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11/2 조창완(chogaci@hitel.net)
대학 졸업 철 가을에 들어간 첫 직장이 언론사였다는 것이 지금처럼 부끄러운 적이 없다. 아니 계속해서 끊임없이 부끄러웠지만 이제는 처참하게 부끄럽다. 기자가 스스로를 옥죄는 방식을 통해 언론을 통제하는 방법에 관한 글을 쓰고,(공적인 공간이 아닌 사적인 통로에서) 그 문서를 다른 기자가 이리저리 주고 받으며, 돈을 챙겼다니. 그리고 여전히도 언론들을 그들을 보호하거나 합리화를 통해 자신들이 저질렀던 잘못들을 무마하려하고 있다. 정말로 이 나라를 망치고 있는 8할이 언론이 아닌가 싶다.
이 오욕의 직업에 희망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리 길지 않았던 기자생활을 내 인생의 주된 항로에서 벗어나던 내가 그리던 두 분이 있다. 한 분은 리영희선생이고 한 분은 도정일 선생이다. 김중배선생님도 그런 분이지만 그분은 계속 언론인으로 남아계시니 내가 추앙은 해도 따라가지는 못할 분이다. 한 분은 올 곧은 언론인의 모습을 지키며 학문과 글을 쓰신 분이고, 한분은 언론인의 모습을 거의 띠지 않은 채 학자로서의 길을 가는 분이었다. 두분의 시각이나 방식은 나에게 참으로 부러운 것이다. 도정일 선생은 짧은 글들은 물론이고, '새들은 숲으로 가지 않는다'는 평론집으로 완전히 각인됐다. 김중배선생님이랑 같이 술자리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비교문화의 중요성에 대해서 그렇게 동감하며 장단을 맞추던 것이 벌써 4년은 족히 됐는데, 얼마전의 일 같다.
내가 지금 공부의 길에 접어들어 비교문화를 선택한 것은 그때 그분들의 이야기가 깊이 각인됐던 탓이 크다. 반면에 내가 비교적 넓게 범위를 잡고, 중국이란 나라를 선택한 것은 일어에 자신이 없었던 탓도 있지만 중국에 대한 호감, 혹은 궁금증 때문이었다. 이런 생각을 갖게 한 것은 중국에 관한 다양한 책을 쓰신 리영희선생 탓도 있으니, 나는 두분의 결합체가 되고 싶은 셈이다. 물론 두분과 다른 나를 만드는 것은 나의 하기 탓이다.
리영희 선생을 만난 것은 역시 대학시절 도서관에서 붉은 책을 찾을 무렵이었다. 먼저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었고, 다른 책들도 몇권 읽었다. 리선생의 책은 나에게 미국, 베트남, 중국 등 국가에 대한 이해는 물론이고, 정치, 언론, 사회, 통일 등에 대한 분명히 필요했던 한 면을 채워주었다.
삼인에서 이번에 출간된 비평집 '반세기의 신화'는 이런 리영희선생의 생각들을 요약해 놓은 선집이다. 따라서 위에서 다룬 대부분의 소제나 주제들이 포함되어 있다. 물론 이번 책의 주된 소제는 '통일'이다. 하지만 언론인과 학자적인 특성을 모두 파악하고 계시는 리영희 선생은 막연한 통일론을 내세우지 않는다. 통일을 위한 하부구조에 대한 분석부터 시작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비교적 긴 시간에 완성된 남북간의 능력에 대한 실상 파악이다. 최근에 일이며, 여전히 사람들이 북한을 보는 적대감에 빠져있음을 보여준 서해교전사건의 배경에 된 해안선의 경계선 문제를 역사적 관점에서 서지자료를 점검하며 다각적으로 검토한다. 그리고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이 수역에 대한 성격규정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한다.
미국이 중심이 되어 휘둘리는 핵에 대한 관점도 규명하고, 전쟁의 가능성을 보는 시금석인 남북한의 군사력을 비교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믿었던 허위들을 '역지사지'(易地思之)의 태도에서 하나하나 규명한다.
이런 지적은 사회적인 인식이 문화나 행동으로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보여주는 역할도 한다. 리선생은 사회의 도덕성을 말한다. 제시되는 예가 96년 일어난 중국 당산 대지진과 뉴욕의 12시간 정전이다. 당산 대지진에는 사람들 모두가 상대를 위한 배려로 따스하게 그 일을 헤쳐갔음에 비해, 12시간 정전으로 뉴욕은 '연옥'이라고 표현될 만큼 아수라장이 됐다는 것을 예로 든다. 물론 리선생은 중국이 추종하는 자본주의화의 변화도 본다. 이런 사고들의 편린을 통해 통일에 앞서 필요한 도덕적인 해이를 규정하려는 노력이다. 물론 답안은 부정적이다.
'한국 '언론기관(인)'의 평화기피증과 통일공포증'은 앞에 황장엽비서와의 대화에서도 잠깐 언급된 국내 언론사들의 통일에 대한 시각을 다룬 글이다. 서두부터 리선생은 '거의 절망적인 심정이다'(312P)고 표현하며 글을 쓴다. 기고됐던 이 글은 언론기관이 대북 문제를 다루는 맥락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이전부터 깊은 관심을 가져오던 베트남에 대한 글은 나도 깊이 공감하는 글이다. 리선생은 개인적으로 베트남을 여행하면서 만나는 이들에게 마음 깊이 사죄했다. 그들이 내 미안했던 눈빛을 느꼈는지 모르지만, 난 한국인으로 사는 동안 미안함을 느낄 것이다. (베트남에 관한 글을 한겨레21에 통신원이 쓴 아픈 글이 있다. 찾아보면 좋을 듯하다) 현대사에 대한 이해를 넓히기 위해 리선생이 박정희가 쿠테타후 미국에 조공형식으로 선사한 네가지(한일 국교 정상화와 일본경제권에 편입, 베트남 파병, 형식적인 민정이양)를 곰곰히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