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출간일 | 2019년 01월 1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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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72쪽 | 450g | 145*215*20mm |
ISBN13 | 9791188810833 |
ISBN10 | 1188810839 |
출간일 | 2019년 01월 1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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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72쪽 | 450g | 145*215*20mm |
ISBN13 | 9791188810833 |
ISBN10 | 1188810839 |
조바심 내지 않는 마음 작은 의미를 구하는 태도 몸과 마음, 관계를 아끼겠다는 자세 이런 게 행복이 아니면 무엇을 행복이라 부를 수 있을까? 발길 닿는 대로 떠나온 북유럽 미술관 여행에서 천천히 회복하는 생의 감각들 누구에게나 인생을 뒤흔드는 만남이 있다. 빈센트 반 고흐의 무덤에 다녀온 뒤로 그림에 매료되었고 직관이 시키는 대로 ‘미술관 여행자’가 된 저자 최혜진. 무얼 봐도 아무런 감흥이 없을 만큼 지치고 퍼석할 때 그녀는 먼 나라 미술관을 찾았다. 그렇게 두 발로, 두 눈으로 성실하게 만난 그림들은 작가가 삼십 대를 통과하는 동안 녹록지 않은 현실을 묵묵히 건너가게 해준 징검다리가 되었다. 그 징검다리가 글이 되어 책『명화가 내게 묻다』『그림책에 마음을 묻다』『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를 냈다. 이번 신간 『북유럽 그림이 건네는 말』은 ‘성실한 미술관 여행자’로서 코펜하겐, 오슬로, 베르겐, 스톡홀름, 모라, 헬싱키, 예테보리, 스카겐, 라네르스, 오르후스 등 낯선 북유럽 도시의 미술관을 누벼온 지난 3년의 기록이다. 두 발로 만나는 북유럽 근대 미술의 세계는 쉼 없이 말을 건네는 존재들로 가득했다. 빌헬름 하메르스회이, 크리스티안 크로그, 아나 안셰르, 칼 라르손, 하리에트 바케르…… 철자를 어떻게 발음해야 할지 추측조차 어려운 낯선 화가들이었지만, 그림을 눈에 담은 순간 뎅-뎅-뎅 몸속에서 종소리가 울려퍼졌다. 몸속 가득 퍼지는 직관의 신호는 조바심을, 불안을, 자기 채근과 자기 불화를 비로소 놓아주게 했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오롯이 대면하게 했다. 사는 일이 힘에 부칠 때, 하루분의 울컥도 버거울 때, 쉬이 내 존재가 지워진다 느낄 때, 그리하여 두렵고 먹먹할 때, 저자가 그랬던 것처럼 북유럽 그림을 통해 모든 불화하던 것을 향해 화해의 악수를 내밀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책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건너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자기 착취와 정열을 헷갈려 곧잘 스스로를 소진시켰던 시간과 이별하는 이야기이다. 위계가 남긴 자국을 지워가는 이야기, 바깥을 힐끔거리던 시선을 거두는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라는 대답에 스스로를 끼워 맞추다가 할 수 없음을 받아들이는 이야기, 실패에 대한 이야기, 불화하던 것을 향해 화해의 악수를 내미는 이야기이다.”(‘작가의 말’ 중에서) |
작가의 말 북유럽 미술관 여정 chapter 1 인생의 모호함이 우리를 발전시키죠 빌헬름 하메르스회이 chapter 2 아름다움은 도처에 널려 있어요 17세기 네덜란드 장르화 chapter 3 몰입 그 자체보다 어떤 몰입이냐가 더 중요해요 크리스티안 크로그 chapter 4 좋아한다고 발설하는 것, 그게 용기예요 덴마크의 세 여성 예술가 chapter 5 경쟁과 위계를 지워요, 지금 내 안에서부터 스카겐, 근대 북유럽 화가들의 공동체 chapter 6 구체적인 생의 감각은 ‘살림’으로부터 옵니다 아나 안셰르와 비고 요한센 chapter 7 끝내 사라질 것이므로, 더욱 힘껏 헤이스브레흐트 chapter 8 먹는 일에서든 쓰는 일에서든 작은 의미를 구해요 미카엘 안셰르와 구스타브 벤첼 외 chapter 9 역할과 노릇에 갇히지는 말아요 하리에트 바케르 chapter 10 안도감이 느껴지는 자기만의 방이 있나요? 칼 라르손 chapter 11 밖에서 잃은 것은 안에서 찾을 수 있어요 빌헬름 룬스트룀과 핀 율 chapter 12 상상의 싹을 자르지 마세요 C.W.에케르스베르 chapter 13 재밌으면 족합니다 페테르 한센과 헨드리크 아베르캄프 chapter 14 우리는 모두 다르니까요 크리스텐 쾨브케와 프리드리히 chapter 15 할 수 없음을 받아들인다면 페데르 발셰 chapter 16 눈길을 마주치면 많은 것이 보입니다 마르틴 쇨러 chapter 17 고정된 미의식을 벗어던져요 북유럽 여성 화가들의 활약 chapter 18 고요함에 귀 기울여요 구스타프 피에스타드 chapter 19 가장 취약하기 때문에 가장 매혹적입니다 유호 리사넨 chapter 20 끝내 내 삶의 주인이 될 것 에드바르 뭉크 닫는 말 부록 유럽-북유럽 근대 미술사 장면 |
북유럽 그림이 건네는 말
누가 뭐라든 나답게,
내 속도로 살고 싶은 사람들에게
저: 최혜진
출판사: 은행나무 출판일: 2019년 1월3일
우연히 도서관 서가에서 발견한 화가 빈센트 반 고흐에 매혹되었다. 작가의 표현대로 '뭔가 꿈틀 되더니 끝까지 읽기 전에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그렇게 시작된 그림에 대한 관심은 앞으로 그에게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동기이자 관심이 될 참이었다. 비록 그것이 어린이를 위한 아동도서였다고 하더라도, 어떤 번뜩이는 영감이나 감동을 얻는 데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으리라.
그렇게 작가는 빈센트 반 고흐의 쓸쓸한 무덤을 찾아가기도 하고, 그림을 직접 보고 싶은 욕심에 미술관을 부지런히 찾아 다니기 시작한다. 스스로 치열하게 삶을 살아가고 노력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정신 없이 지냈던 시기. 우리 대부분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작가가 이야기를 한 자기착취로 해소하고자 한다. 그렇게 정신 없이 살았다고 하더라도 나는 삶을 잘 살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1960년대 ~1980년대의 산업화 시대에 삶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없었다. 삶은 곧 현실이었다. 배고픔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렇게 이전 세대는 자신을 말 그대로 착취하면서 삶을 살아갔다. 그리고 이제 우리가 스스로 어느 정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지금에 사람들은 소확행을 이야기한다. 세대갈등으로 이전 세대는 지금의 세대를, 지금의 세대는 이전 세대를 이해하지 못한다.
누구에게도 잘못은 없다. 이전 세대의 노력에 우리는 존경을 보내야 된다. 지금 세대의 어려움에 우리는 공감해야 된다. 이제 사회는 보다 공정하고 개인의 가치관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가야만 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나는 문득 서구사회에서의 예술에 대한 가치관을 한번 더 생각해본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어나는 개인의 발견을 이미 그들은 오래 전에 시작했고, 그러한 데 있어서 예술은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일 것이다.
19세기~20세초 프랑스 파리는 첨단의 예술사조가 유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북유럽에서는 그와는 전혀 다른 화풍이 선보였던 것 같다. 작가는 우연하게 빌헬름 하메르스회이 (Vilhelm Hammershoi)를 발견한다. 그리고 곧 북유럽 화가들의 그림에 빠져들어간다. 그렇게 시작된 작가의 북유럽 미술관 여행은 오랫동안 계속되고 우리에게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던 많은 예술가를 발견하게 된다.
구상이 추상으로 옮겨가고 예술의 정의마저 급격하게 변하던 그 시대에 북유럽의 화가들은 일상의 모습을 따뜻하게 그렸다. 첨단의 유행이 나은 것인지 아니면 이러한 일상의 따듯함을 그린 그림이 더 나은 것인지 우리는 그 우열을 논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다만 내 마음에 어떤 울림을 준다면 그것으로 만족스러운 것이 될 참이다.
이 책에 나오는 수많은 그림 속에서 나는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조금이나마 함께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나는 작가가 무척이나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 소소한 에세이를 읽으며 나는 전혀 몰랐던 북유럽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그리고 언젠가 그들의 그림에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솟구쳐 오를 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해보았다.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에서 그는 한 미국 화가의 그림을 소개했다. 에드워드 호퍼. 쓸쓸해 보이는 그의 그림을 보면서, 나는 처음으로 그림을 그린 사람의 어떤 마음이랄까 그런 분위기에 녹아 든다는 것을 느꼈다. 아쉽게도 내게 그림은 그렇게 한번의 감동으로 머물렀지만, 이 책을 쓴 작가에게는 인생을 바꿀 정도로 큰 변화를 가져왔다. 그런 것이 부럽다.
좀 엉뚱하지만, 작가가 소개한 스웨덴 화가 구스타프 페이스타드 (Gustaf Fjaestad)의 그림이 생각났다. 왜 그의 그림들이 생각나는 지 이유를 생각해보려고 했지만 딱히 말하기가 어렵다. 그런 것일까? 아마도?
북유럽 그림이 건네는 말. 최혜진. 은행나무.
* 독서모임 발제문으로 쓴 글이기에 평소와 다릅니다
1. 서두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를 좋아한다. 특히 이 시의 마지막 구절,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가 좋다.
유감스럽게도. 단 한 번도 뜨거운 사람이었던 적은 없는 듯하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심장이 크게 두근거렸다든지, 피가 끓어올랐다든지, 그런 이벤트는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타인에게 책을 권할 때면 매번 망설인다. 이 책이라면 절대 실망하지 않을 거야. 그렇게 단언할 수 있는 책이 단 한 권도 없기에. 그래서 이번 독서모임 책도 주저하며 고민하다 결정했다.
명화에 관한 책이라면, 기분 전환 정도는 되어주지 않을까. 딱 이 정도의 기대였다.
2. 북유럽 그림에 관하여
첫 해외여행. 동물을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 동물원으로 향하던 중, 거대한 미술관을 발견했다. 우리는 망설임 없이 미술관을 피해 걸음을 옮겼다. 자유여행. 특별한 일정도 없었던 만큼 들려도 전혀 상관없음에도 미술관 근처도 가지 않았던 건, 그림을 본들 특별히 느끼지 못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청송에 가면 매우 큰 산수화가 전시된 야송 미술관이 있다. 청량대운도라는 이름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청량산을 화폭으로 옮긴 이 작품은, 크기만으로도 압도될 정도.
하지만 청송하면 내가 떠올리는 건, 야송 미술관이 있는 청송 신촌에서만 맛볼 수 있는 닭불고기다. 독특한 약수로 끓인 닭백숙도 유명하지만, 그래도 역시, 이곳에서 딱 하나만 먹는다면 닭불고기라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싶다.
어떻게든 딸의 문화력을 높여보고자 하는 부모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내가 청송하면 떠올리는 건 오로지 닭불고기 하나 뿐인 것이다. 이런 내가, 해외까지 나가서 미술관을 간다면 그쪽이 더 이상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유럽 그림은 마음에 들었다. 고흐의 ‘해바라기’처럼 강렬하지는 않다. 쇠라의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처럼 그 노력에 압도되지도 않는다. 고갱의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처럼 강렬한 질문을 던지는 것도 아니다. 뜨겁지 않다. 타오르지 않는다. 어쩐지 나를 닮은 듯하다.
북유럽의 그림은 전반적으로 담담하다. 들라쿠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처럼 강렬한 사건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일상을 평온히 보여줄 뿐. 복어와 비슷하다. 강렬한 맛은 없지만, 담백한 맛이 여운을 길게 남긴다.
인생은 전혀 극적이지 않다.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어도, 그 일상의 대부분은 평범함으로 가득하다. 북유럽 그림이 담담한 건, 어쩌면 우리의 인생사와 닮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북유럽 그림에 끌려, 북유럽을 헤매고 또 헤맸던 것이 아닐까.
3. 같이 읽고 싶은 그림에 관하여
136페이지. 칼 라르손의 그림들. 처음에 이 그림들을 보며 동화책 삽화를 떠올렸다. 원색의 색체. 아기자기한 화풍. 아이들이 매우 좋아할 것 같은 그림이었다.
저자는 이 그림을 보며 정희진 정희진의 이상한 정상 가족은 정상 가족에 얽매여 오히려 다른 형태의 가족을 포용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기에 읽어볼 만하다.
의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이야기한다. 한 가족이 제대로 영위되기 위해서는 돌봄 노동이 필요하다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그 돌봄 노동이 제거되어 있는 이 그림은 어쩐지 공허해 보인다고 했다.
정희진은 깍두기 국물을 먹는 사람과 깍두기를 먹는 사람이 나뉜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처럼 가족의 행복은 누군가의 희생이 뒷받침된다는 이야기. 아마 그녀의 주장은 틀리지 않을 것이다.
다만. 칼 라르손이 돌봄 노동을 제거하고 이 그림을 그린 것은, 칼 라르손에게 돌봄 노동은 ‘희생’이 아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행복한 가족을 만들기 위해 온 가족이 함께 노력하는 그 자체가 ‘즐거움’이었기에, 칼 라르손은 그 노력의 결정체만을 그림에 담은 것일지도 모른다.
돌봄 노동의 가치를 정말로 올리고 싶다면, 돌봄 노동을 ‘희생’으로 정의하는 것부터 우선 그만두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돌봄 노동의 주체를 분산해야 하지 않을까. 이 부분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잠깐 했었다.
194쪽 페데르 발세의 풍경화를 보며, 카스퍼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를 떠올렸다.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없는 남자의 뒷모습도 인상적이지만, 그 이상으로 인상적이었던 건, 파도가 휘몰아치는 바다였다.
197쪽의 ‘폭풍치는 바다’, 198쪽의 ‘노르웨이 해변의 등대’. 계속되는 바다가, 뜬금없이 인물화를 떠올리게 했는지도 모른다.
저자는 페데르 발세의 풍경화에서, ‘경외’를 이야기한다. 강렬한 자연이, 인간의 미약함은 강렬하게 방증한다고.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역시 휘몰아치는 바다 앞에서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사람을 보여주는지도 모른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결국 앞으로 나가갔다. 페데르 발세의 풍경화도 카스퍼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도 위기 앞에서 오히려 굳건해지는 인간을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어쩐지 아까부터 청개구리 독자가 되고 있다. 개굴.
4. 마무리
이 책에서 그림은 이야기를 끌고 나가기 위한 수단이다. 124쪽에 나오는 저자와 어머니와의 대화처럼. 이 책의 주제는 그녀의 삶. 인생. 가치관. 그리고 무언가이다.
그림에 대한 진지한 분석서가 아닌 에세이이기에 읽는 부담을 덜지 않았을까 싶다. 대신 그만큼 강한 개인사에 부담을 느끼지 않았을까 우려되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이 책을 읽는 동안 조금은 즐거웠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이 책을 권한 입장에서, 조금은 안심할 수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