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적으로 높은 하이칼라 셔츠와 넥타이 위로 흰 실험실 가운을 입은 패트릭은 (성 없이 그냥 패트릭이다) 팔짱을 낀 채 검지 하나만 그의 꼭 다문 입술에 얹은 자세로 그녀를 면밀히 분석했다. 「손님은 굉장히 긴 허리를 갖고 계시군요.」 그가 판단했다. 「그게 나쁜 건가요?」 레이철이 물었다. 그녀는 미인 대회의 수영복 심사 중에 참가자들이 어떤 기분일지를 처음으로 알 것 같았다. 「전혀요! 당신과 같은 상체를 가질 수만 있다면 살인도 저지를 여자들이 있어요. 이러면 작은 체구에는 일반적으로 맞지 않을 디자이너 브랜드의 옷들을 입어 볼 수 있다는 거예요.」 패트릭의 어시스턴트는 회색 점프수트를 입고 머리는 꼼꼼히 빗어 넘긴 젊은 남자였다. 패트릭이 그를 향해 외쳤다. 「추아아아아안! 자주색 발렌시아가와 복숭아색 클로에, 방금 파리에서 들어온 잠바티스타 발리, 그리고 마르케사 드레스 전부하고, 빈티지 지방시, 그리고 상체 부분에 마구잡이로 러플이 달린 제이슨 우를 가져와.」
딱 붙는 검은 티셔츠에 검은 데님을 입은 대여섯 명의 보조들이 폭탄 해체팀을 방불케 할 긴급함을 가지고 아틀리에 안을 바삐 움직였다. 공간 안이 바퀴 달린 행거들로 가득해졌으며 거기에는 레이철이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아름다운 드레스들이 빈틈없이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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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7일간 찰리는 아스트리드를 데리고 계속해서 쇼핑에 쇼핑을 다녔다. 그녀에게 에르메스 가방 하나와 그 시즌 최고 디자이너들의 드레스 수십여 벌, 구두 16켤레와 부츠 4켤레, 다이아몬드로 둘러진 (그리고 그녀가 사고 나서 한 번도 착용을 안 한) 파텍 필립 손목시계 하나, 그리고 디디에 아론이 복구한 아르누보 거실 램프를 사 줬다. 그들은 이어지는 쇼핑 마라톤 사이사이로 점심에는 마리아주 프레르와 다베 레스토랑에서 식사했고, 저녁에는 르 그랑 베푸르 레스토랑과 레 암바사되르 레스토랑에서 먹었으며 그 이후에는 르 팔라스 극장과 르 퀸 나이트클럽에서 화려한 새 의상과 보석 장신구들을 착장하고 밤을 즐겼다. 그 주에 파리에서 지내며 아스트리드는 자신이 오트 쿠튀르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열정도 발견했다. 그녀는 이제껏 돈이 있으나 없는 척하는 사람들, 물건을 새로 사기보다 물려받기를 선호하는 사람들, 자신들의 부를 있는 그대로 즐길 줄 모르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인생의 첫 18년을 보냈다. 그런데 찰리 우의 방식으로 돈을 써보니 진정 신났다. 솔직히 말해, 그것은 섹스보다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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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자기는 아직도 모르는 것 같아. 나는 여전히 자기에게 화가 나 있어. 자기는 나를 이곳에 데려오면서 아무것도 준비시켜 주지 않았잖아. 나는 자기를 따라 지구의 반을 돌아왔어. 그런데 자기는 우리가 여행을 떠나기 전에 아무것도 알려 주지 않았어.」
「네게 무슨 말을 해줬어야 했는데?」 닉이 진심으로 답답해하며 물었다.
「이 모든 것.」 레이철이 외치며 손으로 그들이 서 있는 호화로운 침실 전체를 가리켰다. 「네 할머니께서 잠드신 사이에 개들까지 동반한 구르카인 부대가 그녀를 지킨다는 사실, 네가 미친 다운튼 애비 같은 곳에서 자라났다는 사실, 네 절친이 인류 역사상 가장 호화로운 결혼식을 벌일 예정이었다는 사실 말이야! 네 가족에 대해, 네 친구들에 대해, 네가 이곳에서 어떻게 사는지에 대해 알려 줬어야지. 그래야 최소한 내가 무슨 일에 뛰어드는지를 알았을 것 아니야.」
--- p.248~2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