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엮기 위해 지난 2년 동안 쓴 글들을 살펴봤다. 그 가운데 “분노는 짧게, 즐거움은 길게, 행복은 가득”이라는 문장에 문득 눈이 멈췄다.
---「우리를 위한 임시대피소」중에서
급한 일이 생기면 아내의 차를 얻어타기 시작했다. 경찰차들은 가끔 골목길에서 먼저 지나가라고 오른쪽으로 비켜준다. 모닝에게 차로를 양보하는 경찰차를 만난 이후, 평생 입에 달고 살던 ‘짜바리’라는 말을 쓰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2년쯤 지내다보니, 나는 누구에게나 양보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아홉수와 경차」중에서
가장 웃겼던 것은 ‘일보삼배’ 사건이다. 말 그대로 삼보일배를 일보삼배로 잘못 써서 ‘새만금 갯벌 살리기 삼보일배’ 활동가들에게 보내고 말았던 것이다. 현장에서는 난리가 났다. “형, 진짜 일보삼배를 해야 하는 거야? 여기 스님들, 신부님들 다 죽어!”
---「우리는 지는 법이 없습니다!」중에서
1994년, 시인 최영미는 때리지 말라고 노래했다. 그리고 정말로 그 노래가 사회의 핵심이 되는 시대가 열린다.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 여성 조교, 여성 작가, 여성 스태프, 이들과 평등할 수 있는가? 누구더러 우리처럼 하라 하던 시대는 20세기에 끝났다. 이제야 우리의 21세기가 시작된다.
---「사랑이, 혁명이, 시작되기 전에 와버린 21세기」중에서
한 가지는 알 것 같다. 자신에게 일생의 과업이 있지 않다는 것을 쉰에 아는 것이 예순에 아는 것보다는 낫다는 점이다. 오십 살, 아직 10년은 남아 있다. 소명 같은 것 없어도, 평생의 과업이 없어도, 충분히 재미있고, 즐겁고, 의미 있게 살 수 있다.
---「일생의 과업 따위를 믿는 바보들에게」중에서
오십이 되면서 나는 나의 가치를 ‘찌그러짐’으로 선택했다. 아직은 더 일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정말 잘 찌그러지면 “선생님, 좀 귀여운 맛이 있어요”라는 말을 젊은 동료들에게 들을 수 있다. 이제야 내가 좀 마음속에서부터 제대로 찌그러지고 있구나 하고 뿌듯했다. 50대 한국인, 역시 찌그러지는 맛이 진리다. 이제 밥 사주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20대의 아름다움, 30대의 머리, 50대의 찌그러짐」중에서
나는 명함이다! 내 몸에 적힌 이름을 욕되게 만들면, 그게 바로 복수다! 만년필, 노트, 클립, 압정 등과 손을 맞잡았다(앗 따가워!). “주인 놈에게, 자기 이름에 책임을 지게 하자! 명함을 끝까지 지켜서, 엿먹여보자!” 복수! 이 얼마나 달콤한 단어인가!
---「명함의 복수」중에서
통계청은 ‘관리자’인 1번 직업과 ‘단순노무자’인 9번 직업을 대분류에서 극명하게 대비시키고 있다. 대부분 가고 싶은 곳은 1번에 있는데, 현실은 9번이다. 친구들은 1번인데 나는 9번인 게 현실일지 모른다. 50대가 한국표준직업분류를 꼼꼼하게 살펴본다면 과거에 대한 자괴감과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잠이 안 올지도 모른다.
---「다 같이 떠나는 신나는 직업지도 여행」중에서
“박사님도 꿀 좀 빠셨나요?” 당황스럽다. 현재 한국 사회의 청년을 앞에 두고 “나도 소싯적에 고생 좀 했거든?”이라고 말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네, 저는 크게 고생한 것 없죠.” 달리 대답할 말이 없었다. “아, 꿀물 좀 쪽쪽 빠셨구나!” 제기랄, 당황해서 말을 못 잇고 있는 내 얼굴에 상대의 말이 화살이 되어 박혔다.
---「달달한 50대」중에서
행복은 복리로 이자가 붙는 정기예금과 완전 반대의 금융상품이다. 지금 바로 꺼내써야 한다. 행복은 연습이고, 훈련과 같다. 그리고 기술이기도 하다. 기술도 자꾸 써봐야 느는 것처럼, 행복도 쓸수록 늘어난다.
---「매운 인생, 이제는 달달하게」중에서
쉰 살, 정상을 향해 마지막 스퍼트를 하는 것과 이제 슬슬 인생을 천천히 즐기면서 사는 것, 우리는 그 선택 앞에 서게 된다. 나는 더욱 적당히 살 것이다. 한 명 한 명이 이렇게 긴장을 내려놓고 좀 더 웃으려고 노력하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선진국에서 우리가 만나게 될 것이다.
---「야망이 없어도 웃을 수 있습니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