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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끝, 혹은 시작

세상의 끝, 혹은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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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1년 11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492쪽 | 584g | 148*210*30mm
ISBN13 9788959753673
ISBN10 895975367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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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유스케의 태도는 반항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에 대한 반항이란 대체로 성질 사나운 개처럼 온몸에 적의를 드러내며 달려드는 것인데, 아까 유스케가 내보인 태도는 언뜻 도발적으로 보이긴 했지만 그 표정이나 목소리는 침착하기 이를 데 없었고, 자리에서 일어날 때도 잘 먹었습니다 하고 예의 바르게 손을 모으지 않았던가. 기분이 상한 히데미 모양으로 문을 힘껏 닫아서 날림으로 지은 집을 흔들어놓지도 않았다. ---p.60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예를 들어 러시아의 원자력발전소가 폭파하든, 아니 멀리 갈 것도 없이 동북지방의 핵연료 시설에서 방사선이 누출되든, 그것이 직접 우리 집을 오염시키지 않는 한 나는 평화롭게 살 것이다.
나의 솔직한 기분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웃에서 누가 유괴를 당하든 총을 맞아 심장이 터지든 내 알 바 아니다. 물론 유족의 처지를 생각하면 가슴 아프지만, 그건 그냥 표면적으로 마음이 그렇다뿐이고 마음 깊은 곳에는 슬픔도 없다. 오히려 내 가족에게 아무 일이 없어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앞선다. ---p.67

기억의 문이 도미노처럼 쓰러지며 열렸다.
에바타 신고에 이어 살인범의 희생양이 된 아이는 바바 마사야였다. 그 아버지의 이름이 바바 아키후미.
세 번째 희생자는 아카바네 사토시라는 아이였는데, 그 어머니의 이름이 아카바네 마리코가 아니었던가. 아카바네의 집은 모자만 살아가는 가정이었다.
그리고 에바타 다카아키.
에바타 다카아키의 이름 옆에는 호잔물산이라는 글자가 박혀 있다. 세 블록 떨어진 곳에 사는 에바타 다카아키의 근무처와 동일하다.
그리고 오자키 다케히코.
지금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연쇄유괴 살인사건의 피해자는 네 명. 그 아이들의 부모 이름이 우리 집 안에 존재한다. 유스케가 가지고 있다. 네 장의 명함으로.---p.81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그들과 같이 행동하는 것 자체가 고통이다. 그들은 평화롭지만 나는 불행하다. 그들의 걱정은 자기 자식이 범죄 피해자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것이지만, 실제로 그럴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한편 나의 걱정은 내 자식이 범죄 가해자가 아닐까 하는 것인데, 그것이 현실일 가능성이 꽤 높다. 그들과 같이 휴일을 반납하고 그들과 같이 걷고 있는데 왜 나만 이렇게 불안에 떨어야 하는가. 내가 몹시 불쌍하고 그들이 몹시 부럽다. ---p.125

남자라면 누구든 한번은 총기에 이끌린다. 프로이트 신봉자는 총이란 남자의 성기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그런 억지논리를 제외하고라도 총은 그냥 폼이 난다. 여자애들이 보석이나 장식품에 눈을 반짝이는 것과 같다. 다만 나는 모델건을 소지하지는 않았다. 아버지의 반대 때문이다. 살짝 용돈으로 살 수 있을 정도의 가격이 아니었다. 그래서 부잣집 친구 집에 놀러 갔을 때 그 친구의 수집품을 만져본 적이 있는 정도이다.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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