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8년 04월 16일 |
---|---|
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344쪽 | 432g | 128*188*30mm |
ISBN13 | 9791162203620 |
ISBN10 | 1162203625 |
발행일 | 2018년 04월 16일 |
---|---|
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344쪽 | 432g | 128*188*30mm |
ISBN13 | 9791162203620 |
ISBN10 | 1162203625 |
뭐랄까, 이런 성격의 소설을 거의 읽지 않는 편이라 잘 쓰인건지 아닌건지도 잘 모르겠다. 술술 잘 읽히긴 하니까 잘 쓰인 거겠지 싶다가도, 이런 책을 다음에 또 읽겠냐 하면 굳이. 나의 독서 성향과 그다지 잘 맞는 느낌은 아니었다. 이런 소설도 있구나, 하고 느끼는 정도랄까. 취향도 아닌 책을 어떻게 읽게 되었냐, 하면 겨울 서점 영상을 보고.
가벼운 드라마를 한편 보는 느낌이었다. 다 읽고 난 느낌은 복수의 개연성과 사랑이라고 표현한 것이 그다지 확 와닿지 않았다. 그러나 스토리 외에 킬러가 아니라 어떤 일이든, 나이가 들어가면서 변화하는 상황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기회는 되었다.
3월 파과를 읽고
3월 독서 모임의 주제는 각자 <좋아하는 작가님의 글을 읽어오기>였습니다. 저는 <위자드 베이커리>로 처음 알게 된 구병모 작가님의 파과를 읽었습니다.
파과의 주인공은 장년 여성, 그러니까 할머니...시다. 시작 장면은 전철. 관심 없는 타인을 가장 많이 보게 되는 대중교통에 주인공이 타면서 그가 겉보기에 얼마나 평범한지, 그리고 '할머니'라는 엑스트라에게 요구되는 평범함에 대해 얘기한다. 노인을 보면 찡그리거나 멀리 떨어지고, 감히 화려한지, '곱게 늙었는지' 판단하는 시선과 잣대 등. 여성 서사라서 읽고 싶었지만 동시에 앞으로 어느 정도의 각성 상태로 독서를 이어가야 할지 가늠하려 했다. 그리고 주인공은 웬 남자를 살해했다... 나는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른다.
이 책은 킬러, 작중 통칭 '방역업자'의 이야기이고, 주인공 '조각(爪角)'은 한참 '방역' 업무 중에도 수시로 은퇴할지 안 할지 고민하다 역시 안 해도 되겠다는 생각 중에 은퇴 후 통닭집을 차릴 궁리를 하지만 키우는 개 '무용'에게 밥은 줬는지 물은 갈았는지 불확실한 장년이고, 그전에도 툭하면 별 이유 없이 업무 능력을 의심받아왔던 여성이다.
내가 살인 방법이나 총기의 고증에 대해 알 수 있을까? (남이 보기엔 장르물에서 고증 따지는 것도 어느 정도 해야 재미있다... 오히려 고증이 잘 지켜진 후기 글도 재밌다...)하지만 멋있는 것은 구분할 줄 안다. 조각은 멋있었다.
첫 장을 읽고 다음 날 아침 버스를 타는데 유독 주변을 이상한 사람처럼 훔쳐보게 되었다. 거주지가 읍이고 시골이라 노인들과 늘 마주치고 외할머니도 감사히 정정하셔서 종종 뵙는데 그날 아침처럼 처음 보는 막 버스에 탄 누군가가 왠지 미래의 내 모습일 것 같다는 동일시를 느낀 적은 별로 없었다.
'저렇게 늙고 싶다'는 생각은 자주 했다. 나와 주인공 조각이 얼마나 다른 존재이며, 행여나 실제로 만나면 한 톨도 가까워질 수 없는지 그 이전에, 조각이 받는 시선이나 얕보는 말, 자신을 어느 만큼 드러내고 어느 만큼 무시하고 어떤 정도로 방어해야 하는지 시시로 판단이 앞서고 방어하는 모습이 남 같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저녁과 그 이후에도 계속 이어 읽었다. 조각은 업계에서 이름 따라 '손톱'이라고 불렸을 정도로 능숙하게 방역 업무를 해왔으면서 집에선 10살이 넘은 개, '무용'을 키우고 있다. 킬러에게 지켜야 할 존재가 있으면 읽는 독자는 불안해진다. 자꾸 작가님의 달콤한 문장으로 표현된 글을 저렴한 어휘로 표현하자니 슬프지만, 이런 다 늙은 개를 데려와봤자 무얼 하냐는 생각으로 무용이라는 이름을 붙인 조각은 스스로 생각하는 자기 모습과 다르게 무용에게 관심과 애정을 쏟고 있다. 어쩌면 내심 알고 있기에 더 방어적으로 부정하는지도 모르겠다.
비록 언제 데려왔는지 긴가민가 하고 기억은 안 나지만 오랜 작업 기간 뒤에 돌아오더라도 개의 밥과 물이 모자라지 않도록, 그리고 그 개가 혼자 남겨질 이후까지 신경 써왔다.
조각은 곁에 무언가 남아 있는 감각에 서툴다. 키우는 개가 제공하는 온기에는 거부감을 느끼고 이미 떠난 누군가가 곁에 남아있는 것처럼 자꾸 회상한다. 만약 조각이 기본적으론 무용에게 박하고 챙겨주는 건 언제 떠날지 모르는 건강과 불안전, 불안정한 생활 때문이고, 인간과는 다른 종이 느낄 습도를 걱정하고 먹으면 안 되는 음식을 챙기는 건 몸에 베인 부지런함과 인간이 당연히 해야 할 일로 치더라도, 모두 당연해서 친절로 해석할 여지를 남기고 싶다. 그리고... 우리집 강아지가 자꾸 생각났다.
작중에서 인상적인 부분이라면, 조각은 친절한 의사에게 이끌렸다. 그 친절함을 자신을 이해해줄 것 같은 누군가로 해석해도 될까? 주인공의 직업 혹은 연령 등으로 해석하면 촌스럽겠지만 사람은 아무래도 대체로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보편적이다. 그리고 조각은 그건 잘못된 바람이라는 것을 안다! 독자가 보기에 자기가 얼마나 멋있는지 모르는 조각은 촌스러운 걱정도 해보고 이후로 인간 대 인간으로서 생각하려 한다.
지금 생각하면 조각은 자신에게 회의적인 상황에서 자주 나빠지는 건강, 멀쩡하지만 남에게 믿음을 주기엔 어려운 정신, 조용해야만 하는 신변 때문이 아니더라도 '킬러'로서 자기 자신이 사라진 뒤에 남을 존재를 인지하기 때문에 더 나아가지 않았던 것 같다. 무용에게도, 내심 꿈꾸는 자신의 또 다른 미래나 자신이 느낄 온기에게도. 과거의 일로 자꾸 미룬다.
''정신이 나간 상대를 제거하는 것은 그에게 자비를 베푸는 셈이 되어서 의뢰인의 요구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조각이 꺼리는 인물 투우(동종업계, 같은 업체, 젊은 남성)의 가치관이다. 아무래도 사회에 이바지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내가 보기엔 이 업무 철학도 정신이 나갔다고 생각되지만, 또한 이런 위험한 캐릭터가 등장한 이후로 조각의 안위를 계속 걱정하며 읽었다.
조각은 자신이 무정하다고 생각하고 남과 엮이기를 피하는데, 투우는 방역업자면서도 여기저기 얼굴을 흘리고 다니는 데다 남을 찔러보고 다닌다. 그런데 프로의식이 없지는 않은 인물이라 주인공에게 독이 될지 혹은 방어적인 조각에게 의외로 좋은 계기와 인연이 될지, 선택지는 있지만 조각의 뼈에 박힌 의심에 동화되어 투우를 의심하며 읽었고 흥미진진했다.
주인공은 마지막에 자신의 또 다른 미래를 열(어둘 수 있을까? 한 번 읽어보세요^^) 기회 앞에 위기를 맞이하는데, 드라마와 심리 변화 속에서 일순 빠르게 무너졌었던 조각은 은인에게 길러진 '방역업자'의 삶과 비로소 스스로를 위하는 삶, 그 사이에서 삶 자체에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 무, 상태 유지를 향해 자주 이동했다.
나는 뒤따라올 결과가 무서울 때, 그럴듯한 결과가 유추되지 않을 때 상태 유지를 한다. 이 선택은 나를 과소평가하고 존중하지 않은 업보를 어떤 형태로든 불러왔다. 조각은 일로써 사람을 죽이며 살아왔다. 지금 와서 조각에게 주변을 아끼고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조언을 하기에는 복잡하다. 조각 자신도 역시나 잘 알고 있다.
이 이후의 삶에 대해 조각도, 나(독자)도 좀 더 가뿐할 수 있도록 작가님은 조각에 대해 좀 더 설명해주신다. 보도블럭에서 넘어지면 길가 아스팔트에 무릎이 깨질 것 같은 현대 소설과는 동떨어진 조각의 시대극은 향수를 부르는 게 아니라 낯섦에 대한 경계를 하며 조마조마함을 느끼게 했다. 조각을 지켜보다 보면 시대적 다름이 포용력을 불러오다가, 또다시 영화 한 편이 된다.
나는 영화를 정말 좋아한다. 책 <파과>에서는 영화 주인공 같은 조각에 걸맞게 영화 같은 장면들이 많이 지나간다. '꼰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어르신이 사실은 킬러인 작품'. 같은 키워드로 잘못하면 오히려 실패한 '가족 코미디'가 될 수 있는데 작가님은 인물들을 존중하고 캐릭터들을 많이 살피신 것 같다. 이곳에 잔인했다, 냉철했다고 소감을 쓰지 않고, 삶과 주변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되었으며, 그들에겐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업무 상황이지만 결국 남의 일이라 멋지다고 생각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작중에서 인물들이 방역업을 게을리한다는 뜻이 아니다.)
자기 전에 우리집 강아지를 한 번 더 보고 자야겠다.
한 번 더 읽어보고, 스포일러를 한 후기나 생각 정리를 하고 싶다.
-끝-
40여년간 날카롭고 냉혹하게 청부 살인을 업으로 살아오던 60대 여성 킬러 ‘조각’. 몸도, 기억도, 예전 같지 않게 삐걱거리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퇴물 취급을 받는다. 노화와 쇠잔의 과정을 겪으며 조각은 새삼스레 ‘타인’의 눈 속에 둥지를 튼 공허를 발견하게 된다…
은퇴를 고민해야 할 할머니 킬러란 참신한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운 구병모 작가님의 소설입니다. 은퇴 후의 킬러나, 세상을 등지고 산 속에 은둔 생활을 하는 킬러가 주인공인 이야기들은 제법 있지만, 이 조각 할머니는 아직 현역입니다. 40여년 지켜 온 킬러로서의 행동 습관이 어긋나는 일도 없고, 밥벌이 실력은 여전합니다. 그러다 보니, 꽤 매력적인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킬러로서 조각은 60대 중반이란 것이 실감이 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보지 않은 인생, 어떻게 60대 중반의 킬러를 60대 중반으로서 살려낼 것인지 아마도 읽는 사람 중에 60대 중반 독자가 없어서 일까요. 그 맛이 조금 아쉽습니다. 60대 중반의 여자 킬러라면 실제 어떨까요. 우선 젊은 킬러들도 그렇겠지만, 상당한 시간 몸 단련에 힘을 써야겠지요. 킬러로서의 습관만큼 몸을 단련하는 습관 또한 젊었을 때 이상일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소설은 60대 중반의 혼자사는 고독한 할머니 킬러입니다. 킬러 쪽에 포커스가 갈 것인지, 할머니 쪽에 포커스가 갈 것인지, 킬러 할머니 쪽에 모든 포커스를 모아 볼 것인지 소설 중간중간 작가님의 고민의 흔적이 보입니다. 그러다 보니 문체가 3인칭, 극장 화면을 보는 것 같은 문체입니다. 거기에 할머니의 감정을 집어 넣습니다. 이대로 스크린에 옮겨 놔서 대화를 집어 넣는다면 바로 영화가 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접근하니 킬러물이 보통 영화에서 보는 킬러물들과 대동소이합니다. 장르문학의 매력은 반전인데, 어느 틈엔가 결과가 보이는 이야기가 되어 버립니다. 그렇다고 하기에는 60대 할머니 킬러라는 주인공 자체가 결과를 예측하는 캐릭터일지 도 모릅니다. 죽어버리면 역시 힘 빠진 할머니 킬러가 될 것이고, 반전이라면 아직 그래도 생생하고 실력이 죽지 않은 할머니 킬러, 어느 쪽도 예측되는 무리가 없는 결과입니다. 장르문학으로 갈 것이냐, 영화 대본으로 갈 것이냐, 매력적인 할머니 60대 중반의 할머니 킬러라는 신선한 발상이 아주 살짝 아쉬운 킬러 소설 장르가 되어 버립니다. 역시 롤모델이 없는 60대 중반의 할머니 킬러로는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기 어려웠을까요
이런 아쉬운 점은 있지만, 소설은 재미있습니다. 무엇보다 주인공이 신성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