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출간일 | 2012년 01월 2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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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596쪽 | 758g | 148*210*35mm |
ISBN13 | 9788933801840 |
ISBN10 | 8933801847 |
출간일 | 2012년 01월 2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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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596쪽 | 758g | 148*210*35mm |
ISBN13 | 9788933801840 |
ISBN10 | 8933801847 |
지난 세기,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경험한 특수한 상황을 세계적 경험으로 끌어올린 박완서의 역작 『엄마의 말뚝』은 박완서가 쓴 80여 편의 단편소설 중에서 유일한 연작소설이자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엄마의 말뚝 1』은 송도에서 대처로, 대처에서 서울 문밖으로, 문밖에서 문안으로 이동하던 박완서의 유년 시절 어머니에 대한 기억에 기인한다. 「엄마의 말뚝 2」는 가장 고통스러웠던 기억에 고정되어 고통스러워하는 이제는 노쇠한 어머니와 그 모습을 지켜보는 딸의 이야기를 담았고 「엄마의 말뚝 3」은 생명의 불꽃이 점차 사그라지는 어머니의 모습과 어머니의 영원한 안식을 쓴 글이다. 이 세 소설은 시간차를 두고 어머니를 곁에서 지켜보던 박완서 본인의 내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머니 홍기숙 여사의 삶의 궤적은 한국의 특수한 역사적 상황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한국 여성의 삶뿐 아니라 역사의 흐름 속 한 인간의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 세계사 '박완서 소설전집 결정판' 『엄마의 말뚝』에는 「엄마의 말뚝」 연작과 함께 「유실」 「꿈꾸는 인큐베이터」 「그 가을의 사흘 동안」 등 개인의 삶을 낱낱이 파헤쳐서 사회를 비판해온 박완서만의 날카로운 시선과 필치가 돋보이는 작품들이 함께 들어 있다. |
기획의 글 작가의 말 엄마의 말뚝·1 엄마의 말뚝·2 엄마의 말뚝·3 유실 꿈꾸는 인큐베이터 그 가을의 사흘 동안 꿈을 찍는 사진사 창밖은 봄 우리들의 부자 해설 작가 연보 |
박완서 작가님 작품을 학교다닐 때 배우기만 하고,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어서 이번에 읽어보려고 구매했습니다. 작가님의 문장과 표현 하나하나 너무 좋았습니다. 특히 예스러우면서 한국적인 표현들이 좋았습니다. 다른 책들도 하나하나 읽어보고 싶습니다.
엄마는 시골에 나를 데리러 왔을 때 나무랄 데 없는 서울 사람이었지만 그건 엄마의 허구였다. 엄마는 문밖에 살면서 아직은 서울 사람이 못 됐다는 조바심과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 엄마의 이런 문밖 의식을 위로하고, 문밖의 이웃을 툭하면 상종 못할 상것 취급을 하는 것이 다름 아닌 엄마가 절망하고 경멸한 나머지 배반한 시골에 둔 극ㄴ거라는 건 기묘한 상관관계였다. 엄마는 그 모순된 관계에서 헤어나오기는 커녕 점점 더 깊이 빠져들고 있었다. (p.56)
어렸을 때 가난한 동네에 살았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같은 반 친구 아이들도 모두 없이 사는 처지라 가난이 무엇인지 잘 알지는 못했다. 다들 그만그만하게 비슷했으므로...
그 무렵의 기억이 거의 사라졌지만 또렷이 기억나는 일화가 하나 있다. 초등학교 1학년 때였는데, 불우이웃 돕기 성금이나 물품을 걷어 반에서 가장 어렵게 사는 친구에게 전달하는 행사가 있었다. 가난을 겨루는 방법은 다름 아니라 집에 무엇이 있는지 없는지를 따져서 학생들을 추리는 방식이었다. 마지막까지 남은 아이가 영광의 '가장 가난한 학생'이 되어 불우이웃 돕기 물품을 집에 가져갈 수 있었다.
선생님이 집에 티브이가 없는 사람 손을 들라고 하니 학급 인원의 반 정도가 추려지고, 그다음은 냉장고, 전화 등의 순서로 계속 좁혀나갔다. 나도 거의 대여섯 명이 최종 겨루는 단계까지 남을 수 있었고 옆 친구보다 조금만 더 가난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으면 '불우이웃 돕기 물품'은 나의 차지가 되는 거였다. 나는 설레고 긴장되었다.
나는 거의 마지막 단계에서 탈락했는데, '엄마와 아빠가 둘 다 일하는 가정'을 물었을 때였다. 사실 그때 아버지의 벌이가 여의치 않아, 어머니도 일거리가 있을 때마다 날품을 팔던 때였다. 선생님의 물음에 외벌이를 선택할 수도 있고, 맞벌이도 반은 맞는 말이었다. 나는 사실관계의 정확성을 따지기보다는 경쟁에서 이겨 물품을 집에 가져가고 싶은 욕망이 앞섰다. 어떻게든 가난함을 증명해 보이는 답을 선택하고 싶었다.
나는 아버지 혼자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외벌이'를 선택했고, 그 선택으로 인해 최종 단계에 오르지 못하고 탈락했다. 어린아이의 셈법으로는 혼자 버는 집은 당연히 둘이 버는 집보다 수입이 적으니 가난을 경쟁하는 최종 후보에 들어가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결국 나는 가난 겨루기 대회에서 탈락하게 되었고, 하교 후 어머니께 '불우이웃'이 거의 될 뻔했다고 무용담처럼 말씀드렸던 기억이 난다.
몇 년 지나지 않아, 가난은 정 반대로 나를 공격했다. 나는 갑자기 가난이 창피하고 감추고 싶은 치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빈한하게 사는 모습을 친구에게 보이기 싫어서 사는 곳을 감추기도 했고, 가난을 숨기기 위한 거짓말도 여럿 했다. 우리나라 학교에서 조사하는 목록에는 왜 그리 적기 싫은 항목들이 많았던지...
세상에는 감추기 어려운 세 가지가 있다고 하는데, 재채기, 사랑, 가난이다. 아마 내가 창피하고 부끄러워했던 가난을 나는 성공적으로 숨겼다고 생각했으나 꼭 그렇지는 않았으리라. 적어도 지금 내 기억과 마음속에 어떤 흔적과 상처를 남겼으니, 가난을 숨길 수 없다는 말은 정말 사실이다. 세상에 누구도 가난으로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난 그냥 가난에 반대할 뿐이다.
<엄마의 말뚝>은 박완서의 자전적이며 가족사를 그린 연작이다. 그중 핵심심은 제목처럼 '엄마'를 따라 시점이 그려지고 있다. 엄마를 바라보는 딸의 시선을 고스란히 느껴볼 수 있는 연작 소설이다. <엄마의 말뚝>은 3부작의 연작 소설이다. 초기 저자의 송도에서부터 서을 문밖으로의 이사를 한 유년시절을, <엄마의 말뚝 2>는 엄마의 어떤 고통으로 인해 변화되어지는, 변질되어가는 엄마의 모습을 지켜보는 또한 노쇠해가는 엄마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엄마의 말뚝 3>은 그런 어머니의 삶이 생명이 다해져가는 모습과 딸로서 어머니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을 담은 일상을 그리고 있다. 한 사람이 삶은 나서 자라고 성장하며 변해가다 노쇠하고 생을 마감하는 것일진대 , 그녀의 어머니의 삶을 어린 그녀의 시선을 통해, 성장한 청소년기의 시선 그리고 장년이 된 딸의 시선을 통해 보여지는 그녀의 어머니의 모습은 왠지 우리 집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그런 모습일듯하며 따라서 다소 감정이 번잡해질 수 있는 그런 일상을 그려보이고 있다. 또한 그녀의 어머니의 모습을 지켜보며 자신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박완서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소재에 적절한 서사적 리듬과 입체적인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다채로우면서도 품격 높은" 글들을 보여주고 있다. 현란한 수식어보다 독자가 읽기 편하고 리드미컬하고 이해 빠른게 좋은 글일 것이다. 박완서의 글을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 개인의 삶을 촘촘하 그려보이며 사회를 이야기하는 저자의 시선을 느껴볼 수 있다.
"기어코 서울에도 말뚝을 박았구나. 비록 문밖이긴 하지만......"
'말뚝'의 의미를 생각해보니, 한 장소, 분야, 곳에 정착을 한다 내지 오랫동안 머문다는 의미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어머니의 말뚝은 분명 서울 문 안에 정착하는 것이었는데, 왜 지긋지긋해 하던 사대문 밖 산꼭대기 마을 현저동에서 마음의 말뚝을 박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게 한다. 어머니의 '신여성'에 대한 강박보다 왜 사대문 밖에 '말뚝'을 평생 안고 살아왔는지 의아 할 수 밖에 었다. 손자 손녀는 서울에 뿌리를 박길 바라고, 엄마는 말뚝을 박았다. 그것도 서울 문밖에!
엄마에게 '말뚝'은 무엇이었으며, 결국 어머니에게 딸에게로 이어져 온 '말뚝'은 어떤 의미로 이해할 수 있을까. 우리말에 '딸은 엄마 팔자를 따라간다'는 말이 있다. 인생이 엄마를 닮는다는 말이다. 결국 저자 박완서는 어머니를 닮았나? 나이들어 은연중에 드러나는 그녀의 모습은 어머니의 모습과 비슷하다 여겨지긴 한다. 어머니의 말뚝-현저동 집은 어머니의 기준점이었다. 사물 판단의 기준점이었고 근거였다! 그러나 매인 말뚝이었고 언젠가 타인에 의해 뽑힐 매인 말뚝이었다. 헤어나오지 못하는 매인 말뚝이었다!
저자에겐 어머니의 기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영원한 문밖 의식. 저자만의 매인 말뚝을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이고, 자신만의 새로운 말뚝을 만들어 어머니를 답습하고 있었다. "제 아무리 멀리 벗어난 것 같아도 말뚝이 풀어 준 새끼줄의 길이일 것이다." 결국 저자는 어머니의 말뚝을 인식하지 않기로 했다. 자유를 주기로 한다.
그럼에도 결국 삶의 순환처럼 엄마의 말뚝은 산소의 임시 비석의 명패 말뚝이 되어 또 다시 새로운 말뚝을 박았다. 언젠가(현재는 이미 이루어진) 저자에게도 비슷한 말뚝에 매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조금씩은 의미가 다른 말뚝일 것이다. 책을 읽는 나의 말뚝을 생각보니, 나름 역시나 헤어나오지 못하는 말뚝이 있었다. 저자처럼, 저자의 엄마처럼 지긋지긋하다고 여기는, 그러나 언젠가 벗어나길 바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