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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6월 12일
쪽수, 무게, 크기 404쪽 | 446g | 140*205*30mm
ISBN13 9788950975524
ISBN10 8950975521

이 상품의 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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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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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번개가 하늘을 가르고 숲속으로 사라진다. 바람이 몰아쳐서 나뭇가지가 조수석 창문을 긁어대, 누가 들어오려 애쓰는 것 같다. 등골이 오싹하다. 핸드브레이크를 풀고 차를 조금 앞으로 움직여 떠나는 시늉을 해 보인다. 그러면 무슨 반응이 있지 않을까? 내가 떠나길 원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하지만 아무 일도 없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다시 차를 멈춘다. 여자를 그냥 놔두고 떠나서는 안 될 것 같으니까.--- p.15

나는 창문으로 뒤뜰을 내다본다.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에 집중하려 노력하지만 머릿속은 온통 어젯밤 생각뿐이다. 내가 차를 세웠다 다시 출발시키던 그 순간을 자꾸자꾸 되돌려본다. 차 안의 그 여자, 그때는 살아 있었는지도 모른다.--- p.24

나는 숨을 멈추고 입을 닫았다. 얼음물을 한 바가지 뒤집어 쓴 듯 깨달음과 함께,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른 건지 그제야 알아챘다. 나는 그 여자가 이미 도움을 요청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숲속에서 전화가 안 터진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했지? 잠시 깜빡 해서? 아니면 양심의 가책을 안 받고 떠나려고? 이제는 그럴 수 없다. 내가 그 여자를 죽게, 살해당하게 내버려두었다.--- p.27

그 운명적인 금요일 밤, 숲을 관통해 지름길로 가기로 한 한순간의 선택이 내 삶에 이렇게 치명적인 타격을 미치다니, 믿을 수가 없다. 제인도 문제적 시간에 문제적 장소로 가는 잘못된 선택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나야말로 그 사소한 실수가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 이런 결과를.--- p.101

“내가 충고 하나 할까, 캐시? 의사에게 처방받은 약을 먹어. 그럼 우리 둘 다 좀 쉴 수 있을지 몰라.”--- p.147

사악한 침묵이 나의 공포를 확인시켜준다. 놈이 또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목요일과 금요일에 전화를 걸지 않았던 건 매튜가 집에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오늘 집에 혼자 있는 줄 알고 다시 전화를 건 것이다. 우리 집을 지켜보고 있다는 뜻이다. 근처에 있다는 뜻이다. 공포가 내 몸을 할퀴는 듯하다.--- p.150

복도에서 소리가 들린다. 현관문이 딸깍 열리더니 탁 닫힌다. 그러고 나서 자박자박 발자국이 다가온다. 나는 거실 문만 꼼짝 않고 쳐다본다. 손잡이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공포가 장막처럼 나를 덮친다. 무섭게 휘감아 숨을 쉴 수가 없다. 이제는 아예 흑흑 소리까지 내던 나는 창문을 향해 뛰어간다. 다급하게 커튼을 젖히고 창턱에 놓여 있던 난초 화분도 밀쳐버린다. 내가 창문을 확 여는데 거실 문이 열리다가 안락의자에 탁 걸린다.--- p.152

“걱정 마. 너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이니까. 커피머신 작동법이 생각이 안 났어. 처음에는 전자레인지더니, 그다음엔 세탁기, 이젠 커피머신이야. 다음번엔 옷 입는 법을 잊어버리겠지.”
그러고 나서 폭탄선언을 할 준비를 한다. “나 조발성 치매에 걸린 것 같아.”
“그래, 몇 주 전에 얘기했어.”
“그랬나.” 나는 기운이 빠져 말한다.--- p.235

가만 생각해보니, 매튜는 한 번도 나를 차분히 앉히고 왜 살인자가 나를 쫓고 있다고 생각하냐고 물어본 적이 없다. 만일 그랬더라면, 그날 밤 제인의 차를 본 이야기를 털어놓았을지 모른다.--- p.255

“내가 망상을 하는 건 아닐까요?”
“정말 망상이라면 망상이 아닐까 하는 의심도 안 하겠죠.”
“그럼 정말 내가 제인의 살인자에게서 전화를 받는다는 걸 믿는단 말이에요?”
“아뇨, 전화를 받는다는 건 믿지만 제인의 살인자가 거는 건 아닙니다.”
“설마 광고 전화라는 건 아니죠?” 나는 실망감을 숨기지 못하며 다시 묻는다.
“아뇨, 분명 그것도 아닙니다. 누군가 확실히 당신을 괴롭히고 있어요.”--- p.266

전화를 받자 헉 하는 숨소리가 들린다. 내가 놀래킨 것이다. 놈에게 불시의 일격을 가했다는 즐거움에, 전화선을 타고 들려오는 침묵에도 전보다 훨씬 잘 대처할 수 있다. 평소에는 공포에 떨리던 나의 숨결이, 고른 상태를 유지한다.
“그동안 그리웠어.” 속삭이는 목소리가 전화선을 스르르 타고 내려와 보이지 않는 힘처럼 나를 타격한다. 공포가 다시 솟아오른다. 피부에 소름이 돋는다. 그 악랄함으로 나를 숨 막히게 만든다.--- p.238

“누구야?” 내가 전화를 받는다. 무섭다기보다는 궁금하다.
“내가 생각했던 사람이 아니지? 그럼 누구야?” 내가 묻는다. 나는 전화를 내려놓으며 이상한 승리감을 느낀다. 하지만 경악스럽게도 곧바로 다시 전화가 걸려온다. 나는 잠시 서서 전화를 받아야 하나 망설인다. 받지 않으면 받을 때까지 걸 것이다. 하지만 놈이 원하는 대로 해주고 싶지 않다. 순순히 전화를 받고 말없이 서 있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은 아니다. 내 남은 인생의 소중한 몇 주, 몇 달을 이미 잃어버렸다. 더 이상 잃지 않으려면 이제는 맞서기 시작해야 한다.
--- 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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