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식물은 서로 경쟁하며 잎을 펼쳐 햇빛을 받으려고 한다. 모든 식물이 햇빛을 받으려고 잎을 펼치므로, 더 많은 햇빛을 차지하려면 다른 식물보다 높은 위치를 점해야 한다. 이렇게 식물은 서로 경쟁하면서 위를 향해 자란다. 식물이 다른 식물보다 빨리 자라려고 해도 경쟁자도 매한가지로 자라니까 특출하게 자라기는 어렵다. 어떤 식물이라도 최대한 성장을 서두르기에, 결과적으로 도토리 키 재기처럼 어느 식물이나 똑같이 자라는 것같이 보인다. 이것이 바로 ‘그만그만한 키의 현상’이다. 모처럼 새로 난 잎도 위쪽을 향해 잎몸을 펼치지만, 잎이 무성하면 아래쪽은 그늘이 되어 햇빛을 받을 수 없게 된다. 그러면 아래쪽에 난 잎은 제구실을 잃고 떨어져버린다. 위쪽에 난 잎만 펼쳐가는 상황이 된다. 숲속에 들어가면 마치 지붕이 덮인 것처럼 윗부분에만 잎이 모여 있다. 아래쪽에 있는 잎은 햇빛을 받지 못해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잎이 위쪽에만 모여 있는 모습을 수관(樹冠) 또는 초관(草冠)이라고 부른다. 숲 아래서 위를 올려다보면 마치 지그소 퍼즐처럼 다양한 나뭇잎이 얽혀 수관을 이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식물은 햇빛을 둘러싸고 공간을 쟁탈하면서 숲을 형성한다.
---「가장 치열한, 햇빛을 둘러싼 경쟁」중에서
개미를 자기편으로 삼으려고 더욱 환대하며 맞아들이는 식물도 있다. 그 식물은 놀랍게도 개미를 회유하고자 음식뿐만 아니라 개미의 가족이 살아갈 집까지 제공한다. ‘개미식물’로 불리는 이들 식물은 가지 안에 공간을 만들고 그 속에 개미를 살게 한다. 물론 개미에게 먹일 음식도 호화롭다. 꿀 등 당분뿐만 아니라 단백질이나 지질 같은 모든 영양소를 개미에게 제공한다. 그 덕분에 개미는 이 식물 위에서 살아갈 수 있다. 그 대신 개미는 나뭇잎을 먹으려고 하는 모충 같은 곤충으로부터 식물을 지켜준다. 유감스럽게도 추운 겨울이 있는 지역에서는 개미가 지하에 둥지를 틀어 월동해야 하기에 1년 내내 나무 위에서 지낼 수는 없다. 그렇다고 개미에게 주거지를 제공하려는 식물이 나타나지도 않을 것 같다. 월동 걱정이 없는 열대 지방에서는 후춧과나 마디풀과, 쐐기풀과, 콩과, 대극과, 시계꽃과, 박주가릿과, 꼭두서닛과, 야자과 등 다양한 과에 속하는 식물이 비슷한 체계 속에서 개미와 공생하며 진화한다. 식물이 와달라고 애원하며 고용한 열대 개미는 염원하던 내 집까지 얻어 마음이 든든하다. 식물에 인간이 다가가도 개미가 적의를 나타내며 습격한다. 얼마나 듬직한 경호원인가?
---「입주 경호원을 고용하다」중에서
열매가 익으면 붉게 물든다. 예를 들어 사과와 복숭아, 감, 귤, 포도 등 나무 위에서 익은 열매는 빨간색, 노란색, 분홍색, 보라색처럼 붉은색 계통의 색채를 띨 때가 많다. 이렇게 붉게 물든 과일은 돋보이게 된다. ‘멈춤’ 신호는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는 ‘빨간색’으로 정해졌다. 파장이 긴 붉은색 빛은 다른 색 빛보다 멀리까지 닿기 쉬운 성질이 있다. 그렇기에 멀리서도 인식되기 쉽게 열매는 붉은색으로 바뀌는 것을 선택한다. 또한 식물은 녹색을 띠므로 녹색의 정반대 색깔인 빨간색은 특히 눈에 잘 띈다. 덜 익은 열매는 잎과 같은 녹색이어서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또한 단맛이 아니라 오히려 씁쓸한 맛이 난다. 이것은 씨가 아직 익지 않았을 때 먹히면 곤란하므로, 쓴맛 물질을 축적해 열매를 지키는 것이다. 예컨대 떫은 감에 함유된 탄닌이나 아직 덜 익은 녹색 여주에 포함된 모모르데신(momordicin)과 카란틴(charantin)은 열매를 지키는 데 쓰이는 물질이다. 이런 열매도 이윽고 씨가 익으면 쓴맛 물질을 제거하고 당분을 축적하여 달콤해진다. 이렇게 맛있게 한 후에야 열매의 색을 녹색에서 붉은색으로 바꿔 제철이라는 신호를 내보낸다. ‘녹색은 먹지 말라.’ ‘빨간색은 먹어달라.’ 이것이 열매의 신호인 것이다.
---「초록은 멈춰, 빨강은 가라」중에서
식물은 자신을 지키고자 많든 적든 독성분을 준비한다. 그런데 인류는 이 식물의 독성분을 좋아한다. 예컨대 녹차나 홍차, 커피, 코코아, 허브티 등 인간이 좋아하는 음료는 각성 작용과 진정 작용을 한다. 모두 식물의 약한 독성분이 기능을 발휘하는 것이다. 향이나 포푸리 등 식물이 풍기는 향기도 역시 인간을 치유하고 회복하게 한다. 숲에서는 다양한 식물이 해충이나 병원균을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물질을 생성한다. 인간은 이런 숲속에서 삼림욕을 한다. 식물의 독성분 등으로 독기 가득한 숲의 공기가 왜 인간에게 좋은 효과를 가져다주는 것일까? 그 요인 중 하나로 호르메시스 효과를 들 수 있다. 호르메시스란 그리스어로 ‘자극’이라는 뜻이다. 음료나 향료에 들어 있거나 숲에 가득한 식물의 독은 인간을 해칠 만큼 강하지는 않다. 인간에게 자극제가 될 정도로만 작용한다. 즉, 인간의 몸은 약한 독의 자극을 받아 생명을 지키려는 방어 체제에 들어간다. 그 긴장감이 살고자 하는 능력을 활성화하고 우리에게 활력을 준다. 독과 약은 한 끗 차이다. 독도 소량 섭취하면 인체에 좋은 자극을 주어 약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식물이 미생물이나 곤충을 죽이려고 축적한 독성분 대부분을 인간은 약초나 한약의 약효 성분으로 이용한다.
---「약한 성분으로 생기를 되찾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