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 길_19~20쪽
이승원 李昇院 1963~2017
1963년 1월 5일 (음력 12월 10일) 서울 출생
1981년 2월 고대부고 졸업
1985년 5월 한국외국어대학교 수학과 졸업
1987년 1월 1일 한국데이타통신(주) 입사
1990년 8월~1991년 8월 한국데이타통신노동조합 조사통계부장
1993년 8월~1997년 8월 데이콤노동조합 5, 6대 위원장 역임
1997년 11월~1999년 3월 공익노련 사무처장
1999년 3월 13일~2000년 8월 공공연맹 사무처장
2000년 8월 28일~2002년 8월 데이콤노동조합 10대 위원장
2002년 7월 데이콤노조 80일 파업으로 해고
2003년 1월 1일~2004년 2월 공공연맹 위원장
2005년 4월~7월 ‘원직 복직, 비정규직 철폐’ 전국(2000km) 도보 투쟁
2005년 8월~2006년 8월 데이콤노조 직접고용 비정규직 조직 담당 (비정규직 지회 설립)
2006년 공해투 의장
2008년 5월 5일 대법원 승소로 데이콤 복직
2008년 8월 5일 데이콤 퇴사
2008년 8월 23일~ 노동자역사 한내 사무처장
2011년 8월~ 2012년 8월 춘천봉사활동 인하대 희생자 투쟁대책위원회 위원
(교섭 대표), 그 이후 기념사업회 운영위원
2015년 3월 공공운수노조 지도위원
2017년 7월 24일 별세
[저서]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LG자본에 맞선 데이콤 노동자들의 투쟁』(공저), 2005년
『해고는 살인이다』(공저), 2009년 쌍용자동차지부 77일 옥쇄파업투쟁 백서, 2010년, 한내
『우리가 보이나요』(공저, 2011 인권상 수상), 홍익대 청소경비노동자 투쟁이야기, 2011년, 한내
『네 꿈을 기억할게』, 춘천봉사활동 인하대 희생자 투쟁 이야기, 2013년, 한내
책을 펴내며_22쪽
오늘 우리는 이승원 동지 앞에서 그리움과 슬픈 감정으로 마주하지만 동지는 무덤에만 있지 않으니 슬퍼하지 말라고 합니다. 동지의 영혼은 수천, 수만 개 노동해방의 바람이 되어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고 강변하고 있습니다. 우리들과의 인연과 기억은 헤아릴 수 없는 울림과 메아리로 남아 너울대고 있습니다.
작은 싸움도 온몸의 열정으로 부딪쳐 가며 큰 싸움으로 만들어 간 동지. 육신은 우리 곁을 떠났으나 지금은 보이지 않는 영혼과 강인한 포옹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이 뜨거운 포옹은 동지가 못다 한 꿈을 우리가 함께 이루겠다는 결의이기도 합니다.
- 노동자역사 한내 대표 양규헌
민주노총 사태 어떻게 봐야 하나?_64쪽
지난 1998년 IMF를 극복하기 위한다는 명목으로 만들어진 노·사·정 위원회에서 고통분담의 정신으로 정리해고제에 대해 합의를 해주었지만, 우리 노동자들에게 돌아온 것은 무엇이었던가? 가진 것도 별로 없는 노동자들은 정리해고의 칼날에 거리의 노숙자로,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다가 목숨까지 버릴 수밖에 없는 처지로 내몰렸건만, 가진 저들은 어떠했는가? 더 많은 부를 축적하고, 더 많은 권력을 가져가고도 엄살을 떨고 있지 않은가. 결국, 노동자들은 1998년 그때 현찰(정리해고제)을 주고, 휴지쪼가리가 될 부도 어음(전교조 합법화, 초기업단위 노조 인정, 실업자 노조가입 등)을 받은 꼴이 되어버렸다.
1987년, 그때 나는 어디에 있었나?_94쪽
20년이 지난 한국 노동자들의 현실은 약간의 의식주가 좋아졌는지는 모르겠으나, 다른 것이 없는 것 같다. 20년 전에는 구사대를 했던 관리직과 생산직이 있었다면 지금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있고, 이주노동자들이 있다. 그리고 자본의 노동자 분리 통제는 과거보다 좀 더 세련되어졌고, 20년 전 노동자대투쟁 당시와 같은 폭발적 힘을 노동자들에게 주려고 하지 않는다. 노동자들끼리 갈등과 반목하게 하고 이미 총액 임금 차원에서 자신의 이익은 침해 받지 않도록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싸우고, 하청 노동자의 임금을 후려치는 등 그 방식 또한 치졸해져 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무엇을 배울 것인가? 20년 전 팔십칠 칠팔구의 대투쟁을 그리워하는 과거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무엇을 위해 목숨 바쳐 투쟁 했는가?를 분명히 되새겨 봐야 할 것이다. 그것은 노동해방! 바로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인간해방!의 절규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도 그 절규는 다르지 않음을 인식하고 나아가야 할 것이다.
기록하고 남겨서 노동교육꺼리로 만들어보자_149쪽
며칠 전 기록학을 공부하는 H대학교 대학원생들이 대학원 수업으로 한내에 방문하여 견학 겸 자료관리 방법을 공부하고 갔다. ‘노동자역사 한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연지 3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그런대로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다. 교수와 논문을 쓰는 학생들이 제일 많았는데, 대부분 기록학과 사회학을 하는 사람들이다. 기록학 분야에서는 한내 사례를 들어 2개의 논문이 나왔다. 그 다음으로 방문자 중 많은 사람들이 외국에서 온 방문객이다. 한국의 노동운동에 관심을 갖고 온 분들(미국, 일본, 호주 등)이 다녀가는 곳이 되었고 나름 입소문도 났다. 최근 일본에서 온 법정대학 교수는 작년에 다녀간 일본 오하라연구소 소장께서 한국에 가면 꼭 가보라는 추천으로 왔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한국의 노동자들은 일이 있어 오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거의 없다. 물론 한내에서 견학을 적극 권장하지 않은 점도 있지만, 노동운동이 현안 문제에 올인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역사성을 상실한 운동은 미래가 없다는 것을 고민해야 할 시기인 것 같다.
노동운동사로 본 노동권의 현주소_277쪽
노동운동 활동가들이 역사 문제에 힘을 집중해 줬으면 한다. “역사를 모르면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자본과 권력이 어떤 거짓말을 해도 그걸 간파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현재 활동가들이 역사에 소홀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이를 바탕으로 사회와 노동자 계급 전체의 문제를 놓고 투쟁에 나서야 한다. 1945년 9월 총파업 때 전평이 인민에 대한 쌀 배급을 주요 요구로 내세웠던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한국공항공사노조 간부 교육_295쪽
그래서 민주노조란 뭐냐? 어용노조에 대비되는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조입니다. 노동자 전체의 이익과 더불어 사는 사회를 위해 힘을 모으고 싸우는 조직입니다. 그래서 노동조합이 임금교섭도 하고 조합원들이 이익을 위해서 투쟁하지만 그 투쟁들은 뭐냐 하면 사회적 대의를 벗어나서는 안 되는 겁니다. 노동자 전체의 이익을 벗어나서도 안 되는 것이고요. 물론 눈앞에서는 힘 있는 사용자한테 좀 더 협조적이거나 이걸 통해서 많은 것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체 노동자의 대의를 어긋난다면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 민주노조인 것입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