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유정난
계유정난을 한마디로 말하면, 1453년 수양 대군이 단종을 몰아내고 왕이 된 사건이다. 즉 세종의 큰아들 문종은 병으로 몸이 약하여 일찍 죽고, 문종의 어린 아들 단종이 왕위를 계승하였다. 이에 세종의 둘째 아들인 수양 대군이 김종서 등의 반대 세력을 제거하고, 가장 강력한 경쟁자였던 동생 안평 대군도 죽인 뒤 단종을 영월로 귀양 보낸 후 사약을 내려 죽이고 왕이 되었다. 또한 단종을 복위시키려는 사육신 등을 처형하고 정난에 공이 큰 한명회, 신숙주, 권람, 홍달손 등을 공신에 책봉하였다.
이 계유정난은 매월당에게 두 가지 큰 충격을 주었다.
첫째는, 불교의 융성이다
조선은 본래 성리학의 나라로 출발했다. 그래서 초기부터 숭유억불정책, 즉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제하는 정책을 펼쳤다. 고려 말의 타락한 불교를 배척하고, 신유학, 즉 성리학을 숭상한 것이다. 하지만 세조는 유달리 불교에 애정을 쏟았다. 그 이유로는 사람들에 따라 자신의 손으로 죽인 이들에 대한 속죄 의식 때문으로 보는 경향도 있다. 물론 그도 한 인간이니 그런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조대에 불교가 한층 더 융성해진 것은, 전대 왕실의 전통도 있었지만 이는 무엇보다 세조 자신이 불교를 신봉하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는 『세종실록』에 실린 세조가 성임과 나눈 대화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수양 대군이 성임에게
“자네는 공자와 석가의 도 중에 어느 쪽이 더 낫다고 생각하나?”
하자, 성임은
“저는 공자의 도는 책을 읽어서 그 뜻을 조금 압니다만, 석씨에 대해서
는 아직 그 책을 보지 못하여 아는 것이 없습니다.”
하였다. 이에 수양 대군은
“부처님의 도가 공자보다 낫다.” 하고 말하였다.
--- p.23~24
이튿날 양생은 여인의 말대로 은주발을 들고 보련사로 가는 길가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과연 어떤 권세 있는 집안에서 딸자식의 3년 대상을 치르려고 수레와 말을 길에 늘어세우고서 보련사로 향하고 있었다. 그때 그 양반을 따라가던 하인이 길가에서 양생이 은주발을 들고 서 있는 것을 보고는 주인에게 말했다.
“대감마님! 어떤 사람이 아가씨 장례 때 무덤 속에 묻은 그릇을 벌써 훔쳐 가지고 있습니다.”
주인은 놀라면서 하인에게 말했다.
“뭐? 그게 무슨 말이냐?”
하인이 주인에게 대답했다.
“예, 저 서생이 들고 있는 은주발을 보고 한 말씀입니다.”
주인은 말을 멈추어 세우고, 양생에게 다가가 그 은주발을 얻게 된 사연을 물어보았다. 양생은 그 전날 여인과 약속한 그대로 대답하였다.
여인의 부모는 그의 말에 놀라며 의아스럽게 여기더니 조금 생각에 잠겨 있다가 말했다.
“내 슬하에 오직 딸자식이 하나 있었는데, 그 딸자식마저 왜구의 난리 때 싸움터에서 죽었다네. 미처 정식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개녕사 곁에 임시로 매장을 하고는 오늘 내일 장사를 미루어 오다가 이렇게 되었네. 오늘이 벌써 대상 날이라, 부모 된 심경에 보련사에 가서 재를 올려 명복이나 빌어 줄까 해서 가는 길이네. 자네가 정말 그 약속대로 하려거든 내 딸자식을 기다리고 있다가 같이 오게나. 그렇다고 놀라지는 말게.”
말을 마치고, 그녀의 부모는 먼저 보련사로 올라갔다.
양생이 우두커니 서서 여인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약속하였던 시각이 되자 과연 한 여인이 시비를 데리고 갸우뚱거리면서 오는데, 바로 그 여인이었다. 그들은 다시 만나 서로 기뻐하면서 손을 잡고 절로 향하였다.
여인은 절 문에 들어서자 먼저 법당에 올라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는 곧 흰 휘장 안으로 들어가는데, 그의 친척들과 승려들은 모두 그녀를 보지 못하였다. 오직 양생만이 그녀를 볼 수 있었다.
--- p.65~67
왕 귀신의 세 번째 한풀이
그녀는 양생과 헤어질 때, 은주발 하나를 내어 주면서 이튿날 그녀의 부모를 만나 같이 인사를 하자고 한다. 다음 날 양생은 약속대로 은주발을 들고 보련사로 가는 길가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은주발’은 무엇을 상징할까? 바로 그 여인을 상징한다. 왜 그럴까? 왜냐하면 ‘금’은 누런 태양빛으로 남성을 상징하고, ‘은’은 은은한 달빛으로 여성을 상징한다. 그래서 옛날에 남자들은 금으로 장식했다. 대신 여자들은 은으로 장식하였으니, 은가락지, 은비녀, 은장도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실제 여성들은 번쩍거리는 금으로 장식하는 것보다는 은은한 은으로 장식하는 것이 더 여성스럽게 보인다. 그리고 ‘주발’은 여성의 성기를 나타내는 것으로, 여성이 어떤 것을 받아들이고 생산하는 풍요로움을 나타낸다. 따라서 은주발은 바로 그 여인을 상징하는 것이다. 따라서 여인이 양생과 헤어질 때 은주발을 준 것은, 그녀가 그와 헤어지지 않고 계속 그와 같이 있고 싶다는 마음의 표현이다. 또한 양생이 그녀와 헤어질 때부터 은주발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양생이 무덤에서 현실 세계로 나왔지만 사실은 아직 무의식계에서 그녀와 함께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상징이 이래서 재미있는 것이다.
길가에서 양생은 여인의 집안에서 딸자식의 대상을 치르려고 수레와 말을 가지고 보련사로 향하는 그녀의 부모와 만나게 된다. 이는 그 귀족 집안의 하인이 양생이 들고 있는 은주발이 아가씨 무덤에 넣었던 부장품임을 발견하게 된 데서 이루어진다. 이런 것을 볼 때, 조선 시대에도 부잣집에서는 무덤 속에 그릇이나 생활용품 등 부장품을 넣었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죽더라도 다시 부활해서 쓰라는 것이다. 이런 것을 볼 때, 우리나라는 고대로부터 부활 신앙이 강했던 것 같다. 요즘 무덤 속에 사랑하는 사람의 금반지나 귀중품을 넣었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금이빨도 빼고 넣는다는 말은 들었다. 우리 고래로부터의 부활 신앙이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이때 양생은 그녀의 부모의 말을 듣고, 비로소 그녀의 정체를 바로 알게 된다. 이 말을 한번 들어보기로 한다.
내 슬하에 오직 딸자식이 하나 있었는데, 그 딸자식마저 왜구의 난리때 싸움터에서 죽었다네. 미처 정식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개녕사 곁에 임시로 매장을 하고는 오늘 내일 장사를 미루어 오다가 이렇게 되었네. 오늘이 벌써 대상 날이라, 부모 된 심경에 보련사에 가서 재를 올려 명복이나 빌어 줄까 해서 가는 길이네.
이 말을 통해 우리는 이제야 양생이 만났던 여인이 산 사람이 아니라, 죽은 귀신임을 확인하게 된다. 즉 그녀는 처녀로 억울하게 죽은 ‘왕 귀신’이며, 그날이 대상 날임으로 보아 죽은 지 3년이 되어 한을 풀고 하늘나라로 갈 때가 다가왔음을 알 수 있다.
--- p.82~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