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크에 죽고 못 사는 열일곱 동준이의 매 길들이기 프로젝트를 그린 『내 청춘, 시속 370km』로 제9회 사계절문학상 대상을 받은 이송현 작가의 세 번째 청소년소설이 나왔다. 마해송 문학상, 서라벌문학상 신인상, 조선일보 신춘문예(동시) 등을 받으며 이미 필력을 인정받은 이송현 작가가 이번 작품 『라인』에서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쌍둥이 형제 이도와 이율이 줄타기를 통해 서로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그렸다. 두 주인공을 비롯해 친구 독고용, 줄타기 스승 어름사니 어른, 국내 1호 슬랙라이너 손 사부, 피겨스케이팅 선수를 꿈꾸는 주다인 같은 주변 인물까지 어느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각자의 에너지를 뿜어낸다. 제목 ‘라인’은 주인공이 타는 우리나라 전통 줄타기의 ‘줄’, 그리고 서양식 줄타기 ‘슬랙라인’을 의미하며, 외줄을 타는 듯한 위태로운 청춘들의 인생을 상징한다. 안전장치도 없는 줄 위가 가장 자유롭고 안전하다는 두 형제. 그들은 어떻게 줄타기에 매료됐을까?
익스트림 스포츠 슬랙라인과 전통 줄타기의 만남
열여덟 살 ‘이도’와 ‘이율’은 한날 같은 곳에서 태어난 쌍둥이지만 피는 섞이지 않은 형제다. 혼혈아로 병원에서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버림받은 이도는 이율과 한 가족이 되어 자라지만, 남들과 다른 외모 때문에 늘 콤플렉스를 안고 살아간다. 그런 도에게 위로가 되는 건 전통 줄타기다. 도는 주말마다 전통 줄타기 공연장을 다니며 육 년째 진지하게 줄타기를 배우고 있다.
잘생긴 외모와 과묵한 성격으로 어딜 가나 인기를 독차지하는 이도와 달리 지극히 평범한 이율은 하고 싶은 일은 해야 직성이 풀리는 화끈한 성격의 보유자다. 그런 율의 눈에 들어온 게 있었으니 그건 바로 ‘슬랙라인’이다. 우연히 공터에 갔다가 너비 5센티미터 줄 위에서 묘기를 부리는 사내를 보자마자 율은 그를 사부로 모시기로 한다. 줄의 탄력을 이용해 하늘로 솟구치는 손 사부의 모습에서 진정으로 살아 있다는 걸 느낀 율은 자신의 미래 역시 저 줄 위에 있다는 걸 확신한다. 율의 열정과 진심을 느낀 손 사부는 슬랙라인 세계 대회 우승의 꿈을 함께 나눌 동지를 얻는다.
세계 대회 우승을 위해선 그들만의 필살기가 필요하다. 유럽의 난다 긴다 하는 실력자들 사이에서 한국인만이 뽐낼 수 있는 필살기는 무엇이 있을까? 남사당 줄타기에서 영감을 받아 독일 청년이 슬랙라인을 만든 만큼 전통 줄타기를 보면 해답이 나올 거라 믿은 율은 이도의 줄타기 스승을 찾아가 전통 줄타기를 배우게 된다. 그런데 손 사부가 발목을 다쳐 대회에 나가지 못하자 율은 도에게 세계 대회를 함께 나가자고 한다.
"슬랙라인에 전통 줄타기를 합체하는 거야. 일종의 콜라보라구. 손 사부, 어때요? 콜라보레이션! 요즘 이게 대세잖아요. 무조건 줄 위에서 방방 뛰는 것보다 뭔가 스토리텔링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중략)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이런저런 궁리를 했다. 줄과 줄의 만남, 동양과 서양의 만남, 전통과 현대의 만남, 그 안에서 나는 도와 나를 생각했다. 음악은 매번 쓰는 강한 비트의 테크노나 팝보다 우리 사물놀이를 재구성해 보는 것이 어떨까 싶었다.
_120~122쪽
꼬인 줄 풀기
쌍둥이 사이엔 서로 모르는 게 없을 것 같고, 말하지 않아도 텔레파시가 잘 통할 것 같지만 율과 도의 경우는 다르다. 지나치게 말수가 적은 도, 지나치게 활발한 율은 물과 기름처럼 잘 섞이지 못한다. 율은 잘생기고 인기 많은 도가 부럽지만, 도는 누가 봐도 쌍둥이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다른 자신의 외모가 싫다. 튀기라 놀리고 입양아인 자신을 가십거리로 만드는 세상에서 한국인으로 인정받기 위해 전통 줄타기를 시작한 도였다. 그런데 다시 서양 스포츠를 하라니, 그것도 율과 함께라니……. 무엇보다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도에게 율은 큰 실수를 저지른다. 슬랙라인 블로그를 만든 율이 허락도 없이 줄 타는 도의 모습을 찍은 동영상을 올린 것이다. 파급력은 엄청났다. 도가 혼혈인 입양아라는 사실을 전 세계에 알린 꼴이 되었고, 동영상을 본 도의 친엄마까지 나타나면서 두 형제 사이는 단단히 꼬인다. 만날 수 없는 평행선 위를 걷는 듯했던 도와 율은 서로의 줄을 바꿔 타 보면서 점차 서로의 인생을 이해하게 된다.
“내가 혼혈이라는 것도, 입양되었다는 것도, 누군가에게 버려졌다는 것도…… 잊고 싶었어. 여태껏 신경 쓴 적 없는 사실이 갑자기 현실로 다가오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거든. 그러다가 줄을 타게 됐지. 그 위태로운 줄 위가 오히려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도는 혼자서 그 위태롭기 짝이 없는 줄 위를 외롭게, 묵묵히 걷고 있었던 거였다. 취미나 흥미 때문이 아니라, 삶의 무게를, 인생이 자신에게 던져 준 무게를 아무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혼자 이겨 내고 있었던 것이다.
(중략)
“줄 위에서는…… 내 길을 그냥 걸어만 가면 되니까. 줄 위의 세상에선 그게 가능하니까. 엄마랑 아버지한테 이렇게 말하고 줄 타는 것을 허락받았어.”
“별 소릴 다 하면서 허락받았네.”
마음과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팔로 쓱 닦았다.
“이율, 이제 알겠지? 내 줄과 네가 타는 줄이 왜 다른지.”
_184쪽
당신의 라인은 무엇인가요?
이 책의 인물들은 각자 자기만의 라인을 품고 있다. 율을 짝사랑하는 주다인에게 라인은 ‘율’ 그 자체이고, 쌍둥이의 아버지에게 라인은 전투기를 조종할 때 하늘에서 길을 안내해 주는 줄이며, 도와 율에게 라인은 심장이 뛰고 있음을 느끼게 해 주는 청춘을 의미한다. 견디기 힘든 현실을 탓하며 차라리 혼자 서 있을 수 있는 줄 위가 더 안전하다고 느꼈던 도와 율은 점차 줄과 몸이 하나가 되면서 줄타기의 진짜 매력에 빠진다. 도와 율은 이제 ‘인생에서 맞닥뜨리는 그 어떤 것과도 있는 힘을 다해 싸울 수 있는 흥을 주는 것’이 줄타기이며 ‘균형 없는 삶’ 속에서 ‘늘 그 균형의 정점에 서 있’는 사람이 바로 줄타기꾼이란 걸 깨닫는다.
등장인물들이 자기만의 라인을 찾아가는 것처럼 독자들도 이 책을 읽고 자신의 라인을 찾아보게 될 것이다. 가족 혹은 사회에서 정한 기준 말고, 내가 진짜 즐기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한 번쯤 생각해 보게 된다. 저마다 견뎌야 하는 줄의 너비와 높이는 다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스스로 줄 위에 올라갈 수 있는 용기, 그리고 균형을 잃지 않기 위해 길러야 하는 단단한 발의 힘이 아닐까. ‘발 아래 세상이 위태롭게 흔들릴지라도, 나는 건강한 글을 쓰고 싶다’는 이송현 작가처럼 용감하게, 힘 있게 자신만의 줄 위로 올라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