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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피아노

: 철학자 김진영의 애도 일기

[ 양장 ] [ 포함 문학 3만원↑ '명문장 밀크글라스' 증정(포인트차감) ]
리뷰 총점8.0 리뷰 2건 | 판매지수 26,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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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18년 10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284쪽 | 366g | 128*188*20mm
ISBN13 9791160401974
ISBN10 1160401977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슬퍼할 필요 없다. 슬픔은 이럴 때 쓰는 것이 아니다.”
애도의 철학자 김진영이 남긴 단 한 권의 산문집, 그리고 유고집


『아침의 피아노』는 미학자이자 철학자이며, 철학아카데미 대표였던 김진영 선생의 첫 산문집이자 유고집이다. 임종 3일 전 섬망이 오기 직전까지 병상에 앉아 메모장에 썼던 2017년 7월부터 2018년 8월까지의 일기 234편을 담았다. 하지만, 『아침의 피아노』가 단순한 투병 일기인 것은 아니다. 이 책은 선생의 문학과 미학, 철학에 대한 성취의 노트이며, 암 선고 이후 몸과 마음 그리고 정신을 지나간 작은 사건들에 시선을 쏟은 정직한 기록이다. “모든 일상의 삶들이 셔터를 내린 것처럼 중단됨”을 목격한 한 환자의 사적인 글임을 부인할 순 없지만, “환자의 삶과 그 삶의 독자성과 권위, 비로소 만나고 발견하게 된 사랑과 감사에 대한 기억과 성찰, 세상과 타자들에 대해서 눈 떠진” 삶을 노학자만이 그려낼 수 있는 품위로 적어 내려간 마음 따뜻한 산문이다. 어려운 사상가와 철학을 알기 위해 배우는 교양을 위한 공부가 아닌, 자신 안에서 나오는 사유를 위한 공부를 귀히 여기라고 늘 당부했던 선생의 마음처럼 책은 선생이 선생 자신과 세상과 타자를 사유하며 꼼꼼히 읽어낸 문장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이 글들이 어떤 이들에게는 짧은 메모로 보일 테지만, 이 아포리즘 글들 안에는 선생의 모든 생이 다 쓰여 있다.

저자 소개 (1명)

책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주영이 뜨거운 수건으로 눈가를 닦아준다. 나이가 들면 눈가에 눈곱이 끼니까 자주 살펴야 한다고 주의를 준다. 살아오면서 늘 정갈함을 잃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 안에 허위의식도 많았겠지만 스스로를 잘 지키려는 자긍심 또한 진실이었다. 자기를 긍정하는 것보다 힘센 것은 없다. 그것이 내게는 자긍이고 정갈함이었다. 그건 지금도 지켜내야 하는 나의 정신이고 진실이다. --- p.39

(…) 그러고 보니 여기에는 해충이 없다. 문을 열고 자는데도 모기에게 시달리지 않는다. 아침 물가에 앉으니 그 이유를 알겠다. 그건 여기가 쉼 없이 물이 흘러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흐른다는 건 덧없이 사라진다는 것, 그러나 흐르는 것만이 살아 있다. 흘러가는 ‘동안’의 시간들. 그것이 생의 총량이다. 그 흐름을 따라서 마음 놓고 떠내려가는 일―그것이 그토록 찾아 헤매었던 자유였던가. (…) --- p.50~51

바이올렛 우산을 들고 아침 산책을 한다. 어제는 비를 기다리며 늦어서야 침대에 들었다. 비는 나를 비켜서 밤사이 내린 모양이다. 비가 지나간 아침은 흐리고 조용하고 물기를 머금고 있다. 어제 내린 비의 추억일까. 다가오는 비의 소식일까. 젖은 대기 안에서 세우가 분말처럼 뿌린다. 문득 말년의 롤랑 바르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왜 그가 폴 발레리를 따라서 ‘나만을 위한 한 권의 책’을 쓰고 싶어 했는지, 왜 생의 하류에서 가장 작은 단독자가 된 자기를 통해서 모두의 삶과 진실에 대해 말하는 긴 글 하나를 쓰려고 했는지…… 나 또한 나의 하류에 도착했다. 급류를 만난 듯 너무 갑작이어서 놀랍지만 생각하면 어차피 도달할 곳이다. 적어도 지금까지 나의 하류는 밤비 지나간 아침처럼 고요하고 무사하다. 아버지 생각이 난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 공부하고 돌아오는 나에게 큰 서재를 만들어주고 싶어 하셨다. 여기가 그 서재가 아닐까. 나는 여기서 한 권의 책을 써야 하지 않을까.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 나와 나의 다정한 사람들, 미워하면서도 사실은 깊이 사랑했던 세상에 대해서 나만이 쓸 수 있는 한 권의 책을 써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지금 내가 하류의 서재에 도착한 이유가 아닐까. --- p.74~75

상황에 지치는 건 아직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래전 검도를 배울 때 선생은 비틀거리는 내게 말했었다. 정확한 때 정확한 곳을 베어야 합니다. 그러면 칼은 춤이 됩니다. 환자의 정체성 확립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그래야 춤추듯 병과 대적할 수 있다. 훌륭한 검법은 이기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다. 그건 자상을 아름다운 무늬로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본래 나의 몫이 아닌 것에는 관심도 욕망도 없었다. 시기와 부러움 같은 건 더더구나 없었다. 그러나 나의 몫임에도 부당하게 주어지지 않거나 빼앗겼을 때는 기필코 그 소유권을 되찾고자 했다. 환자가 된 뒤에도 나는 이 원칙에 충실히 하고자 했다. 나는 내 몸의 완전한 단독자가 되었고 그 몸은 타자들의 삶들과 전혀 무관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나의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라고 믿었다. 이제는 그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안다. 나의 삶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 타자들의 것이기도 하다. 나의 몸은 타자들의 그것과 분리될 수도 격리될 수도 없는 것이다. 나의 몸은 관계들 속에서 비로소 내 것이기도 하다. 그것이 내가 나의 삶에 대한 소유권을 갖고 있고 내 몫을 찾아야 하는 이유이고 근거이며 ‘환자의 정체성’이다. --- p.79~80

지금이 가장 좋은 때다. 지금이 가장 안전한 때다. 지금은 ‘아직 그때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직 오지 않은 것은 힘이 없다. 지금 여기가 아닌 것은 힘이 없다. 지금과 그때 사이에는 무한한 지금들이 있다. 그것들이 무엇을 가져오고 만들지 지금은 모른다.
--- p.252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여러 마음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선물과도 같은 책

『아침의 피아노』는 역서 『애도 일기』와 공저 『처음 읽는 프랑스 현대철학』 외에는 따로 저작이 없던 선생의 마지막 생의 의지와 책이 나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던 제자들의 마음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선물과도 같은 책이다. 사실, 『아침의 피아노』는 책이 되어 나올 수 없었다. 여러 신문과 잡지에 글을 기고하고, 철학아카데미, 도서관, 여러 대학의 강의를 하면서 여러 출판사의 출간 제의가 있을 때마다, 노학자는 늘 본인의 글에 대해서는 다소 고집스럽고 완고하게 바라보았다. 늘 나중에, 라고 말했다. 2017년 7월 암 선고 이후에는 철학아카데미 강의마저 그만두고,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칩거하게 되었고, 그 생활은 6개월 남짓 이어졌다.

나올 수 없을 것만 같던 이 책이 나오게 된 데에는, 2018년 3월 29일부터 2018년 7월 초까지 이어졌던 (철학아카데미에서 선생의 수업을 들었던) 제자들과 했던 모임 ‘프루스트와 베냐민이 만났을 때’와의 열 번의 만남이 있었다. 미니 강의와 편안한 대화가 주를 이루었던 모임은 늘 오후 1시에 시작했지만, 끝날 줄 모르고 5시나 6시, 어느 날은 9시까지 이어졌고, 모임 안에서 뭉치고 흩어졌던 말들은, 선생이 “남의 텍스트가 아닌 내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을 굳히는 데 힘을 보탰다. 또 한 번의 뜻하지 않은 인연으로 닿은 편집자와의 만남, 몇 주 뒤 드디어 ‘아침의 피아노’라는 가제로 계약서에 서명을 하던 순간까지 모든 일들이 거짓말처럼 이루어졌다.

하지만 책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채 나누기도 전에 먼저 들려온 건 선생의 부고 소식이었다. 선생의 제자이기도 했던 작가 은유는 추천사에서 이렇게 말한다. “강의에서 필기를 시작하면 중단할 수 없었다. 마치 아름다운 음악을 듣다가 멈춤 버튼을 누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고, 선생의 말은 “문장으로 된 악보”였다고. 선생이 남기고 간 커다란 악보 곁에 남은 사람들은 그렇게 저마다의 음표를 들고 모였다. 온 마음을 가지고 『아침의 피아노』라는 고운 음악을 기어코 완성해냈다.

투명하게 소멸하면서 낚아챈 빛나는 아포리즘

『아침의 피아노』에는 선생만이 낚을 수 있었던 빛나는 아포리즘들이 가득하다. 프루스트의 말년을 얘기하며 “그가 침대 방에서 살아간 말년의 삶은 고적하고 조용한 삶이 아니었다. 그건 그 어느 때보다 바쁜 삶이었다. 침대 방에서 프루스트는 편안하게 누워 있지 않았다. 그는 매초가 아까워서 사방으로 뛰어다녔을 것이다. (…) 독자는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그의 마지막 책은 100미터 달리기경주를 하는 육상선수의 필치와 문장으로 가득하다”고 말한 부분은 방 안의 존재에 대한 고정된 시선을 깬 빛나는 발견이다. “흐른다는 건 덧없이 사라진다는 것, 그러나 흐르는 것만이 살아 있다”에서는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선생의 진한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세상은 아름답다고, 인생은 깊다고,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러니 바람아 씽씽 불라고……” 천상병 시인에 대해서 썼던 [한겨레] 칼럼을 이야기하며 적은 문장들은 생에 대한 긍정으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글쓰기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그건 타자를 위한 것이라고 나는 말했다. 병중의 기록들도 마찬가지다. 이 기록들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떠나도 남겨질 이들을 위한 것이다. 나만을 지키려고 할 때 나는 나날이 약해진다. 타자를 지키려고 할 때 나는 나날이 확실해진다”라는 선생의 확신에 찬 어조는 사랑에 대해서 아름다움에 대해서 감사에 대해서 말하기를 멈추지 않는 삶이 어떤 삶인지, 어떤 삶이어야 하는지 가늠하게 해준다.

“아침의 피아노. 베란다에서 먼 곳을 바라보며 피아노 소리를 듣는다”라는 첫 문장을 시작으로 “내 마음은 편안하다”라는 마지막 문장까지 읽고 나면 선생과 함께 한 생을 살아낸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리고, 그 책장 끝에서 우리는 비로소 “음악의 인간, 사유의 인간, 긍지의 인간이 된”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작가의 말

2017년 7월 암 선고를 받았다. 그동안 이어지던 모든 일상의 삶들이 셔터를 내린 것처럼 중단되었다. 병원 생활이 시작되었고 환자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그렇게 꼭 13개월이 지났다. 이 글은 그사이 내 몸과 마음 그리고 정신을 지나간 작은 사건들의 기록이다. 환자의 삶과 그 삶의 독자성과 권위, 비로소 만나고 발견하게 된 사랑과 감사에 대한 기억과 성찰, 세상과 타자들에 대해서 눈 떠진 사유들, 혹은 그냥 무연히 눈앞으로 마음 곁으로 오고 가고 또 다가와서 떠나는 무의미한 순간들이 그 기록의 내용들이다. 폴 발레리와 롤랑 바르트가 쓰고 싶어 했던 모종의 책처럼 이 기록은 오로지 나만을 위해 써진 사적인 글들이다. 이 글은 때문에 책의 자격이 없다.

하지만 한 개체의 내면 특히 그 개인성이 위기에 처한 상황 속 개인의 내면은 또한 객관성의 영역과 필연적으로 겹치기도 하는 것이 아닐까. 가장 사적인 기록을 공적인 매개물인 한 권의 책으로 묶어보고 싶은 변명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책이 나와 비슷하거나 또 다른 방식으로 존재의 위기에 처한 이들에 조금이나마 성찰과 위안의 독서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이 반드시 변명만은 아니리라.

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김진영의 말은 문장으로 된 악보다. 강의에서 필기를 시작하면 중단할 수 없었다. 마치 아름다운 음악을 듣다가 멈춤 버튼을 누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육화된 교양, 깊은 직관, 풍성한 감성이 조화를 이룬 말들은 피아노 타음처럼 온몸을 두드렸고 정신에 조용한 파문을 일으키곤 했다. 이 책은 그 오롯한 증거다. 죽음을 맞이한 사람은 삶에 밀착한 사람이다. 하루하루 투명하게 소멸하면서 그가 낚아챈 생의 진면목은 아포리즘으로 남았다. 『아침의 피아노』를 펼쳤다면 누구라도 책장을 쉬이 덮지 못할 것이다. 어느새 음악의 인간, 사유의 인간, 긍지의 인간이 된 자기 자신을 발견할 것이기에.”
- 은유(『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작가)

회원리뷰 (2건) 리뷰 총점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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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자신이 두고 떠나는 타인들을 위하여 남겨 놓고 싶은 한 문장... 김진영, 아침의 피아노 내용 평점3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kosinski | 2018.10.21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그런 생각이 든다. 그동안 내가 읽고 생각하고 확신하고 말했던 그것들이 진실이었음을 증명하는 시간 앞에 지금 나는 서 있다는 그런 생각.” (p.41)  간혹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죽음의 문턱에 다다랐음을 어떤 식으로든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을 하게 될까, 누구와 그 시간을 공유하게 될까, 누구에게 그 시간을 공유하자 요구하게 될까,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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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생각이 든다. 그동안 내가 읽고 생각하고 확신하고 말했던 그것들이 진실이었음을 증명하는 시간 앞에 지금 나는 서 있다는 그런 생각.” (p.41)


  간혹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죽음의 문턱에 다다랐음을 어떤 식으로든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을 하게 될까, 누구와 그 시간을 공유하게 될까, 누구에게 그 시간을 공유하자 요구하게 될까, 어떻게 그 순간들을 견뎌낼까, 어떻게 그 순간들은 인식될까... 죽음의 방식에 대해 궁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것은 갑작스러운 것일까, 누차에 걸친 누적의 결과물로 다가올까...


  “공간들 사이에 문지방이 있듯 시간들 사이에도 무소속의 시간, 시간의 분류법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잉여의 시간이 있다. 어제와 내일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아무런 목적도 계획도 쓰임도 없는 시간, 오로지 자체만을 위해서 남겨진 공백의 시간이 있다. 그때 우리는 그토록 오래 찾아 헤매던 생을 이 공백의 시간 안에서 발견하고 놀란다. 다가오는 입원일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판결을 기다리는 환자처럼.” (pp.55~56)


  오래 전 나는 자연사를 낮은 수준의 죽음으로 치부한 적도 있지만 지금은 그것이 얼마나 오만방자한 마음인지를 안다. 나이가 들며 도처에 있는 즐비한 죽음, 가시권에 들어선 죽음, 정량화 되어 버리는 죽음, 측정되지 않는 죽음, 소비되거나 도구화되는 죽음을 보게 되고, 그것들이 누적되고 나면 쉬이 죽음을 거론하는 일조차 힘겨워지기 마련이다. 심지어 책 속에 있는 죽음마저도 그렇다. 

 
  “나는 이제껏 지나치게 감정주의자였다. 그래서 대부분 감정이 원하고 시키는 대로 행동해왔다. 그러나 행동은 감정의 시녀가 아니라 오히려 주인이기도 하다. 새로운 감정이 필요할 때 행동이 감정을 가르치고 인도해야 한다. 그래야 감정의 균형이 잡히고 길이 보인다.” (p.98)


  책은 철학자 김진영의 2017년 7월에서 2018년 8월까지의 기록이다. 2017년 6월 30일 간암 진단을 받은 이후 2018년 8월 20일 세상을 떠나기까지 그가 적은 것들로, 234편의 길지 않은 글들로 이루어져 있다. 길어야 한 페이지를 겨우 넘기는 수준이고, 짧은 것은 그저 두 개의 단어로 멈춰 있기도 하다. 굉장한 미문인 것도 아니고, 정곡을 찌르는 아포리즘이라고 하기엔 일상적이고 느슨하다.


  “군포 병원으로 면역 항암제를 맞으러 가는 길. 꽉 막힌 고속도로. 느릿느릿 움직이는 차들을 내다보다가 갑자기 떠오르는 어머니 얼굴,. 강렬한 그리움, 아니 그리움이 아니다. 살아서 한 번도 품어보지 않았던 욕망의 충동. 어머니의 품 안에 안기고 싶은, 아니 품 안으로 파고들고 싶은, 그렇게 어머니의 몸속을, 그 몸 안의 어떤 갱도를 통과하고 싶은 절박한 충동. 흙으로 돌아가기 위해 시멘트 바닥을 천공하는 지렁이처럼.” (p.233)


  하지만 이 투병 중의 일기는 솔직하고 투명하다. 그는 좀더 거칠고 난해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지 않는다. 병의 굴곡과 예상외로 빠른 진척이 그를 채근하였을 것인데 그런 조바심이 느껴지는 것도 아니다. 그는 ‘타자를 위한 것’으로서의 글쓰기를 했지만 타자를 의식한 것 같지는 않다. 자신을 보다 확실히 의식하기 위하여 타자를 내몰지 않았고, 죽음을 앞 둔 하나의 공간에 함께 두려하였다.


  “글쓰기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그건 타자를 위한 것이라고 나는 말했다. 병중의 기록들도 마찬가지다. 이 기록들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떠나도 남겨질 이들을 위한 것이다. 나만을 지키려고 할 때 나는 나날이 약해진다. 타자를 지키려고 할 때 나는 나날이 확실해진다.” (p.242)


  그는 영면에 들기 며칠 전인 마지막 순간 자신의 딸을 불러 휴대전화를 달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메모장을 열어 이렇게 적었다. “화해. 다투지 않기. 건너가기, 넘어가기, 부드럽게 여유 있게. 내 마음은 편안하다. 가고 오고 또 가고. 잘 보살피기. 적요한 상태.” 이 중 한 문장이 책의 마지막 문장이 되었다. 이것이야말로 죽음을 목전에 두고 우리가, 자신이 두고 떠나는 타인들을 위하여 남겨 놓고 싶은, 가장 확실한 문장이기도 하다.

 
  “내 마음은 편안하다.” (p.279)

 

 

김진영 / 아침의 피아노 : 철학자 김진영의 애도 일기 / 한겨레출판 / 282쪽 / 201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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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파워문화리뷰 아침의 피아노 - 철학자 김진영의 애도 일기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스타블로거 : 골드스타 시골아낙 | 2018.10.21 | 추천8 | 댓글16 리뷰제목
김진영선생을 소개하는 말 - 소설과 사진, 음악 등 여러영역의 미적 현상들을 다양한 이론의 도움을 빌려 읽으면서 자본주의 문화와 삶이 갇혀 있는 신화성을 드러내고 해체하는 일에 오랜 지적 관심을 두었다. 시민적 비판정신의 부재가 이 시대의 모든 부당한 권력들을 횡행케 하는 근본적이 원인이라고 믿으며 신문, 잡지에 칼럼을 기고했다. 여러대학에서 예술과 철학에 대한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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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선생을 소개하는 말 - 소설과 사진, 음악 등 여러영역의 미적 현상들을 다양한 이론의 도움을 빌려 읽으면서 자본주의 문화와 삶이 갇혀 있는 신화성을 드러내고 해체하는 일에 오랜 지적 관심을 두었다. 시민적 비판정신의 부재가 이 시대의 모든 부당한 권력들을 횡행케 하는 근본적이 원인이라고 믿으며 신문, 잡지에 칼럼을 기고했다. 여러대학에서 예술과 철학에 대한 강의를 했으며 철학아카데미를 비롯한 인문학 기관에서 철학과 미학을 주제로 강의했다.

 

1952년에 태어나 2018.8.20, 하늘나라로 가셨다, 불과 석달전,

 

자목련님의 블로그에서 책 소개를 읽고 나서야 김진영선생이 칼럼에서 간혹 봤던 분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제법 오래 연재하고 있던 칼럼이었다. 이럴 때는 당혹스럽다. 왜 나는 이런 분을 흘려 읽었을까? 세상에는 사라지고 나서야 기억하고 애도하는 일이 많다. 그분의 짧지만 단정한 글을 한장 한장씩 넘겨가며 왜 몰랐을까 싶어 후회스럽다

 

이 책은 임종 3일전, 섬망이 오기 전까지 병상에 앉아 메모장에 쓴 글을 모았다. 그는 생전에 내려고 이 기록을 책으로 내려고 결심을 했고 그 까닭을 작가의 말에 밝혀놓았다.

 

"....환자의 삶과 그 삶의 독자성과 권위, 비로소 만나고 발견하게 된 사랑과 감사에 대한 기억과 성찰, 세상과 타자들에 대해서 눈 떠진 사유들, 혹은 그냥 무연히 눈앞으로 마음 곁으로 오고 가고 또 다가와서 떠나는 무의미한 순간들이 그 기록의 내용들이다. ....한 개체의 내면 특히 그 개인성이 위기에 처한 상황 속 개인의 내면은 또한 객관성의 영역과 필연적으로 겹치기도 하는 것이 아닐까. 가장 사적인 기록을 공적인 매개물인 한권의 책으로 묶어보고 싶은 변명일수도 잇겠다. 하지만 이 책이 나와 비슷하거나 또 다른 방식으로 존재의 위기에 처한 이들에 조금이나마 성찰과 위안의 독서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이 반드시 변명만은 아니리라"

 

부인과 아들에 대한 글, 거리와 사람들의 풍경들, 세상은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주장이 없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들을 이렇게 살아야겠다는 의지는 오직 사랑뿐이다. 오직 자기 안으로 천착하고 다른 이에게 더 잘해주지 못했음을 후회한다.  암 진단을 받고 나서 날마다 쉬지 않고 성실하게 기록한 일기, 삶에 대한 애정과 생활에 대한 경외. 버릴 것이 없는 문장들... 

 

1.

아침의 피아노. 베란다에서 먼 곳을 바라보며 피아노 소리를 듣는다. 나는 이제 무엇으로 피아노에 응답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틀렸다. 피아노는 사랑이다. 피아노에게 응답해야 하는 것. 그것도 사랑뿐이다.

 

4. 슬퍼할 필요도 없다.

슬픔은 이럴 때 쓰는 것이 아니다.

 

7.

내가 존경했던 이들의 생몰 기록을 들추어 본다. 그들이 거의 모두 지금 나만큼 살고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내 생각이 맞았다. 나는 살 만큼 생을 누린 것이다.

 

14.

살아 있는 동안은 삶이다

내게는 이 삶에 성실할 책무가 있다.

그걸 자주 잊는다 

 

61.

TV를 본다.

모두들 모든 것들이 영원히 살 것처럼 살아간다.

 

79.

아침산책. 또 꽃들을 들여다본다. 꽃들이 시들 때를 근심한다면 이토록 철없이 만개할 수 있을까.

 

116.

사이사이 지나가는 천진하고 충만한 순간들이 있다. 시간이 흐르고 생이 존재하는 동안에는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그래서 결코 사라질 수 없는 중립의 시간이 있다. 그 어떤 불행의 현실도 이 불연속적 순간들, 무소속의 순간들, 뉘앙스의 순간들을 장악할 수 없고 정복할 수 없다. 그래서 불행의 현실들 속에서도 생은 늘 자유와 기쁨의 빛으로 빛난다.

 

218.

걱정하지마, 라고 주영이 말한다

그래 걱정하지 않을게.라고 대답한다.

걱정하지 않으면 무엇이 대신 남을까.

명랑성.

 

234.

나는 편안하다.

 

로 이 일기는 끝이난다....

 

이 책을 대하는 자세, 한번에 읽지 말고  곁에 두고 두고 음미하면서 읽기. 발췌하고 싶은 문장은 모두다. 이렇게나 단단한 말들이 나에게 왜 이리 늦게 도착했을까

댓글 16 8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8

한줄평 (1건) 한줄평 총점 10.0

혜택 및 유의사항 ?
평점5점
표지에 적힌 글귀만 보았을 뿐인데, 이 먹먹함은 뭘까요.
6명이 이 한줄평을 추천합니다. 공감 6
영원의건축 | 2018.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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