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렇게 엄마를 사랑했습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요. 엄마가 나에게 주었던 황홀한 미소와 달콤한 밀어. 그것은 온전히 나만의 것이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내 앞에 펼쳐질 생이 그렇게 녹록지 않으리라는 것은 우리가 놀이터에서 자주 하던 ‘엄마, 없다’ 놀이를 하며 알았습니다. 엄마는 종종 미끄럼틀 뒤나, 책 읽는 소녀의 동상 뒤에 숨기 전에 나를 보며 “엄마, 없다”를 외쳤습니다. 그러면 방금까지 보이던 엄마가 정말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정말 이상하게도 그 말만 하고 나면 엄마는 사라졌습니다. 아, 처음에 나는 얼마나 울었는지요. 엄마는 코까지 빨개지며 우는 내가 우스워서 배를 잡고 웃었습니다. “우리 아기, 왜 울어? 엄마 여기 있는데. 엄마도 아기 때에 엄마의 엄마와 이 놀이 하면서 놀았어. 엄마는 재미있는데 우리 아기는 재미없어? 슬프기만 해?” ---「엄마, 없다」에서
이제 나는 아버지에게 짜증내지 않으면서도 음식을 줄일 수 있게 되었다. 먹지 않으면 슬퍼지던 날들이여 이제는 안녕~. 그가 나를 보고 웃을 때, 가만히 내 이름을 부를 때, 사람들이 지나는 복도에서 코를 찡그리며 아는 체할 때, 남자 화장실로 쏙 들어가며 따라오라고 장난칠 때 나는 포만감을 느꼈다. 그것은 음식으로 허겁지겁 허기진 배를 채울 때 느끼던 포만감과는 달랐다. 한없이 달콤하면서도 동시에 아릿했다. ---「민소매 원피스」에서
그녀는 그 사이 눈가의 얼룩을 대충 지운 것 같았다. 인턴은 연속으로 두 번 눌러 캡슐 안에서 껌을 꺼낸 뒤 입 속에 털어 넣었다. 품새가 꼭 약이라도 먹는 것 같아 물도 함께 대령해야 할 것 같았다. “이 껌은요, 꼭 두 알씩 먹어야 해요. 하나로는 통증이 잘 안 가셔요. 저는 두통약도 꼭 두 알씩 먹거든요. 이건 껌이 아니고 기분 좋아지는 약이에요. 씹으면서 ‘좋아져라~’ 하고 빌면 진짜 좋아져요. 언니도 두 알 씹어보세요.” ---「껌 두 알」에서
태어난 순간부터 엄마가 그리웠던 여자, 그저 사랑이 많았던 여자, 타인의 시선에 갇힌 여자, 늘 다치는(닫히는) 여자, 마냥 웃는 여자, 기다리는 여자, 떠날 준비를 하는 여자……. 순서를 정해둔 것도 아닌데 차례차례 다른 여자들이 찾아왔다. 와서, ‘소설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는 그냥 일기를 쓰듯 열심히 써나갔다. 조금씩 처지가 다를 뿐, 그녀들의 이야기는 모두 내 이야기이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여자들의 이야기이다.
살가운 이야기꾼과 동행하는 느낌이다. ?‘늙은 사병’을 자처하는 나에겐 주인공과 엑스트라가 따로 없는, 글쓴이의 세상 보는 시선이 참 좋다. 그런데 해피엔딩 영화를 보고 거리에 나서?인파에 파묻혔을 때처럼 쓸쓸함이 몸을 휘감는 것은 왜일까? 홍세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편집인)
위로가 필요한 모든 여자들을 위한 책. 사람들이 사랑을 하고 있다. 여자이거나 남자이거나, 어른이거나 아이이거나, 얼굴이 붉은 편이거나 노란 편이거나 검은 편인 사람들이, 서로 상처내고 상처받고, 핥고, 가리면서. 마음은 내 것이 아니라서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가 훨씬 많다. 다행히 나만 그런 건 아니다. 나와, 다른 사람의 마음을 간결한 시선으로 지긋이 들여다보는 이 소설을 당신도 보았으면 좋겠다. 김여진 (배우)
읽으면서 몇 번이고 눈가가 뜨거워졌다. 주변의 사소하고 눈에 띄지 않는 것에게까지 시선을 보내는 친절한 카메라처럼 이 소설은 세상의 별별 사람들에게 세심하게 마음을 쓰고, 그들을 품어준다. 어느새 주인공들의 삶에 동화되어 함께 웃고, 울게 된다. 윤지영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