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나보단 남이 우선이었다. 감기를 앓아도 쉴 수 없었다. 주머니 속 꼬깃꼬깃 접힌 휴지에 코를 풀었고,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소매로 닦아냈다. 내가 아픈 건 감히 환자들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오전엔 누군가의 어깨가 아팠고, 오후엔 어떤 이의 허리가 아팠다. 이러다가 내가 영원히 나를 돌볼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이르자 나는 아팠다.
내가 어리고 경력이 없다는 이유로 힘든 것이, 당연한 게 아니었다. 내가 아픈 사람들을 위해 일한다는 이유로, 함께 혹은 대신 아파야 마땅한 게 아니었다. 아프고 힘들어야만 하는, 고생하고 상처받아야만 하는 청춘은 어디에도 없다. 모두가 그렇게 산다고 하여 그것이 맞는 삶이라는 확신이 없었다.
“삐빅- 삐빅-” 세 번째, 네 번째 카드를 찍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억지로 문을 밀어 보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내 상상 속에서나 살던 진짜 뉴요커들이 커피 한 잔씩을 들고 내 옆을 빠르게 지나쳐갔다. 제 몸만 한 짐을 메고 있는 거북이 한 마리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는 듯. 뉴욕의 4월은 한겨울처럼 추웠는데, 등은 땀으로 흥건했다.
“엄마, 이런 길이 계속된다면 나는 3시간 동안 마냥 걷기만 할 수 있어.” 그 말에 엄마는 나를 한참 쳐다보셨다. 그러곤 갑자기 오른손을 들어 손바닥을 활짝 펴 보이셨다. “난 5시간.” 이번 여행으로 아빠는 딸의 팔꿈치 안쪽에 작은 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엄마는 딸의 발바닥에 흉이 있다는 걸 알았다. 나는 아빠의 기침이 작년보다 훨씬 심해졌다는 것과 엄마의 수술한 다리가 왼쪽 다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우리는 또 두 뼘쯤 가까워진다.
하루 종일 족히 5만 대는 맞은 것 같았다. 뿅망치로 머리를 “뿅!” 하고 때릴 때 행운을 비는 것이라고 하니 더 이상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골목 어디에도 뿅망치를 든 사람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그들은 한 번도 나를 그냥 넘기지 않았다. 어김없이 팔을 들어 내 머리를 때리고야 말았고, 꼭 고개를 숙여 내가 때리기를 기다려주었다. 하루 종일 신이 나 놀고 숙소로 돌아온 늦은 새벽, 쉰내가 풀풀 나는 이불을 뒤집어 쓴 채 창문 밖에 끊이지 않던 뿅! 소리를 들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이 도시를 사랑하게 될 것 같아.’
잘라서 먹다가 덮개 하나 없이 책장 맨 위에 덩그러니 남겨놓은 수박에는 파리들이 열을 맞춰 앉아있었다. 그 수박 한 조각을 잘라 나에게 권했다. 그의 마음이 고마워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한 입 베어 물었다. 수박에는 수박냄새가 없었다. 미지근하다 못해 조금 뜨거운 것도 같았다. 무엇보다 참을 수 없는 건 시큼함이었다. 세상에. 내가 살면서 수박이 상하는 꼴을 보다니. 표정을 숨기는 데 재능이 없는 나였지만, 너무 맛있게 먹는 아벨리를 보며 어쩔 수 없이 수박을 꼭꼭 씹어 삼켜냈다.
여행이 피워낸 사랑은 사실 여러 가지 양념을 쳐 가려버린 상한 생선조림인지도 모른다. 이미 상한 생선에 각종 야채와 양념을 사정없이 때려 넣고 졸여서 그 풍취를 숨겨버린 것일지도. 다합에서 매일 점심으로 먹던 천 원짜리 생선튀김도 그랬다. 상했는지 싱싱한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튀겨져 나왔으니 신선도 따위는 그다지 신경 쓸 사항이 아니었다. 맛이 좋았고 그거면 충분했다.
“나마스떼.” 지게 가득 짐을 실은 여성 포터가 수줍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신의 가호가 있기를.” 하며 내 산행의 안녕을 빌어준 것이다. 맨발에 슬리퍼 차림이었다. 그녀의 발뒤꿈치는 심하게 갈라져 있었다. “나마스떼.” 내가 인사했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 정수제가 들어가 소독약 냄새가 풀풀 나는 물을 아껴서 나눠마셨다.
“이제 돌아오고 싶지 않아?” 그리움이 반쯤 섞인 목소리엔 서운함까지 묻어있었다. “전혀!”라고 대답했지만, 진심이 아니었다. 나는 여행을 사랑하고, 여행을 하는 동안 행복했다. 하지만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것은 내가 불안정하다는 뜻이었다. “돌아가고 싶어, 보고 싶어.” 하면서 엄마가 던진 미끼를 덥석 물고 싶을 때가 많았다.
나에게 여행은 패배할 확률이 높은 도전이었다. 영어라곤 한마디도 못하는, 가난하고 능력 없는 쌍문동 캥거루족에겐 인생의 가장 큰 도전이었다. 내가 믿을 사람이라곤 칠칠치 못한 나뿐이었으나, 내가 이토록 나와 친했던 적이 없었다. 외로움과 그리움을 이겨내고, 위험하고 두려운 모든 상황을 버텨내고 절대로 답이 없을 것만 같은 일들을 풀어나가며, 나는 나를 믿고 나를 사랑하는 일을 배웠다.
당신의 발아래 놓인 수많은 어제는 눈부신 기쁨과 눅눅한 슬픔의 반복이었겠죠. 뿌리 깊은 비통에 휘청거리던 그날도 당신이 모르던 새에 거름이 되어 어여쁜 꽃이 되었잖아요. 꽃에 가시 좀 돋으면 어때요. 그 가시는 당신을 지켜줄 거예요.
떨칠 수 없던 외로움과 열등감에 너덜너덜해진 마음은 이제 다 크고 예쁘게 성장할 일만 남아있어요. 매일 밤 기도해도 나아지는 게 없겠지만, 오늘은 흘러 다시 어제가 될 거고, 또 당신의 발밑에 움을 틔울 거예요. 그러면 내일이 오고 다시 버티며 살아가겠죠. 우리는 모두 여행 중이잖아요.
넘어지고 굴러서 생긴 당신의 상처는 절대로 당연한 게 아니라고, 이대로도 충분히 잘 하고 있다고 수백 번 말해줄게요. 지금 우리는 새벽 3시 57분을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곧 해가 뜰 거예요. 내 것임에도 내 멋대로 할 수 없고, 내 맘처럼 되지 않는 인생을 살아내느라 고생했어요. 수고했어요. 당신, 힘내요.
당신과 숱한 시간을 함께 보냈음에도 나는 당신이 궁금해서 잠을 잘 수 없습니다. 관계의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는 얼마나 알고 있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알고 싶은지에 따라 정해지는 것일지도 몰라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여행을 떠나면 ‘그래도 괜찮지 않은 나이’가 아니라 ‘좀 더 잃을 게 많은 나이’일 뿐이다. 나는 추억과 행복 같은 손에 넣을 수 없는 것들을 얻는 대신, 돈과 직장 같은 눈에 보이는 것들을 잃었다. 나는 그것이 괜찮다. 그래도 괜찮은 나이다. 더 잃어도 난 괜찮다.
내 여행은 멀리서 보면 꽃가루가 날리고 폭죽이 터지는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본다면 짠할 만큼 비극이다. 나는 내가 여행을 통해 작은 것에 행복을 느낄 줄 아는 꽤 괜찮은 사람으로 성장했다고 믿었다. 나는 그대로 나였다. 바보 같고 한심하고 엉성하고 어설픈.
이 여행은 수년간 자신을 챙기지 못한 나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나는 여행하는 동안 오직 나만 생각했다. 나의 행복을 위해 움직였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었다. 내가 가고 싶은 곳에 가고, 내가 멈추고 싶을 때 멈춰 섰다. 지영아 행복해라, 행복해라, 주문을 외웠다.
여행하며 바라본 세상은 거짓과 과장으로 포장된 나와 달리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했다. 나 같은 사람이 발붙이고 숨쉬기 미안할 정도로.
우리는 별빛 아래에서 모로코의 전통음식, 따진을 나눠 먹었다. 그리곤 야외에 놓인 매트리스에 지저분하고 꿉꿉한 카펫을 덮고 누웠다. 해가 완전히 지자 사막은 추웠다. 숨을 쉴 때마다 코로 모래가 들어오는 게 느껴졌지만, 시선 어디에도 별이 닿는 이곳에선 아무래도 좋았다. 문자 그대로 쏟아져 내리는 별. 귀가 먹먹할 만큼 고요한 사막. 그 속에서 나는 혼자여도 외롭지 않았다. 생에 가장 많은 별을 보았고, 처음으로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느꼈다. 사막은 너무도 적막해서 별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아름답다는 건 이럴 때 하는 말이었다.
이상하게도 그날의 짜이는 특별했다. 생강 맛이 나는 달짝지근한 뜨거운 짜이 한 모금으로 나는 몸과 함께 마음도 풀려버렸다. 누군가 내 마음을 포근히 안아주는 것 같았다. 고개를 들어서 나는 이 마법을 건넨 아저씨를 보았다. 눈빛이었다. 머리 위까지 올라오는 배낭을 메고 작은 눈에서 커다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는 나를 보는 눈빛이 포근했다. 이 짜이 집의 모든 인도인이 나를 향해 따듯하게 웃어주고 있었다.
뮤지컬이 하고 싶어 노래와 연기를 배우러 다닌 적이 있다. 어렵게 들어간 학교를 휴학하고 쇼핑몰을 운영했고, 국가고시를 앞두고 유럽 행 비행기 표를 샀다. 1년 휴직을 주겠다던 직장을 단칼에 그만두고 세계여행을 떠났다. 나는 평범과 비평범의 범주를 신나게 왔다 갔다 하며 나의 현재가 행복한지 살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대부분 불안정한 일을 할 때 더 행복했다.
“이것도 주세요!” 진우는 가슴팍에 품고 있던 사탕과 초콜릿을 와르르 쏟아냈다. 얼추 세 보아도 수십 개였다. 나는 열차 안에서 우리가 함께 먹을 키뚬부아(튀긴 술빵)를 사는 중이었다. 기차가 지나가자 멀리서부터 세 살 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한 손으로는 흘러내리는 바지를 붙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기차를 향해 손을 흔들며 뛰어왔다. 진우는 드디어 때가 왔다는 듯 가방에서 미리 사둔 사탕과 초콜릿을 꺼냈다. 그 모습이 마치 사춘기 남학생이 짝사랑하는 소녀를 위해 등 뒤에서 꽃다발을 꺼내놓는 것 같았다.
예쁜 것을 보면 더욱 네 생각이 났다. 내 마음이 유별한 게 아님을 알면서 감추지 못한 나는 낭만이 아니라 주책이겠지만, 이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나는 너에게 진심을 전해야 했다. 예쁜 것은 다 너를 닮았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