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어머니의 귀한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다. 저마다의 삶은 가족의 사랑으로 지탱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도 돌아보면, 내 슬픔의 끝은 어머니의 아름다운 사랑과 닿아 있다. 그러니 상황이 절망적이고 출구가 없어 보일 때, 가끔 내 존재가 쓸모없는 잉여인간처럼 느껴질 때, 그럴 땐 잠시 잊고 있던 가족의 사랑을 떠올려보길 바란다. 우리 곁엔 분명 누군가가 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지극한 사랑을 받던 존재이다. 그런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훼손해서는 안 된다. 누구에게나 슬픔은 닥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다 불행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행복한 줄 모르고 상대적인 박탈감에 스스로만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 또 내 옆에 누가 있는지 보지 못한 채 그저 앞만 보고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잘 둘러보면 알 수 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눈물이 고여 만든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눈물이 고여 만들어진 존재」중에서
‘내 인생은 아름다운가.’
‘나는 잘 살고 있는가.’
요즘도 간간히 자문해본다.
‘그렇다’일 때도 있고 ‘그렇지 않다’일 때도 있다.
어릴 때 절에 들어가면서 산다는 게 도대체 뭘까 싶었다. 평범한 삶을 버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모른 채, 평범한 나날을 날려버리고 궁지에 몰린 새처럼 출가를 했다. 맑고 깨끗하게, 우아하고 격조 높게 살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하며 말이다. 평범함을 내려놓는 순간 타인의 인정으로부터도 자유로워져야 했는데, 내 삶은 출가자로서 홀로서기가 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사랑받아야 유지되는 느낌이었다. 수많은 삶의 형태를 무시하고 단 하나의 길만을 선택해 들어섰는데, 그 길에서 또다시 평범한 감정들을 만난 것이다.
---「자문」중에서
그러고 보니 기억에 남는 일이 하나 있다. 어머니 얘기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어머니 장례식장에 와서 ‘화투 칠 짝이 안 맞아서 이제 어떻게 하느냐’며 대성통곡하던 아랫집 아주머니에 대한 기억이다. 어머니의 절친이셨던 아주머니는 영정 앞에서 바닥을 치며 실컷 울고는 사람들에게 어머니를 회고하며 말했다.
“세상에 이런 사람 또 없지. 뭐든지 혼자 먹는 법이 없어. 늘 나누어줬지. 경로당에서 화투를 치면 맨날 자기가 이기는데도, 꼭 그냥 안 가고 자기가 딴 돈을 가지고 사람들 먹을 거 사주고, 돈도 다 돌려주고 갔다니까 글쎄. 아이고. 그런 사람이 어딨어. 엉엉. 이제 우리는 누구랑 화투 치냐. 짝이 안 맞잖아. 아이고.”
상주인 나도 웃음을 참지 못해 입을 가릴 정도였다. 옆에서 누군가 웃으며 말했다. “아, 진짜. 저 아줌마 때문에 미치겠네. 뭐라는 겨 시방. 장례식장에 와서.” 어느새 그 슬픈 와중에도 웃음꽃이 퍼져나가는 희한한 장례식장 풍경이 되었다. 그때는 미처 생각지 못했는데 이제와 돌이켜보니, 의외로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는 건 참 쉬운 일일 수 있겠다 싶다. 마음 한 번 돌리면 그뿐이니까. 모두의 즐거움을 위해 마음 한 번 넉넉히 쓰고 사람들에게 돌려주면 좋은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다.
---「멋진 사람으로 기억되는 법」중에서
그렇다. 멋있게 살려면 가난하게 살 줄도 알아야 한다. 맑은 새벽공기 들이마시며 계절마다 달라지는 숲의 향기, 바람의 향기만으로도 행복할 줄 알아야 한다. 가난해야 저 달도, 대숲의 바람도 방 안에 들여놓을 수 있는 법이다. 도시에서 사는 것도 별반 다르지 않다. 복잡한 세상에서 그나마 한가롭게 살고 싶다면, 여유를 찾고 싶다면, 조금은 외롭게 고요하게 살 수 있어야 한다. 고독해도 괜찮아야 한다. 그래야 저 달이 보인다.
---「잠깐 멈춤」중에서
한 사람이 내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을 위해 봉사를 더 잘 할 수 있을까요? 저는 불자로서 마음속에 자비심을 가지고 있고, 절에 다니니까 사람들을 더 행복하게 해줘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굉장히 떳떳하고 당당하게 말한 그분은 마치 사명감 가득한 군인 같았다. 그런데 내 눈에는 그분이 별로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혹시 질문하신 분은 지금 행복하십니까?”
아주 간단한 질문인데 그 순간 당황했는지 얼굴이 빨개졌다.
“저는 제가 행복하지 않아도 남들의 행복을 위해 살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만. 스님, 제 생각이 틀렸습니까?”
“네, 틀렸네요. 내가 행복해야 남도 행복하게 해주죠. 거사님은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사명감이 가득하지만, 정작 본인은 행복하지 않잖아요. 자신의 행복을 늘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의 행복도 챙기시면 좋겠습니다.”
---「내가 먼저 행복해야 합니다」중에서
사람들은 식물을 예쁘게 키우려고 분재를 하는데 아이는 사람이지 식물이 아니다. 나에게도 분재가 한 그루 있었는데 그 나무가 가여워서 철사를 다 뽑아버렸다. 그렇다고 갑자기 쑥쑥 자라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느덧 나와 함께 살아낸 지 10년이다. 부모는 이제 그만 아이를 놓아주어야 한다. 그리고 아이는 스스로 살아갈 마음을 내야 한다. 틱낫한 스님은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우리는 바뀌기를 원하는가, 원치 않는가?”
젊다고 우울증에 걸리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그런 삶이 싫다면 스스로 바꿀 마음을 내는 게 우선이다. ‘자는 사람은 깨울 수 있어도, 자는 척 하는 사람은 깨울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듣고 있으면서 못 들은 척하는 사람과는 대화할 수 없는 법이다. 자는 척하지 말고, 못 들은 척하지 말고, 두렵더라도 이제는 눈을 떠야 한다. 내 앞에 놓인 현실, 그 현실을 봐야 한다.
---「손을 내밀어도 닿지 않는 아득한 아이」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