예술을 향한 혁신의 첫걸음」중에서
클림트는 라벤나를 두 번 방문했다. 그는 이 신비롭고도 경건한 지상의 천국, 머나먼 과거의 장인들이 구축한 천국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았음이 분명하다. 클림트는 이 모자이크들이 주는 ‘경건한 단순함’에 완전히 압도되지 않았을까? 아마도 화가는 시공간이 영원히 정지한 듯한, 평면성과 장식성이 극도로 강조된 천국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는 아름다움의 원형을 발견했을 것이다..
---「4장 평면과 장식으로 이룩한 황금의 세계」중에서
〈키스〉는 클림트가 끝내 이루지 못했던 사랑의 영원한 합일을 그린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그가 생각했던 사랑이란 무엇이었을까. 천재적인 재능의 소유자이고, 강력한 리더십을 가지고 있었으며 고전과 여러 학문에도 해박했던 이 거인은 왜 이토록 강렬하게 사랑을 갈망했을까. 〈베토벤 프리체〉에 이어 이번에도 클림트는 〈키스〉를 통해 사랑이야말로 지상 최대의 가치이며 행복이며 영원한 꿈이라고 고백한다. 그런데 그가 진정한 사랑을 얻은 상태였다면 이토록 사랑을 갈구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까?
---「5장 〈키스〉의 탄생, 황금시대의 꽃을 피우다」중에서
〈키스〉는 단순히 그 화려함으로, 또 클림트의 황금시대의 절정을 보여준 작품이기 때문에 의미가 깊은 것이 아니다. 이 그림은 예술가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젊음을 지나 완연한 생의 후반기로 들어선 클림트의 심정을 모두 토로한 작품이다. 아마 클림트 본인도 느꼈을 것이다. 이 그림이 바로 자신의 ‘절정’이며 자신은 이를 능가하는 그림을 더 이상 그릴 수 없다는 사실을, 화가로서도, 한 인간으로서도 이제 자신의 앞에는 긴 쇠락을 향해 내려가는 일만 남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클림트는 평생 사랑과 예술을 갈구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사랑도, 예술도 잡힐 듯 잡힐 듯하면서 끝내 그의 손에 잡히지 않았다.
---「5장 〈키스〉의 탄생, 황금시대의 꽃을 피우다」중에서
클림트를 영원히 소유한 여자는 에밀리 플뢰게 한 사람뿐이었다. 두 사람은 30년 이상 수많은 편지와 엽서를 주고받았다. 이 서신들에는 서로에 대한 개인적인 이야기 못지않게 클림트의 작업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에밀리에게 의견과 조언을 구하는 내용도 많이 담겨 있다. 많을 때는 하루에 여덟 통의 엽서를 에밀리에게 보낸 적도 있었다. 클림트는 에밀리를 자신의 ‘평생의 친구’라고 불렀다.
---「6장 에밀리, 클림트의 영원한 뮤즈」중에서
시린 바람 속에서 에메랄드빛 물결이 일렁거리는 호수가 삽시간에 눈앞에 다가왔다. 클림트가 그토록 사랑했던 물빛, 아터 호수였다. 호수의 물빛은 클림트의 그림에 등장했던 고요하게 일렁이는 초록 물결과 똑같았다. 물빛뿐만 아니라 호수 주변의 풍경, 물결 너머로 푸른 언덕이 펼쳐지고 그 언덕 군데군데 집들이 모여 있는 광경도 클림트의 풍경화와 똑같았다. 그동안 화가의 상상 속 산물이려니 하고 생각했던 그 오묘한 에메랄드빛이 실제 호수의 물빛이었다.
---「7장 풍경화, 클림트 이면의 그림들」중에서
스타일과 장식, 시간과 분야를 막론하고 클림트 작품의 핵심은 늘 이 두 가지였다. 어떤 그림이든 클림트의 작품은 그 전의, 그리고 그 후의 누구와도 닮지 않은 클림트만의 분명한 개성이 있다. 그리고 빈 분리파 창립 이후 클림트가 그린 모든 그림의 핵심적 요소는 장식이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초상이든 풍경이든 장식은 클림트 그림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개입한다.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같이 잘 알려진 작품 외에 〈물뱀Ⅰ〉과 〈여성의 세 단계〉에서도 그림은 황금빛의 갖가지 장식으로 가득 차 있다.
---「8장 클림트, 그 누구와도 닮지 않은 화가」중에서
클림트의 흔적을 찾아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그가 천재이기 이전에 진정 용감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역사주의 화가로서 30대 초반에 이미 빈의 유명인사 반열에 올랐는데도 그 모든 영광을 뒤로 하고 빈 분리파를 창립했고, 황금 시대의 절정에 올라섰을 때 후배들의 날카롭고 격렬한 재능을 발견하고서 또다시 새로운 길을 찾아 나아갔던 사람이 클림트였다. 삶은 한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불확실한 가능성에 의지한 채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발걸음에 의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 법이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얼마나 자주 현실이 주는 보잘것없는 안락함에 도취되어 새로운 도전을 외면하는가.
---「에필로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