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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의 신화

: 리영희 비평집

[ 양장 ] 동시대인총서-03이동
리영희 | 삼인 | 1999년 01월 31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8.5 리뷰 14건 | 판매지수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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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1999년 01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401쪽 | 148*210*30mm
ISBN13 9788987519289
ISBN10 8987519287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전환시대의 논리' '분단을 넘어서'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등을 통해 남북·민족문제를 지속적으로 천착해온 리영희 교수가 우리의 통일논의에 대하여 쓴 글. 우리에게 '통일'은 얼마나 가까이 있을까. 우리는 통일논의에서 얼마나 자유로울까.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마치 자신은 '천사' 요, 상대방은 '악마' 인양 반세기를 지내온 남북한의 상황을 그린다.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1. 못다 이룬 귀향
2. 다시 인간이 되기 위하여
3. 북한동포의 것은 북한동포에게
4. '주체사상'의 이데올로그, 황장엽과의 대담
5. 북한의 남한화가 통일인가?
6. '통미봉남, 통소봉북(通美封南, 通蘇封北)'
7. 남파간첩 보내고 북파간첩 받자
8.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부탁
9. '북방한계선'은 합법적 군사분계선인가?
10. 북한-미국 핵과 미사일 위기의 군사정치학
11. 대한민국은 한반도의 '유일합법정부'가 아니다
12. 남, 북한 전쟁능력 비교연구
13. 미국 군사동맹 체제의 본질
14. 동북아지역의 평화질서 구축을 위한 제언
15. 통일의 도덕성
16. 학생들에게 남북문제와 통일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17. 한국 '언론기관(인)'의 평화기피증과 통일공포증
18. 한국판 매카시즘이라는 유령
19. 베트남 인민에게 먼저 사죄를 하자
20. 휴전선 남, 북에는 천사도 악마도 없다

저자 소개 (1명)

YES24 리뷰 YES24 리뷰 보이기/감추기

--- 99/11/2 조창완(chogaci@hitel.net)
대학 졸업 철 가을에 들어간 첫 직장이 언론사였다는 것이 지금처럼 부끄러운 적이 없다. 아니 계속해서 끊임없이 부끄러웠지만 이제는 처참하게 부끄럽다. 기자가 스스로를 옥죄는 방식을 통해 언론을 통제하는 방법에 관한 글을 쓰고,(공적인 공간이 아닌 사적인 통로에서) 그 문서를 다른 기자가 이리저리 주고 받으며, 돈을 챙겼다니. 그리고 여전히도 언론들을 그들을 보호하거나 합리화를 통해 자신들이 저질렀던 잘못들을 무마하려하고 있다. 정말로 이 나라를 망치고 있는 8할이 언론이 아닌가 싶다.

이 오욕의 직업에 희망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리 길지 않았던 기자생활을 내 인생의 주된 항로에서 벗어나던 내가 그리던 두 분이 있다. 한 분은 리영희선생이고 한 분은 도정일 선생이다. 김중배선생님도 그런 분이지만 그분은 계속 언론인으로 남아계시니 내가 추앙은 해도 따라가지는 못할 분이다. 한 분은 올 곧은 언론인의 모습을 지키며 학문과 글을 쓰신 분이고, 한분은 언론인의 모습을 거의 띠지 않은 채 학자로서의 길을 가는 분이었다. 두분의 시각이나 방식은 나에게 참으로 부러운 것이다. 도정일 선생은 짧은 글들은 물론이고, '새들은 숲으로 가지 않는다'는 평론집으로 완전히 각인됐다. 김중배선생님이랑 같이 술자리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비교문화의 중요성에 대해서 그렇게 동감하며 장단을 맞추던 것이 벌써 4년은 족히 됐는데, 얼마전의 일 같다.

내가 지금 공부의 길에 접어들어 비교문화를 선택한 것은 그때 그분들의 이야기가 깊이 각인됐던 탓이 크다. 반면에 내가 비교적 넓게 범위를 잡고, 중국이란 나라를 선택한 것은 일어에 자신이 없었던 탓도 있지만 중국에 대한 호감, 혹은 궁금증 때문이었다. 이런 생각을 갖게 한 것은 중국에 관한 다양한 책을 쓰신 리영희선생 탓도 있으니, 나는 두분의 결합체가 되고 싶은 셈이다. 물론 두분과 다른 나를 만드는 것은 나의 하기 탓이다.

리영희 선생을 만난 것은 역시 대학시절 도서관에서 붉은 책을 찾을 무렵이었다. 먼저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었고, 다른 책들도 몇권 읽었다. 리선생의 책은 나에게 미국, 베트남, 중국 등 국가에 대한 이해는 물론이고, 정치, 언론, 사회, 통일 등에 대한 분명히 필요했던 한 면을 채워주었다.

삼인에서 이번에 출간된 비평집 '반세기의 신화'는 이런 리영희선생의 생각들을 요약해 놓은 선집이다. 따라서 위에서 다룬 대부분의 소제나 주제들이 포함되어 있다. 물론 이번 책의 주된 소제는 '통일'이다. 하지만 언론인과 학자적인 특성을 모두 파악하고 계시는 리영희 선생은 막연한 통일론을 내세우지 않는다. 통일을 위한 하부구조에 대한 분석부터 시작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비교적 긴 시간에 완성된 남북간의 능력에 대한 실상 파악이다. 최근에 일이며, 여전히 사람들이 북한을 보는 적대감에 빠져있음을 보여준 서해교전사건의 배경에 된 해안선의 경계선 문제를 역사적 관점에서 서지자료를 점검하며 다각적으로 검토한다. 그리고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이 수역에 대한 성격규정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한다.

미국이 중심이 되어 휘둘리는 핵에 대한 관점도 규명하고, 전쟁의 가능성을 보는 시금석인 남북한의 군사력을 비교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믿었던 허위들을 '역지사지'(易地思之)의 태도에서 하나하나 규명한다.

이런 지적은 사회적인 인식이 문화나 행동으로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보여주는 역할도 한다. 리선생은 사회의 도덕성을 말한다. 제시되는 예가 96년 일어난 중국 당산 대지진과 뉴욕의 12시간 정전이다. 당산 대지진에는 사람들 모두가 상대를 위한 배려로 따스하게 그 일을 헤쳐갔음에 비해, 12시간 정전으로 뉴욕은 '연옥'이라고 표현될 만큼 아수라장이 됐다는 것을 예로 든다. 물론 리선생은 중국이 추종하는 자본주의화의 변화도 본다. 이런 사고들의 편린을 통해 통일에 앞서 필요한 도덕적인 해이를 규정하려는 노력이다. 물론 답안은 부정적이다.

'한국 '언론기관(인)'의 평화기피증과 통일공포증'은 앞에 황장엽비서와의 대화에서도 잠깐 언급된 국내 언론사들의 통일에 대한 시각을 다룬 글이다. 서두부터 리선생은 '거의 절망적인 심정이다'(312P)고 표현하며 글을 쓴다. 기고됐던 이 글은 언론기관이 대북 문제를 다루는 맥락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이전부터 깊은 관심을 가져오던 베트남에 대한 글은 나도 깊이 공감하는 글이다. 리선생은 개인적으로 베트남을 여행하면서 만나는 이들에게 마음 깊이 사죄했다. 그들이 내 미안했던 눈빛을 느꼈는지 모르지만, 난 한국인으로 사는 동안 미안함을 느낄 것이다. (베트남에 관한 글을 한겨레21에 통신원이 쓴 아픈 글이 있다. 찾아보면 좋을 듯하다) 현대사에 대한 이해를 넓히기 위해 리선생이 박정희가 쿠테타후 미국에 조공형식으로 선사한 네가지(한일 국교 정상화와 일본경제권에 편입, 베트남 파병, 형식적인 민정이양)를 곰곰히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전쟁 또는 전쟁에 준하는 대규모의 군사공격, 즉 소단위의 병력이 국소적 공간에서 단시간의 절술적.일회적 전투행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가총동원령을 선포하고(선전포고의 유무와는 관계없이)전선과 후방에 걸친 장기간의 총력적 군사작전을 전개할 경우 전쟁 이론의 일반적 준거로서 다음의 여섯가지의 치밀한 검토에서 모두 남한에 우월하다는 확증이 있어야 할것이다.
--- p.183 ~184
우리 나라 신문 방송은 그 방향과 내용이 섣부른 '국가안보'와 국가 지상주의의 '유일사상'의 주술에 꼼짝없이 묶여 있다. 국가 권력이 강요하는 어떤 '유일사상'의 선전 선동자의 역할을 스스로 자처하고 있다. 그것이 마치 무슨 숭고한 애국적 사명인 양 착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 p.316

회원리뷰 (14건) 리뷰 총점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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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의 신화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ES마니아 : 골드 죠*바 | 2015.09.21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반세기 신화"는 기울어진 사회에 기울어진지도 모르고 또는 기울어지는 편을 선택한 지식인, 언론, 정치인들에 드는 회초리 같았다. 리영희 선생님의 회초리를 맞고 기울어진 추를 얼마나 바라잡았을까! 우리는 휴머니즘을 가진 실천하는 지성인, 자유로운 지성인이 되었는가?, 적어도 그런 사람이 지도층에 있기는 한걸까? 리영희 선생님은 돌아가셨지만 어른으로서 카라카랑은;
리뷰제목

"반세기 신화"는 기울어진 사회에 기울어진지도 모르고 또는 기울어지는 편을 선택한 지식인, 언론, 정치인들에 드는 회초리 같았다. 리영희 선생님의 회초리를 맞고 기울어진 추를 얼마나 바라잡았을까! 우리는 휴머니즘을 가진 실천하는 지성인, 자유로운 지성인이 되었는가?, 적어도 그런 사람이 지도층에 있기는 한걸까?

리영희 선생님은 돌아가셨지만 어른으로서 카라카랑은 정신은 책을 통해 영원히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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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남한화가 통일인가?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폭****원 | 2007.01.31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요즈음 들어 우리는 각본에도 없는 드라마를 지켜보고 있다. 금강산 가는 바닷길이 열리는가 싶더니 이내 분단 반세기만의 대대적이고도 지속적인 이산가족 상봉이 시작되었고, 경의선과 동해선이 연결됨으로써 남과 북 사이에 '비무장' 길이 뚫리는 날이 코앞에 있다. 뿐만 아니라 북한은 중국 단둥과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신의주를 특별구역으로 지정, 본격적인 자본;
리뷰제목

요즈음 들어 우리는 각본에도 없는 드라마를 지켜보고 있다. 금강산 가는 바닷길이 열리는가 싶더니 이내 분단 반세기만의 대대적이고도 지속적인 이산가족 상봉이 시작되었고, 경의선과 동해선이 연결됨으로써 남과 북 사이에 '비무장' 길이 뚫리는 날이 코앞에 있다. 뿐만 아니라 북한은 중국 단둥과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신의주를 특별구역으로 지정, 본격적인 자본주의 실험에 돌입하는 장도에 들어섰다. 불과 3~4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 지금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일부에서는 벌써부터 통일이 목전에 있다고 예상하기도 한다.

 

끝간데 없이 얼어붙었던 남북 관계가 초봄에 얼음 녹듯 스르르 풀리면서 자연스럽게 통일 논의가 나오는 것은 좋다고 치자. 그런데 이런 반가운 소식을 넘어 과연 우리가 바라는 통일상은 어떤 것인가에 생각이 이르면 그리 유쾌하지 만은 않은 느낌이 든다. 어떤 통일을 어떻게 이루고, 어떻게 그 충격을 최소화하자는 등 구체적인 통일 논의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드디어 우리 민족이 하나가 되는구나' 등의 감상적인 기대감과 흥분에 그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1950~1980년대에 태어난 이들은 초·중·고등학교 교육과 온갖 매체에서 뱃어대는 남북 대결적인 언사들에 의해 반공사상이 '몸에 익게' 되었다. 즉 북한은 하나의 온전한 국가가 아닌 일종의 괴뢰집단에 불과하며, 공산주의는 일고의 가치도 없이 인간의 권리를 박탈하는 '주의'라고 배워온 것이다. 글쓴이 리영희는 바로 이 부분에 있어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남한 사람들이 통일에 대해 생각할 때에는 북한이 '남한화' 되는 것을 '통일'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즉 북한이 남한과 같은 '자유경제'와 '민주주의'를 택할 때 비로소 통일의 앞날이 보인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것이 상식적으로 타당한 이야기일까?

 

글쓴이도 이미 책에서 말하고 있지만 남과 북이 따로 떨어져 살아온 지 벌써 반세기가 지난 지 오래다. 그런데 남한이 가지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은 채 무턱대고 북한이 남한화되는 것만이 통일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어쩌면 자만과 오만의 다른 이름일 뿐이요, 스스로 현실성 없는 이야기라는 것을 주장하는 것에 다름 아닐 것이다.

 

1945년 일제로부터 독립한 대한제국은 사상의 차이와 외부의 개입 등으로 인해 남과 북으로 나뉜 채 별다른 교류 없이 지금에 이르렀고, 특히 이와 같은 반세기의 분리 상태는 남과 북 서로를 너무나도 다르게 변화시켜 버렸다. 남한은 자본주의를 택해 가시적인 성과를 얻어내긴 했지만 일부에서는 천민 자본주의적인 성격이 강하게 나타날 뿐만 아니라 마치 물신(物神)이 지배하는 사회인 양 변해버렸다. 반면 북한은 계획경제를 택해 70년대까지는 남한보다 우위를 점하는 듯했으나 계속되는 1인 숭배와 폐쇄적인 조치들로 인해 지금은 대다수 국민들이 기아에 허덕이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한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남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통일이란 그저 '북한의 남한화' 그 자체인 것이다. 만일 이와 같은 생각이 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게 된다면, 통일이 된다한들 그리 바람직한 통일은 아니리라 생각한다.

 

브란덴부르크문을 사이에 두고 서독과 동독 양국간에 인적·물적 자원이 자유롭게 오고가던 독일만 하더라도 통일 이후 큰 혼란에 휩싸였던 것을 우리는 기억할 것이다. 그 혼란이란 것이 동서간의 경제적인 격차에서 연유한 바도 적지 않지만, 그것보다는 동독인들을 '오시'라 부르며 멸시하는 서독인들의 태도에서 기인한 바가 컸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런 서독 사람들이 대다수였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상대적 약자 입장에서는 작은 말 한 마디가 마음에 큰 상처를 남기지 않았을까. 사람이란 것이 경제적 격차에서 오는 박탈감이나 자존심 상실보다 인간으로서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할 때 생기는 반감이 더 크기 때문이다. 즉 서독인들이 서독과 동독이 서로 대등하다는 생각보다는 한쪽이 우월하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가짐으로써 졸지에 동독 국민들은 2류, 3류 국민이 되어 버린 것이었고, 동시에 동독인들은 통일에 대한 불만을 나타내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차라리 통일이 안되었다면 경제적 풍요는 차치하고서라도 그나마 '인간적인 대접'은 받을 수 있었을 텐데 하고 말이다. 글쓴이 말대로 베를린 장벽 동·서에는 일류도 이류도 없고, 휴전선 남·북에도 역시 천사도 악마도 없거늘, 우리는 남한만이 선(善)하다는 생각으로 자만을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생각해야 할, 준비해야 할 통일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일단 남과 북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첫 번째 작업이 되어야 할 것이며, 이후 그 격차를 어떻게 줄여나갈 수 있을 지를 진지하게 논의해야 하리라. 특히 북에게 먼저 이러저러한 것들을 고치고 개선하라고 요구하기 이전에, 우리가 지닌 내부의 모순들을 자신 있게 진단하고 그 치부들을 과단성 있게 치료하는 넓은 아량을 보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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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깨어지지 않은 신화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d*******e | 2006.05.03 | 추천1 | 댓글0 리뷰제목
신화(myth)의 개념을 구조주의의 방법론으로 도입한 것은 레비스트로스(Claude Levi-Strauss)지만, 이를 마르크스주의적인 관점에서 이데올로기적 특성을 지니는 것으로 본 사람은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였다. 바르트는 신화가 그 자체의 작용을 은폐시키며 ''당연한(natural)'' 존재로서 의미를 제시하는 것으로, 자본주의 사회의 신화는 거의 예외 없이 지배계급의 이익을 촉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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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myth)의 개념을 구조주의의 방법론으로 도입한 것은 레비스트로스(Claude Levi-Strauss)지만, 이를 마르크스주의적인 관점에서 이데올로기적 특성을 지니는 것으로 본 사람은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였다. 바르트는 신화가 그 자체의 작용을 은폐시키며 ''당연한(natural)'' 존재로서 의미를 제시하는 것으로, 자본주의 사회의 신화는 거의 예외 없이 지배계급의 이익을 촉진하고 이에 봉사한다고 보았다. 지금은 여든을 바라보고 있는 리영희 교수에게, 해방 이후부터 반세기에 걸쳐 한반도는 신화로 뒤덮인 암울한 공간이었을 게다. 통치권력 유지를 위해 반공 이데올로기를 성화(聖化)했던 국가, 또한 그에 충실히 복무했던 언론 및 다수의 지식인들로 가득한 신화의 땅에서, 리 교수는 그러한 신화를 철저히 해체하고 그 이면에 감춰진 진실을 드러내는 것으로 자신의 사명을 삼았던 것이다. 이 책에서 리 교수가 폭로한 ''신화''들의 정체는 이제 대중들도 많이 알고 있는 편이다. 미국의 대외정책을 좌우하는 것은 거대한 군산복합체라는 사실, 북한의 군사력은 남한에 비할 바가 되지 못하며, 작금에 와서 북한이 전쟁을 일으킬 하등의 이유도, 전쟁을 통해 얻을 실익도 전혀 없다는 내용들은 언론이나 간행물들을 통해 많이 알려졌다. "내 책이 한 부도 안 팔려 인세가 0원이 되는 게 소원"이라는 리 교수의 바람은, 그의 후학들을 통해 조금씩 이루어져 가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최근의 사학법 문제에서도 보듯, 그러한 신화를 여전히 맹종하는 세력이 있다. 너무 묵어 군내가 나는 반공 이데올로기를 아직까지도 물고 늘어지며 음모론을 펴는 야당과 보수언론, 종교계, 사학단체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 자들이 지금 장난하는 거 아닐까''라는 의구심까지 생길 만큼 어이가 없다. 신화의 힘은 그만큼 무섭다. "나는 어쩐지 많은 사람들이 사회주의와의 역사적 경쟁에서 일방적으로 승리했다고 주장하는 자본주의가 사실은 절반은 이기고 절반은 지지 않았나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들에게는 일패도지한 것으로 폐기되는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에게 절반은 지고 절반은 이기지 않았나 싶은 장면들을 본다. 이런 인식과 관점은 남·북한의 통일 형태와 앞으로의 남북 관계에서 설 자리가 없는 것일까?" (p. 271, 「통일의 도덕성」중에서) 순수한 의미에서의 자본주의, 혹은 전적인 사회주의는 존재 불가능함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보아 왔다. 어떻게든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인간 사회에서, 성장과 발전을 이룩하면서도 인간다운 삶을 어느 정도 보장할 수 있으려면 두 체제 간의 결합은 불가피하다. 자본주의는 물질적 풍요는 보장하되 비인간화를 조장하기 쉬우며, 사회주의는 공동체적 삶을 중시하는 반면 빈곤을 초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두 체제가 상호보완적으로 결합한, 이른바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가 바로 리영희 교수가 꿈꾸는 한반도의 미래였다. 그런 이상을 이루려면 우리(남한)이 갖고 있는, 북한에 대한 무조건적인 우월함과 관련된 신화부터 걷어내야 한다. 리 교수가 이 책에서 소개한 일화는 그런 면에서 참으로 적절했다. 노태우 대통령이 통일된 독일을 방문해 헬무트 콜 총리와 대담하면서 "북한이 동독 같으면 남북한 관계의 평화가 가능할 텐데…"라고 하자, 콜 총리가 "그러면 남한은 서독만 한가?"라고 반문했다는 것이다. 실로 통렬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그야말로 ''한국의 촘스키''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아니 어쩌면 그런 호칭조차 본인에게는 실례가 될 수도 있을만큼 독보적인 업적을 남긴 리 교수지만, 못내 안타까운 점이 있다. 이 분이 그토록 미국의 폭력성에 대해, 반공주의의 허구성에 대해 수많은 저술을 남겼건만, 여전히 이 분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고, 그의 저술을 읽어보지 못한 채 신화에 눈이 먼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리 교수의 담론이 소위 ''주류언론''을 통해 전달될 수 있었던 기회는 거의 없지 않았나. 그러니 일부러 ''찾아 읽지'' 않으면, 평생 이 분의 이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하는 불운을 맞을 수도 있다. 내 주위에는 딴에 학생운동을 한다면서도 리영희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반세기가 넘었지만, 신화는 계속될 것이다. 그러는 한 리 교수의 책은 계속 출판되어야 하고, 본인은 원치 않겠지만 인세도 계속 받으셔야 한다.

[인상깊은구절]
"어째서 ''공산주의, …의식화''를 두려워하는가? 두려워한다는 것은 그 이론과 사상에 대항할 만한 이론과 사상을 갖지 못했다고 패배를 자인하는 증거이다…"좌적인 것을 수용하지 못하는 우는 패배자"이다. 새도 우와 좌의 날개(우익과 좌익)를 평형으로 발육시킬수록 잘 날 수 있다. 우주 만물의 생존 원리와 인간 및 인간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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