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출간일 | 2018년 08월 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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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180쪽 | 316g | 145*225*20mm |
ISBN13 | 9791160943870 |
ISBN10 | 11609438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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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 2018년 08월 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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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180쪽 | 316g | 145*225*20mm |
ISBN13 | 9791160943870 |
ISBN10 | 1160943877 |
보이지 않아도, 들리지 않아도 나눌 수 있는 진심 “넌 어떻게 말해? 고맙다는 말?” 제16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 열아홉 수지는 소리를 듣지 못해도 불행하다고 느낀 적은 없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와 수지만 아는 수화로 완벽한 대화가 가능했고, 상상 속에서 모든 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어느 날 인공 와우 수술을 받게 되면서 모든 게 달라진다. 완벽했던 침묵의 세계에서 불완전한 소음의 세계로 옮겨진 수지는 낯선 세상에 적응해 나가기 위해 새로운 발걸음을 준비한다. 눈이나 귀가 아닌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수지를 통해 독자들은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과 마주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수상자 정은은 이 책으로 첫 소설을 내는 신인 작가로, 개성 있는 캐릭터와 경쾌한 유머 요소를 자연스럽게 심어 놓아 가족의 부재와 장애 등 무거울 수 있는 사회 문제를 어둡지 않게 다뤘다. 소리는 듣지 못해도 다른 청소년처럼 미래를 고민하고 누군가를 좋아하는 평범한 십 대 소녀의 감성을 섬세하게 그려 내 독자들은 한 문장 한 문장 천천히 아끼며 읽게 된다. 표지 뒷면에 있는 QR코드를 스캔하면 책 속의 [미스 블랙홀] 노래가 담긴 북트레일러를 볼 수 있다.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행복한’ 세계에 살던 주인공은 장애를 바라보는 타인의 어설픈 동정을 ‘장애도 남이 갖고 있지 못한 또 하나의 능력’이라는 말로 멋지게 거절한다. 우리가 갖고 있는 장애인에 대한 관념까지도 완전히 깨 버린 탁월한 작품. -오정희·김지은·김선희(제16회 사계절문학상 심사위원) |
고래의 귀지 / 유성우 / 코스모스 사운드트랙 / 비밀의 땅 / 침묵을 듣는 시간 |
참 슬프면서도 무서운 책이다.
내가 가지고 있던 장애인에 대한 어설픈 동정, 어설픈 공감을 여지없이 깨뜨렸다. 제목을 보고 특이하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열 때부터 범상치 않았다.
“눈을 감고 귀를 닫아요… 그래야 들을 수 있어요.”
책의 여기저기서 장애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숨겨진 편견을 볼 수 있었다. 동정에 관하여, 소리의 묘사에 대하여...
‘이전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굴던 사람들이 이제 와서 정상이 되었다며 기뻐하는 꼴이라니. 배신감이 들었다.’
‘헤드폰은 장식이고 내가 소리를 못 듣는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소리를 못 듣는 건 내 잘못이자 책임이 되어 돌아왔다. 때론 적대감까지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의 불편함을 말 그대로 극복해야 할 불편함으로 본 나. 겉으론 그들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척했지만, 실제론 그들을 불쌍하게만 여기던 나. 장애인의 반대는 정상인이라고 생각했던 머릿속 깊숙이 감추어놓은 나의 편견을 마주하게 만든 저자의 글.
저자는 전혀 친해지지 못할 것 같았던 두 인물을 조우시킨다. 그러면서 나의 편견을 더 자극한다. 억지스러운 친해짐이 아니다. 그들을 서로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하며 나의 편협한 생각을 더욱 자극했다.
‘그는 내가 헤드폰을 멋으로 쓰고 다니는 것을 처음을 이해해 준 사람이다. 그는 선글라스를 몸의 일부로 여겨서 절대 벗지 않는다.’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했다. 하지만 저자는 더 나간다. 그리고 인공 와우 수술을 받은 수지와 장애인 수시 전형 면접을 본 한민의 모습을 서술하며 한 번 더 물어본다. “아직도 장애인의 반대가 정상인인가요?”
‘나는 수술 전에 외로웠고 수술 후에는 더욱더 외로웠다.’
‘나는 소리가 없는 세계에서 불완전한 소리의 세계로 옮겨졌다.’
“면접이 정말 거지 같았어. 장애인 수시 전형이었거든. 내가 다른 사람과 똑같다는 말이 제일 싫어. 그렇게 말할 때마다 똑같지 않다는 걸 강조할 뿐. 그런 말이 필요 없는 세계를 만들어 주지 않을 바에는 아무 말도 안 했으면 좋겠어.”
이 책이 장애 이야기만 가득했다면 그 감동은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장애와 관련된 이야기 외에도 개성 있는 인물들이 얽혀 여러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평생 사랑과 본인의 감정에 충실한 할머니와 그에 억눌린 또는 기대었던 엄마, 그 둘을 바라본 고모. 그리고 그 가족들 틈바구니에서 자란 수지. 수지의 장애를 빼고서라도 그 인물들이 부딪혀 낸 이야기 또한 깊다. 결국 할머니의 죽음으로 각자의 길로 뻗어난 주인공들. 이기적으로 보인 할머니, 자기 인생에 충실한 할머니를 욕할 수 있을까? 그런 할머니에게 충실했으나 결국 자신의 길로 떠나버린 엄마를 욕할 수 있을까? 오히려 그들의 간섭에서 벗어났기에 수지가 홀로 설 수 있지 않았을까? 주인공들의 행동에 이해가 되면서도 묘한 감정이 생긴다. 단순히 선악이 아니라 모두가 인생을 살며 여기저기 모나고 둥근 부분이 맞물려 서로를 고통스럽게도, 기쁘게도 했기 때문일 것이라. 다만 아쉬운 점은 나를 압도시킨 앞부분에 비해 뒤의 결말이 너무 손쉽게 해결된 점이다. 굳이 극적인 해결을 만들지 않아도, 무언가 긍정적인 결말이 아니더라도 소설이 준 여운과 무게는 충분하리라고 생각했으나 밝은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작가의 욕심일까? 뒷부분의 산책을 듣는 시간에 운영은 나름 의미 있고 흥미로운 결말이나, 소설의 전반부에 비해 가벼운 느낌이다.
장애에 관련된 많은 책이 이제 동정을 넘어 우리와 ‘똑같다’라는 느낌을 주고자 한다. 하나의 배경으로 작용하거나 그저 불편할 뿐이지 틀린 것이 아니다 라는 정도로 서술해 안전하게 빠져나간다. 하지만 이 책은 오히려 그 편견마저 박살낸다. 저자는 ‘장애인의 반대는 정상인이 아닙니다. 장애인의 반대는 비장애인입니다.’라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강렬하게 남긴다. 그동안 여러 장애인 분들을 접하고 그와 관련된 책을 접하면서 마치 모두를 이해한 듯, 공감한 듯한 그러면서도 마음속에 어설픈 동정을 가졌던 나에게 반성하게 해준 이 책. 내 안에 깊숙이 감추어진 장애의 편견을 깨뜨린 책. 그러면서도 많은 여운과 재미를 주었던 이 책에게 정말 감사하다.
책 속 한민은 색을 구분할 수 없고, 명암만 구분할 수 있다. 그가 색면화가 마크 로스코의 작품을 가장 좋아한다고 해서 몇 작품을 가져와봤다. 실제 한민은 우리보다 더 많은 명암을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가 모든 사물을 이렇게 명암으로만 구분한다면 어떨까?
답답하다고 느낄 것이다. 우리는 처음부터 색을 봤기 때문 아닐까? 한민처럼 처음부터 명암만 구분한다면, 그렇게 길들여지면 오히려 더 편할지도 모른다. 답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우리의 고정관념일수도.
내가 느낀 이 책의 주제는 '자신의 특징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이다. 수용하여 사랑할 것인가. 배척할 것인가. 어떻게 결정하느냐에 따라 강점이 될 수도 약점이 될 수도 있다. 인생도 바뀌겠지.
앞에 소개된 작품들의 원래 모습이다. 마크 로스코는 작품에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을 표현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비극, 운명, 황홀 같은 감정을 색으로만 표현하기 위해 노력한 화가다. 색을 '침묵'이라 여긴 그의 섬세함을 다시 느껴보자.
<산책을 듣는 시간>의 소제목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고래의 귀지' 내 귀가 들리지 않는 이유를 엄마에게 물으면 고래처럼 귀지가 많아서라고 했다. 고래는 평생 귓속에 귀지를 쌓아두는데 언젠가 내 귀지도 그동안 수집해 온 소리를 모두 쏟아 내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믿으며 살아간다. 수지는 장애를 축복으로 여기며 자란다.
'유성우' 어느날 갑자기 장애는 극복의 대상임을 강요당하고, 수지는 결국 원하지 않는 인공와우 수술을 받는다.
'코스모스 사운드트랙' 한민과의 만남을 통해 수지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자신을 찾는 과정이 그려진다.
'비밀의 땅' 수지는 할머니의 죽음을 통해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침묵을 듣는 시간' 수지는 서로를 인정하고 홀로서기를 한다. 한민과 '산책을 듣는 시간'이라는 사업을 시작하고 그 과정을 담았다.
그때 그 공간에선 어떤 소리가 나고 있었을까? 나는 그대로 시간이 멈추길 기도했다. 마지막 장까지 보고 나자 그 애는 책을 덮고 말없이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개를 데리고 미술실을 나갔다. 나는 따라가지 못하고 한참 동안 미술실에 혼자 앉아 있었다. 그 시간에 조금 더 머무르고 싶었다. 어렸을 때 나는 어떤 감정들은 특정 공간에 붙어서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옥상에서만, 벽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했다. (중략) 그날 내가 미술실에서 느낀 감정은 그 어느 곳에서도 느낀 적이 없는 감정이었다. 나는 그 감정을 미술실이라고 이름 붙이고 나만의 수화를 하나 만들었다. -50~51쪽
수지는 감정이 어떤 장소에 산다고 생각했다. 수지 언어인 ‘옥상’은 ‘슬픔, 외로움, 고독’ 같은 감정으로, 수지가 옥상에 혼자 있을 때 느끼는 감정이다. ‘미술실’은 설렘으로 심장이 두근거려서 폭발할 것 같으면서도, 마치 오래전부터 그래왔던 것 같은 익숙하고 평화로운 마음을 의미한다.
시인 한 명과 한 명의 산책가 그리고 한 마리의 산책견. 우리 셋은 시인이 된 기념으로 도시를 함께 걸어 다녔다. 셋이 함께 걸을 때 나는 늘 충만한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우리의 그런 마음 상태와는 별개로 함께 걷다 보면 우릴 동정하고 싶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불쌍하게 생각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도움을 요청한 적도 없는데 쓸데없이 도움을 주고, 고마워하지 않는다고 욕을 퍼붓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었다. 그래도 절망하지 말고 죽지 말고 살아 있으라고, 더 힘든 사람도 있으니 힘내라고 기어이 말하고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112쪽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보고 스스로 만족과 행복을 느끼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고, 남의 시선에 신경쓰지 않고, 지금 이 순간 자신들의 행복에만 집중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즉, 자기들이 가장 행복하다는 거지.
사람들에게 동정받기 싫고,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으로 수지는 헤드폰을 이용한다. 소리를 듣지 못해 난처한 상황에 처해도 해드폰을 끼고 있으면 그러려니 한다. 인공와우 수술을 한 이후에도 자주 소리를 끄고, 헤드폰을 끼고 다니면서 고요한 자신만의 시간을 만끽한다. 수지는 헤드폰이 잘 어울리고, 그날 의상에 어울리는 헤드폰을 잘 고른다. 또 마르첼로(한민이와 함께 하는 안내견?)가 수지를 좋아하고, 수지의 냄새도 좋아한다. 산책을 잘한다. 이상은 수지가 찾은 자신의 강점이다. 나는? 나도 나의 강점을 찾아봤다. 한 번 내 것이 되면 그것은 나를 좋아한다. (한번 내 것이 되면 오래 사용한다.), 누가 웃으면 같이 웃는 게 좋다. 숲길, 봄에 새싹이 피어오른 걸 보며 걷는 걸 좋아한다. 내가 아는 걸 누군가에게 들려줄 때 행복하다. 작은 소리가 잘 안 들려서 좋다. 요리를 맛있게 한다. (우리집에 온 손님은 소금이나 간장을 필수로 찾지만) 이렇게 적어보니 꽤 많다. 나도 괜찮은 사람인 것 같다.
“수지야,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먼저 너 자신과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한다. 네가 좋아하는 친구들한테 행동하는 방식대로 너 자신에게 행동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될 거야. 너 자신과 친구가 되고 나면 너 자신을 대하듯이 다른 사람을 대할 수 있는 거야. 불필요한 위로를 하지 않게 되지.” -125쪽 할머니의 ‘수지에게 당부하는 말’ 유언 중 일부
할머니는 손녀에게 자기 자신을 먼저 이해하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일깨워준다. 자기 이해와 자기 존중감이 있을 때 남과 친구가 될 수 있고, 친구 사이에 행동을 편안하게 할 수 있어서, 어줍잖은 위로를 할 필요가 없는 사이가 될 수 있다. 맞는 말이다. 책을 읽다 사이사이 좋은 문구를 많이 인용해본다.
“세상에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은 없어. 대신에 사람마다 행복한 시기와 불행한 시기가 있는데 너희 엄마는 잠시 불행하고 힘든 시기를 겪고 계시는 중일 거야. 그러니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걱정하지 마.” -130쪽
할머니는 늘 얘기했다. 누구나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라고. 모두가 옳지만, 각자의 옳음들이 충돌하는 지점이 있는데 그곳은 비어 있다고, 구멍처럼. 세상엔 그런 빈 구멍들이 여러 곳 존재하는데 그곳을 진실이라고 부르며, 그 구멍 안을 들여다보기 전에는 누구도 비난할 수 없는 법이라고 했다. - 155쪽
수지 엄마는 할머니의 장례식이 끝나고 얼마 후 가출한다. 엄마는 수지에게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고, 오랫동안 유학을 준비했다며 나를 이해해 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다.
수지는 엄마를 미스 블랙홀이라며 우울해 보이는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는데 어쩌면 그때가 엄마에게는 행복한 시간이었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닫는다. 엄마는 원래 음향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지만, 딸을 못 듣는 장애를 갖게 한 죄책감으로 꿈을 접고 살았을 것이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엄마는 슬픔에 빠져 있으면서 그동안의 일들을 되돌아보고 정리했을 것이다. 그동안 수지를 위해 살았던 게 어쩌면 수지를 더 난처하게 하고, 사회성이 떨어지게 한 요인이었음을 반성했을 것이다. 여러 생각정리를 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사는 게 맞는지도 고민했을 것이고. 서로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여기고 엄마는 엄마의 꿈을 향해 떠났을 것이다.
지금의 나를 위해서 내가 나에게 제출하는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도 썼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내가 좋아하는 건 무엇이고 괴로워하는 것은 무엇인지. -161쪽
나도 수지처럼 나에게 나를 소개하는 '혼잣말 이력서'를 써봐야겠다.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고, 괴로워하는 것은 무엇인지. 앞으로 꼭 해보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써봐야지.
나는 먼저 나 자신과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한다던 할머니의 말을 떠올렸다. 나는 나를 존중하고 내 선택을 존중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존중할 것이다. 그 시간을 존중할 거라고 다짐하면서 나는 산책을 계속했다. -175쪽
소리가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세계란 어떤 곳일지를 아주 조금은 알게해준 책이다.
"언젠가 엄마는 나에게 말했다. 이 세상에는 귀가 들리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는데, 그건 못 듣는게 아니라 안 들리는 능력이 있는 거라고, 모두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 없는 게 아니라, 특별히 안 들리는 능력이 더 있는 거니까 신비한 일이라고 .나는 축복받은 거라고"
안들리기 때문에 세상은 더 풍부해졌고 질감 , 촉감, 혹은 빛으로도 소리를 들을 수 이었고 행복했던 어린시절이었다고...
"내 귀가 안 들리는 이유를 물으면 엄마는 언제나 고래처럼 귀지가 많아서라고 했다. 고래는 평생 귓속에 귀지를 쌓아 둔다고 한다. 이동기와 번식기에는 두께와 색이 달라지는데 그래서 나이테처럼 살아온 이력이 귀지에 그대로 새겨진다고 한다. 고래처럼 내 귀지에도 살아온 이력이 새겨지고 있을까?
태어나면서 부터 할머니와 엄마와 고모랑 살았다.
수지에겐 아빠가 없었고 아빠가 없는게 아니라 상상속에서 다양한 아빠를 만날 수 있었고
집이 하숙을 하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과 접촉이 있었다.
늘 북적거렸고 집에서도 모험을 떠날 곳은 많았다.
집에서만 쓰는 수화가 있었고 그 세계에서 행복했다.
처음으로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진 날 피아노 학원을 찾았다가 엄마가 화를 내며 나왔다.
영원히...귀가 들리지 않으면 피아노를 배울 수 없다고
농아교회에서도 엄마는 화를 내고 돌아왔다.
귀가 들리지 않지 말을 할 수 없는 건 아니라며 수화를 가르치지 않았다.
그래서 친구와 어울릴 수 없었고 혼자였다.
어느 순간 한민이란 친구를 만났고 그는 시각장애인이었다.
골든리트리버와 늘 함께 다녔고 한몸이었다.
그렇게 셋은 감정을 공유했다.
그들이 나눈 대화는 감정을 표현하는데 서툴었을지 몰랐지만 솔직했고 그 대화로도 감정의 치유가 되는 느낌이었다. 신체적 장애가 아니어도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았고 나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서로를 있는 모습으로 인정해주고 꿈을 공유하고 복둗아주는 부분은 시원할 정도였다.
시인이 되고 싶어하는 수지에게 시인 '임명장'을 적어주는 것도 좋았다.
지구에서 한명 시인으로 인정해주었기에 시인이 될 수 있다는 그 임명장은 활용해 보고 싶을 정도다.
수지에게 할머니가 있었는데 할머니는 엄마와 달리 풀메이크업에 원피스를 입고 계셨고 늘 친구들이 찾아왔었다. 늘 재멋대로 였지만 수지에게 유쾌하고 심심치 않은 친구였다. 그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엄마도 고모도 떠났을 때 수지는 어쩔 수 없이 독립을 해야 했다.
자신이 잘 하는 것을 찾고 '산책을 듣는 시간'이란 사업을 구상한다.
"나는 세상을 낯설게 보게 하고 싶어. 사람들 내면에 이미 있지만 자각하지 못하는 낯선 감각을 깨우쳐 주고 싶어. 감각을 확장시키고 재분배해서 사람의 몸이 바뀌게 하고 싶어. 몸이 바뀌면 생각이 바뀌니까. 근본적으로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사람과 세상을 바꾸고 싶어 그걸 언어로 하면 시인이겠지? 우리는 그걸 산책을 통해서 하고 있는 거야"
누군가와 산책을 하면서 다시 꼽씹어 보는 것 , 세상을 달리 보고 나를 들여다 보는 일, 확실히 마주하고 나를 사랑해주고 인정해 주는 일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요즘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