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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마음

정약용 저 / 박혜숙 편역 | 돌베개 | 2008년 06월 3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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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8년 06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46쪽 | 338g | 136*219*20mm
ISBN13 9788971993149
ISBN10 8971993146

중고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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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나를 찾아서

‘나’를 지키는 집
좌천의 즐거움과 괴로움
퇴계 선생을 우러르며
관아(官衙)를 새로 짓고
‘여유당’(與猶堂)이라 이름 붙인 뜻
네 가지의 마땅함
떠 있는 삶
유배 생활 12년
괴로움은 즐거움의 뿌리다
가진 것은 덧없다
어떻게 살 것인가
바로 ‘이’〔斯〕

파리를 조문(弔問)한다

목민관은 누구를 위해 있는가?
토지는 균등하게 분배되어야 한다
토지의 공동 소유를 제안함
선비도 생산적인 노동을 해야 한다
신하가 임금을 몰아낼 수 있는가?
고구려는 왜 멸망했을까?
음악은 왜 필요한가?
참된 시(詩)란?
정치 잘하는 법
술자리에서 사람 보는 법
파리를 조문한다
백성들이 죽어 가고 있다

가을의 음악

겨울 산사(山寺)에서
가을 맑은 물
나의 아름다운 뜰
벽 위의 국화 그림자
부쳐 사는 삶
임금님의 깊은 마음
내가 바라는 삶
취한 사람, 꿈꾸는 사람

가을의 음악
근심도 없이 두려움도 없이
바쁘지만 바쁘지 않은

우리 농(農)이가 죽다니

내 어린 딸
우리 농이
자식 잃은 아내 마음
아아, 둘째 형님
그리운 큰형수님
아내의 치마폭에 쓰는 글

밥 파는 노파

예술가 장천용
백성 이계심
인술을 펼친 몽수
효자 정관일
화악 선사(華嶽禪師)
기이한 승려
밥 파는 노파

멀리 있는 아이에게

첫 유배지에서
오직 독서뿐
새해 첫날
남의 도움을 바라지 마라
가을 하늘을 솟아오르는 한 마리 매처럼
두 글자의 부적
재물을 오래 간직하는 법
천하의 두 가지 큰 기준
우리 집안의 가풍
사치하지 마라

저자 소개 (1명)

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편역 : 박혜숙
서울대학교 국문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현재 인하대학교 인문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논문으로 「시조의 생태미학」, 「고려속요의 여성화자」 ,「여성영웅소설과 평등, 차이, 정체성의 문제」 등이 있으며, 저서로 『형성기의 한국 악부시 연구』, 편역서로 『사마천의 역사인식』, 『부령을 그리며―사유악부선집』 등이 있다.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다산의 저술을 마주하면 우리는 흡사 장님이 되어 코끼리를 만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다산에 관한 오늘날의 선집이나 논저들을 보아도 다산의 겉모습을 두루 보여주기는 하지만 정작 그 본질은 놓친 경우도 있고, 그 본질을 주목했지만 일면만을 다룬 경우도 있으며, 비판성과 혁신성을 중시하다 보니 내면성은 간과한 경우도 있고, 인간적 측면을 부각하다 보니 사회적 측면은 소홀히 한 경우도 있다. 그런 만큼 오늘날 독자들이 다산의 전모를 짐작이라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책은 다산의 산문 선집이다. 이 선집은 또 하나의 ‘장님 코끼리 만지기’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장님 코끼리 만지기’에서 문제는, 스스로가 장님이라는 사실에 대한 무자각(無自覺)과 자기가 본 것만이 진리라고 여기는 아만(我慢)에 있다. 스스로 인식의 주관성과 부분성을 자각하고 타인과의 대화와 소통을 통해 자기 견해를 수정하고 보완할 수 있다면, 비록 장님일지라도 코끼리의 전모에 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터이다.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다산의 글을 통해 그의 마음을 들여다보다!

다산 정약용은 18년간의 유배 생활 동안 불굴의 의지로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이러한 다산의 모습은 시대를 초월하여 참된 지식인의 귀감이 되고 있다. 그런데 참된 지식인으로서의 다산의 모습은 ‘밖’으로 드러난 그의 모습이다. 한 인물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안’과 ‘밖’을 두루 볼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은 사회적 존재이면서 동시에 내면적 존재이고, 개인적 존재, 가족내적 존재이기도 하다. 한 인물의 안과 밖, 내면과 외면, 사적인 측면과 공적인 측면, 지적인 측면과 정서적 측면, 말과 삶을 두루 살핌으로써 그 사람을 보다 깊이 있고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다산의 글을 통해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내면의 다산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나’를 허투루 간수하였다가 ‘나’를 잃은 사람이다.” _나를 찾아서

다산은 스스로에 대해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다. 평생 자기성찰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유학자라면 누구나 성찰과 수양을 강조하지만, 다산의 자기성찰은 매우 진지하고 투철했다. 28세에 관직에 진출한 이래로 40세에 유배를 떠나기까지 정적들의 끊임없는 비방과 공격을 받았고, 그래서 그의 관직생활은 상당히 험난했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하여 그의 내적 성찰은 더욱 깊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세상을 우습게 여기고 남을 깔보는 것이 한 가지 허물이고, 재주와 능력을 뽐내는 것이 한 가지 허물이고, 영예를 탐내고 이익을 좋아하는 것이 한 가지 허물이고, 남에게 베푼 것을 잊지 못하고 원한을 떨치지 못하는 것이 한 가지 허물이고, 생각이 같은 사람과는 한 패거리가 되고 생각이 다른 사람은 공격하는 것이 한 가지 허물이고, 잡스런 책 보기를 좋아하는 것이 한 가지 허물이고, 함부로 남다른 견해만 내놓으려고 애쓰는 것이 한 가지 허물이니, 가지가지 온갖 병통들을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다. 여기에 딱 맞는 처방이 하나 있으니 ‘고칠 개(改)’자가 그것이다.
─ 「퇴계선생을 우러르며」에서

젊은 시절 다산의 성찰을 가장 잘 보여 주는 글이다. 다산은 퇴계선생의 글을 읽으며 퇴계의 마음을 읽고 자신의 마음을 읽고, 자신의 언행을 반성하였다.
다산의 자기성찰은 모호하거나 피상적이지 않고 매우 구체적이고 실제적이다. 지방의 말직으로 좌천되어서도 마음가짐은 어떻게 하고 공무수행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목조목 따져보고(「좌천의 즐거움과 괴로움」), 깐깐하게 자기 원칙을 지키는 게 중요하지만 때로는 잠시 소신을 굽히고 현실과 지혜롭게 타협할 필요가 있음을 깨닫기도 한다(「관아를 새로 짓고」). 꼭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인가, 온 세상에 떳떳한 일인가를 생각하며 매사에 신중하게 처신하려고 노력한다(「‘여유당’이라 이름 붙인 뜻」).
18년간의 유배 생활 동안 다산이 겪어야 했던 좌절과 고통, 불안과 고독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산은 그런 가운데서도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다.

“모든 공직자는 백성을 위해 복무해야 한다.” _파리를 조문(弔問)한다

다산은 평생토록 진심으로 민중의 편에 서서 현실의 부조리와 모순을 예리하고 철저하게 비판한 사람이다. 어떻게 해야 현실의 부조리와 모순을 타파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진정으로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하늘 아래 굶주린 사람이 사라질 수 있을까? 다산은 평생 이러한 물음을 그만두지 않았다. 그에 대한 모색이 토지제도 및 정치제도에 관한 소(小)논문들, 일련의 애민시(愛民詩)들, 만년의 2서1표(『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의 저술 등으로 현실화되었다.
다산은, 참된 권력의 원천은 백성에게 있으며 모든 공직자는 백성을 위해 복무해야 하고(「목민관은 누구를 위해 있는가?」), 부패하고 무능한 권력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저항은 정당한 것이라는 점(「신하가 임금을 몰아낼 수 있는가」)을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다산사상의 비판성과 혁신성은 자신과 세계에 대한 투철한 응시, 고통 받는 사람들에 대한 깊은 연민으로 인해 더욱 치열하고 근본적인 것이 될 수 있었다.

“온 세상 사람은 모두 부쳐 살지 않는 사람이 없다.” _가을의 음악

다산은 진지하고 엄격하기만 한 사람이 아니었다. 꽃과 나무, 산과 물을 즐길 줄 알며, 가까운 사람들과 깊은 정을 나누기도 하고, 홀로 고요와 고독 속에 침잠하기도 하였다.
다산은 화려하거나 유별난 것을 좋아하기보다는 고요하고 맑은 정취를 좋아하였다(「겨울 산사에서」,「가을 맑은 물」). 벽 위에 비친 국화 그림자를 즐기는 모습에서는 다산이 수묵화처럼 절제된 아름다움을 좋아하였음을 알 수 있다(「벽 위의 국화그림자」).
유배 이전의 다산이 단아한 선비의 미의식과 감성을 주로 보여준다면, 은거를 계획하던 유배 직전이나 유배 이후의 다산은 은자적(隱者的) 정서와 감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스스로 즐기고 스스로 만족하는 삶(「근심도 없이 두려움도 없이」), 담박하고 청량한 삶, 한가하면서도 한가하지 않은 삶(「바쁘지만 바쁘지 않은」)을 피력한 다산의 글에는 세속과 멀찍이 거리를 둔 초연미와 한적미가 깃들어 있다.
아름다운 음악에 귀 기울이듯, 가을 단풍을 음미하며 인생의 가을에 최선을 다짐하는 노(老) 다산의 모습은 원숙하면서도 순수하다(「가을의 음악」).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나은데도 나는 살아 있고, 죽는 것보다 사는 게 나은데도 너는 죽었다.” _우리 농(農)이가 죽다니

다산은 6남 3녀의 자녀를 두었는데, 그 중 살아남은 아이가 2남 1녀였고, 죽은 아이가 4남 2녀였다. 여러 아이의 죽음 하나하나가 다산에게는 가슴 아픈 일이었겠지만 유배 시절에 겪은 막내아들 농이의 죽음은 특히나 고통스러웠던 것 같다. 그렇잖아도 자신으로 인해 가족들이 현실적 어려움과 심적 고통을 겪게 된 데 대해 자책감이 컸던 다산은 유배지에서 막내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뒤늦게 접하고는 아버지가 되어서 병든 어린 아들을 돌봐주고 지켜줄 수 없었다는 데 대한 깊은 회한을 절절히 토로하였다(「우리 농이」).
유배기간 내내 다산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된 사람은 둘째 형님 정약전이었다. 다산은 강진에서, 정약전은 흑산도에서, 만 15년을 서로 몹시 그리워하면서도 한 번도 만나지 못하였다. 그동안 다산은 자신의 일상생활이나 학문적 성과 등을 수시로 둘째 형님에게 편지로 써 보냈다. 형님과의 편지왕래를 통해 다산은 고독감과 소외감을 떨칠 수 있었고, 형님의 격려에 힘입어 더욱 학문에 매진할 수 있었다. 다산이 55세 되던 해에 정약전은 흑산도에서 세상을 떠났다. 하늘 아래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알아주던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며 통곡하는 다산의 모습은 참으로 비통하다(「아아, 둘째 형님」).

나는 노파의 말을 듣고 나도 모르게 크게 깨달았고, 삼가 존경하는 마음이 일어났다.”_밥 파는 노파

다산은 자신이 교유하거나 만난 사람들에 대한 기록을 많이 남겼다. 다산은 인간적 미덕을 갖춘 인물들에 대해서는 나이와 신분, 계층이나 성별에 구애되지 않고 진심으로 경의를 표했다. 강진에서 다산은 열 살 아래의 혜장 선사와 각별하게 교유하였고, 그의 탑명(塔銘)과 그의 스승인 화악 선사의 비명을 썼다.
어떤 편견이나 우월감 없이 인간을 공평하게 대하는 다산의 면모는 「예술가 장천용」에서 잘 확인된다. 다산은 장천용의 퉁소 연주를 듣고 싶었지만 그를 억지로 데려오지는 말도록 하였고, 술 취한 그를 따뜻하게 대하였으며, 그 예술적 재능과 감춰진 인간미를 깊이 이해하였다.
강진 시절에 세 들어 살던 주막집 노파에 대한 기록은 더욱 인상적이다. 다산은 “어머니의 노고가 더 큰데도 왜 유교에서는 아버지를 더 중시하느냐”는 노파의 질문을 경청하며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고 그 생각에 경의를 표하였다. 민중적 인물을 대하는 다산의 태도에서 인간에 대한 진정한 예의를 발견하게 된다. 다산은 자신이 “선(善)을 몹시 좋아했지만 비방을 유독 많이 받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다산은 올바름과 선함을 무척 좋아한 사람이었다. 그래서일까? 다산이 사람을 볼 때에도 그들의 올바름, 순수함, 선량함을 주목한 경우가 많았다.

“사나이 가슴속에는 항상 가을 하늘을 솟아오르는 한 마리 매와 같은 기상이 있어야 한다.”_멀리 있는 아이에게

다산은 학연(學淵)과 학유(學游)라는 두 아들을 두었다. 다산으로 인해 집안은 폐족(廢族)이 되었고, 아이들은 좌절했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었다. 곁에 있다면 달래고 타이르고 꾸짖으며 그 마음을 다잡아 줄 수도 있으련만, 자신은 천 리 먼 곳에 떨어져 있었다. 두 아들을 마냥 내버려 둘 수 없는 안타까운 심정에서 다산은 장문의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다산의 가르침은 마음가짐과 학문하는 방법과 일상의 범사(凡事) 등 삶과 학문의 전반에 걸쳐 있다. 그 어조는 절절하고 자상하며 따뜻하고 준엄하다. 그 가르침의 내용은 바르고 크다. 바르고 크면 혹 공허할 수도 있건만 자세하고 구체적이다. 상황에 따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가르침의 세부내용에는 변화가 있지만 근본적인 원칙에는 변함이 없었다. 자신의 소신과 아들에게 한 말이 다르지 않았고, 아들에게 한 말이 제자나 남들에게 한 말과도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말로 한 가르침이 평소 행동으로 보여준 가르침과도 다르지 않았다. 다산이 아들에게 써 준 글을 읽노라면, 흡사 우리 자신이 자녀가 되고 제자가 되어 생생하게 그 음성을 듣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 꾸짖음에 마음이 숙연해지고, 그 절절함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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