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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가의 탄생

: 자본은 어떻게 종교와 정치를 압도했는가

리뷰 총점9.2 리뷰 21건 | 판매지수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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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18년 12월 24일
쪽수, 무게, 크기 384쪽 | 692g | 153*224*30mm
ISBN13 9788960516816
ISBN10 8960516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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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뉴욕타임스, 이코노미스트, 월스트리트 저널, 뉴요커, 뉴욕 리뷰 오브 북스 추천!
유럽의 역사를 바꾸고, 자본주의의 토대를 놓은 역사상 가장 부유한 기업가의 대담한 여정

콜럼버스가 바다를 넘고 다빈치가 모나리자를 그리던 바로 그 시대. 모든 방면에서 유럽은 바뀌고 있었다. 군소 가문에 불과했던 합스부르크 가문은 전통의 강자인 프랑스를 밀어내고 스페인에서 헝가리에 이르는 제국을 건설했다. 가톨릭교회는 대금업 금지를 철폐했으며, 면죄부 판매에 반대하여 종교개혁이 촉발되었다. 복식 부기가 확산되고 무역로가 바뀌면서 한자동맹이 붕괴하고 경제 중심지가 이탈리아에서 서유럽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부르주아와 영주의 착취에 시달리던 농민과 노동자들이 투쟁을 전개했다. 그 모든 일의 중심에는 야코프 푸거가 있었다. 이 책은 바로 그 야코프 푸거의 파란만장한 삶을 담고 있다. 격동의 시대에 세계 최대의 부를 쌓았던 한 자본가의 삶과 시대를 잘 담은 평전이자, 근대 국가와 자본주의가 형성되던 근대 초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흥미진진한 역사서다.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머리말 - 9

1장 여정의 시작 - 17
2장 황제에게 꼭 필요한 존재 - 49
3장 사업의 확장 - 75
4장 금융의 마술사 - 111
5장 상인의 전투 - 125
6장 대금업의 합법화 - 143
7장 종교개혁의 불씨 - 173
8장 황제 선거 - 185
9장 승리 그리고 패배 - 213
10장 자유의 바람 - 239
11장 농민 전쟁 - 271
12장 북소리가 그치다 - 303

맺음말 - 327
후기 - 338
주 - 343
참고문헌 - 352
찾아보기 - 379

저자 소개 (2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카를은 농부의 손자인 푸거를 마음만 먹으면 불경죄로 감옥에 처넣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그는 푸거가 자신과 맞먹으려 들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성공이 누구 덕분인지 상기시킴으로써 모욕감을 더한 사실에 경악했다. 푸거는 다음과 같이 썼다. “소신이 없었다면 폐하께서는 황제관을 쓰지 못하셨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빌려드린 돈에 이자까지 계산해 지체 없이 상환토록 명하소서.”
사람들이 부자가 되는 방법에는 기회를 포착하거나, 신기술을 개발하거나, 협상에서 상대방을 이기는 것 등이 있다. 푸거는 그 모든 일을 해냈을 뿐 아니라 한 가지 기질이 더 있었기에 보다 높이 오를 수 있었다. 푸거에게는 카를에게 독촉장을 보낼 정도의 배짱이 있었다. --- p.10

막시밀리안이 멍청한 지기스문트를 꾀로 이길 수 있을 것이라는 푸거의 판단은 정확했다. 막시밀리안은 티롤을 차지하기 위한 계략을 실행에 옮겼다(기발함으로 보건대 푸거가 꾸몄을 수도 있다). 막시밀리안은 공작 영지를 담보로 지기스문트에게 돈을 빌려주었다. 지기스문트가 3년 안에 돈을 갚지 못하면 영지는 막시밀리안 차지가 될 터였다. 예상한 대로 지기스문트는 돈을 상환하지 못했다. 푸거가 그에게 돈을 빌려주었다면 빚을 갚을 수 있었겠지만, 푸거는 지기스문트보다 야심가 막시밀리안을 고객으로 더 선호했기 때문에 돈을 빌려주지 않았다. 푸거가 비열하게 처신했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는 지기스문트가 젊고 유능한 막시밀리안의 상대가 되지 못함을 간파했다. 지기스문트를 후원하는 일은 의미 없는 충성이었을 것이다. --- p.47

푸거는 시장 정보를 너무나 갈망한 나머지 정보를 가장 먼저 접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기까지 했다. 그가 무엇을 만들었느냐고? 바로 세계 최초의 뉴스 서비스다. 푸거는 통신원을 곳곳에 파견했다. 이들은 시장 정보, 정치 소식, 최신 풍문 등 푸거에게 이익이 되는 정보라면 무엇이든 가지고 아우크스부르크로 달려왔다. --- p.60

푸거가 헝가리에서 은과 구리 광석을 가득 실은 수레를 안트베르펜으로 보내면 그곳에서 배에 실어 리스본으로 보냈다. 포르투갈은 후추로 값을 치렀기 때문에 푸거는 유럽 제일의 향신료 도매상이 될 수 있었다. 푸거가 폭리를 취한다거나 독점을 한다거나 (무엇보다) 유대인이라고 중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향신료 무역을 하면서는 ‘후추 자루’라는 별명도 생겼다. 푸거의 후추 거래는 광산업 활동보다 더 두드러졌으며, 많은 이들은 후추가 그의 주력 사업인 줄 알고 있었다. --- pp.91-92

푸거는 오랫동안 이탈리아가 독점한 교황청 금융업에 진출하려고 시도했으나 성공을 거둔 것은 칭크가 로마에 도착한 뒤였다. 칭크는 전임자와는 다른 방식으로 사업을 따냈다. 그는 비용과 서비스 품질을 내세운 것이 아니라 뇌물과 선물로 교황청 고위급 인사들의 환심을 샀다. 그는 교황 선거 운동에 기부하고 메카우의 자금책이 되면서 바로 최상층에 연줄을 댔다. 칭크가 로마에 도착한 지 몇 해 지나지 않아 푸거는 교황청의 주거래 은행가가 되었다. 이는 칭크가 성사시킨 일로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다. --- p.122

푸거가 교황 레오에게 보낸 편지가 효력을 발휘했다. 레오는 토론회 장소에 대한 이의를 묵살했으며, 같은 해에 아리스토텔레스와 고대 사상가들의 견해와는 정반대로 이자 부과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교황 칙령에 서명했다. “고리대금은 본성상 불모인 것에서 얻는 이익, 즉 노동이나 비용, 위험 없이 얻는 이익을 일컬을 뿐이다.” 돈은 소와 다르다거나 돈에서는 젖이 나오지 않는다는 등의 이야기는 이제 논란거리가 되지 않았다. 노동, 비용, 위험이 결부되면 불모가 아니므로 이자를 부과하는 행위는 합법적이었다. --- p.159

사업을 물려받은 레오는 성 베드로 대성당이 면죄부 자금 조달에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다. 베드로는 12사도 중 한 명으로 교회를 세웠으며 그리스도를 위해 순교한 인물이다. 그에게 걸맞은 안식처를 바친다는데 누가 거부하겠는가? 레오는 성 베드로 대성당 면죄부를 공식 발표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이 면죄부는 푸거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교황과 푸거는 푸거 궁에서 돈을 나누기로 은밀히 모의하고 절반은 성 베드로 대성당이, 나머지 절반은 푸거가 갖기로 했다. --- pp.179-180

베르게스는 카를이 무조건 푸거에게 돈을 빌려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베르게스는 “마마, 푸거로 말하자면 폐하께서는 좋든 싫든 그와 손을 잡으셔야 합니다. 선거후들은 푸거 이외에는 누구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한 뒤 카를이 처음부터 푸거를 활용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처음부터 이렇게 했으면 폐하의 이익과 사업 발전에 크나큰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사방에서 카를을 압박했다. 선거 관리 위원들은 카를에게 쓴 글에서 선거후들이 “푸거 이외에는 어떤 상인도 신뢰하지 않으며, 편지와 인장도 받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 p.220

카를이 스물다섯 살이 된 2월 24일, 프랑수아는 기병대의 공격을 진두지휘했으나 포병대와의 거리가 너무 벌어지고 말았다. 한 세기 전 샤를 6세는 아쟁쿠르 전투에서 프랑스 역사상 최악의 패전을 겪었는데, 공작 셋, 백작 여덟, 자작 하나, 주교 하나가 영국의 큰 활에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파비아 전투는 전사자가 적었지만 황제군이 프랑수아를 사로잡아 더 치명적이었다. 가권정치로 보자면 외통장군을 부른 셈이었다. 이날 승리의 주역은 푸거의 자금이 아니라 페스카라의 용맹이었다. 하지만 푸거가 자금을 지원하지 않았다면 전투 자체를 벌이지 못했을 것이다. --- p.266

최후의 농민군은 2만 3000명에 이르는 사상 최대 규모였다. 이들은 켐프텐의 스위스 국경 근처에 집결했다. 트루흐제스는 잉골슈타트에서 아우크스부르크를 거쳐 그곳으로 갔다. 수적으로 열세였으나 농민 지휘관 2명을 매수해 전세를 역전시켰다. 이 2명의 배신자는 농민들에게 늪 뒤의 안전지대에서 나와 평지에 집결하라고 명령했다. 트루흐제스는 수천 명의 농민을 도륙했다. 푸거는 과거의 수많은 투자와 마찬가지로 트루흐제스에 대한 투자에서도 성과를 거두었다. --- p.287

푸거가 묘비명에서 “어마어마한 부의 획득 면에서 으뜸이요”라고 말한 것이 바로 이 순자산이다. 금액은 202만 플로린에 이르렀다. 푸거 이전의 사업가가 유럽 표준 통화로 100만 이상의 가치를 보유했을지도 모르지만 이를 기록으로 남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메디치 가문이나 (적어도) 그들 은행의 재무제표가 사실이더라도 그 금액은 5만 6000플로린을 넘지 않았다. 따라서 푸거야말로 최초의 백만장자라고 할 수 있다. --- pp.315-316

히틀러는 대리석 흉상을 덮은 나치스 깃발을 관료들이 걷어 내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레겐스부르크는 체코 국경에서 8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프라하의 봄 1년 전인 1967년 발할라는 처음이자 유일한 사업가를 맞이함으로써 주위 공산국가들을 조롱했다. 야코프 푸거는 묘비명에서 자신이 “어마어마한 부의 획득 면에서 으뜸이었”으며, 불멸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자격이 있다고 선언했다. 500년 가까이 걸리기는 했지만 관료들이 푸거의 흉상을 제막해 그를 독일 신들의 전당에 모심으로써 푸거의 선언은 마침내 이루어졌다.
--- p.337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세계사의 궤도를 바꿔놓은 역사상 가장 부유한 기업가의 대담한 여정
세계사에서 가장 중요한 자본가를 한 명만 꼽는다면 누구일까? 미켈란젤로를 후원한 메디치? 국제적 금융 네트워크를 구축한 음모론의 단골손님 로스차일드? 석유왕이자 세계 최고의 부자로 꼽히는 록펠러? 이들 모두 역사에 이름을 남길 만한 부자였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축적한 부로도, 역사에 끼친 영향으로도 이들을 넘어서는 사람이 하나 있다. 바로 야코프 푸거다.
군소 가문에 불과했던 합스부르크 가문의 부상, 가톨릭교회의 대금업 금지 철폐, 면죄부 판매와 종교개혁, 한자동맹의 붕괴, 복식 부기의 전파, 경제 강국의 판도 변화, 자본가와 노동자의 갈등 격화. 15~16세기 유럽에서 일어났던 이러한 굵직한 사건들을 거치면서 점차 유럽은 근대 자본주의 사회로 나아가게 된다. 이 모든 일의 중심에 한 사업가가 있었으니 바로 야코프 푸거다. 야코프 푸거는 그 역사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그간 국내는 물론이고 영어권에서도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다. 이 책은 영어권에서 푸거의 삶과 시대를 충실하게 소개했다는 평을 받으며 2016년 출간 당시 《뉴욕 리뷰 오브 북스》 《뉴요커》 《뉴욕 타임스》 《월스트리트 저널》 《이코노미스트》 등 각종 언론 매체의 주목을 받았다.

이자 대신 권리를 받아 부를 쌓다
야코프 푸거가 가업을 물려받을 때만 해도 푸거가는 직물 매매를 주력으로 삼아 크지도 작지도 않은 사업을 운영하고 있었다. 유럽 최고의 부자로 거듭난 발판 중 하나는 투자에 가까운 채권 방식의 대출이었다. 푸거는 종종 돈을 빌려주고 그 대가로 이자 대신 권리를 받았는데, 이것이 성공하려면 막대한 이익을 낳는 권리를 알아봐야 했다. 무역이 활발해지고 전쟁이 빈발하던 르네상스 시대에 가장 가치가 높은 권리가 무엇인지 푸거는 일찌감치 꿰뚫어보았다. 바로 은과 구리 광산의 채굴권과 소유권이었다.

신대륙이 발견되기 전까지 유럽 최대의 은광 도시는 슈바츠였다. 당시 이 지역은 흥청망청한 생활로 유명한 지기스문트 대공이 통치했는데, 그는 베네치아에 물어야 하는 배상금 때문에 막대한 금액을 빌려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사치스러운 생활로 기존에 진 빚을 제대로 갚지 않고 있었던 탓에 누구도 그에게 돈을 빌려주려 하지 않았다.

푸거는 이 상황을 이용했다. 그는 가문의 재산과 주변 지인들의 자금까지 합쳐서 배상금에 상응하는 금액을 빌려주는 모험을 택했다. 그 대신 상환할 때까지 슈바츠의 모든 수입을 갖기로 하는 등 여러 조건을 내걸었다. 지기스문트가 이 조건들을 지키면 푸거는 막대한 이익을 얻을 수 있지만, 높은 지위를 이용해 무시해버리면 파산할 터였다. 지기스문트는 이후에도 돈을 빌리기 위해서 조건을 지켰고 그 결과 푸거는 막대한 부를 쌓았다. 다른 은행가들이 불공정 거래라며 계약 파기와 재협상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지기스문트는 이미 푸거의 편이 되었기 때문이다(38~43쪽).

거대 자본을 장기 투자하여 신사업을 개척하다
지기스문트에게 돈을 빌려주어 막대한 은을 손에 쥐게 된 푸거는 막대한 여유 자금을 확보했다. 어딘가에 이 돈을 투자해야 했다. 가장 간단한 일은 기존에 하던 직물 매매 사업을 확장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직물 매매는 경쟁이 심했고 부가가치도 많지 않았다. 푸거가 눈을 돌린 곳은 구리였다. 구리는 16세기 전쟁의 핵심인 대포와 소총의 주원료였기에 독점할 수만 있다면 막대한 이익을 기대할 수 있었다.

누구도 이 사업에 쉽게 뛰어들지 못한 이유는 그만한 위험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일단 막대한 투자금이 들어갔다. 침수 광산을 복구하고 구리를 채굴하여 가공하려면 각종 시설과 공장이 필요했고, 용광로와 광산을 잇는 도로도 놓아야 했다. 이런 공사는 모두 시간이 오래 걸리니 당연히 투자금을 회수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더 큰 문제는 규모가 큰 구리 광산이 주로 오스만 튀르크의 침공이 빈번한 헝가리에 있었다는 것이다. 여건이 악화되면 삽시간에 사업이 망할 수도 있었다.

푸거는 독일왕 막시밀리안의 재능과 야심을 높게 사 그에게 많은 대출을 해준 상태였다. 막시밀리안은 푸거의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빈을 수중에 넣고 헝가리까지 침공해 들어갔다. 푸거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이탈리아, 독일, 오스트리아, 헝가리를 잇는 아르놀트슈타인을 매입하여 당시 가장 큰 구리 가공 공장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막시밀리안이 독일 상인들에게 문호를 개방하는 평화 조약을 체결하자 헝가리로 넘어가 구리 광산을 매입했다.

여기서 푸거는 투르조 야노시와 동업을 선택한다. 투르조는 침수 광산 복구와 은과 구리를 분리하는 공정의 전문가였다. 그러나 푸거가 보기에 더 중요한 것은 그의 혈통과 인맥이었다. 투르조는 오스트리아인이었지만 조상이 헝가리 출신이라 현지인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으며 헝가리 국왕과도 관계가 원만했다. 푸거는 투르조와 수익을 반씩 나누기로 합의하였고 혼맥을 통해 관계를 돈독히 했다(51~56쪽).

막시밀리안에게 해준 대출, 투르조와의 동업, 과감한 장기 투자로 푸거는 누구도 생각하기 힘들었던 규모의 구리 사업을 성사시켰고 그것이 가져다 준 부는 그를 교황과 황제까지 압도하는 막강한 자본가로 거듭나게 했다.

가톨릭교회의 성서 해석을 바꾸어 금융의 문을 열다
15세기까지도 여전히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던 교회는 돈이 돈을 낳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과 ‘되받을 생각을 말고 꾸어 주어라(누가복음 6장 35절)’ 같은 성경 구절에 근거해 이자를 물리는 것을 죄악시하고 고리대금을 금지했다. 물론 교황, 추기경, 주교, 왕 모두가 돈을 빌렸고 빌린 것보다 많은 돈을 갚고 있었으니 고리대금 금지법은 무용지물에 가까웠다. 그러나 푸거 같은 사업가들이 주도권을 쥐는 새로운 경제 체제에 저항하기 위해 많은 지식인들이 고리대금 금지에 의존했다.

푸거를 견제하려는 사람들은 예금주에게 5퍼센트의 이윤을 약속하는 아우크스부르크 계약을 문제 삼고 있었다. 푸거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진작부터 후원하던 신학자들을 동원했다. 제바스티안 일중은 대부자가 차입자처럼 파산의 위험을 감수한다면 계약이 유효하다고 주장했고, 젊은 신학자 요하네스 에크는 대부자가 차입자에게 일부러 피해를 주려고 하는 경우는 고리대금이지만 정당한 사업적 이익을 추구하는 경우는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푸거는 신학자들의 힘에만 의존하지 않았다. 그는 교황 레오 10세를 직접 움직였다. 푸거는 레오 10세에게 알 수 없는 내용의 서신을 보냈고 얼마 후 교황은 이자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교황 칙령에 서명했다. “고리대금은 본성상 불모인 것에서 얻는 이익, 즉 노동이나 비용, 위험 없이 얻는 이익을 일컬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돈을 빌려줄 때 노동, 비용, 위험 없이 이자를 부과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 이제 금융은 종교의 굴레에서 벗어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149~160쪽). 왜 레오 10세는 푸거의 손을 들어주었을까? 레오 10세가 이탈리아 굴지의 금융가인 메디치 출신이기 때문일 수도 있고, 시대가 급변해 교리에 대한 해석이 달라진 탓일 수도 있다. 그러나 푸거가 교황, 주교, 신학자, 귀족들을 상대로 했던 막대한 로비도 무시할 수 없는 이유였을 것이다.

면죄부 판매의 배후가 되어 종교개혁을 촉발하다
역사 시간에 종교개혁을 배우면서 항상 듣는 말이 있다. 교황청의 부패, 성직자의 탐욕, 교회의 세속화 등에 분노한 마르틴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작성하면서 종교개혁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종교개혁의 뒤에도 푸거가 있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1514년 우리엘 폰 게밍겐이 사망하면서 마인츠 대주교 자리를 놓고 경쟁이 붙었다. 마인츠 대주교 자리는 신성로마제국의 일곱 선거후 중 의제를 결정할 권한이 있고 황제도 함부로 할 수 없었기에 눈독을 들이는 이들이 많았다. 팔츠의 선거후, 막시밀리안, 호엔촐레른 가문의 알브레히트가 각자의 후보를 내세우며 맞붙었다. 알브레히트는 자기 자신이 입후보했는데 객관적인 조건에서는 가장 승산이 없었다. 스물네 살밖에 되지 않았고 대학 학위도 없었으며 이미 할버슈타트의 주교여서 규정상으로도 부적격이었다. 푸거는 그런 알브레히트에게 돈을 빌려주었다.
대금업을 합법화한 교황 레오 10세는 돈을 많이 쓰는 교황이었다. 호화로운 대관식을 거행해 교황청 금고를 거덜 냈고, 그가 주최한 파티에서는 매춘부가 추기경을 모시고 하인들이 금 쟁반에 음식을 날랐다. 그런 그에게 알브레히트가 마인츠 대주교 자리에 눈독을 들인다는 것은 때맞춰 찾아온 절호의 기회였다. 알브레히트는 푸거에게 돈을 빌려 레오 10세의 임명 승인을 받기 위해 로마로 향했다. 그러나 다른 주교들의 반대로 대주교 자리의 가격은 더 치솟았고, 교황은 교황청 계좌가 아니라 자신의 계좌로 입금하기를 원했다. 알브레히트는 푸거에게 더 많은 돈을 빌려 결국 대주교 자리를 따냈다.

알브레히트는 이제 빌린 돈을 갚을 방법을 궁리해야 했다. 이때 나온 아이디어가 바로 면죄부 판매였다. 교황은 성 베드로의 후계자이자 신의 지상 대리인이었기에 죄를 용서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라틴어로 써서 교황인을 찍은 편지 하나면 죄를 용서받을 수 있었다. 이 ‘편지’가 훗날 면죄부라 불리게 되는 것인데 알브레히트가 이를 돈을 받고 파는 아이디어를 내놓은 것이다. 교황은 당연히 좋아했다. 그러나 면죄부를 팔아서 벌어들인 돈을 푸거에게 갚는 것은 신자들의 반발을 살 수 있었다. 핑곗거리를 찾아야 했고, 그것이 바로 성 베드로 대성당이었다. 교황과 푸거는 푸거 궁이라 불리는 그의 집에서 돈을 나누기로 모의하여 절반은 성 베드로 대성당이 나머지 절반은 푸거가 갖기로 했다(175~180쪽). 그 뒤는 익히 알려진 대로다. 루터는 격분하여 95개조 반박문을 썼다. 루터는 마인츠 대주교 알브레히트를 설득하기 위해 편지를 보냈는데, 바로 그가 면죄부의 원흉임은 몰랐으리라.

르네상스 시대 왕좌의 게임을 좌지우지하다
신성로마제국의 헌법인 금인칙서에 따르면 황제 자리는 반드시 선거를 치러야 했지만 그간에는 유명무실했다.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없었기에 황제가 지명하여 물려줄 수 있었다. 그러나 막시밀리안 1세가 군사적 재능과 푸거의 자금력을 바탕으로 신성로마제국의 위상을 높이자 상황이 백팔십도 달라졌다. 프랑스 왕 프랑수아가 경선에 참여했다. 스페인 왕인 카를이 신성로마황제가 되면 여러모로 위험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스페인 왕과 프랑스 왕이 선거에서 경쟁하게 되었다. 이는 황제 선거에 표를 행사하는 선거후들에게는 한몫 잡을 절호의 기회였다.

카를이 이 선거를 이기려면 충분한 선거 자금을 마련해야 했다. 그간 합스부르크 가문을 지원한 푸거는 좋은 거래 대상이었지만 카를이 도움을 받을 곳은 그 외에도 많았다.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은행가들도 있었고, 아우크스부르크 경쟁자인 벨저 가문도 있었다. 그러나 푸거는 이 선거를 그냥 놓칠 생각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 지었던 푸거 궁과 성 안나 교회의 푸거 예배당을 활용했다.

선거가 본궤도의 오른 시점에 이탈리아 추기경인 아라곤의 루이지가 8개국 48개 도시를 둘러보는 대장정의 일환으로 아우크스부르크를 향하고 있었다. 푸거는 루이지가 여행 중에 보고 들은 것을 카를에게 고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그를 왕족처럼 대접했다. 푸거 궁을 보여주고 푸거 예배당으로 안내했으며 만찬도 열어주었다. 푸거의 생각은 적중했다. 루이지의 서기 베아티스는 푸거의 재력을 칭송했다. 푸거의 재력과 홍보 전략은 그를 선거후들이 신뢰하는 유일한 은행가의 지위로 올려놓았다.

선거후들이 신뢰하는 은행가가 푸거였기에 선거에서 이기려면 푸거를 잡아야 했다. 푸거는 전령을 파리로 보내 프랑수아와도 거래할 의사가 있음을 카를에게 보여주었다. 프랑수아가 푸거에서 손을 내밀자 푸거는 그 조건을 합스부르크 가문에 흘렸다. 카를이 푸거를 잡으려면 프랑수아보다 좋은 조건을 걸어야 했다. 카를은 선거후들의 압력에게 이기지 못하고 결국 푸거에게 돈을 빌렸다. 그 대가로 푸거는 여러 가지를 받았는데, 그중 하나는 인쇄기 통제권이었다. 언론의 자유가 푸거의 수중에 들어간 것이다(200~207쪽, 215~225쪽).

역사의 행로를 바꾸고 자본주의의 상징이 되다
1525년 독일에서는 유럽 역사상 최대의 대중 봉기가 발발했다. 수많은 마을이 불에 타고 10만 명이 목숨을 잃은 이 사건은 훗날 독일 농민 전쟁으로 불리게 되며 엥겔스는 이를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대결의 전초전이라고 평가했다.

독일 농민 전쟁의 계기를 푸거가 제공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가 대중의 미움을 받고 있었던 것은 분명했다. 유럽을 휩쓰는 급속한 변화에 진저리가 난 노동자들은 푸거를 표적으로 삼았다. 그가 운영한 광산은 근무 조건이 열악하기로 유명했고, 울리히 폰 후텐 같은 문필가들이 푸거를 공격하면서 그에 대한 대중의 악감정은 더욱 깊어졌다. 슈바르츠발트 성에서 시작된 전쟁은 점차 확산되어 푸거의 근거지인 아우크스부르크와 그의 영지인 바이센호른까지 위협했다.

페르디난트 대공과 게오르크 폰 트루흐제스가 농민군에 맞섰지만 그들에게는 용병을 고용할 자금이 충분치 않았다. 전황이 불리했기에 누구도 돈을 빌려주려 하지 않았다. 푸거는 생각이 달랐다. 그는 트루흐제스가 반란 세력을 물리치지 못하면 자신의 사업은 물론이고 목숨도 위태로울 수 있다고 판단하여 페르디난트 대공에게 대출을 해주었다. 그의 선택은 옳았다. 트루흐제스는 능력 있는 지휘관이었고, 고용한 용병과 탁월한 계략으로 농민들을 격파해 나갔다.

농민 지도자 중 가장 위협적인 인물은 토마스 뮌처였다. 대부분의 농민 지도자들이 지역 문제에 집중했던 것과는 달리 그는 엄청난 호소력을 발휘해 농민들을 결집했다. 트루흐제스는 서부에서 전쟁 중이었기 때문에 동부에서 봉기한 뮌처를 어찌할 수 없었다. 이때 나선 것이 푸거의 고객이자 친구인 브란덴부르크의 게오르크 공작이었다. 푸거의 지원을 받은 게오르크는 다른 두 공작과 합세해 뮐하우젠에서 뮌처를 공격하여 승리를 거두었다(273~285쪽). 독일인들이 푸거를 어떤 인물로 생각하는지는 냉전이 한창이던 시절 서독과 동독 정부가 보여준 행동에서 알 수 있다. 동독이 5마르크 지폐에 토마스 뮌처의 초상화를 새겨 넣었을 때 서독은 푸거의 우표를 발행했다. 푸거를 공산주의의 파도로부터 유럽을 지켜낸 인물로 생각했던 것이다.

종교와 정치를 압도한 자본가의 탄생
푸거가 역사에 남긴 것은 앞에서 소개한 굵직한 사건들만이 아니다. 푸거는 베네치아에서 습득한 복식 부기를 개량해 알프스 이북에서 활용했다. 그는 근대적인 회계를 가르치고 전파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또한 정보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역사학자들이 ‘푸거 뉴스레터’라고 부르는 정보망을 구축했다. 이처럼 탁월한 투자 감각, 일을 추진하고 성사시키는 수완, 기회를 놓치지 않고 활용하는 배짱 등을 두루 갖추고 있던 푸거는 가히 오늘날 자본가의 원형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무엇보다 그는 종교와 정치 권력의 위세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하던 시절에도 돈 앞에선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왕이든, 황제든, 귀족이든, 교황이든 빚을 졌으면 갚아야 하는 동등한 인간일 뿐이었다.

푸거는 오직 부를 추구한 삶을 살았다. 그랬기에 과거의 가치와 제도들을 무너뜨리고 기존에는 불가능한 사업을 성사시키는 혁신가의 면모를 보일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누구보다 성공했고 그것이 신이 자신에게 내린 재능을 드러낸다고 믿었다. 그는 오늘날 자본가의 전형이 되었으며 그의 삶은 근대 국가와 자본주의가 태동한 시기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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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있었던 일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재미있다. 저자의 탄탄한 조사와 맛깔난 글 솜씨도 일품이다. 한 사람의 삶을 읽었을 뿐인데 야금학에서 중상주의까지 르네상스 시대에 떠오르던 새로운 산업의 양상과 이제 막 형성되고 있던 근대 국가의 모습을 모두 알게 되었다. 그 중심에는 리스크를 재고 파산의 위험을 극복해간 영리한 사업가 (야코프 푸거가 있다. 먼 과거의 사업가지만 어떤 측면에서 보면 오늘날 비즈니스 세계에 더 잘 어울린다.
- 로저 로웬스타인 (『천재들의 머니게임』 저자)

푸거는 재계의 마키아벨리였다. 그는 세계가 ‘어떠해야 하는지’가 아니라 ‘어떠한지’를 보았다. 빨려 들어갈 만큼 흥미진진한 이야기 안에는 고객에게는 꼭 필요한 존재가 되고 (적에게는 무자비한 냉혈한이 되는 사업가의 전형이 담겨 있다.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과 부를 쌓는 일에 관심 있는 사람 모두 필히 이 책을 읽어야 한다.
- 브라이언 버로,『문앞의 야만인들』 저자)

야코프 푸거는 역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금융가 중 하나였음에도 오랫동안 베일에 싸여 있었다. 마젤란의 항해에 투자했던 선지자이자 마르틴 루터와 대적했던 문제적 인간을 이해하고 싶다면 이 책을 읽으면 된다. 스타인메츠의 이야기는 명료하면서 동시에 사람을 사로잡는다. 읽어라. 더 부유해질 것이다.
- 로런스 버그린『세상의 끝을 넘어서』 저자)

야코프 푸거는 르네상스 시대의 록펠러였다. 이 천재적인 자본가가 마침내 뛰어난 영어권 저자를 통해 소개되었다. 스타인메츠는 박진감 넘치게 사업 이야기 (종교 분쟁 (정치적 암투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폭력적인 투쟁들을 풀어낸다. 이 책은 시대를 가리지 않고 읽을 가치가 있지만 (특히나 우리 시대에 꼭 필요한 책이다.
- 제임스 그랜트 『잊힌 위기』 저자)

읽기 편하고 지루할 틈이 없다.
- 『월스트리트 저널』

푸거의 이야기에서 드러나는 그의 열망과 가차 없음과 탐욕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 『이코노미스트』

자본주의가 통제되지 않을 때 (특히 독재적인 지도자가 통지하는 경제에서 그러할 때 어떤 양상이 나타날 수 있는지 흥미롭게 잘 보여준다.
- 『뉴욕타임스』

스타인메츠는 근대 비즈니스와 유럽의 경계를 조형했던 한 사람의 이야기를 탁월하게 풀어낸다.
『뉴요커』

회원리뷰 (21건) 리뷰 총점9.2

혜택 및 유의사항?
[교육진담TV 수요독서] 그레그 스타인메츠 / 자본가의 탄생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박*진 | 2021.03.23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2분 퀵서비스 여러분의 기억 속으로 책을 배달해드리는 2분 퀵서비스! 농부로 사는 삶에 지쳐 도시로 이사간 할아버지 푸거는 농사 대신 옷감을 만들어 팔아 성공을 거둡니다. 아버지 푸거는 이 사업을 더욱 확장하고, 옷감 장사로 확보한 돈을 바탕으로 금융업에 진출하기로 합니다. 푸거 가문 사업의 금융 부문을 도맡게 된 사람은 아버지 푸거의 7형제 중 막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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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분 퀵서비스
여러분의 기억 속으로 책을 배달해드리는 2분 퀵서비스!

농부로 사는 삶에 지쳐 도시로 이사간 할아버지 푸거는 농사 대신 옷감을 만들어 팔아 성공을 거둡니다. 아버지 푸거는 이 사업을 더욱 확장하고, 옷감 장사로 확보한 돈을 바탕으로 금융업에 진출하기로 합니다. 푸거 가문 사업의 금융 부문을 도맡게 된 사람은 아버지 푸거의 7형제 중 막내아들인 야코프 푸거입니다. 처음엔 가문의 여러 사업 중 가장 작고 하찮은 부문이어서 막내아들에게 그 몫이 돌아갔지만, 야코프 푸거는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순식간에 유럽 최고의 금융인으로 거듭납니다.

왕들의 토지와 현물자산을 담보로 잡아 대출을 해주며 인플레이션을 이용해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회계 방식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사업투명성을 확보했으며, 유럽 전체에 걸쳐 정보망을 구축해 남들보다 한 발 앞서 자금을 투자하거나 회수해 재산을 불려나갔으며, 무엇보다도 종교와 구시대적 윤리에 얽매여 금지돼있던 이자라는 영역을 합법화해 현대적 의미의 금융을 만들어낸 사람. 반면 가치관의 혼란이라는 틈을 비집고 들어가 정경유착, 독점, 카르텔 형성, 분식회계 등 온갖 비리와 부정과 꼼수를 동원해 오로지 돈 버는 것 자체만을 추구했던 사람. 일종의 유럽판 허생전이라고 할 만할, 격동의 시대를 자신이 가진 자원과 능력으로 뚫고 나가고자 했던, 어쩌면 지금 우리의 모습과 흡사한 근대적인 또는 현대적인 인간의 탄생과 생애를 볼 수 있는 책이 바로 이것입니다.

 


2종 보통 키워드
꼼꼼하게 책을 읽은 당신을 위해 핵심을 짚어드리는 2종 보통 키워드입니다.

이 책의 키워드는 ‘경제사’입니다.

아마 이 방송을 들으시는 학부모 청취자분들께는 역사라는 단어의 의미는 거의 정치사와 일치할 것입니다. 고려니 조선이니 왕조 이름이나 왕 이름을 달달 외우고 집권세력의 교체와 관련된 사건을 시험에 나오는 중요한 사건으로 배우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새 학생들이 배우는 역사 교과서는 그 차원을 약간 벗어나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진행된 역사라는 개념에 대한 학계의 관점의 변화가 반영된 결과, 경제, 문화, 일상, 소수자 등 아주 다양한 영역이 역사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학생 청취자분들께는 공부할 거리가 늘어나서 조금 안타까운 현상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폭넓은 역사의 영역 가운데 가장 주목받고 중요한 분야를 꼽으라면 단연 경제사입니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물건의 종류와 생산 및 거래 방식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아는 것만큼 그 시대 사람들의 삶을 가장 잘 꿰뚫어볼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특히 경제사 연구에서 재미있는 부분은 국내총생산이나 통화유통량 같이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경제지표로 과거를 재해석해내는 것입니다. 그 시대의 기록을 그야말로 영혼까지 끌어모아 당시 경제상황을 재구성하고, 짧게는 200년에서 길게는 500년에 이르는 경제지표 장기통계를 작성합니다. 몇 년 전 화제를 일으켰던 경제학 책인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도 이런 장기통계를 분석한 결과물이었죠. 경제사 연구는 지금까지 역사 과목에서 소홀했거나 보지 못했던 부분을 밝혀줄 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 시대의 경제 현상을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도움을 주는 유용한 교훈을 주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역사에 관심이 있는 학생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하고 대학에서 깊게 공부해 볼 만한 분야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푸거가 살았던 르네상스 시기는 이러한 현대적 의미의 경제체제가 잡히는 시기, 다시 말하면 현대적인 의미의 경제사가 시작되는 시점입니다. 법적으로 이자가 허용되며 금융업이 시작되고, 이익 자체가 최고의 목적이 되는 행위 양식 즉 투자라는 행위와 그 주체인 기업-기업가가 탄생하고, 종교에서 비롯된 도덕적 독단을 벗어난 세속적 인간이 등장하면서 경제적 행위가 역사의 전면으로 나오는 순간이죠. 야코프 푸거의 일대기는 이 순간을 대표하는 이야기로 손색이 없습니다.

이렇게 ‘경제사’와 관련해서 재미있는 여담을 하나 해보자면, 이런 ‘경제사의 시작’의 정점인 세계적인 무역 네트워크의 형성 즉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발견과 유럽인의 동아시아 진출이 아이러니하게도 야코프 사후 푸거 가문의 몰락을 재촉합니다. 푸거 가문의 부는 유럽 내에서 은 광산을 모두 독점한 데서 나왔는데, 남아메리카와 일본에서 은이 쏟아져 들어와 은값이 폭락했기 때문이죠. 당시 전세계의 은 생산량 가운데 2/3는 볼리비아의 포토시 은광에서, 1/3은 일본에서 나왔다고 하죠. 이렇게 일본의 은 생산이 폭증한 주요 요인 중 하나는 조선에서 대접받지 못한 제련업자들이 일본에 기술을 수출했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조선의 기술이 유럽 최고 부자의 몰락의 원인이라니, 이것이야말로 현대적 의미의 경제가 시작됐다는 가장 분명한 증거 아닐까요?

 


2제 아이랑 투게더
더 재미있게 읽을 당신에게 보내는 애드온 서비스, 2제 아이랑 투게더입니다.

제가 추천드리는 콘텐츠는 제리 브로턴의 <르네상스>입니다. 푸거가 살았던 시기를 우리는 흔히 르네상스라고 부르는데, 이 시기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유럽 몇몇 지역의 미술사나 사상사쪽에 치우쳐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 빈치, 미켈란젤로, 마키아벨리는 다들 아시잖아요? 그러나 이 격변의 시기를 살펴보기 위해선 더 넓은 맥락과 관점으로 접근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너무 두꺼운 벽돌같은 책이 부담스럽다면, 이 <르네상스>라는 책이 좋을 거라 생각합니다.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에서 내는 “아주 짧은 입문서” 시리즈는 우리 수요독서의 전 시즌에서도 두어 권 다룬 적이 있는데, 이 시리즈 중 한 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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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자본가의 탄생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w******a | 2020.04.08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자본가의 탄생자본은 어떻게 종교와 정치를 압도했는가경제에 관한 강의를 듣다보면 언제부터 자본주의가 시작됐고 중세시대든 언제든 어떻게 시작 됐는지 궁금해 진다. 그리고 자주 듣게 되는 이름 '야코프 푸거'언젠가 어떤 강의에서 야코프 푸거에 대해서 듣고 나서 어떻게 살았는지 그의 삶이 궁금해 졌다. 자본의 탄생에서는 야코프 푸거에 대해서 소설 형식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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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가의 탄생

자본은 어떻게 종교와 정치를 압도했는가


경제에 관한 강의를 듣다보면 언제부터 자본주의가 시작됐고 

중세시대든 언제든 어떻게 시작 됐는지 궁금해 진다. 

그리고 자주 듣게 되는 이름 '야코프 푸거'

언젠가 어떤 강의에서 야코프 푸거에 대해서 듣고 나서 

어떻게 살았는지 그의 삶이 궁금해 졌다. 

자본의 탄생에서는 야코프 푸거에 대해서 소설 형식으로 

딱딱하지 않게 야코프 푸거의 삶을 이야기 한다. 

이전에 유럽사 강의를 한번 들어놔서 그런지

여러모로 공부도 되고 흥미로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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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세상 위에 군림하다 - 야코프 푸거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q*****2 | 2020.04.01 | 추천1 | 댓글0 리뷰제목
권력 위에 자본이 있다는 말을 실감할 때가 잦다. 돈이 있는 사람들은 목에 한껏 힘을 주고 다닌다. 그들은 잘못을 저질러도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무엇인지를 만천하에 알리며 위풍당당함을 뽐낸다. 탄탄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위정자들 위에 군림하기도 한다. “‘헬조선’이라고 해도 돈만 있으면 살기 참 좋은 나라”가 우리나라라는 말을 들으면서 그 놈의 돈이 대체 무언지를 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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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위에 자본이 있다는 말을 실감할 때가 잦다. 돈이 있는 사람들은 목에 한껏 힘을 주고 다닌다. 그들은 잘못을 저질러도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무엇인지를 만천하에 알리며 위풍당당함을 뽐낸다. 탄탄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위정자들 위에 군림하기도 한다. “‘헬조선’이라고 해도 돈만 있으면 살기 참 좋은 나라”가 우리나라라는 말을 들으면서 그 놈의 돈이 대체 무언지를 묻는다. 자본이라 하면 산업혁명이 떠오른다. 생산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고, 상품 판매에 혈안된 사람들은 새로운 시장 개척에 망설임 없이 뛰어들었다. 서구 사회와 우리 간에 다른 점이 있다면 과정 진행에 외세의 힘이 다분히 많이 개입했으며 통제력을 상실할 정도로 짧은 순간 동안 모든 변화가 행해졌다는 점 정도다.


남 부러울 게 전혀 없을 인물을 만났다. 종교와 정치를 압도한 이 인물을 다룬 책의 제목은 <자본가의 탄생>이었다. 원제(‘The richest man who ever lived’)가 ‘역사상 가장 부유했던 인물’ 즈음에 해당하는데, 이를 ‘자본가’라는 단어를 사용해 번역한 대목이 눈에 들어왔다. 주인공의 이름은 야코프 푸거다. 메디치, 로스차일드, 록펠러를 압도할 정도로 막강한 부를 지녔던 인물이라던데, 내게 그의 이름은 너무나 낯설었다. 그보다 더 짐작이 어려웠던 건 그가 살다 간 시대였다. 1459년생. 지금은 없어진 국가인 신성로마제국이 등장했고, 교황과 십자군, 튀르크 등에 얽힌 이야기도 있었다. 그야말로 중세였다. 나는 중세를 종교가 모든 것을 장악한 암흑기와도 같았다고만 알아왔다. 대체 이 상황에서 어찌 행동을 하면 자본가로 불리는 게 어색함이 없을 정도일 수 있을지가 궁금했다.


신분이 고결하진 않았다. 옷감을 내다 팔아 부를 축적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조건만을 놓고 본다면 삶은 험난함에 가까웠다. 아버지는 일찌감치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가 일곱 아이를 건사하느라 쉴 틈 없이 일을 했다. 부모의 뜻대로였더라면 그는 성직자가 되어야 마땅했지만 그가 열네 살이 됐을 무렵 어머니는 돌연 마음을 바꿔 그에게 상인으로서의 삶을 허락했다. 이후 그가 이룬 성공은 자수성가에 해당했다. 머리도 물론 비상했지만 운명을 개척하려는 의지도 어찌나 강했던지 모른다.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거침없이 행하겠다던 그는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의 말에 책임 지는 삶을 살았다.


참으로 많은 부분에 영향을 끼쳤기에 흐름을 일일이 좇기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야기 속으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갔다. 절대자가 없어 대혼란에 가까운 질서가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점 때문에 우선적으로 긴장의 끊을 놓을 수가 없었다. 푸거는 합스부르크 가문을 지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의 성장을 돕지만 관계의 기본은 돈을 빌려주고 돌려 받는 것이었다. 막시밀리안과 카를, 푸랑수아 등은 푸거를 배척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끊임없이 들었지만 결정적인 순간이면 어김없이 그에게 손을 빌렸다. 책에서는 심지어 그가 포르투갈의 원정에도 상당한 공을 들였다는 내용까지 등장한다. 중세하면 떠오르는 종교 영역에서도 그는 막강한 힘을 과시했다. 교회 개혁을 부르짖으며 혜성처럼 루터가 등장한 것으로 보아 그의 시대에 교황은 이미 자신의 영향력을 잃지 않고 싶어 전전긍긍하는 상태였던 듯하다. 푸거는 신앙적으로 교황파에 가까웠는데, 교황을 교묘하게 줘락펴락하는 모습은 믿음 차원이라기보단 하나의 투자와도 흡사해보였다. 그에게 돈은 전부와도 같았다. 그 시절 그는 오늘날의 자본가에 가까운 역할을 수행했고, 광부 등은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그를 시위의 대상으로 여기기도 하였다.


반면 오늘날까지도 유지되고 있다는 ‘푸거라이’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그가 무척이나 모순적인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 최초의 사회 공동 주거시설인 이 곳에는 여전히 개설 당시와 마찬가지로 1라인굴덴, 약 0.88유로만 지불하면 1년간 머물 수 있다고 한다. 그가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는 의식을 지니지는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드는 것과는 별개로, 이는 오늘날 기업들이 펼치는 사회공헌 활동을 연상시켰다.


그는 그 옛날에 복식부기로 자산을 관리했고, 이는 그가 각종 위험을 감수해가면서 공격적으로 투자를 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그가 일군 부 덕에 푸거 가 후손들은 이후 더는 돈 버는 일에 흥미를 느끼지 않아도 딱히 어려움 없이 생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귀족 작위까지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자신감 또한 야코프 푸거가 뿌린 씨앗이 거둔 열매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토록 거대한 파장을 일으킨 인물이 이제껏 베일에 둘러싸였던 이유가 무얼까. 그의 생이 다른 이들과 비교했을 때 덜 알려졌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한 편으로는 ‘낭중지추’라는 말이 떠오르기도 했다. 1525년 영원한 안식에 들어간 그의 삶은 500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난 오늘날에도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을 만큼 매력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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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23건) 한줄평 총점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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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평점5점
비평서가 아니다. 누구의 전기다. 그래서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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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플래티넘 무* | 2022.04.04
구매 평점5점
독일의 경제 가문 푸거 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한줄평이 도움이 되었나요? 공감 0
YES마니아 : 로얄 r********g | 2022.03.23
구매 평점4점
자본가의 탄생이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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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 | 2020.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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