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러한 발전이 국가의 번영과 개인의 복지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고 믿고 있다. 더 많은 논문이 발표될수록, 더 많은 개혁이 단행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대학교에 진학할수록, 더 많은 건강검진을 받을수록, 더 많은 품질보증서가 발행될수록 잘 사는 나라라고 들어왔다. 안됐지만 그 말은 사실이 아니다. 쓸모없는 제품의 생산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는 있겠으나, 동시에 꼭 필요한 좋은 제품의 생산을 저해한다. 무의미가 의미를 구축하고, 질 대신 양이 득세하며, 일하는 즐거움은 사라지고 당근과 채찍이 일터를 지배한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공급자들이 가격비교를 어렵게 만들기 위해 정보의 투명성을 적극적으로 방해하고 나선다. 이동통신시장은 이에 대한 좋은 예를 제공한다. 소수의 독과점업체들이 이른바 이동무선통화라는 동일한 상품을 제공하지만, 가격비교를 어렵게 하기 위해 무료통화, 할인 또는 정기권 등으로 포장된 복잡한 요금제를 도입하고 있으며, 그것도 모자라 기존의 요금제를 끊임없이 변경하고 있다.
시장 밖에서 일어나는 경쟁은 일반적으로 공익증진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변태적인 충동을 불러일으켜 마찬가지로 변태적인 행동을 낳을 뿐이다. 노동자들에게 가급적이면 많은 재료를 소비하라고 충동질을 하면 노동자들은 그렇게 한다. 가능하면 많은 딱지를 떼게 만드는 경우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 결과 일처리는 사람들의 욕구와는 무관하게 진행된다. 사람들은 극도로 무거운 신발을 원하지도 않고, 많은 범칙금 통지서를 발부하는 주차장도 원하지 않는다.
고객만족, 직원만족, 사회적 의무의 경우도 이보다 나아 보이지는 않는다. 고객만족도는 불만신고비율로 측정하고 직원만족도는 결근율로, 사회적 의무는 장애인 고용비율로 측정하는 등, 각 부문의 실태를 객관적으로 비교 가능한 지수를 통해 평가하려 한다면 나중에는 정확하기는 하지만 조금도 중요하지 않은 수치만 얻게 된다. 이를테면 특정 서비스나 제품에 대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불만을 제기하는지는 불만신고비율로써 정확히 알 수 있다. 그러나 불만신고비율은 고객만족도의 여러 가지 측면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일반적으로 불만을 신고하는 고객은 전체의 몇 퍼센트에 지나지 않는 반면, 이 지수는 나머지 대부분의 고객들이 얼마나 만족하는지에 관해서는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는다.
보상은 동기를 강화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이 아니다. 보상은 내적동기가 전혀 없거나 약한 경우에만, 다시 말해 ‘이상적인 상황’에서만 그 효력을 발휘한다. 이를테면 자신의 직업을 즐기는 권투 선수에게 세계 챔피언에 등극할 수 있는 경기와 그에 합당한 출전수당이 손짓할 때, 챔피언 벨트와 출전수당은 그 선수의 동기를 더욱 강화시키는 추가적인 요인이 되는 것과 비슷하다. 스포츠를 비롯한 일부 영역에서는 이와 같은 방법으로 내적동기를 강화시킬 수 있지만, 뛰어난 창의력과 높은 질적 수준이 요구되는 국가적 활동과 경제 분야의 활동에서는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오히려 많은 경우 외적동기 유발을 촉진하면 내적동기가 사라지는 결과가 나타난다.
핀란드에서는 고등학교 졸업생의 절반이 대학교 진학 후 학업부진을 보이고 있으므로, 95퍼센트라는 높은 대학 진학률이 곧바로 무색해진다. 문제는 이런 학생들이 직업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취업 준비도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인문계 고등학교 졸업생의 비율이 높은 나라에서는 15세에서 24세에 이르는 청년들의 실업률이 매우 높게 나타난다. 2009년 핀란드의 청년 실업률은 19퍼센트였고, 이탈리아는 무려 25퍼센트에 달했다. 그러므로 스위스의 4.1퍼센트는 대단히 양호한 편이다. 인문계 고등학교 졸업자의 수를 늘리는 일은 청년 실업률을 끌어올리는 대단히 탁월한 방법이다.
논문의 내용은 점점 더 현실과 동떨어져 가고, 시시해지고, 지루해진다. 따라서 논문을 읽는 사람도 점점 줄어든다. 자주 인용되는 논문도 마찬가지다. 다른 논문을 인용하면서 그 논문에서 범한 오류도 그대로 베낀 사례로 미루어 볼 때, 대부분의 학자들이 분명 자신이 인용하는 논문을 읽지도 않은 채 인용할 것이다. (…) 즉, 학자들이 쓰는 논문은 많아지지만, 그들이 읽는 논문은 줄어든다. 과거에는 할 말이 없는 사람은 적어도 아무것도 발표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인위적으로 불러일으킨 경쟁으로 인해 창의력도 없는 어중이떠중이 학자들도 엄청난 양의 논문을 써내고 있다.
결국 병원들은 포괄수가제를 도입한 이후에도 여전히 대포로 참새를 잡고 있다. 다만 사용하는 ‘대포’가 달라졌을 뿐이다. 의료시장에 경쟁을 도입하기 전에는 병원들이 비용을 고려하지 않고 치료기간을 늘림으로써 금전적 수입을 최대화하고자 했다. 반대로 포괄수가제를 도입한 이후로는 표준화 진료와 치료기간 단축을 통해 각 환자군 당 실 진료비를 낮추는 대신 값비싼 의료기기 사용과 고비용 처치 등 이른바 과잉진료를 함으로써 전체적인 포괄수가를 올리고 있다. 결론적으로 포괄수가제는 변태적인 행위를 자극하는 한 가지 요인을 단순히 다른 요인으로 대체할 뿐이다.
검은 양 몇 마리는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이들 검은 양이 단지 게으르기만 하면 다행이지만, 심한 경우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기도 한다. 그러나 검은 양이 늘어나는 일을 막거나 그 수를 줄이려는 목적이라면 굳이 흰 양들까지 모두 불러 모아 경쟁을 붙일 필요는 없다. 통제가 아니라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창의적이고 질적으로 수준 높은 성과를 거둘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된다. 통제는 오랜 기간 정기적으로 관찰한 결과 검은 양일 소지가 다분하다고 판단되는 사람만을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이를테면 어떤 학자가 몇 년에 걸쳐 논문을 한 편도 발표하지 않았다면 그 사람이 도대체 무엇을 하는지 의구심이 생기는 일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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