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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정판 ] 문지스펙트럼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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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11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234쪽 | 214g | 120*188*20mm
ISBN13 9788932035017
ISBN10 8932035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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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즐거움이 사라져간다고 해서(다들 우리의 아들딸이, 요즘 젊은 아이들이 책읽기를 싫어한다고들 하니까), 아주 까마득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 잠시 길을 잃었을 뿐이다. / 그 즐거움은 얼마든지 되찾을 수 있다. / 다만 어떠한 길을 통해서 그 즐거움을 되찾을 수 있을지를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 p.50

우린 정말로 아이가 걱정스러웠다. 어찌나 걱정스러운지 시도 때도 없이 내 아이를 또래의 다른 아이와 시시콜콜 비교하곤 했다. / 뿐만 아니라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둔 친구 아무에게 나……가 아닌, 학교 성적이 뛰어나며 죽어라 책만 읽는다는 아이를 둔 친구에게 자문을 구해보기도 했다. / 귀가 잘 안 들리나? 난독증이 아닐까? 아예 학교에 안 가겠다고 하는 건 아닐까? 학습 장애가 있는 건 아닐까? / 별의별 검사를 다 해보았다. 청력 검사에서도 모든 게 정상이었다. 언어 치료사도 안심해도 좋단다. 심리 검사에서도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 그런데 왜? / 둔해서일까? / 단지 둔해서일 뿐이라고? [……] 우리는 ‘교육자’를 자처하지만, 실은 아이에게 성마르게 빚 독촉을 해대는 ‘고리대금업자’와 다를 바가 없다. 말하자면 얄팍한 ‘지식’을 밑천 삼아, 서푼어치의 ‘지식’을 꿔주고 이자를 요구하는 격이다. --- p.58~59

그 많던 마법의 인물들, 형제며 자매, 왕이며 왕비, 영웅들은 다들 어디로 숨어버렸을까? 무수한 악의 무리에 쫓기면서 아이의 마음을 졸이게 하고, 아이로 하여금 존재의 고민을 잊게 만들었던 그 인물들이, 졸지에 깨알같이 납작해진 문자라고 불리는 이 잉크 자국과 도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신에 가깝던 그 무소불위의 인물들이 창졸간에 점점이 바스러져 한낱 인쇄 기호로 짜부라지고 말았다는 것인가? 그렇게 해서 책이라는 물건이 된 거라면, 이 얼마나 황당한 변신인가! 마법이 반대로 걸린 것이다. 아이도 아이의 영웅들도 다 함께 말 없는 책의 어마어마한 두께 속에 갇혀버린 셈이니 말이다! --- p.61

“천만에…… 당신이 원하는 건 그게 아닐걸. 당신이 아이들에게 기대한 건, 당신이 정해준 소설을 읽고 그럴듯한 독후감을 쓰는 것, 당신이 골라준 시를 정확하게 ‘해석’하는 거 아니야? 그래서 대학 입학 자격시험에 학생들이 당신이 뽑아준 예상 문제 중에서 나온 텍스트를 능숙하게 분석해서 적절히 ‘설명’하거나, 당일 아침 시험관이 학생들의 코앞에 들이미는 문안을 칼같이 ‘요약’하기를 바라는 거잖아. 시험관도, 당신도, 부모도, 특별히 아이들이 책을 읽었으면 하고 바라는 건 아니잖아? 뭐 그렇다고 딱히 책을 읽지 않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지만 말이야. 바라는 것이라곤 어떻게든 아이가 공부를 잘해서 좋은 점수를 받는 일이지! 어른들은 성적 외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고.” --- p.95~96

그런데 독서의 즐거움, 행복한 책읽기란 과연 무엇일까? 새삼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물음이 아닐 수 없다! 우선 이제까지의 정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이제까지 우리 인격을 형성해온 책읽기란 대개는 순응하고 따르는 책읽기라기보다는, 무언가에 반하고 맞서는 책읽기였다. 즉 이제껏 우리는 마치 세상과 등지듯 현실을 거부하고 현실과 대립하기 위해 책을 읽어왔다. 그래서 때론 우리가 현실 도피자처럼 여겨지고 현실마저 우리가 탐닉하는 독서의 ‘매력’에 가려져 아득해지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우리는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는 일에 열중하고 있는 도망자, 새롭게 태어나고 있는 탈주자인 것이다. / 모든 독서는 저마다 무언가에 대한 저항 행위다. 그리고 그 무언가란, 다름 아닌 우리가 처한 온갖 우연한 상황이다. [……] 제대로 된 독서는 우리 자신까지도 포함하여 이 모든 것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한다. --- p.103~104

책 읽는 시간은 언제나 훔친 시간이다. (글을 쓰는 시간이나 사랑하는 시간처럼 말이다.) / 대체 어디에서 훔쳐낸단 말인가? 굳이 말하자면, 살아가기 위해 치러야 하는 의무의 시간에서다. / 그 ‘삶의 의무’의 닳고 닳은 상징물인 지하철이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도서관이 된 것은 아마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 책을 읽는 시간은 사랑하는 시간이 그렇듯, 삶의 시간을 확장한다. / 만약 사랑도 하루 계획표대로 해야 하는 것이라면, 사랑에 빠질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누군들 사랑할 시간이 나겠는가? 그런데도 사랑에 빠진 사람이 사랑할 시간을 내지 못하는 경우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 나도 책 읽을 시간을 내기는 좀처럼 쉽지 않다. 그렇지만 다른 일 때문에 좋아하는 소설을 끝까지 읽지 못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 독서란 사회에서 흔히 말하는 효율적인 시간 운용과는 거리가 멀다. 독서도 사랑이 그렇듯 그저 존재하는 방식인 것이다.
--- p.161~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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