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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문 강에 삽을 씻고

창비시선-016이동
정희성 | 창비 | 1999년 01월 31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8.0 리뷰 4건 | 판매지수 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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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1999년 01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108쪽 | 125*200*20mm
ISBN13 9788936420161
ISBN10 893642016X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제1부
석탄
겨울꽃
어머니, 그 사슴은 어찌 되었을까요
그 짐승의 마지막 눈초리가
쇠를 치면서
새벽이 오기까지는
저문 강에 삽을 씻고
질네야
이곳에 살기 위하여
보리
어두운 지하도 입구에 서서
쥐불
이제 내 말은
휴전선에서
물구나무서기
언 땅을 파며
아버님 말씀
친구여 네가 시를 쓸 때
들리는 말로는
언제고 한번은 오고야 말
어부사(漁夫詞)

제2부
길을 걸으며
열쇠
하늘을 보다 잠든 날은
화전

저 산이 날더러
이 봄의 노래
비 오는 날
김씨
진달래
눈을 퍼내며
맨주먹
너를 부르마
불을 지피며

답청(踏靑)
얼은 강을 건너며
노천
병상에서

제3부
불망기
4월에
넋 청(請)
추석달
항아리
제망령가(祭亡靈歌)
매헌(梅軒) 옛집에 들어

백씨의 뼈 1
그대 무덤 곁에서
여기 타오르는 빛의 성전(聖殿)이

비무장지대
바늘귀를 꿰면서

발문/김종철

후기

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정희성
1945년 경남 창원에서 출생하여 대전 익산 여수 등지에서 자랐다. 197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변신變身」 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여 시집 『 답청踏靑』(1974)『저문 강에 삽을 씻고』(1978) 『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1991) 『시를 찾아서』(2001) 『돌아다보면 문득』(2008) 『그리운나무』(2013) 등을 간행하였다. 제1회 김수영문학상과 만해문학상, 육사시문학상, 지용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아들아, 행여 가난에 주눅들지 말고
미운 놈 미워할 줄 알고
부디 네 불행을 운명으로 알지 마라
가난하고 떳떳하게 사는 이웃과
네가 언제나 한몸임을 잊지 말고
그들이 네 힘임을 잊지 말고
그들이 네 나라임을 잊지 말아라
아직도 돌을 들고
피흘리는 내 아들아

- "아버님 말씀" 중에서 -
뿌리가 뽑혀 하늘로 뻗었어라
낮말은 쥐가 듣고 밤말은 새가 들으니
입이 열이라서 할 말이 많구나
듣거라 세상에 원
한 달에 한 번은 꼭 조국을 위해
누이는 피 흘려 철야 작업을 하고
날만 새면 눈앞이 캄캄해서
쌍심지 돋우고 공장문을 나섰더라
너무 배불러 음식을 보면 회가 먼저 동하니
남이 입으로 먹는 것을 눈으로 삼켰어라
대낮에 코를 버히니
슬프면 웃고 기뻐 울었더라
얼굴이 없어 잠도 없고
빵만으론 살 수 없어 쌀을 훔쳤더라
물구나무서서 세상을 보고
멀리 고향 바라 울었더라
못 살고 떠나온 논바닥에
새상에 원
아버지는 한평생 허공에 매달려
수염만 허옇게 내렸어라
--- p.34

회원리뷰 (4건) 리뷰 총점8.0

혜택 및 유의사항?
파워문화리뷰 정희성, 「저문 강에 삽을 씻고」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오***스 | 2018.08.29 | 추천1 | 댓글2 리뷰제목
 한 노동자가 부르는 삶의 노래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 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
리뷰제목

 

한 노동자가 부르는 삶의 노래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 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 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

  - 정희성, 저문 강에 삽을 씻고

 

 

물이 흐른다. 강물이 흐른다. 강물이 흐르면 시간도 흐른다. 우리는 흐르는 시간 속에 있다. 시간이 흐르면 우리네 삶도 흐른다. 시간 속에서 펼쳐지는 삶을 생각해 보라. 우리가 사는 삶은 끊임없이 변한다. 똑같은 하루가 없듯이 똑같은 삶도 없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삶을 살고, 자기 시간을 산다. 시간이 흐른다. 저마다 사는 시간이 흐른다. 시인은 우리네 삶이 흐르는 물과 같다고 생각한다.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다. 한 곳에 웅크려 흐르지 않을 때 물은 썩는다. 하루 일을 끝낸 노동자는 강변에 나가 삽을 씻는다.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에 나타나는 대로, 강변에 삽을 씻는 행위는 하루 일을 정리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하루 일을 정리해야 다음 날을 기약할 수 있다. 가슴에 슬픔을 품고 오늘을 보낼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 노동을 끝낸 사람은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흐르는 강물에 슬픔을 실어 보낸다. 실제로 슬픔이 사라졌는지는 여기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슬픔을 강물에 흘려보내는 의식이다.

 

스스로 깊어 가는 강을 보며라고 시인은 쓴다. 흐르는 강물은 침묵 속에서 더 깊은 진실을 드러낸다. 스스로 깊어지려면 얼마나 많은 침묵이 필요할까? 강물은 제 속에 있는 모든 것을 품고 시간을 따라 흐른다. 시간을 거스를 생각을 하지 않고 흐르는 강물을 보며 시인은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쭈그려 앉아 담배를 피우는 노동자를 생각해 보라. 흐르는 강물에 노을이 졌다. 아름답다면 참으로 아름다운 저녁이다. 노을 진 강물을 보며 시인은 담배를 피운다. 담배를 피우며 가슴에 꽉 찬 한숨도 내뱉을 것이다. 담배를 피우고 나면 무엇을 해야 할까? 강물을 따라 흐를 수는 없다. 강물은 강물이 가야 할 길을 가야 하고, 노동자는 노동자가 가야 할 곳으로 가야 한다. 노동자가 가야 할 곳은 어디인가? 가족들이 있는 곳이다. “나는 돌아갈 뿐이다.”라는 시구로 시인은 밤이 깊으면 자기가 어김없이 가야 할 곳을 언급한다. 한탄이 아니다. 시간이 흐르면 가야 할 곳으로 그는 갈 따름이다.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로 시인은 노동자로서 지낸 삶을 토로한다(시인을 생물학적 시인과 동일시할 필요는 없다). 삽자루를 들고 참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삽자루 하나 달랑 들고 살아온 목숨이니 삽자루는 어찌 보면 한 생명을 지탱하게 한 원동력인지도 모른다.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에도 저녁이 왔다. 날이 저물어 하늘은 붉은 노을로 가득 찼다. 저 노을이 지면 무심한 밤이 올 것이고, 그러면 노동자로 살아온 한 생은 어둠 속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노을도 스러진 밤에 이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시인은 샛강 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구나.”라는 진술로 가난한 노동자가 맞이할 세상을 노래한다. 샛강 바닥 썩은 물은 흐르지 않는다. 한 곳에 정체된 삶이라고 표현하면 어떨까? 노동자로 살아온 삶이 그렇다. 뼈 빠지게 일을 하면서도 가난이라는 상황에 정체된 삶을 노동자는 살아왔다.

 

강물은 스스로 흘러 깊어지지만, 노동자야 어디 그런가? 스스로 깊어질 사이도 없이 노동자는 먹고사는 일에 치여 샛강 바닥이 썩는 줄도 몰랐다. 썩은 물에도 어김없이 달은 뜬다. 하긴 달이 강물에 뜨는 것은 아니다. 하늘에 뜬 달이 썩은 물을 비춘다. 시인은 이 대목에서 우리가 저와 같아서라는 시구를 다시금 반복한다. 우리는 흐르는 물과 같고, 또한 우리는 썩은 물과 같다. 썩은 물은 흐르지 않는다. 흐르면서 흐르지 않는 물은 모순이 아닌가? 우리네 삶이 계속 흐르기만 하겠는가? 어느 때는 맑은 물소리를 내며 흐르다가, 또 어느 때는 구석에 고인 썩은 물이 되어 탁한 냄새를 풍기기도 한다. 삽자루에 한 생애를 맡긴 노동자도 이와 같은 삶을 살아왔다. 맑은 강물에도 달은 떴을 것이고, 썩은 강물에도 달은 떴을 것이다. 그 달을 보며 노동자는 하루가 가는 걸 실감하고 다음 날을 기약했으리라.

 

시인이 돌아가야 할 곳은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이다. 먹을 것이 없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가난한 마을이다. 가난한 마을로 돌아가는 도중에 시인은 강물에 나가 삽을 씻고 슬픔을 씻는다. 담배 한 개비로 마음에 맺힌 시름을 조금이나마 내뱉기도 한다. 아무리 고통스런 인생을 살더라도 시간은 흐른다. 시간이 흐르면 누구나 자기가 사는 마을로 돌아가야 한다. 먹을 것 없는 마을이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시인은 아침이면 노동 현장으로 가고, 저녁이면 강변을 거쳐 마을로 돌아오는 일을 반복한다. 일상은 반복이다. 일상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시간을 살겠는가? 날이 어두워지면 마을로 돌아가고, 날이 밝으면 마을을 나오는 삶은 노동을 할 수 없는 상황이 올 때까지 지속될 것이다. 강물은 흘러 어디로 가는 것일까? 바다로 간다. 먹을 것 없는 사람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시간이 흐르면 우리는 모두 강물을 따라 바다로 간다. 그 전까지는 마을을 나갔다가 돌아오는 삶을 반복해야 한다. 일상이 곧 삶이라는 진실.

    

 

댓글 2 1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1
그 시절 나는 이 시집을 읽으며 가슴이 뛰었다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주**장 | 2005.05.30 | 추천4 | 댓글0 리뷰제목
이곳에 살기 위하여 한밤에 일어나 얼음을 끈다 누구는 소용없는 일이라지만 보라, 얼음 밑에서 어떻게 물고기가 숨쉬고 있는가 나는 물고기가 눈을 감을 줄 모르는 것이 무섭다 증오에 대해서 나도 알 만큼은 안다 이곳에 살기 위해 온갖 굴욕과 어둠과 압제 속에서 사우다 죽은 나의 친구는 왜 눈을 감지 못하는가 누구는 소용없는 일이라지만 봄이 오기 전에 나는 얼음을 꺼야 한다 누;
리뷰제목
이곳에 살기 위하여 한밤에 일어나 얼음을 끈다 누구는 소용없는 일이라지만 보라, 얼음 밑에서 어떻게 물고기가 숨쉬고 있는가 나는 물고기가 눈을 감을 줄 모르는 것이 무섭다 증오에 대해서 나도 알 만큼은 안다 이곳에 살기 위해 온갖 굴욕과 어둠과 압제 속에서 사우다 죽은 나의 친구는 왜 눈을 감지 못하는가 누구는 소용없는 일이라지만 봄이 오기 전에 나는 얼음을 꺼야 한다 누구는 소용없는 일이라지만 나는 자유를 위해 증오할 것을 증오한다 대학교 2학년 때쯤이었을 것이다. 도서관에서 정희성 시인의 <저문 강에 삽을 씻고>라는 이 시집을 읽으며 가슴이 벅차올랐던 기억이 난다. 나름대로 정의감이 끓어오르던 시절, 시인의 단아하면서도 굳은 의지가 담긴 시편들은 내 가슴에 화살처럼 날아와 박혔다. 그리고 얼마 뒤 헌 책방에서 이 시집을 발견하고 사서는 읽고 또 읽었다. 가뜩이나 주황색이라 잘 보이지 않던 시집 옆면의 제목은, 지금은 색이 다 바래서 보이지 않지만 여전히 이 책은 내 서가랄 것도 없는 책꽂이 한 귀퉁이에 꽂혀 있다. 마치 그 시절에 대한 아련한 향수처럼 말이다. 새 책을 사지 못했던 것이 아쉽지만 당시에 이 책이 눈에 띄는 순간 사지 않을 수 없었기에 그것으로 위안을 삼고 있다. 정희성 시인의 이 시집에는 70년대의 우리 현실을 바라보는 시인의 애정과 분노가 잘 나타나 있다. '어머니, 그 사슴은 어찌 되었을까요'나 '그 짐승의 마지막 눈초리가' 등의 시를 보면 고통 받고 소외된 채 살아가는 이들의 삶에 대한 안타까움과 슬픔, 사랑이 짙게 배어 있다. 그리고 그러한 애정은 그들에게 그와 같은 삶을 강요하는 시대의 아픔에 대한 분노와 그것을 이겨내고자 하는 곧은 목소리로 시집의 여기저기에 표현되어 있다. '이곳에 살기 위하여', '쇠를 치면서', '새벽이 오기까지는' 등의 시가 그것으로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그러한 현실과 맞서며 '봄'과 '새벽'으로 상징될 수 있는 밝은 미래에 대한 기다림을 노래하고 있다. 특히 내가 좋아했던 시가 ‘이곳에 살기 위하여’였는데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에 ‘나는 자유를 위해/ 증오할 것을 증오한다’라는 시구를 적어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물고기가 눈을 감을 줄 모르는 것이 무섭다’라는 구절에서 눈을 감을 줄 모르는 물고기의 모습에서 현실에 대해 눈을 감지 않으려는 시인의 자세가 눈에 선하게 그려졌다. 정희성 시인의 시를 보면 큰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의연하면서도 확고한 지사적 풍모를 발견할 수 있는 시들이 많다.

댓글 0 4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4
노동자가 웃는 그날.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2점 작**자 | 2001.04.21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이희승의 『저문 강에 삽을 씻고』를 처음 접하게 된때는 고등학교 2학년때였다. 평소 시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지만 국어수업 중 시 부분에서는 선생님의 수업을 듣지 않았다. 너무나 멋진 시를 단어 하나하나, 구절구절 파헤치는 선생님이 미웠다. 여기엔 밑줄긋고 저기엔 형관펜으로 칠하고 주제엔 큰 별표 하나 그려놓고는 '시험에나옴' 이라고 써야만 했다. 시를 먹지 못하;
리뷰제목
이희승의 『저문 강에 삽을 씻고』를 처음 접하게 된때는 고등학교 2학년때였다. 평소 시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지만 국어수업 중 시 부분에서는 선생님의 수업을 듣지 않았다. 너무나 멋진 시를 단어 하나하나, 구절구절 파헤치는 선생님이 미웠다. 여기엔 밑줄긋고 저기엔 형관펜으로 칠하고 주제엔 큰 별표 하나 그려놓고는 '시험에나옴' 이라고 써야만 했다. 시를 먹지 못하고 씹고만 있는 기분. 그 안타까움. 그러던 어느날 현대문학 부분을 배우고 있는데 선생님께서 숙제하나를 내주셨다. 이희승의 「저문 강에 삽을 씻고」라는 시 한편을 읽고 감상문을 써오라는. 분명 감상문이라고 하셨다. 시를 갈기갈기 찢어져 분석하라는 것도, 수업내용을 달달달 외워오라는 것도 아닌 분명 감상문. 그 길로 당장 그 시집을 사버렸다. 그리고 읽은 정희승님의 시. 사전지식 없이 읽었던지라 그 시를 읽고 가장먼저 생각난 것은 우리 아버지였다. 시속에서 등장하는 한명의 노동자. 쭈그려 한 모금 빠는 담배 연기처럼 허무하고 보잘 것 없는 삶. 시구 그대로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현실에 정면 대결할 용기가 없는 무력감과 실의에 빠진 그. 흐르는 물에 삽에 묻는 찌꺼기를 씻어내도 내일이면 다시 일터로 삽에 흙을 묻히며 살아가는. 우리 아버지를 위한 시 같았다. 아니, 아버지의 일과를 그려놓은 것 같았다. 결국에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그렇게 돌아가야 하는 시속 노동자의 발걸음이 유난이 무거워 보였던 것도 단지 그 시를 제대로 이해해서가 아닌 바로 내 주변의 상황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IMF시대. 다들 힘들고 어려운 생활을 하는 사람들. 물론 70년대 만큼은 아니겠지만 암울한 시대였음은 분명할 것이다. 이 시에는 바로 지금의 시대역시 표현되어 있었다. 70년대는 한마디로 쟈유가 없는 노동자 착취의 시대였다. 이 시는 그런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삶과 그 사회적 배경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 가장 대표인 시로써 「저문 강에 삽을 씻고」는 구체적 삶의 경험이 바탕이 되어 있다. 노동의 현장에서 오는 삶의 경험을 강이라는 자연물의 심상과 결합시켜 깊은 시적 의미를 얻고 있다. 노동은 인간이 세상에 참여하는 건실한 방식중 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값지고 진실한 노동의 가치는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기 보다는 부당하게 취급하기 일쑤이다. 노동에 바치는 땅에 대한 부당한 취급은 시인이 분노하고 개탄해마지 않는 직접적인 원인이다. 현실에서 느끼는 분노와 고통을 시인은 흐르는 물을 보며 씻어 버리며 삶을 반추하는 계기로 삼는다.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는 표현에는 탄식과 반성이 깃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에서 쉬임없이 '흐르는 물'의 심상은 시간의 흐름과 동등한 의미 연관을 지닌다. 저문 강에 선 하루의 저녁은 인생의 저묾과 중첩되고 있다. 따라 흐르는 물이 가지는 풍부한 내포는 시간의 흐름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 흐르는 물이 가지는 풍부한 내포에 기댐으로써 하루의 고단한 노동을 되돌아 보는 성찰의 순간과 연장을 씻듯이 노동의 삶에 깃들인 슬픔도 씻어내는 정화의 순간을 가질 수 있다. 시의 화자가 노동의 피로와 슬픔을 씻어내며 바라보는 흐르는 물은 풍부한 상징적 의미를 지고 있다. 강은 고단한 하루를 씻어줄 뿐 아니라 의연한 깊이를 보여줌으로써 세상살이에 지친 시적 화자에게 위안을 준다. 고작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다 돌아갈 뿐인 시의 화자에 비해 강으로 대표되는 자연은 우리가 일상 삶에서 간파해 버린 지혜를 담고 있다. 저물고 저물어 어둠이 깊어 가면 비록 썩은 물일지라도 캄캄한 세상을 밝히는 빛을 담아낼 수 있다. 인간에 의해 썩어 가는 강에 비친 달에서 노동의 피로와 우울한 심정을 위로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달이 저문 강을 비추고 다시 돌아가 듯이 그는 강을 떠나 빈한한 인간의 마을로 되돌아가야 한다. 삶이란 사실상 끊임없는 순환과 반복의 과정 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시대와 비슷한 주제의 작품으로 진정한 자유와 해방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그린 김지하의 「푸른옷」과 같은 시인의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이 담겨져 있는 「타는 몸마름」으로, 소외당한 삶에 대한 분노와 절망이 나타난 신경림의 「농무」와 떠돌이 삶의 애환을 그린 「목계장터」, 삶에 대한 긍정과 죽음을 초월한 천상병의 「귀천」, 공동체에 대한 자기 희생의 정신을 나타낸 이성무의 「벼」, 국토애,새 역사에 대한 갈망을 그린 조태일의 「국토」, 마지막으로 삶과 죽음을 통해 깨닫는 경건함을 볼 수 있는 고은의 「문의 마을에 가서」등이 있다. 이 시들은 모두 산업화, 근대화가 본격화된 1970년대 시들로써 산업화에 따른 현실의 분계점과 소외 계층에 관심을 집중한 참여적 시들이다. 1970년대 초반. 유신의 선포로 정치적, 사회적인 자유가 억압당하게 되자, 문학적 욕구 충족의 도구이자 동시에 억압된 사회적 욕구 표현의 도구로써 문학은 사람들의 억압된 자유를 표현했다. 사람들은 문학 속에서 억압된 자유를 찾고자 했고 이런 이유가 우리 시대적 상황에서 70년대 이야기를 요구하고 소비하게 만든 배경으로 작용했다. 무허가 판자촌의 고달픈 삶이 소설의 주요한 주제로 등장하고 노동의 현장에서 노동조건의 개선과 임금의 인상을 요구하는 투쟁의 삶이 현실로서 제기되기 시작한다. 이것은 현실에 보다 밀착된 문학을 하지 않으면 문학은 산업화의 현실 앞에 무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실에 대한 문학의 응전은 구체적이지 않으면 안되었다. 문학은 경험의 모순을 문학적으로 구조할 수 있는 힘을 길러나가야 했다. 어떤 방식으로든 70년대 문학이 리얼리즘 문제와 대면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그리고 이때의 리얼리즘은 단순히 이념의 차원이 아니라 타락한 사회 속에서의 개인의 슬픔과 고뇌에 관한 문학적 형상화의 문제로 귀착될 수밖에 없었다. 이희승 역시 이러한 저항문화의 한 중심에 있었고 저문강에 삽을씻고 라는 시집은 그의 저항적이고 민중적인 생각들이 가득 반영되어 암울했던 당시의 시대상황에서의 작가자신의 날카로운 현실의식이 뚜렸히 나타난다. 억압받는 사람들의 슬픔이 어느땐가는 밝은 웃음으로 꽃필 것임을 작가가 믿고 있듯이 나역시 IMF시대에서 벗어나 우리의 민중들이 활짝 웃게 될날이 오리라 믿는다.

[인상깊은구절]
뿌리가 뽑혀 하늘로 뻗었어라 낮말은 쥐가 듣고 밤말은 새가 들으니 입이 열이라서 할 말이 많구나 듣거라 세상에 원 한 달에 한 번은 꼭 조국을 위해 누이는 피 흘려 철야 작업을 하고 날만 새면 눈앞이 캄캄해서 쌍심지 돋우고 공장문을 나섰더라 너무 배불러 음식을 보면 회가 먼저 동하니 남이 입으로 먹는 것을 눈으로 삼켰어라 대낮에 코를 버히니 슬프면 웃고 기뻐 울었더라 얼굴이 없어 잠도 없고 빵만으론 살 수 없어 쌀을 훔쳤더라 물구나무서서 세상을 보고 멀리 고향 바라 울었더라 못 살고 떠나온 논바닥에 새상에 원 아버지는 한평생 허공에 매달려 수염만 허옇게 내렸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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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여년 만에 정희성 시인의 시를 다시 읽어보네요. 좋은 작품들이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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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필 | 2023.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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