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에 보기에는 늑대보다 침팬지가 인간과 더 가깝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수컷 영장류는 새끼에게 먹이를 주거나 늙은 동물을 돌보지 않는다. 늑대와 인간은 서로 더 잘 이해한다. 이것이 우리 인간이 오래전에 원숭이가 아니라 늑대를 우리 삶에 불러들인 이유 가운데 하나다. 늑대와 개와 우리 인간이 서로를 발견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우리는 서로를 위해 존재한다. ---「가족의 의미」중에서
아주 오래전에 남성도 새끼 늑대에게 자신을 각인시킬 수 있었을까? 절대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각인시키려면 젖이 필요한데, 가축이 없던 시대(양과 소, 염소와 돼지는 늑대 이후에 가축이 되었다)에는 여성들만 젖을 줄 수 있었다. 그러니 어느 날 새끼 늑대를 데리고 와서 젖을 준 사람은 분명히 여성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젖 양이 너무 많았거나 길 잃은 불쌍한 새끼 늑대에게 연민을 느껴 품에 안았을 것이다. 그 여성은 자기도 모르게 인류 역사상 혁명을 일으켰다. 늑대 뒤로 여러 가축이 이어졌고, 사냥꾼은 목동이 되었기 때문이다. ---「여성과 늑대의 공통점」중에서
늙은 늑대를 이렇듯 소중하게 만드는 것은 경험이다. 이들은 살면서 경쟁자를 자주 만났고 가족 구성원이 싸우다가 죽는 모습도 목격했으며, 스스로도 다른 늑대들을 죽였다. 이들은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는 충돌은 피함으로써 생존기회를 높인다. 경험 많은 늑대가 무리 중에 있다면 이 무리가 과거의 지식으로부터 이득을 본다는 뜻이다. 이 경우에는 규모가 작은 무리도 큰 무리를 이길 수 있다. ---「노년의 지혜」중에서
늑대들은 전자제품이 없지만 의사소통의 대가다. 이들은 몸으로 ‘대화’한다. 여기에는 눈과 귀, 주둥이와 꼬리 위치뿐 아니라 영역표시나 울부짖음도 포함된다. 명확하고 효율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늑대들의 능력은 이들의 싸움이 아주 드문 이유 가운데 하나다. 의사소통은 서로를 향한 이해와 신뢰 형성에 중요하다. ---「의사소통 기술」중에서
늑대와 인간이 유전적으로 혈족관계는 아니지만, 늑대는 옛날 수렵 공동체의 생활방식에 관해 주목할 만한 힌트를 우리에게 준다. 둘은 예전에 비슷한 방식으로 사냥하고, 먹고, 사회화하고, 조직하고, 의식을 수행했다. 또한 오늘날에도 똑같은 생태계에서 살고, 비슷한 생태학적 균형을 유지한다. 학자들은 그래서 인간과 늑대가 공진화했다고 추측한다. ---「늑대처럼 성공을 계획하는 법」중에서
우리도 일상을 살면서 끊임없이 결정을 내려야 한다. 현명한 사람은 위험한 상황에 맹목적으로 달려들면 아무 소용도 없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런 순간에는 멈춰야 한다. 상황을 현실적으로 판단하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하는 것이 늑대의 강점이다. 가끔은 일단 인내심을 가지고 상황을 곰곰이 생각하고, 여러 조건들을 계산해보는 게 낫다. 또 가끔은 절벽의 늑대들처럼 다음 단계로 가는 게 아무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럴 때는 떨쳐내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 ---「알맞은 때에 관하여」중에서
늑대는 슬퍼한다. 가족 구성원이 죽거나 실종되면 당황해서 찾고, 공격적이 되기도 하고 한탄하듯 오래 울부짖기도 한다. 하지만 언젠가는 다시 떨쳐내고 일어나 계속 살아간다. 삶의 리듬을 따르며 사냥하고, 먹고, 번식하고, 가족을 돌본다. 자연의 모든 생명체가 하는 일을 늑대들도 한다.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것이다. ---「선한 늑대들에게 나쁜 일이 벌어지면」중에서
우리 인간은 이 행성에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지구의 일부이므로, 지구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해야 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처럼 계속 살아간다면 우리는 기후와 천연자원뿐 아니라 우리 자신도 파괴할 것이다. 우리 인간이 사라지더라도 자연에게는 큰일이 아니다. 다음 생명체를 위한 자리를 만들 뿐이다. 자연은 생명의 책에 새로운 페이지를 연다. 완전하게 작동하는 생태계의 중요한 부분인 늑대는 우리 두 종이 생활공간뿐 아니라 같은 운명을 공유하고 있음을 기억하게 한다. ---「잠시, 늑대와 함께 세상 구경하기」중에서
늑대와 야생은 “나는 누구인가?”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실존적이고 영적인 문제로 우리를 이끈다. 우리는 모든 동물에게 내재된 신적인 작은 낌새를 우리 안에서도 느낀다. 그러나 늑대들은 이런 질문을 하지 않는다. 자기가 우리에게 힘을 주는 동물인지, 우리가 자기를 경배하는 제단을 세우려고 하는지, 아니면 자기를 증오하는지 신경쓰지 않는다. 아니, 우리 존재 자체에 관심이 없다. 우리는 늑대들이 적응해야 하는 주변 환경의 일부분일 뿐이다.
우리 인간의 이 무의미함, 대수롭지 않음이 아마 늑대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일 것이다. 우리는 자연을 대할 때 겸손과 겸허한 마음을 좀더 가져야 할지도 모른다. 스스로를 너무 중요하게 여기지 말고 그저 ‘존재’해야 할 때이다. 그렇게 한다면 예전 그 어느 때보다도 늑대에게 훨씬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늑대의 의술」중에서
나는 옐로스톤에서 오랫동안 늑대들의 사랑과 삶과 죽음을 목격하는 행운을 누렸다. 이들은 가족을 갖는 일과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애정을 보여주는 일, 그리고 우리 삶이 라마르계곡의 푸른 풀처럼 아주 짧은 순간에 불과하다고 해도 즐겁게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가르쳐줬다. 늑대는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나에게 보여줬다.
---「에필로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