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것도 그냥 버려지는 법 없는 자연 앞에서
다시금 되새기는 겸허함, 그리고 ‘존중과 공존’
사람이 사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세계, 척박한 땅에서도 지의류들은 용케 가지를 늘어뜨리고, 그것을 뒤집어쓴 고목은 다행히 무게를 지탱하며 단단히 뿌리 내린다. 곰은 나무를 빌려 숲을 거닐고, 나무 곁에는 아주 적은 양분에 기대서라도 있는 힘껏 꽃을 피우는 식물이 살아간다. 강은 작은 물고기에게 생명의 원천이 되고, 물고기들은 일생을 마치고 다시 숲의 자양분으로 돌아가 자연의 일부가 된다.
시린 땅에서 생명은 그렇게 서로에게 자리를 내어 주고 잠시 빌리며 생존하고, 또 순환한다. 그 과정에서 자연이 준 어느 것 하나도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다.
아주 미미해 보이는 것조차 귀하게 받아들일 줄 아는 생명에게만 싹을 내리고 잎을 틔우는 일이 허락되는 곳, 알래스카의 자연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 걸까?
더 많이 가지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도시의 편리함을 누리면서도 ‘부족하다’는 말로 환경과 생명을 ‘파괴’하며 ‘발전’하려는 인간…… “혹독한 자연에서는 아주 적은 양분도 결코 그냥 버려지는 법이 없습니다.”라는 작가의 말에는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오늘날 우리의 문명이 나아가야 할 답이 담겨 있다.
세상의 다양한 ‘저마다의 삶’을 향한 경탄,
소멸과 탄생의 반복 속에 깨닫는 ‘현재’의 무게!
조금 더 걸어 들어간 곳에는 나무들 사이로 수많은 토템 기둥이 우뚝 서 있다. 어마어마한 세월을 견딘 자국으로 가득하지만 그 옛날 사람들의 목소리만큼은 형형하다.
“모든 생명에 영혼이 있으며 모두 함께 세상을 이루었다”고 믿던 시절, 곰과 고래를 신으로 모셨던 하이더족 원주민의 삶은 오늘날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형태일지 모른다. 하지만 ‘몰랐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았다’는 건 아니다. 호시노 미치오는 토템 기둥 앞에서 촌장이 된 큰까마귀 설화와 기둥에 새겨진 동물들의 신비한 힘을 상상한다.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우리가 모르는 사람들이 쌓아 올린 ‘저마다의 삶’. 쓰러져 가는 토템 사이에서 호시노 미치오의 시간 여행에 동참하며 우리는 다양한 환경, 다양한 사람, 다양한 삶과 문화에 대한 일종의 경외감에 젖는다.
켜켜이 쌓인 아침 안개, 바다를 가르는 고래, 곰이 연어를 단숨에 잡아채는 그 순간……. 호시노 미치오의 카메라는 알래스카에 직접 몸을 뉘이고 살아가는 사람만이 느끼고 잡아낼 수 있는 숲의 명장면들로 가득하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이 모든 명장면들은 한편의 시처럼 아름답다. 그 문장의 운율을 오롯이 전달하기 위해, 격정과 열정의 시간을 소화한 자만이 낼 수 있는 성숙하고도 편안한 호흡을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역자 햇살과나무꾼은 공들여 문장을 다듬고 또 다듬으며 정성을 기울였다. 그 덕분에 잔잔하게 흐르는 서정적인 글, 숲이 맨얼굴을 드러내는 찰나를 생생히 담아낸 사진은 애초에 한 몸인 것처럼, 모든 생명을 끌어안는 이 책의 숲처럼 그렇게 하나로 다가온다. 알래스카의 원시림은 그저 그런 숲이 아닌, 하나의 특별한 실체가 되어 우리 앞에 살아 움직인다.
호시노 미치오는 러시아의 캄차카 반도에서 취재 도중 불곰의 습격을 받아 43세의 젊은 나이로 목숨을 잃는다. 언젠가는 썩어 없어질 토템 기둥처럼, 우리 또한 영원하지 않은 존재이다. 하지만 오래된 토템 옆에서 갓 태어난 흰꼬리사슴이 숨을 쉬듯, 자연은 소멸과 탄생을 반복하며 우리에게 ‘현재’의 무게를 일러 준다.
작가는 그 무게를 알고 있었을까? 숲을 빠져나와 망망한 바다 위 고래를 마주하는 그의 모습은 우리의 여정이 언제, 어디에서 끝나든 ‘오늘’이 있어 괜찮다며 위로하는 듯하다.
얼어붙은 땅에도 뜨거운 맥박이 뛰고 있음에 대한 직접적이고 낭만적인 기록이자, 우리가 모르는 곳에도 펄떡이는 한 생(生)이 존재함에 대한 중요한 증거로서 이 작품이 오래도록 빛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