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 짓는 늙은이>, 막다른 길에 이른 삶의 표정
<독 짓는 늙은이>가 수록된 단편집 ≪기러기≫는 1951년 명세당에서 간행되었다. 첫 단편집인 ≪늪≫을 내놓은 이후 일제의 한글 말살 정책으로 인한 탄압 속에서 황순원은 “읽히지도 출간되지도 않는 작품”을 은밀하게 쓰면서, “그냥 되는대로 석유 상자 밑이나 다락 구석”에 숨겨두었던 것인데, 그러한 작품 열네 편이 ≪기러기≫에 실려 있다.
이들 작품의 정확한 제작 연도는 해방을 앞두고 시대적 전망이 가장 어두웠던 4년간이었으며, 그러므로 해방 후 발표된 작품들을 묶은 ≪목넘이 마을의 개≫보다 출간 시기는 늦었으나 실제 집필 시기는 ≪늪≫을 지나 황순원의 본격적 창작 활동이 시작되는 제2기의 것이 된다.
<독 짓는 늙은이>는 <산골 아이>, <황 노인>, <별> 등과 함께 영어 또는 프랑스어로 번역되어 해외에 널리 소개되기도 하였다. 또한 이 작품은 최하원 감독에 의해 1969년에 영화로 만들어졌고, 황해와 윤정희가 주연으로 나왔다.
<독 짓는 늙은이>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매우 단선적으로 그 성격이 정돈되어 있다. 옹기를 짓고 굽는 송 영감, 그의 어린 아들, 작품 속에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여드름 많던 조수”와 함께 도망간 아내, 그리고 흙 이기는 왱손이와 아이를 입양시켜 보내는 일을 맡은 앵두나뭇집 할머니 등이 그들인데 이 중 송 영감을 제외하고는 모두 평면적인 주변 인물의 역할에 그쳤다.
이 작품은 전지적 작가 시점에 의해 진행되고 있기는 하지만, 서술의 초점이 송 영감의 심정적 동향에 맞추어져 있고 그의 내면적 고통을 드러내는 사소설적인 유형을 취하고 있다. 1인칭 소설이 아니며 송 영감의 입을 빌려 발화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이 가능하도록, 이 작품은 치밀하고 분석적인 서술의 행보를 유지하고 있다.
<목넘이 마을의 개>, 환경 조건을 넘어서는 생명력
1946년 5월에 월남한 황순원은 <개벽>, <신천지> 등 여러 잡지에 단편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이 작품들은 전란을 배경으로 가난하고 피폐한 삶, 당대의 혼란하고 무질서한 사회상 등을 표출하고 있다.
이 무렵에 발표된 작품 일곱 편을 묶은 단편집 ≪목넘이 마을의 개≫는 자전적 요소가 강하며 현실의 구체적인 무게가 크게 나타난다.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일관하고 있는데,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그 서술 시점이 더 효율적인 이유는 주로 ‘신둥이’라는 흰색 개의 생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진행한다는 데 있다. 나중에 단편집 ≪탈≫에 이르러 <차라리 내 목을>이라는 단편에서는 작가가 말(+)을 화자로 하여 역방향에서 사건의 깊은 내면을 부각시킴으로써 소설적 성공을 거두는 사례도 볼 수 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간들, 예컨대 간난이 할아버지나 김 선달, 또 큰 동장네 및 작은 동장네 같은 이들의 기능은 부차적인 수준에 그친다. 반면에 신둥이를 비롯하여 검둥이, 바둑이, 누렁이 등 여러 빛깔의 개들이 작가의 주된 관심 대상이다. 한 외진 마을에서 이 개들은 자기들끼리 또는 인간과의 관계를 통해 생존, 번식, 화해와 같은 개념들을 구체적 실상으로 입증해 보이고 있다.
<소나기>, 인간 본원의 순수성과 그 소중함
<소나기>는 짧은 단편이면서도 황순원 문학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소나기>가 실려 있는 단편집 ≪학≫은, 1956년 작가와 가까웠던 이름 있는 화가 김환기의 장정으로 중앙문화사에서 간행되었다. 이 책에는 1953년에서 1955년 사이에 씌어진 단편 열네 편이 수록되어 있다.
전후의 시대상과 힘겨운 삶의 모습들, 그리고 그러한 와중에서도 휴머니즘의 온기를 잃지 않고 있는 등장인물들과 마주칠 수 있다.
<소나기>는 <학>,<왕모래>등과 함께 활발한 번역으로 영미 문단에 소개된 바 있으며, 유의상이 번역한 <소나기>는 1959년 영국 <인카운터(Encounter)>지의 콘테스트에 입상, 게재되기도 했다.
이 작품의 중심인물은 시골 소년과 윤 초시네 증손녀인 서울서 온 소녀다. 이들은 개울가에서 만나 안면이 생기게 되고 벌판 건너 산에까지 갔다가 소나기를 만난다. 몰락해 가는 집안의 병약한 후손인 소녀는 그 소나기로 인해 병이 더치게 되고, 끝내 물이 불은 도랑물을 업혀서 건널 적에 소년의 등에서 물이 옮은 스웨터를 그대로 입혀서 묻어달라 말하고는 죽는다.
<소나기>은 간결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속도감 있는 묘사 중심의 문체가 우선 작품에 대한 신뢰를 높인다. 또한 이 작품은 단 한 차례도 글의 문면을 따라가는 이에게, 토속적이면서도 청신한 어조와 분위기 밖으로 나설 것을 강요하지 않는다. 기승전결로 잘 짜인 플롯의 순차적인 진행을 뒤따라가는 일만으로도, 문학이 영혼의 깊은 자리를 두드리는 감동의 매개체임을 실감케 한다.
작은 사건과 사건들, 그것을 경험하고 느끼는 소년과 소녀의 세미한 반응 등 작고 구체적인 부분들의 단단한 서정성과 표현의 완전주의가 이 소설을 가장 우수한 작품으로 떠받치는 힘이 된다.
다른 단편들, 인간 본원의 순수성과 그 소중함
전쟁 직후인 1955년부터 1975년까지 20년에 걸쳐 쓴 작품 21편을 묶은 단편집 ≪탈≫에는 <소리 그림자>, <마지막 잔>, <나무와 돌, 그리고> 등이 실려 있다. 이 단편집은 전반적으로 노년과 죽음의 문제에 관한 수준 있는 성찰을 보여주고 있는데, 여기 예거한 세 작품은 인간의 순수한 근원 심성과 삶 또는 죽음이라는 명제가 어떻게 대척적으로 맞서 있고 또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가를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소리 그림자>에서 한 어른의 무분별한 노기로 인하여 40 평생을 불구의 종지기로 살다가 죽은 어릴 적 친구의 그림에서 경건하도록 맑은 즐거움을 찾아낼 때, 한없는 분노를 청량한 웃음으로 삭여낼 수 있다는 사실이 생경한 교훈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40년의 삶을 대가로 지불하고 체득한 용서의 표현을 통해 받아들여짐으로써 감동을 받을 수 있다.
타계한 친구를 침묵으로 조상하는 실명 소설 <마지막 잔>은 이 상거(相距)를 한 잔 술로 넘고 있다. “병 밑의 술을 탁자 옆 허공에다 쏟아부음”으로써 망자와의 교감을 유지하는 화자의 행위는 청신하다. 이 소박한 의식을 통해 화자는 죽음이 우리에게 밀착되어 있는 삶의 동반자임을 말하고 있다.
작가가 제시하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죽음은 조촐하지만 내면적 품격을 갖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참으로 순수하고 자연스러울 때 <나무와 돌, 그리고>에서처럼 ‘장엄한 흩어짐’으로 표상된다.
은행나무 잎이 산산이 흩뿌려지는 광경에서, 이 작품의 화자는 범상한 삶의 경험 가운데서 암시되는 장엄한 죽음의 모습을 본다. 화자는 “뭔가 속 깊은 즐거움에 젖어 한동안 나뭇가지를 떠날 수”가 없다. 그는 단순히 계절의 생명을 끝내는 은행나무 잎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삶과 죽음이 상징적으로 통합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내면적 충일이 ‘황금빛 기둥’으로 극대화되는 환각을 체험하고 있다. 삶과 죽음의 접점에서 그 몸짓이 격에 맞는 것일 때 “아무런 미련도 없는 장엄한” 모습으로 드러날 수 있음을 인식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