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이 일을 멈춘다면 어떻게 될까? 만약 회사, 병원, 카페, 학교, 은행 등 모든 곳의 여성들이 출근을 거부한다면, 학교에 아이를 데리러 가지도 않고 설거지와 요리, 잠자리 정돈조차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인구의 50퍼센트가 파업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러한 시나리오를 실험한 사례가 있다. 1975년 어느 날, 아이슬란드 여성들은 하루 동안 모든 일과에서 손을 뗐다. 여성의 유급 노동뿐 아니라 사실상 무급 노동에 다름없는 일들의 가치를 남성들에게 일깨우기 위한 조치였다. 일명 ‘여성 총파업’이 단행되자, 연령과 사회적 지위, 정치적 신념을 막론하고 모든 분야의 여성들이 레이캬비크에 모여 행진했다. 10월 24일, 관악대의 힘찬 연주 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여성들은 목이 터져라 연설을 펼쳤으며 다양한 인권 문제를 논의했다.
--- p.21~22 「여성들이 일을 멈춘다면」
알다시피 우리는 아직 평등권을 쟁취하지 못했다. 암울한 통계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전 세계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더 가난하고 교육을 덜 받는다. 자기 일을 선택할 권한이 더 적은데도 불구하고 일은 더 많이 한다.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더 적은데도 더 많은 범죄와 폭력에 희생당한다. 상황은 이런 식으로 계속된다. 여성들은 투표권을 얻어 선거에 참여한다.(영국에서는 여성 투표율이 남성 투표율보다 약간 더 높다.) 예를 들어 1970년에 우리는 동일노동에 대해 동일임금을 받을 권리를 획득했다. 그런데 보라. 48년이 지났는데도 그 권리는 실현되지 않았다. 이처럼 권리 획득의 실패를 경험하면서 우리는 구조적 문제로 돌아가게 된다. ‘왜’ ‘누가’라는 질문 사이로 복잡성과 욕망이 잔물결을 일으킨다. 무엇이 전 세계적인 불평등, 특히 세계경제의 불평등을 야기하는가? 노동자의 키가 커야 하거나 육체적 힘이 강해야 할 필요도 없는데 말이다.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봐야 할까?
--- p.33 「나는 온건한 페미니스트가 되지 않을 것이다」
얼마 전 나는 어떤 책을 넘겨보다가 이내 덮었다. 이야기의 시작은 주인공인 남자아이가 아침에 자기 고추가 발기된 것을 보고는 당황해서 엄마 몰래 화장실로 달려가는 장면이었다. 나는 여기서 미련 없이 책을 덮었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너무 많이 봐왔다. 성장담을 다룬 책이라는데, 이건 소재가 뭐가 됐든 결국 작은 고추가 큰 고추가 되는 이야기다. 고추의, 고추에 의한, 고추를 위한 이야기들. 나는 이제 더는 이런 걸 읽고 있을 시간이 없다. 나는 인생의 4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그놈의 고추에 집착하는 남성 작가들의 문장을 많이도 읽어왔다. 정말이지, 지겹다. 나는 다리 사이의 문제가 아닌 것들에도 폭넓은 관심을 보이는 여성 작가들의 서사를 부지런히 읽어나가고 싶다.
--- p.40 「더 많은 여성의 이름이 필요하다」
여성을 옭아맨 이 불행의 순환 고리를 끊기 위해서 여성들은 권력을 가져야 한다. 권력을 잡아 공명정대하게 게임의 룰을 바꾸는 것. 그것 외엔 답이 없다. 고로 소녀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야심이다. 걸스, 비 앰비셔스. 야심이란 말은 사실 여성을 두렵게 하지. 더럽게 오염된 말이니까. 하지만 저 흙 묻은 알사탕을 우리는 먹어야 한다. 더럽다고 물러서 있으면 이 꼴을 영원히 면할 수가 없다.
--- p.52 「딸아, 너는 무수리처럼 일하지 말지니」
요즘 나와 내 주변 여자들은 여자에게 일 몰아주기를 실천하고 있다. 은밀하고 무해한 음모 수준으로. 행사에 여자 강사를 초빙하고, 여자 필자를 섭외하고, 여자 사진가를 부르고, 여자 보험설계사를 쓰고, 누가 소개해달라고 하면 “일을 잘해서요~”라면서 여자를 추천하고, 어떻게 해서든 여자가 돈을 더 벌고, 일과 커리어를 지속할 수 있도록 서로의 사다리가 되어주는 것. 영화 〈히든 피겨스〉 속 대사처럼 누구의 도약이든 우리 모두의 도약이 될 테니까. 다행히 나와 당신에겐 선택의 기회가 있고, 소비자로서 그 힘은 결코 작지 않다. 모이기만 하면 된다. 기왕 쓰는 돈, 여자에게 쓰자.
--- p.67 「여자에게 돈을 쓰자」
만약 우리가 개인의 성취보다 다수의 목표와 공동의 노력을 더 중요시하라고 배웠다면 어땠을까? 같은 꿈을 가진 사람들끼리 공동체를 이루고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을 함께 성취해나가라고 배웠다면 지금쯤 좀더 행복해졌을까? 만약 그랬다면, 우리는 좀더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었을까?
--- p.103 「고독한 꿈」
1975년 10월 24일, 우리는 출근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 어떤 집안일도 하지 않았다. 요리도 안 했다. 아이도 돌보지 않았다. 그때 나는 스물한 살이었다. 나는 아이슬란드 역사상 가장 큰 시위에 모여든 수많은 여성들 속에 서 있었다. 우리는 임금격차와 불공정한 고용 관행에 저항하고자 거리로 나갔다. 우리는 여성이 경제와 사회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증명해 보였다. 솔직히 말해 우리는 이 모든 일이 어떻게 시작됐는지는 알지 못했다. 모든 게 매우 정상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속으로 ‘와, 나는 혼자가 아니구나.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라고 생각했다. 나는 우리가 이러한 힘을 전달할 방법을 찾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다시는 나 자신이 문젯거리라는 기분을 느끼지 않으리라는 것도 알았다. 변해야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사회였던 것이다.
--- p.143 「아이슬란드에서 온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