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장메뉴
주요메뉴


닫기
사이즈 비교
소득공제
미리보기 사이즈비교 공유하기

평화의 예수

: 평화를 선포하는 요한복음

김근수 | 동녘 | 2018년 11월 05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9.5 리뷰 8건 | 판매지수 198
베스트
종교학/신화학 top20 6주
eBook이 출간되면 알려드립니다. eBook 출간 알림 신청
1 2 3 4 5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11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560쪽 | 1078g | 152*224*35mm
ISBN13 9788972979272
ISBN10 8972979279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서문_ 가난한 사람이 고통 받을 때 함께 피 흘리는 예수

1부 예수 증언의 책
프롤로그_ 하느님이 사람이 되시다
1막
1장 예수를 증언하는 세례자 요한
2장 예수를 증언하는 첫 번째 제자들

2막
1장 가나 혼인 잔치 포도주 기적
2장 예수의 성전 항쟁
3장 니고데모와 예수의 대화
4장 세례자 요한의 증언과 세례 베푸는 예수
5장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의 대화
6장 고관 아들의 병을 고침

3막
1장 예수의 세 번째 기적: 베짜타 연못에서 병자 치유
2장 예수의 네 번째·다섯 번째 기적: 5000명 먹임과 물 위 걸음
3장 예수와 적대자들의 커지는 갈등

4막 A
1장 죄지은 여인과 예수의 용서
2장 자신을 증언하는 예수
3장 시각장애인 치유
4장 착한 목자 예수
5장 하느님의 아들 예수

2부 예수 영광의 책
4막 B
1장 라자로의 부활
2장 예수를 죽이려는 세력
3장 예수 장례를 미리 치른 마리아
4장 예수 최후의 시간 .322
5장 예수의 죽음과 악의 세력

5막
1장 제자들의 발을 씻는 예수
2장 예수의 새 계명: 서로 사랑하라
3장 예수의 작별 인사: 성령과 평화
4장 예수의 유언: 박해받을 용기
5장 예수의 유언: 악에 저항하라
6장 세상과 믿는 자를 위한 기도

6막
1장 체포되고 재판 받는 예수
2장 로마 군대에게 사형선고 받는 예수
3장 정치범으로 십자가에 처형되는 예수
7막
1장 죽음과 악을 이기고 부활한 예수

에필로그_ 예수가 원하는 세상과 교회

참고 문헌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요한〉은 정의가 불의를 이겼다는 역사 해석학이다. 예수 고난의 역사는 이 세상 고통 받는 사람들과 운명을 나눈 희생의 역사다. 〈요한〉은 희생자 입장에서, 희생자를 위해 쓰인, 희생자를 위한 복음이다. 예수의 저항과 싸움이 예수를 영광스럽게 만들었다. 예수와 같이 불의에 저항하거나 투쟁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요한〉의 참맛을 느낄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다.
〈마르〉가 길고 자세한 서문이 있는 고난의 역사라면, 〈요한〉은 처음부터 고난 복음이다. 나는 〈요한〉이 고난 복음보다 십자가 복음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다. 십자가는 고난 이전에 저항이다. 저항이 없었으면 십자가도 없었다. 불의에 저항하다가 생긴 고난이 아닌 고난은 참거나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 예수는 고난을 당했다기보다 고난을 불러일으키고 부추기고 기쁘게 맞이했다. -10쪽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있겠지만 나는 언제나 함께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는 복음서에서 자주 오해되는 말 중 하나다. 예수가 곧 떠날 시간이 다가왔다는 정보를 전해주는 말이다. 마리아는 예수가 자기 곁에 마지막으로 있을 때 가장 적절한 일을 선택했다. 가난한 사람보다 예수에게 신경 써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가난한 사람과 예수 중 누구에게 먼저, 더 신경 써야 하는지 묻는 문제도 아니다. 가난한 사람이냐, 예수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요구하는 문제도 아니다.
교회나 성당에서 이 말을 왜곡하고 악용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가난한 사람을 외면하고 오직 예수에게 신경 쓰면 되는 줄 아는 신자들이 적지 않다. 잘못이다. 가난한 사람을 외면하고 예수에게 가는 방법은 없다. 예수를 만나러 가는 길에서 가난한 사람을 만난다. 우리 눈에 보이는 가난한 사람이 곧 예수다. -319쪽

교회는 성례전에서 빵과 포도주를 생각하기 전에 가난한 사람의 식량을 생각해야 한다. 종교인이 자기 먹을 것만 생각하고 신자나 가난한 사람이 먹을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말이 되는가. 가난한 사람이 먹을 것이 없다는 사실은 뉴스거리도 되지 않는 세상에서, 신부나 목사가 먹을 것이 없으면 왜 뉴스거리가 되어야 하는가. 가난한 사람은 수없이 굶어 죽었지만, 신부나 목사가 굶어 죽은 일은 아직 한 번도 없었다. 신부나 목사가 가난하지 않다는 현실이 그리스도교의 큰 스캔들 중 하나다. -528쪽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가난한 사람의 눈으로 본 〈요한복음〉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 아니라 인민 편’

저자는 이 책에서 “가난한 사람의 눈으로 〈요한복음〉을 보자”라고 강조한다. 〈요한복음〉에서 ‘생명’이란 단어가 달리 보일 것이라고도 한다. ‘생명’이라고 하면 우리는 추상명사 생명이 아니라 하루 세끼 먹고 사는 생존부터 생각할 것이다. 생존이 생명보다 우선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요한복음〉의 예수는 ‘해방신학자’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계급 모순은 성서를 보는 중요한 관점 중 하나다. 억압과 불평등이 판치는 분단된 한반도에서 〈요한복음〉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 책이 우리에게 던지는 물음이다.

“가난한 사람이 보는 예수와 부자가 보는 예수는 같지 않다. 가난한 사람이 보는 복음과 부자가 보는 복음은 같지 않다. 가난한 사람이 보는 그리스도교와 부자가 보는 그리스도교는 같지 않다. 가난한 사람이 바치는 주님의 기도와 부자가 바치는 주님의 기도는 절실함이 크게 다르다.” 이 책은 이렇게 강조하고 있다. 가난한 사람은 주일미사나 예배도 버거울 수 있다. 부자의 눈을 버리고 가난한 사람의 눈으로 보면 좋겠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면 교회도 세상도 역사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성서를 덜 봐서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의 눈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성서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아픈 말이 있다. 우리는 세상이 종교를 걱정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저자는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 아니라 인민 편’이라고 고쳐 말하고 싶다고도 강조한다. 세상을 걱정하는 종교의 진짜 모습도 소개하고 싶은 뜻이 이 책에 녹아 있다.

우리는 왜 성서를 공부해야 하는가?
“가난한 사람이 고통 받을 때 함께 피 흘리는 예수는 존경받습니다.”

왜, 무엇을 위해 성서를 공부하는가. 저자는 이 물음에 이렇게 답한다. “가난한 사람을 먼저 사랑하고 역사의 희생자를 편들기 위해 성서를 공부한다. 불의로 가득한 세상을 뒤집어엎고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 성서를 공부한다. 중산층 신자의 지식 욕심을 채우기 위한 성서 공부는 올바른 성서 공부가 아니다. 부자와 권력자에게 봉사하는 성서 공부는 올바른 성서 공부가 아니다. 성서를 공부하고 해설할 때 정의를 대변하고 세상의 변화에 참여하는 내용을 포함해야 한다.”라고.

〈마르코복음〉, 〈마태오복음〉, 〈루가복음〉은 소설 같고, 〈요한복음〉은 논문 같다는 말이 있다. 〈마르코복음〉, 〈마태오복음〉, 〈루가복음〉에서 소설 같은 매력을 느낀다면, 〈요한복음〉에서 철학 강의의 답답함을 느낄 수도 있다. 〈요한복음〉은 영지주의(靈智主義, Gnosticismus)와 싸웠다. ‘영지주의’는 선택받은 소수만 비밀스런 방법으로 예수를 이해할 수 있다는 엘리트주의를 내세웠다. 〈요한복음〉은 엘리트주의와 싸우면서 누구나 쉽게 예수를 이해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요한복음〉은 예수의 인성(人性)을 무시하고 이 세상을 멸시하며, 사후 세계만 강조하는 가현설(假現說, Doketismus)과도 싸웠다. 〈요한복음〉은 세상 속에서 세상을 이겨내라고 격려한다. 〈요한복음〉은 역사 현실을 외면하는 사람들을 강하게 비판한다. 역사에 무관심하고 하늘만 쳐다보는 사람은 가현설을 따른다. 저자는 이 책에서 왜 우리 시대 한국에는 어떤 영지주의와 가현설이 날뛰는가를 묻는다. 그래서 〈요한복음〉은 이론적 가현설과 싸웠지만, 지금 한국 그리스도교는 실제적 가현설과 싸워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예수의 인성을 인정하지 못하고 신성만 받아들이는 그리스도인이 의외로 많다. 성직주의는 영지주의에 속한다. 〈요한복음〉에 추상명사가 자주 나온다. 명사를 동사로 풀어 쓰면 이해하기 쉽다. 예수는 길이니, 우리는 예수와 함께 걷는다. 예수는 진리이니, 가짜 뉴스나 나쁜 언론에 속지 않고 진실을 밝힌다. 예수는 생명이니, 불평등을 강요하고 생명을 억압하는 불의의 세력과 싸우며 생명을 지킨다. 예수는 사랑이니, 가난한 사람을 먼저 선택하는 사랑을 한다. 예수는 평화이니, 전쟁에 반대하고 정의를 실현하며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해 애쓴다. 명사를 동사로 풀고, 우리 상황에 맞게 구체적으로 해설하면 〈요한복음〉이 한층 가깝게 다가온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예수의 사랑받던 제자가 실제로 〈요한복음〉 저자일까? 〈요한복음〉 저자가 연극의 모든 내용을 아는 전지적 시점의 인물로 창작하여 일부러 넣은 상상의 인물일까? 예수의 사랑받던 제자는 제베대오의 아들 요한과 동일한 인물로 생각해야 할까?” 하고 물음을 던진다. 그러나 우리는 〈요한복음〉 저자가 누구인지 아직 모른다고 저자는 말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다.

“나는 엘살바도르 유학 시절에 로메로 대주교가 살해되기 직전까지 몇 년 동안 지낸 작은 집에 여러 번 가보았다. 자그마한 로메로 대주교가 누운 침대 곁에서 멍하니 서 있곤 했다. 지금도 그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백성이 학살당할 때 함께 피 흘리는 교회는 존경받습니다.’ 〈요한복음〉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싶을지 모르겠다. ‘가난한 사람이 고통 받을 때 함께 피 흘리는 예수는 존경받습니다.’”

저자는 “〈요한복음〉에서 평화의 예수를 배우고 따르자. 평화의 예수를 배우고 따르면서 우리 땅 한반도를 평화의 땅으로 만들어가자”며 책을 마무리한다.

회원리뷰 (8건) 리뷰 총점9.5

혜택 및 유의사항?
포토리뷰 평화의 예수 - 평화를 선포하는 [요한복음]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ES마니아 : 골드 리* | 2019.01.22 | 추천1 | 댓글0 리뷰제목
평화의 예수 - 평화를 선포하는 <요한복음>해방신학연구소 김근수 소장이 바라본 요한복음 어떤 내용일까. 사실 이 책을 읽기전까지 해방신학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했다. 지금도 제대로 안다고 할 순 없지만 적어도 이 책을 읽으면서 대략적으로 해방신학자들이 바라보는 하느님과 말씀이 어떤 방향인지는 알 것 같다.  그래서 해방신학은 말한다. 하느님의 영광은 살아 있는 가;
리뷰제목

평화의 예수 - 평화를 선포하는 <요한복음>


해방신학연구소 김근수 소장이 바라본 요한복음 어떤 내용일까. 사실 이 책을 읽기전까지 해방신학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했다. 지금도 제대로 안다고 할 순 없지만 적어도 이 책을 읽으면서 대략적으로 해방신학자들이 바라보는 하느님과 말씀이 어떤 방향인지는 알 것 같다.

 

그래서 해방신학은 말한다. 하느님의 영광은 살아 있는 가난한 사람이다. 가난한 사람이 생명을 빼앗기지 않고 누리며, 가난한 사람이 억압받고 굶주리는 어둠이 아니라 빛인 삶이 곧 하느님이 바라시는 삶이다.<요한>이 예수가 하느님을 해석한 분이라고 강조한다면, 해방신학은 가난한 사람이 예수를 해석한 사람이라고 강조한다. 37쪽


<요한>을 1부 예수 증언의 책, 2부 예수 영광의 책으로 나누고, 다시 각 부는 1막에서 4막 A, 4막 B에서 7막으로 나뉜다. 1부가 예수 증언의 책인 것은 <요한>1장의 도입부가 창세기와 연결되어 있고, 세례자 요한의 말씀을 증언하러 오신 예수의 증언과 관련되어 있었다. 저자는 말한다. 세례자라는 표현보다는 오히려 증언자 요한이라 부르고 싶다고. 예수님을 증언하는 요한. 마찬가지로 하느님을 증언하는 우리 사람들은 그렇기에 누가 누군가를 업신여길 수 없다고도 말한다. 2막은 <요한>2장,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일어난 예수님의 포도주 기적에 대해 이야기 한다. <요한>에서는 7가지의 표징이 등장하는데 첫 기적은 포도주가 바로 그 첫 표징에 해당된다. 4막 A에 해당되는 8장의 내용을 들려준다.



<요한>은 예수의 죽음을 다른 복음서보다 세 배 더 다루는 셈이다. 자세히 말하면 예수의 죽음이 아니라 예수의 저항과 죽음이다. 저항 없이 죽음 없다. 예수가 불의한 세력에 저항하지 않았다면 공자나 붓다처럼 많은 제자들을 거느리며 오랜기간 가르치고 활동하다가 세상을 떠났을지 모른다. 예수의 저항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159쪽


해방신학으로서 분석한 <요한>이라서라고 단언할 순 없지만 '저항'이란 단어에 생각이 깊어졌다. 하느님의 아들로, 인간을 위해 '희생' 혹은 '사랑'을 실천하고자 죽음을 선택하신 분으로 인지했기 때문이다. 내게있어 저항은 의지의 표출이라기 보다는 순종의 반대개념으로 먼저 다가와서 그런 것 같다. 2부는 예수님께서 처형당하시고 부활하시는 20장까지의 내용이 담겨있다.


박해 위험 속에서도 선교가 가능했다. 박해 위험을 당하는 상태에서하는 선교가 진짜 선교일 수 있다. 박해를 모르는 선교는 종교 영업 행위로 빠질 수도 있다. 405쪽


한국의 가톨릭이 가지는 역사적 의의는 들을 때 마다 자부심을 갖게 된다. 저자의 말처럼 200여년 전 한국 천주교 초기와 지금은 다르다. '평화'를 기대하는 것과 구하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그것이 공동체, 민족 혹은 그 이상의 광대한 전 지구인이 아니라 가족, 심지어 개인 한 사람을 위한 평화에 머물러 있다. 저자가 발췌해온 것처럼 가난한 사람 편에 서서 가난 한 사람을 보호하는 이들만 박해를 받았다는 점이 중요하다. 왕의 권리를 무시하고 계급을 허물려는 평등의식이 박해를 불러왔다는 것만 떠올려봐도 알 수 있다.


그동안 성서를 읽는다는 것은 지극히 사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성서를 공부하는 나의 자세도, 또 그 진행속도도 느릴 수 밖에 없었다. 저자는 '왜, 무엇을 위해 성서를 공부하는가.'라며 서문에서 물었는데 그에 대한 답변부터가 그동안의 나의 자세를 되돌아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해방신학자인 저자는 말한다. '가난한 사람을 먼저 사랑하고 역사의 희생자를 편들기 위해 성서를 공부한다. 불의로 가득한 세상을 뒤집어엎고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 성서를 공부한다.'(12쪽) 덕분에<요한>을 풀이한 본문에 진입하기 전에 프롤로그, 그리고 요한 서문을 해설한 몇 페이지 안되는 적은 분량을 오래도록 읽고 노트에 빼곡하게, 때로는 책에 직접대고 나름의 변명과 답, 혹은 깨달은 바를 적어가며 읽었다. 해방신학자인 저자의 의견에 모두 공감했던 것은 물론아니다. 크게 정리하자면 <요한>을 포함한 성서는 환난시절에 쓰였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그 시절 유다인들은 메시아를 애타게 기다렸다. 로마에 압제에 시달리던 자신들을 구원할 메시아를 기다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지금의 한반도도 마찬가지다. 현재 한반도는 분단국이며 휴전국이다. 그런 한반도에 마치 유다인들이 그러했듯 우리를 구원해줄 혹은 그럴 수 있도록 한마음으로 바라는 '절실함'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지금 이 상황의 한반도에는 평화가, 그리고 평화의 내용을 담은 <요한>을 저자는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댓글 0 1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1
포토리뷰 [서평] 평화의 예수를 읽고...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행***활 | 2018.12.03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이 책은 해방신학자가 새롭게 해석한 <4대 복음> 해설서의 완결판이다.부활한 예수는 그를 믿고 따르는 제자들에게 평화를 선사했다.   초대교회는 예수가 주님이요 구세주요 하느님과 일치하는 분임을 소개하는 것이 선교 활동에 거의 전부였다. 그리스도론만 해설하면 예수에 대한 믿음을 초개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교회가 생긴지 어느덧 2000년이 지났다. 그동안 교회;
리뷰제목

이 책은 해방신학자가 새롭게 해석한 <4대 복음> 해설서의 완결판이다.
부활한 예수는 그를 믿고 따르는 제자들에게 평화를 선사했다.

 

 

초대교회는 예수가 주님이요 구세주요 하느님과 일치하는 분임을 소개하는 것이 선교 활동에 거의 전부였다.

그리스도론만 해설하면 예수에 대한 믿음을 초개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교회가 생긴지 어느덧 2000년이 지났다.
그동안 교회가 예수와 얼마나 멀어졌는지 하나하나 나열하기조차 어렵다.
슬픈 현실이지만 현실을 직시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수를 믿고 따르라고 하기 전에 목사, 신부, 수녀가 왜 예수와 멀리 떨어져 사는지 해명해야 한다.
그들 자신들부터 제대로 믿고 있는지 자신을 점검해야 한다.

 

 

"예수가 하는 말은 힘이 있다.
예수는 권력은 없지만 권위가 있었다.
말과 행동에서 나오는 감동과 매력이 권위의 원천이다" -63쪽

 

예수는 내부 고발자다. 침묵이 종교에서 의미 있다고 칭송되기도 하지만, 침묵만 하는 사람처럼 가벼운 사람도 없다. 침묵은 악이요 아편이다. 침묵은 힘이 있으나, 침묵만 하는 사람은 아무 힘이 없다.

 

요즘 시대에 진정한 종교인이 어디 있을까?
나도 기독교인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지만 믿을 만하고 존경할 만한 종교 지도자를 찾아 헤매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썬데이 크리스챤도 아니지만...
한때는 주일 성수를 꼭 해야 하는줄 알았던 이들이 점점 교회를 떠나는 것은 교회에 문제이다.  
이젠 더이상 숨기지 말고 드러내서 썩고 타락한 부분은 도려내어야 한다.

 

 

여러 이름 있는 교회에 타락한 종교 지도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슬퍼하는 기독교인들이 많다.
종교인이 자기 먹을 것에만 신경 쓰고 신자나 가난한 사람의 먹을 것에 신경 쓰지 않는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은 그들의 탐욕과 거짓, 욕망으로 뒤덮인 모습이 아닐진데...
그들도 처음에는 종교적으로 깨끗한 인물들이었으리라 생각해 본다.
그러다 나이가 들면서 인간적인 욕망을 다스리지 못해 추잡스럽게 무너져 내린 것이겠지.

 

 

"목사나 신부로 평생 산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예수를 따르는 사람은 아니다.
예수 이름도 모르는 사람 중에, 예수를 믿는다고 입벌려 말하지 않는 사람 중에,
심지어 죽어도 예수를 믿지 않겠다고 다짐한 사람 중에
자기도 모르게 행동으로 이미 예수를 따르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532쪽

 

 

부활한 예수는 꼭 제자들에게 나타났다고 한다.
타락한 지도자들에게도 예수가 나타나서 그들의 잘못을 꾸짓어주면 좋겠다.
그렇게 되기엔 그들의 영이 너무 타락해서 예수가 찾아와도 예수를 알아보기 어렵겠지?

 

한반도에 지금 화두는 '평화적 통일'인 것 같다.
한반도에 불기 시작한 평화의 바람.
하느님의 선물이자 우리들의 노력의 열매인 평화를 만들어가야 할 때이다.
예수가 원하는 세상과 교회는 어떤 모습일까?

<요한>에서 평화의 예수를 배우고 따라야 한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 그 길 끝에 예수가 있을 것이다.
조만간 교황이 평양을 방문하게 된다.
그 시간이 종교적, 역사적, 정치적인 시각을 떠나 고통과 분단의 기나긴 시간을 감싸주고 치유의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댓글 0 이 리뷰가 도움이 되었나요? 공감 0
왜 그들은 메시아를 기다렸을까.. 선포가 먼저일까 해방이 먼저일까.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2018.12.03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평화의 예수 (김근수, 동녘, 2018.11.5)신학은 말을 가르치지 않고 실천을 가르친다. (Facere docet Theologia, non dicere.) 『평화의 예수』를 읽으면서 다각적으로 공부가 되었고 예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이 책은 성경을 해석적 차원에서 (이해로) 평가하듯 읽은 것이 아니라 배우듯이 읽혔기 때문에 못 봤던 면과 보았던 면에 대한 깨달음과 공감이;
리뷰제목
평화의 예수 (김근수, 동녘, 2018.11.5)

신학은 말을 가르치지 않고 실천을 가르친다. (Facere docet Theologia, non dicere.)

『평화의 예수』를 읽으면서 다각적으로 공부가 되었고 예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이 책은 성경을 해석적 차원에서 (이해로) 평가하듯 읽은 것이 아니라 배우듯이 읽혔기 때문에 못 봤던 면과 보았던 면에 대한 깨달음과 공감이 유익이 되어 종교나 가르침에 대해 얻은 바가 크다. 특히나 추상적 예수가 아니라 아브라함 종교로부터 시작된 예수가 자란 삶 안에서의 인성人性과 신성神性에 대해 모세의 율법을 통한 은혜가 아니라 예수로부터 받은 일상과 평화를 (명사가 아니라) 동사, 행한 것을 말한 것 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는 보다 큰 종교적 은사로 재생再生 전해오는 바가 있다.

『왜 무엇을 위해 성서를 공부하는가? 가난한 사람을 먼저 사랑하고 역사의 희생자를 편들기 위해 성서를 공부한다. p.12』

『나는 이 책을 해방신학 관점에서 썼다. <요한>을 가난한 사람의 눈으로 보려고 애썼다. 우리 시대의 징표인 여성의 목소리도 담아내려고 애썼다. 성서학계의 연구 성과를 두루 참조하고, 한반도의 역사와 운명을 의식했다. 급변하는 한반도 상황을 몸으로 느끼며 책 제목을 《평화의 예수》라고 기쁘게 지었다. p.13』

남미에서 해방신학을 공부한 신학자 저자는 요한복음에서 강조한 ‘생명’과 ‘평화’의 의미를 알기 쉽게 설명하고자 노력했다고 한다. 또한 국내 최초로 4복음서 주석서를 모두 쓴 저자는 평화의 예수를 통해 사람들이 예수를 더욱 가까이 이해할 수 있기를 책에서 직,간접적으로 거듭 표현하고 있다. 사실 복음서 해석은 여러 면에서 쉬운 일은 아니며, 내외적으로 반가운 일 또는 어려운 일이 될 수도 있는 일인데 그의 주석은 성서신학과 해방신학적 관점에서 글을 써내려 온 것 같다.

『평화는 전쟁이 없는 상태뿐 아니라 정의 실현을 뜻한다. 한반도에 전쟁이 없어야 하고 정의가 실현되어야 한다. 한반도에 드디어 평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하느님의 선물이요, 조상의 피땀 어린 희생 덕택이다. 평화는 하느님의 선물이자, 우리 노력의 열매다. 평화를 기다리지 말고 평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P.13』

저자의 저서에서 언급하길, 바오로 사도는 ‘믿음’이라는 단어를 강조했지만 『마르코』, 『마태오』, 『루카』는 ‘하느님 나라’라는 단어를 강조한 반면 『요한복음』은 ‘생명’을 강조했다. ‘생명’이라는 단어는 매우 추상적이지만, 가난한 사람을 살리는 이야기, 전쟁의 억압 속에 있는 사람들을 살리는 이야기, 불의에 시달리는 사람을 살리는 이야기 (동사, 행동하는 이야기)는 우리 마음에 와 닿는다. 그러한 의미에서 저자가 표현한 요한복음은 21세기 한반도에 ‘평화’라는 단어를 주고 있다.

『‘가난한 사람이 보는 예수와 부자가 보는 예수는 같지 않다. 가난한 사람이 보는 복음과 부자가 보는 복음은 같지 않다. 가난한 사람이 보는 그리스도교와 부자가 보는 그리스도교는 같지 않다. 가난한 사람이 바치는 주님의 기도와 부자가 바치는 주님의 기도는 절실함이 크게 다르다. 가난한 사람의 눈으로 보면 좋겠다.’』 ? 저자의 인터뷰 중에서 (가톨릭프레스 18-11-13)

세상에는 ‘생명에 대한 사랑을 갈구하는’ 『에로스』와 ‘죽음의 욕구’인 『타나토스』가 공존한다 (프로이트)는 말에서 공감하는 생명과 죽음에 관한 욕구가 세상 안에 존재하듯 이것은 같은 목적아래 두 가지 욕구의 방법으로 들어날 때도 있다. 또는 지배계층이나 시대의 기득권자의 방향성에 따라 역사의 운명은 좌우되며 그의 기록이 남아지고 후에 평가되어 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최대의 희생과 최소의 희생이 되는 계층은 너무나 판이하게 달라지지 않는 것도 실상적이 역사일까? 역사의 역사는 반복된다. 이것은 언제쯤이나 해갈 될까? 이 즘에서 『종교의 목적』과 『하나님의 나라』는『생명과 사랑』으로 귀결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 땅의 하나님나라 안착을 말이다. 기적적으로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이 가현이 아니라 역사 실현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해방신학은 말한다. 하느님의 영광은 살아 있는 가난한 사람이다. 가난한 사람이 생명을 빼앗기지 않고 누리며, 가난한 사람이 억압받고 굶주리는 어둠이 아니라 빛인 삶이 곧 하느님이 바라시는 삶이다. 나는 창조, 생명, 빛 같은 단어가 아름답고 추상적인 단어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구체적인 단어임을 밝히려 한다. p.37』

『<요한>이 예수가 하느님을 해석한 분이라고 강조한다면, 해방신학은 가난한 사람이 예수를 해석한 사람이라고 강조한다. <요한>이 예수 안에 계신 하느님을 말한다면, 해방신학은 가난한 사람 안에 계신 하느님을 말한다… <요한>을 해방신학 관점에서 해설하려 한다. p.37』

『<요한>서문을 종교사적 모델부터 설명하는 방법도 좋다. 그러나 <요한> 저자는 왜 서문을 지금 상태로 썼을까. <요한>은 예수의 역사를 설명하고 싶었는데, 왜 서문을 천지창조 때 하느님이 하신 말씀으로 시작했을까. 두 가지 궁금증을 품고 예수의 역사에 본격적으로 다가서자. 말씀은 역사가 되었다. <요한>의 핵심은 역사다. p.37』
*여기서<요한> 저자는 <요한>과 같은 뜻으로 이해

말씀은 존재를 낳았고, 존재는 생명을 얻었다. 종교를 믿던 안 믿던 간에, 또는 종파가 어떠하던 간에 죽기 전에 알아야 할 사람 중에서 예수라는 분에 대해 어떠한 면에서 메시아(‘세상의 구원자’,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 불리 우는지 알아볼만한 가치가 있다.

우리 인류에 대표적 성인 중 예수 그를 통한 역사는 가히 대단한 일이다. 인격, 생각, 삶을 알아가고 기원전B.C(before Christ)가 예수님력으로 내려올 만큼 세계사에 영향을 끼친 분 그냥 아는것 보다 좀더 가까이 볼수 있으면 좋겠다.

좋은 것, 훌륭한 것, 아름다운 것과 함께하는 동안에 존재 또는 존재자(존재로 인한, 존재자로 인한 믿음) 하나님의 역사(역사의 영향력)는 파괴보다는 평화와 일상과 가난한 자를 보살 피는 것, 아픈 자리를 채워가는 것, 그 빈자리에 평화의 꽃이 피워나게 하는 것으로 승화 시켜야 할 몫이 예수의 사랑이자 하나님나라의 실현, 실천, 우리 인류가 배출한 뛰어난 생명의 구원자가 되지 않겠는가.

(그럴려면 예수를 잘 알고 이해해야겠다. 이건 어찌 설명해야 할지 ~ 각자의 생각의 장으로 던져 두고 싶다. 자~알)

그곳에 하나님 나라가 역사하고 임하시지 않겠는가. 역사가 보여주는 예수는 은총 그-자체 라고 이 책을 읽는 이순간 나는 말하고 싶다. 그러나 역사이고 실천이다. 그리고 그 어떠한 것으로도 평화와 사랑으로 해방해 나가야 한다. 긴 창조의 역사로부터 하나님의 복음(또는 복이 오는 기쁜 소리)자리까지. 예수님의 희생으로 해방된 자리가 평화와 복음의자리 그리고 생명(과정, 창조)의 전파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그리고 그들은 왜 메시아를 기다렸을까..

선포가 먼저일까. 해방이 먼저일까. 샬롬!
그리고 예수님을 좀더 가까이 하지 않을까. 살롬 예수!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댓글 0 이 리뷰가 도움이 되었나요? 공감 0

한줄평 (2건) 한줄평 총점 10.0

혜택 및 유의사항 ?
구매 평점5점
요한에서 단어 하나를 선택하라면 기꺼이 '평화'를! 미얀마에도 평화의 깃발이 반드시!!
이 한줄평이 도움이 되었나요? 공감 0
o*******n | 2021.04.20
구매 평점5점
내가 좋아하는 신학자 분의 책을 이제 받았다. 기쁜 마음으로 읽어봐야겠다.
2명이 이 한줄평을 추천합니다. 공감 2
d******d | 2020.01.16
  •  쿠폰은 결제 시 적용해 주세요.
1   22,500
뒤로 앞으로 맨위로 aniAlar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