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출간일 | 2012년 01월 20일 |
---|---|
쪽수, 무게, 크기 | 368쪽 | 676g | 153*224*30mm |
ISBN13 | 9788994228341 |
ISBN10 | 8994228349 |
출간일 | 2012년 01월 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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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68쪽 | 676g | 153*224*30mm |
ISBN13 | 9788994228341 |
ISBN10 | 8994228349 |
헤밍웨이의 젊은 시절 파리 체류기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젊은 시절(1921~1926) 프랑스 파리에 거주하면서 경험한 이야기들을 모아놓은 회고록. 글쓰기에 대한 치열한 열정, 파리에 거주하던 예술가들과의 인연, 첫 부인 해들리와 아들 존과의 일상, 아름다운 파리의 풍경과 단골 카페에서 일어난 일화들이 감동적으로 펼쳐진다. 저자가 스스로 고백하듯이 한 위대한 작가의 젊은 날, “가난하지만 행복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자의 이동 경로를 따라 파리의 인상적인 지역을 돌아보는 재미가 유별나다. 책에는 1920년대 헤밍웨이가 파리에서 살던 집과 지인들의 집, 드나들던 카페와 산책하던 구역, 자주 찾던 서점과 오가던 거리를 촬영한 매력적인 사진이 풍부하게 삽입되어 있다. 프랑스 여행을 계획하는 독자라면 젊은 날 헤밍웨이의 자취를 따라 파리의 여러 곳을 돌아보면서 이 책을 특색 있는 가이드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울러 이 책의 끝 부분에는 헤밍웨이의 일생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연대기와 함께 무려 50여 쪽에 달하는 사진 자료가 수록되어 있어 감동적인 이미지와 흥미로운 설명을 통해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위대한 작가의 일생을 더욱 실감 나게 들여다볼 수 있다. |
1부_ 움직이는 축제 1. 생 미셸 광장의 기분 좋은 카페 2. 스타인 여사의 가르침 3. ‘셰익스피어 & 컴퍼니’ 서점 4. 센 강변 사람들 5. 덧없는 봄 6. 경마에 대한 집착의 끝 7. “잃어버린 세대” 8. 배고픔은 훌륭한 교훈이다 9. 포드 매독스 포드와 악마의 제자 10. 파생과 카페 돔에서 11. 에즈라 파운드와 자벌레 12. 정말 이상한 결별 13. 죽음과 맞선 흔적이 있는 남자 14. 릴라에 온 에반 쉬프맨 15. 악의 대리인 16. 쉬룬스의 겨울 17. 스콧 피츠제럴드 18. 매는 나누지 않는다 19. 젤다의 불만 역주 2부_ 파리 스케치 1. 새로운 유파의 탄생 2. 에즈라 파운드와 그의 ‘벨 에스프리’ 3. 일인칭 글쓰기에 관하여 4. 은밀한 즐거움 5. 이상한 파이트 클럽 6. 매캐한 거짓말 냄새 7. 범비 군의 교육 8. 스콧과 그의 프랑스인 운전기사 9. 파일럿 피시와 부자들 10. 나다 이 뿌에스 나다 역주 어니스트 헤밍웨이 연대기 사진으로 보는 어니스트 헤밍웨이 옮긴이의 말 |
<파리는 날마다 축제>
<파리는 날마다 축제>을 읽으면서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2011)에서 주연인 길 역을 맡은 오웬 윌슨(Owen Wilson)이 된 기분이었다. 왜냐하면 이 책은 Lost Generation을 대표하는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1899~1961, 이하 ‘헤밍웨이’)가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배경과 비슷한 시기[1921~1926]의 파리에 거주하면서 경험한 이야기들을 모아놓은 회고록이기 때문이다.
즉, <파리는 날마다 축제>는 헤밍웨이의 젊은 시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헤밍웨이의 이동경로에 따라 파리 구석구석을 돌아보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저자 자신을 대상으로 하는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의 느낌도 든다.
가난마저도 추억이 되는 도시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헤밍웨이는 갓 결혼한 아내 해들리 리처드슨과 함께 파리로 향했다. 비록 그가 <토론토 데일리 스타>의 해외 통신원으로 생계를 이어갈 수는 있었지만, 가난하고 미래가 불확실한 작가 지망생 혹은 무명의 작가 신세를 벗어날 수 없었다. 이 무렵의 헤밍웨이가 살던, “카르디날 르무안 거리에 있는 방 두 칸짜리 우리 아파트는 온수도 안 나오고 제대로 된 화장실 시설도 없이 간단한 변기통만 있었지만, 그래도 미시간의 오막살이에 익숙해진 사람에게는 그리 불편하지 않았다.” [p. 35]
불편하지 않았다고 하면서도 베를린의 <데어 크베어슈니트>에서 보내온 원고료 600프랑을 받고 생 제르맹 거리의 리프(Lipp)에서 가졌던 한 끼 식사를 수십 년이 지나도록 상세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을 보면 왠지 짠했다.
“자, 이제 어디 가서 식사나 할까? 나는 리프 Lipp에 가서 한잔하면서 식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중략 ~
맥주는 시원하고 맛있었다. 올리브유를 뿌린 감자 샐러드는 적당히 짭짤하고, 쫀득쫀득했으며 올리브유의 향미도 감미로웠다. 나는 통후추를 가루 내어 감자에 뿌린 다음, 빵을 올리브유에 적셨다. 첫 잔을 시원하게 들이켜고 나서, 그 다음부터는 천천히 마시면서 식사했다. 감자 샐러드를 다 먹고 나자, 한 접시 더 주문하면서 세르벨라를 추가했다. 세르벨라는 굵은 프랑크푸르트 소시지를 세로로 자르고 그 위에 겨자 소스를 끼얹은 요리다.
올리브유와 소스를 빵으로 깨끗하게 닦아 먹은 다음, 나는 맥주가 미지근해질 때까지 천천히 다 마시고는 반 리터짜리 맥주를 더 주문하고 웨이터가 맥주통에서 맥주를 뽑아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번 것은 1리터짜리보다 더 시원했다. 나는 단숨에 잔을 반쯤 비웠다.” [pp. 83~84]
SNS에 사진을 올리고 기록하는 경우가 아닌 다음에야 몇 십 년 전이 아니라 1년 전 식사도 무엇을 어떻게 먹었는지 기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도대체 얼마나 평상시에 제대로 먹지 못했기에 저 한 번의 식사가 그렇게 인상적이었을까
문득 김소운의 <가난한 날의 행복>에 실린 실직한 남편이 직장 다니는 아내를 위해 따뜻한 밥 한 그릇에 간장 한 종지를 마련해서 ‘왕후(王侯)의 밥, 걸인(乞人)의 찬’이라는 메모를 남긴 한 가난한 신혼부부 이야기가 떠오른다.
파리에서의 삶은 힘겨웠지만, 헤밍웨이는 굴복하지 않았다. “당시 우리는 스스로 가난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런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하다고 스스로 자부했으며, 부자들을 경멸하고 불신했다. 몸을 따뜻하게 하려고 속옷 대신 스웨터를 입는 것이 내게는 전혀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그런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부자들뿐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값싼 음식으로 잘 먹고, 값싼 술로 잘 마셨으며, 둘이서 따뜻하게 잘 잤고, 서로 사랑하고 있었다.” [pp. 50~51]고 얘기한다.
나아가 그는 “파리는 내게 언제나 영원한 도시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어떤 모습으로 변하든, 나는 평생 파리를 사랑했습니다. 파리의 겨울이 혹독하면서도 아름다울 수 있었던 것은 가난마저도 추억이 될 만큼 낭만적인 도시 분위기 덕분이 아닐까요. 아직도 파리에 다녀오지 않은 분이 있다면 이렇게 조언하고 싶군요. 만약 당신에게 충분한 행운이 따라주어서 젊은 시절 한때를 파리에서 보낼 수 있다면, 파리는 마치 ‘움직이는 축제’처럼 남은 일생에 당신이 어딜 가든 늘 당신 곁에 머무를 거라고. 바로 내게 그랬던 것처럼.” [p. 361]라고 말했다.
나는 글을 쓰려고 태어났고, 지금까지 글을 써왔으며, 앞으로도 글을 쓸 것이다.
이 시절 헤밍웨이의 동료였던,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Francis Scott Fitzgerald, 1896~1940, 이하 ‘피츠제럴드’)는 헤밍웨이에게 팔리는 글을 쓸 것을 권유했다. 헤밍웨이에 따르면, “그[피츠제럴드]는 내게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가 원하는 단편이 어떤 성격의 것인지 잘 알고 있다면 그런 잡지사에 팔기에 알맞은 단편 원고 쓰는 방법을 일러 주었다. 일단, 노력을 기울여 좋은 단편을 써놓은 다음, 잡지사가 원고를 청탁하면 그 잡지사가 원하는 대로 잡지의 판매부수를 올릴 만한 작품으로 다시 수정해서 원고를 넘긴다고 했다. 그의 말에 충격을 받은 나는 그것은 몸 파는 여자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렇긴 해도, 좋은 작품을 쓸 돈을 마련하려면 잡지사에서 돈을 벌어야 하므로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작가라면 자기 능력이 닿는 데까지 가장 좋은 글을 써야 하면, 그렇지 않는다면 자기 재능을 파괴하게 되리라고 말했다. 그는 자기가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에 팔릴 작품을 쓰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것이 자기 재능에 해가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진짜 작품을 먼저 써놓았기에 설령 그것을 파괴하고 변형한다 해도 자기에게는 아무런 해가 되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pp. 170~171]
하지만 가난해도 훌륭한 글과 문장에 대한 헤밍웨이의 신념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피츠제럴드와 달리 “나는 소설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 올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리기로 했다. 절대로 생계의 수단으로 소설을 써서는 안 될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밖에 없고, 다른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을 때 나는 소설을 쓸 것이다. 따라서 나는 더 많은 압박이 쌓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는 동안은 우선 내가 잘 아는 주제에 대해 긴 글을 써봐야 할 것” [pp. 87]이라고 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슬럼프가 와서 “새로 시작한 글이 전혀 진척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벽난로 앞에 앉아 귤 껍질을 손가락으로 눌러 짜서 그 즙을 벌건 불덩이에 떨어뜨리며 타닥타닥 튀는 파란 불꽃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 그렇지 않으면 창가에서 파리의 지붕들을 내려다보며 마음속으로 말했다. ‘걱정하지 마, 넌 전에도 늘 잘 썼으니, 이번에도 잘 쓸 수 있을 거야. 네가 할 일은 진실한 문장을 딱 한 줄만 쓰는 거야. 네가 알고 있는 가장 진실한 문장 한 줄을 써봐.’ 그렇게 한 줄의 진실한 문장을 찾으면, 거기서부터 시작해서 계속 글을 써나갈 수 있었다. 그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p. 18]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실린 췌장암에 걸려 복수(腹水)를 빼내고 있던 에반 쉬프맨(Evan Shipman, 1901~1957)과의 대화는 헤밍웨이의 꾸준히 노력하는 ‘글쓰기’를 한 마디로 압축시켜 보여준다.
“ “헴, 글 쓰는 것, 잊지 않을 거지 ”
“물론이지.” 내가 대답했다. “내가 글 쓰는 걸 잊을 리가 있나.”
나는 전화를 걸려고 밖으로 나갔다. 물론이지, 하고 생각했다. 글 쓰는 걸 절대로 잊지 않을 거야. 나는 글을 쓰려고 세상에 태어났고, 여태까지 글을 써왔으며, 앞으로도 다시 글을 쓸 거야.” [p. 298]
제목에 들어있는 ‘파리’에 혹해서 집어들었다가 저자가 헤밍웨이라고 해서 목차도 보지 않고 들고 온 책입니다. 이 책은 헤밍웨이가 죽기 얼마 전인 1957년 가을부터 1960년 봄 사이에 젊은 시절 파리에서 살던 이야기를 적은 것입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스물두살이 되던 1921년부터 1926년까지 첫 부인 헤들리와 파리에 살았습니다. 처음에는 아내와 그리고 첫아들 존이 태어난 뒤에는 아들까지 함께 하는 일상에 대하여, 에즈라 파운드, 거투르드 스타인 여사, 스콧 피츠제럴드 등 문인들을 비롯한 예술가, 운동선수 등 다양한 인물들과의 인연 들을 회고합니다. 특히 1920년대 초반의 파리의 풍경을 비교적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어, 오늘날 복잡하기만 한 파리의 옛 모습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줍니다.
헤밍웨이 부부는 토론토 데일리 스타의 해외통신원 자격으로 파리에 와서 송고한 기사에 대한 원고료나, 세터데이 이브닝포스트나 애틀랜틱 먼슬리와 같은 잡지에 실린 글의 원고료를 받아 어렵게 생활하면서 대중의 이목을 끌 단편과 장편 소설을 꾸준하게 써가고 있었습니다. 카페에 습작공책을 들고나가 글쓰기에 몰두하거나 소재를 찾아 여행을 하거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기에 파리는 좋은 장소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파리에서는 충분히 먹지 못하면 몹시 허기진다. 빵집 진열대에는 먹음직스러운 빵들이 그득하고 거리에는 테라스에 차려진 식탁에서 식사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늘 먹을 것이 눈에 보이고 음식 냄새가 코를 자극하기 때문이다.(78쪽)”라고 적은 것을 보면, 헤밍웨이에게 파리 생활이 무지개빛 나날은 분명 아니었던가봅니다.
하지만 “글 쓸 때는 눈먼 돼지가 된답니다.(100쪽)”리고ㅛ 말한 것을 보면, 적어도 글을 쓸 때만큼은 몰입하기 일쑤였던 모양입니다. 또한 한때 돈벼락의 환상에 젖어 쫓아다니던 경마장의 유혹을 뿌리치고 종일 글만 쓴 것을 보면 자기관리에도 능한 편이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그는 나름대로 정한 글쓰기의 원칙을 지키려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스콧 피츠제럴드가 잡지사에 팔기 알맞은 단편 원고를 쓰는 방법을 일러주었을 때, 그것은 몸 파는 여자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노력을 기울여 좋은 단편을 써놓은 다음, 잡지사가 원고를 청탁하면 그 잡지사가 원하는 대로 잡지의 판매부수를 올릴 만한 작품으로 다시 수정해서 원고를 넘긴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대중의 입맛을 고려해서 작품을 쓴다는 것이지요. ‘(초고의) 글을 일일이 분석하여 기교를 부린 대목을 삭제하고, 대상을 묘사하기보다는 글에 생명을 불어넣으려고 애쓰기 시작한 이래 글쓰기는 내게 더 없이 경이로운 작업이 되었다(171쪽)’는 대목을 보면 글쓰기에 대한 헤밍웨이의 철학을 엿볼 수 있습니다.
센 강변에 있는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서점의 실비아 비치가 헤밍웨이에게 베푼 온정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잘 담은 글도 있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다양한 책을 빌려 읽으면서 다른 작가들의 글쓰기에도 관심을 가졌습니다. 스타인 여사가 ‘자네는 왜 그런 쓰레기들만 읽는 거지? 그런 것들은 겉만 번드르르한 쓰레기야, 헤밍웨이, 송장이 쓴 글이라니까’라고 비판하는 말에 ‘전 그저 다른 작가들이 어떻게 글을 쓰는지 알고 싶을 뿐이에요. 그걸 읽고 있는 동안에는 제 글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거든요“라고 대답합니다. 다양한 작품들을 읽어보지 않으면 자신의 글에 대한 대책없는 자신감 같은 것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헤밍웨이의 파리생활에 대한 회고록은 그가 죽은 뒤 3년 되던 1964년에 <움직이는 축제일>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고, 2010년에는 저자의 미완성 원고를 추가한 복원본이 같은 제목으로 출간되었는데, 이 액에서는 1부 ‘움직이는 출제일’이 원래 출간된 분량이며, 2부 ‘파리스케치’가 미완성 원고에 해당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