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미술의 투탕카멘이 되는 방법을 소개하겠다. 먼저 몸은 정면으로 하고, 머리와 양발을 옆으로 90도 돌린다. 그리고 뒤에는 개같이 생긴 사람을 세우고, 앞에는 대머리에 가발을 쓴 아줌마한테 츄파춥스를 들고 있게 하면 된다. 가장 어려운 부분은 파라오의 양손이 모두 왼손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작품 속 중앙에 흰색 치마를 입고 흰 수건을 쓰고 있는 남자는 투탕카멘 파라오다. 왼쪽에서 개머리를 하고 있는 건 사후의 신 아누비스?νουβι?이고, 명품백과 츄파춥스를 주고 있는 여자는 사랑과 결혼의 여신 하토르?θωρ이다. 아누비스와 하토르가 손에 들고 있는 명품백은 삶, 생명이라는 앙크?다. 라틴어로는 크룩스 안사타crux ansata, 즉 손잡이가 달린 십자가이다. 십자가는 생명이다. 여기에서 상징symbol이 등장하는데 기독교의 십자가가 몇 천년 전 이집트에서 앙크, 삶으로, 더 올라가서 원시시대의 무덤은 어머니의 자궁으로, 죽음은 다시 대지Mother Earth의 품으로 돌아간다는, 상당히 복잡한 수만년의 의미가 담겨져 있다. --- pp.43-45
필자가 [바이외 태피스트리]를 처음 봤을 때 ‘무슨 내용일까’보다는 ‘얼마나 많은 수녀들이 몇 년이나 걸려 만들었을까’가 더 궁금했다. 작업 기간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대략 1066년부터 1077년까지 10여 년간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바이외 태피스트리는 총 58개의 장면이 마치 스토리보드처럼 쭉 이어져 있다. 각 장면에는 라틴어 티툴루스titulus가 붙어 있다.
바이외 태피스트리의 내용은 프랑스 노르망디의 정복자인 윌리웜 1세William, Duke of Normandy가 영국에 쳐들어가서 잉글랜드의 앵글로색슨족의 마지막 왕인 해럴드 2세Harold, Earl of Wessex, later King of England를 무찌르는 것이다. 마지막은 해럴드 왕의 죽음으로 끝난다. 이 전투는 1064년부터 1066년까지 있었던 역사적 일로, 사실을 기록했다. 그러나 작품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역사적 사실 외에도 윌리엄 1세의 침략을 정당화하고 그를 찬양하는 일종의 선동적인 내용임을 알 수 있다. --- pp.54-55
일반적으로 아기, 특히 아기 예수는 포동포동하고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귀엽고 성스럽게 그린다. 그런데 중세에 그려진 [성모자상]을 보면 예수에 대한 모욕인 것 같지만 당시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사실 포동포동 예쁜 아기 예수는 약 150년이 훨씬 지난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활동했던 르네상스 중후기에 나타났다. 중세시대에 그려진 아기 예수는 하나같이 노안으로 그려졌다. 여기에는 시대적?종교적으로 이해해야 할 부분이 있다. 먼저 중세시대 당시 기독교에서 예수는 태어날 때부터 완벽해야 하고, 그 완벽함은 절대불변이었다. 그래서 중세교회가 화가들에게 성모자상을 포함한 아기 예수의 작품을 의뢰하면 당연히 절대적으로 완벽한 아기 예수를 그려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수도승이었던 화가들이 오랜 고민 끝에 만들어낸 개념은 아기의 몸에 성인의 얼굴을 넣는 것이다. 이것을 호문쿨루스homunculus라고 한다. 호문쿨루스는 직역하면 ‘작은 사람’이라는 뜻의 라틴어이다. --- pp.61-62
우리는 조토가 정확하게 언제 태어났는지조차 모른다. 조토는 살아있을 때도 천재로 모셔지며 엄청난 부를 누렸으며, 죽어서도 천재로 모셔지고 있다. 지금은 고전으로 꼭 읽어봐야 할 단편 소설집인 『데카메론Decameron』에서 저자 조반니 보카치오Giovanni Boccaccio는 ‘조토는 자연에 존재할 수 없는 천재이고, 조토가 그린 자연은 진짜보다 더 진짜 같기 때문에 조토야말로 진정한 천재였고 마에스트로Maestro였다’고 극찬했다. 그뿐만 아니라 조르조 바사리도 르네상스 미술의 필독 도서 『미술가열전』에서 조토에 대해 ‘정확하게 그리는 법을 소개한 위대한 화가’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조토와 동시대 사람으로 연대기 학자 조반니 빌라니Giovanni Villani도 조토를 ‘자연에 따라 인물과 자세를 가장 정확하게 그린 시대 회화의 마에스토로 왕’이라고 극찬했다. 그뿐만 아니라 단테 알리기에리Dante Alighieri는 『신곡』에서 ‘거장이자 스승 치마부에를 능가하는 거장’으로 조토를 치켜세웠다. --- pp.73-75
이 작품은 예수가 죽고 3일 후 부활해 나타나는 그 장면을 그렸다. 건장한 몸의 예수이지만 다리를 올려 뱃살이 접히는 부분까지 그리는 섬세함을 보였다. 작품 하단에는 성경의 기록●대로 잠든 병사들이 있다. 왼쪽에서 두 번째 병사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자신으로 추정된다. 이 작품을 그리기 위해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Piero della Francesca는 소점에 대해서 엄청난 연구를 했는데, [예수의 부활]은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한 작품에 2개의 소점이 있다. 작품을 정면에서 보더라도 부활한 예수는 올려다 보이게 했고, 아래 병사들은 내려 보이게 한 일종의 눈속임을 쓴 것이다. 작품 상단의 기둥과 대들보는 올려 보이게, 하단의 석관과 병사들은 정면, 그리고 땅은 아래로 내려 보이게 그렸다. 그러나 이것을 단순한 눈속임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 수학적으로 정확한 소점 공식을 이용해서 그렸기 때문이다. 특히 자화상으로 추정되는 병사의 틀어진 머리는 당시로서는 상당한 기술을 필요로 하는 부분이었는데, 기막히게 표현해냈다. --- pp.84-86
‘수태고지’란 결혼 전 처녀였던 성모 마리아가 하나님의 뜻으로 아기 예수를 임신한 것을 말한다. 영어로는A nnunciation인데, 서양미술에서는 수많은 화가들이 한 번씩은 꼭 그렸던 주제 중 하나이다. 작품 오른편 성모 마리아의 표정과 손짓에서 그녀가 깜짝 놀랐음을 알 수 있다. 왼쪽에 보석이 많이 박힌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인물은 대천사 가브리엘이다. 아기 예수의 임신 소식을 전하며, 얼굴에는 미소로, 손가락을 하늘로 향해 들어 이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보여주고 있다. 천사 가브리엘의 얼굴 옆에는 ‘AVE GRATIA PLENA’, 즉 ‘충만한은혜에 찬송하라’라고 적혀 있고, 성모 마리아의 얼굴 옆에는E C‘CE ANCILLA DNI’, 즉 ‘주님의 여종입니다’라고 적혀 있다. 그런데 성모 마리아의 말은 360도 뒤집어져서 반사되어 있다. 이것은 성모 마리아가 주님의 여종이라고 답하는 것이 하늘의 하나님께 하는 것이어서 하늘에서 보시라고 360도 뒤집어 반사되게 그린 것이다. [수태고지] 역시 각종 상징으로 가득한 작품이다. --- pp.110-112
작품의 내용은 오비디우스Publius Naso Ovidius의 『변신 이야기Metamorph?se?n』와 『달력Fasti』, 루크레티우스Titus Carus Lucretius의 『만물의 본성에 대하여De Rerum Nature』, 그리고 베르길리우스Publius Vergilius Maro의 『아이네스Aeneis』에서 가져왔다. 내용은 간단하게 ‘신플라톤주의 방식의 사랑’이라고 보면 된다. 삼미신과 큐피드마저 제피루스에게 등을 돌린 채 육체적 사랑을 나누지 못해 결국 시퍼렇게 변한 제피루스를 표현했다. 그래서 신플라토니즘Neo-Platonic에서 ‘플라토닉 러브Platonic Love’라는 말이 나왔다. 그뿐만 아니라 비너스는 바람피우는 것을 좋아해서, 어느 날 인간인 트로이의 귀족과도 즐겼는데 그렇게 인간의 아이를 임신하고 낳았으니 그가 바로 로마제국의 시조 아이네이아스Α?νε?α?이다. 즉 산드로 보티첼리는 위대한 로마 제국 시조의 어머니를 작품에 담았다. 그리고 피렌체는 ‘서풍이 불면 봄이 온다’는 믿음이 있다. 피렌체에는 서풍을 타고 동방으로 무역이 시작되었다. --- pp.126-127
[피에타Pieta]란 십자가형에서 죽은 예수를 성모 마리아가 자신의 무릎에 안고 슬퍼하는 모습을 그린 미술 작품이다. 24살의 젊은 조각가 미켈란젤로를 단번에 살아있는 거장이자 신성한 사람, 일 디비노Il Divino로 만든 걸작이다. 피에타는 미켈란젤로 외에도 수많은 조각가들과 화가들이 작품으로 만들었지만 대부분의 유명한 작품들은 조각이고, 미켈란젤로의 [피에타]가 가장 유명하다. 성 베드로 대성당 전시실 방탄유리 뒤에 전시되어 있는 [피에타]는 높이가 195cm로 일반인보다 더 크다. 미켈란젤로는 카라라 대리석 한 덩어리를 피라미드 모양의 안정적인 삼각형 구도로, 성모마리아는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앉아서 죽어 힘없이 쳐진 예수를 무릎에 안고 슬픈 표정으로 바라보는 모습을 조각으로 담았다. 그러나 그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다운 나머지, 작품을 바라보는 모든 사람들을 황홀하게 하고, 작품 앞에서 은혜를 얻었다는 기독교인들도 몇몇 봤다. [피에타] 뒤에는 커다란 십자가가 있고 십자가 꼭대기에는 INRI가 적힌 표지판이 있다. --- pp.141-143
세상에서 제일 유명한 이 ‘멍 때리는’ 아기들은 독일 드레스덴의 츠빙어 궁전Zwinger 내에 있는 알테 마이스터 회화관Gemaldegalerie Alte Meister에 있다. 드레스덴 미술관을 다녀온 많은 분들 중에 유명한 아기천사들을 보려고 찾아 헤매다가 결국 못 보고 돌아온 경우를 종종 봤다. 높이가 2.65m나 되는 대형 작품에 압도되어 제일 하단에서 얼굴만 삐쭉 내밀고 있는 귀여운 아기 천사들을 못 본 것이다. 또 놓친 것이 있는데 아기 얼굴로 가득 차 있는 배경의 구름이다. 얼굴 윤곽이 확실히 보이는 아기만 총 42명! 아기들의 표정은 소름끼치도록 무섭게 보이기도 한다. 이 아기들과 바닥에 귀여운 아기는 체럽cherub 천사들이다. [시스티나 마돈다]는 교황 율리오 2세Papa Giulio II가 자신의 삼촌인 교황 식스투스 4세를 축복하기 위해서 라파엘로에게 의뢰한 작품이다. 그래서 성모와 아기 예수, 옆에는 교황 식스투스 4세가 들어가게 되었고, 이때 당시 유명했던 여인 성 바바라St. Barbara도 그렸다. --- pp.148-150
그러던 어느 날, 알브레히트 뒤러의 친구는 뒤러에게 이런 말을 건넸다. “내가 돈을 벌어서 네 학비를 댈 테니까 네가 열심히 그림을 배워서 나중에 성공하면 그때 내가 그림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학비를 대줘.” 어린 알브레히트 뒤러는 미안했지만 그렇게 합의를 보고 열심히 미술 공부에 전념했다. 그리고 그 친구는 뒤러를 위해서 기도를 드렸다. 친구 덕에 미술에 전념할 수 있었던 알프베히트 뒤러는 시간이 지나 성공한 화가가 되었고 고향으로 돌아와서 친구를 만났는데, 자신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너무 고생한 친구의 휜 손마디를 보고 그만 눈물을 펑펑 흘렸다. 친구의 손은 이제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런데 친구는 알브레히트 뒤러를 보고 반가워하며 이렇게 기도했다고 한다. “하나님, 저는 이제 그림을 그릴 수 없으니 제 친구 알브레히트가 부디 더 성공한 화가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다시 한 번 감동의 눈물을 흘린 뒤러는 그의 기도하는 손을 그렸고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다. --- pp.169-171
그런데 3개의 다른 판넬을 붙여놓은 것이 아니라 중앙 판넬 옆면에 경칩을 달아 양쪽, 그리고 천국과 지옥면을 날개로 열었다가 닫을 수 있는 일종의 병풍으로 만들어졌다. 이것을 트립틱triptych이라고 한다. 3개라는 뜻의 ‘tri’와 접다는 뜻의 그리스어 ‘ptyx(틱스)’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단어다. 일반적으로 트립틱은 교회의 제단화로 그려졌다. 당시는 문맹률이 높아서 성경을 읽을 수 있는 사람도 거의 없었고, 성당 미사 역시 라틴어로 드렸기 때문에 대부분의 군주를 포함한 평민들은 미사 내용은 물론이고 성경 내용도 몰랐다. 트립틱은 성당을 찾은 신도들이 직접 작품을 보고 성경의 내용을 알 수 있도록 주일 미사 직전에 성당 입구에 작품을 열어서 보게 하고, 미사가 끝나면 접어서 보관하는, 이동이 가능한 미술 작품이다. 그래서 성당에는 조각과 그림 등 미술 작품이 많은 것이다. 그러나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며 많은 사람들이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었고, 이후부터 트립틱 작품의 수는 급격히 줄어들게 되었다. --- p.183
파르미자니노는 1503년 이탈리아 북부, 밀라노와 피렌체의 딱 중간쯤에 있는 작은 마을 파르마Parma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지롤라모 프란체스코 마리아 마졸라Girolamo Francesco Maria Mazzola인데, 파르미자니노Parmigianino는 그가 워낙 작았기 때문에 ‘파르마에서 온 작은 사람’이라는 뜻의 별명이 붙었다. 어려서 역병이 돌아 아버지를 잃고 삼촌의 손에 자란 그는 어려서부터 그림을 잘 그려서 이미 유명 인사였다. 파르미자니노가 18살에 산 조반니의 예배당에 벽화를 그릴 때는 스승이자 거장 코레조Corregio와 같이 그리기도 했었다. 파르미자니노는 37년이라는 짧은 삶을 살았다. 그동안 파르마에서 로마, 볼로냐, 피렌체 등 이탈리아의 전역의 거장들을 만나고 걸작을 보면서 그는 자신의 스타일을 계속 발전시켜 나갔다. 그는 당시 다른 화가들의 작품들과는 색다른 작품을 선보였는데 1524년 작품 [볼록 거울에 비친 자화상]이 대표적인 예다. --- pp.197-198
미켈란젤로와 오귀스트 로댕의 그늘에 가려서 우리나라에서는 잔 로렌조 베르니니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서양미술, 특히 조각에서 잔 로렌조 베르니니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그는 대단한 조각가이며, 앞서 언급한 이들과 함께 서양미술의 3대 조각가이다. 댄 브라운의 소설을 영화화한 톰 행크스Tom Hanks 주연의 할리우드 영화 [천사와 악마Angels & Demons, 2009]에서 주인공 랭던 교수는 대재앙을 막으러 악당이 남긴 힌트와 조각 작품의 의미를 찾아 바티칸과 로마 시내를 헤맨다. 영화속의 분수와 조각들이 모두 잔 로렌조 베르니니의 작품이고, 산타 마리아 델라 비토리아 성당에서 잔 로렌조 베르니니의 [성 테레사의 황홀경]을 보며 다음 단서를 찾는 장면도 나온다. 잔 로렌조 베르니니는 1598년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태어났는데, 어려서부터 천재성을 보여 이미 8살 이전에 많은 미술 애호가들을 놀라게 했고 ‘이 시대의 미켈란젤로’라는 별명도 붙었다. --- p.225
낭만주의 작품들은 절대 낭만적이지 않다. 오히려 어두침침하고 잔인하며 무섭기도 하다. 낭만주의를 영어로는 로맨티시즘Romanticism이 되는데 이것은 번역의 실수로 볼 수 있다. 로맨스는 라틴어로 알루키노르ALUCINOR, ‘생각 속을 헤매다’는 뜻이다. 즉 화가가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을 했다는 말이다. 낭만주의란 18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초반까지의 유럽 예술 형식이다. 낭만주의 직전인 신고전주의까지는 작품을 그릴 때 규칙이 있었다. 빛은 어떻게 표현하고,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여기에 어떤 사물과 상징을 넣어야 하며, 전쟁통이라도 주인공은 빛나는 영웅으로 그려야 했다. 그러나 낭만주의는 그 규칙을 무너뜨렸고, 작품에 표현한 상징이나 신화 등의 원래 이야기에 작가의 감정을 노골적으로 담기 시작했다. 작가의 감정이 담긴 자유로운 작품이 점점 현대미술로 발전하게 된 기초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프란치스코 데 고야는 [1808년 5월 3일]에서 수평 구도와 사선 구도를 혼합해 사용했다.
--- pp.309-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