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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작 할 걸 그랬어

진작 할 걸 그랬어

: 책에서 결국, 좋아서 하는 일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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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4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324쪽 | 436g | 128*188*20mm
ISBN13 9791162203637
ISBN10 1162203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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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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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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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문득 궁금해졌다. 지금 내 앞에 앉은 남편이 편안하고 행복한지. 책을 덮고 남편을 본다. 일단 그가 고른 센차는 그리 흡족하지 않았던 것 같다. 왜 커피를 시키지 않았느냐고 물어보니, “네가 두 종류 다 마셔보고 싶을까 봐”라며 그제야 자신의 음료를 건네는 남편(내 입맛엔 만족스러웠다). 이미 차 맛에는 관심이 없고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어 점심 먹을 식당을 검색하고 있다. 다행이다, 이 편안함과 멋짐을 우리가 공유하고 있어서.
--- p.44~45

오늘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아마 평생 펼쳐볼 일이 없었을 이 책은 나와 무슨 인연으로 맺어진 걸까 싶기도 하고. 꽤 오랫동안 내 앞에 놓인 낯선 책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조금이나마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내가 고르지 않은 책에 이토록 깊은 관심을 기울여본 것은 난생처음이었다. 이 한 권의 책을 영원히 잊을 수 없겠지.
--- p.50

거의 매일 밤 우리는 나란히 누워 그날의 기분에 따라 읽고 싶은 책을 읽는다. 가끔 궁금하면 서로의 책에 고개를 내밀기도 하고, 먼저 잠든 사람의 머리를 쓰다듬기도 한다. 잠들기 전에 책 읽는 즐거움을 공유하지 않았더라면 우리의 머리맡은 얼마나 황량했을까.
책을 좋아하는 남자와 함께 사는 데는 이토록 많은 장점이 있다. 물론 단점도 있다. 내가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원고를 쓰고 있는데, 뭐 하냐고 묻지도 않고 저기 소파에서 혼자 책 읽느라 정신이 없다는 거. 그 외에는 데리고 살 만합디다.
--- p.108~109

한때는 더 많은 대중 앞에 선 나를 상상했고, 촌철살인의 멘트와 카리스마를 내뿜는 앵커를 꿈꿨다. 그러나 화장기 없는 얼굴로 서점의 간이 의자에 앉아 있는 지금의 나는 아주 행복하다. 꿈이 소박해졌거나 욕심을 내려놓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열댓 명의 사람들 앞에서 오히려 무릎을 탁 치고 가슴을 울리게 만드는 이야기가 생겨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검열이 없으니 가릴 것도 없고, 생선회처럼 팔딱팔딱 뛰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나는 그런 이야기들을 세상에 전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앞으로 내 삶에 또 다른 깨달음의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방송인, 책방 주인, 혹은 그 무엇이 되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묻고 싶다.
--- p.135

책장이 있는 곳이 서점이든 서점이 아니든, 책장은 그 책장에 책을 꽂은 사람과 그 책장에서 책을 꺼내든 사람 간의 끊임없는 대화다. 책장에 꽂힌 책들은 독자에게 말을 건다. 우연히 펼친 한 권의 책과 한 줄의 문장에서 누군가는 꿈을 찾고, 오래 앓던 고민을 털어내며, 혹은 그날 하루를 살아낼 힘찬 기운을 얻을 수도 있다. 그것이 “책 따위 안 읽어도 좋지만”이라고 말하는 북 큐레이터 한 명이 실로 다양한 공간을 종횡무진하며 멋진 책장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일 터다. 비록 사부님을 만나본 적은 없지만, 책을 통해 그의 가르침을 받은 나 역시 괜찮은 북 큐레이터가 되기 위해 오늘도 쏟아지는 신간의 바다를 헤엄치고 있다.
--- p.206

앞으로 오래도록 좋은 책방을 꾸려가기 위해서는 어떤 콘셉트가 필요할지, 장차 우리 책방의 분위기가 어떻게 변해갈지는 잘 모르겠다. 동네 책방 중에는 특정 분야에 파고들어 마니아의 사랑을 받는 책방도 있고, 대중에게 익숙하지 않은 독립출판물을 전문으로 다루는 책방도 있다. 나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책을 읽히고 싶다는 것 외에 구체적인 목표는 아직 없다. 내가 방송을 하는 사람이니 책에 관심이 없던 사람도 친숙한 얼굴의 책방 주인에게 이끌려 독서라는 취미를 발견하는 계기가 되는, ‘초심자를 위한 책방’이어도 좋을 것 같다. 평범한 사람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지만 평범한 책만 가득한 서점은 아닌, 나의 개성과 안목이 묻어나는 책방이 될 수 있다면. 바로 이곳 퍼블리싱 앤 북셀러즈처럼.
--- p.280~281

책이 없었다면 나란 사람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도무지 상상하기 어렵다. 30여 년 동안 읽어온 문장들이 내 안에 차곡차곡 쌓여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다고 믿고 있다. 사람에게 잘 기대지 않는 성격인 내가 그럼에도 외롭지 않고,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절망하지 않는 건 언제나 책이 곁에서 말을 걸어주고 이야기를 들려준 덕분이다. 책과 문장이 가진 힘을 사람들이 잊지 말아주었으면 좋겠다. 트렌디한 잡화 정도로 책이 소비되는 건 역시 서운하다. 책을 쓰고 만드는 사람들, 책을 팔고 소개하는 사람들, 책을 고르러 온 사람들 모두가 힘을 내서 이 힘들고 지치는 세상 속으로 더 많은 문장이 퍼져나갔으면.
--- p.296~297

책방 여행을 다녀와 직접 책방을 내기까지, 이제 막 서점 업계에 발을 담갔을 뿐이지만 책은 놀랍게도 내가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을 매일매일 내게 가져다준다. 즐거운 일을 즐겁게 하면 된다는 단순한 진리를 왜 이제야 알았을까. 앞으로 나와 내 책방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알 수 없지만, 벌써부터 50년 차 책방지기가 될 수 있을지를 미리 걱정하진 않을 것이다. 오늘 하루 더 즐겁게 책을 읽고, 책방을 찾는 이들이 많아지는 날까지 내가 책 파는 일을 더 많이 좋아해야지. 힘차게 휘파람을 불며.
--- p.304~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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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지금의 내가 하던 일을 집어치우고 전혀 다른 일, 예를 들어 책방을 열면 나는 행복할까.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행복할 가능성을 놓고 김소영과 비교해본다면 나는 그의 상대가 되지 못할 것이다. 첫째, 나는 책을 그녀만큼 좋아하지 않는 것 같고, 둘째, 나의 생물학적 나이는 한두 번의 실패도 실제보다 더 심각하게 느끼게 될 만큼 많다. 그녀는 책에서, 자신은 어느 날 행복해지기로 마음먹었고, 그러다 보니 책방까지 열게 됐으며, 그래서 행복하다고 말하고 있다. 나는 그 말을 인정한다. 앞에 말한, 그가 나보다 비교우위에 있는 두 가지 이유가 근거다.

나는 그래도 그의 가까운 선배라고 생각하는데 그가 내게 전혀 의견을 묻지 않고 행한 일이 퇴직 후 책방 주인이 되는 일이었다. 웬 책방?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런 일에 그만큼 맞는 사람도 드물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회사를 그만둔 이후 한동안 기다려도 다른 방송에 나오지 않았을 때, 나는 어렴풋이 그가 전혀 다른 계획을 세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동안 봐온 그는 꼭 그럴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다. 훗날에도 여전히 책방 주인으로서 행복할 것이라 믿는다.

덧붙이자면, 김소영 덕에 아주 오래 전, 그러니까 대략 40년쯤 전에 내가 거의 반년 가까이 친구 집에서 하는 책방을 아르바이트 삼아 지켰던 일이 기억났다. 고달프기도 했지만, 아늑하기도 했던 추억이다. 비할 바는 못 되지만 이 책 속에 있는 도쿄의 작은 서점들 이야기를 보면서 떠올린 추억들을 그의 책방에 가면 다시 느낄 수 있을까...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 손석희 (JTBC 보도 부문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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