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출간일 | 2019년 01월 30일 |
---|---|
쪽수, 무게, 크기 | 336쪽 | 392g | 113*188*30mm |
ISBN13 | 9791160261271 |
ISBN10 | 116026127X |
출간일 | 2019년 01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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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36쪽 | 392g | 113*188*30mm |
ISBN13 | 9791160261271 |
ISBN10 | 116026127X |
일상이라는 커튼이 휙 젖혀질 때 번쩍, 비춰 보이는 짧고도 강렬한 ‘생의 맛’ 한국대표작가 29인의 박완서 작가 콩트 오마주 박완서 작가의 8주기를 추모하기 위해 소설가들이 옹기종기 모여 들려주는 짧은 소설집 『멜랑콜리 해피엔딩』은 그가 41년의 문학 생활에 걸쳐 늘 관심을 두었던, 인간다운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저마다의 시선으로 읽고 써낸 결과물이다. 굴곡진 이야기 마디마디에 웅숭깊은 성찰을 담아냈던 고인의 문학 정신에 값하고자 후배 작가들이 한 자 한 자 써 내려간 답신과도 같은 것이다. 최수철, 함정임, 조경란, 백민석, 이기호, 백가흠, 김숨, 윤고은, 손보미, 정세랑, 조남주, 정지돈, 박민정 등 관록 짙은 중견작가에서부터 재기발랄한 젊은 작가에 이르기까지, 한국문학의 중추를 이루고 있는 소설가 29명이 바로 그 편지의 발신인들이다. 박완서 작가가 우리 곁을 떠난 지 8년이나 지난 지금에도, 그가 남겨준 문학의 유산을 기리며 이토록 풍성한 소설을 쓸 수 있음에 감탄하게 되고, 그가 한국문학의 큰 축복이었음을 절감하게 된다. 후배 문인들이 다시금 고인을 기억하고 나아가 잊지 않기 위해 택한 저마다의 방법을, 박완서 작가라는 교집합에 둘러앉은 풍요롭고 다채로운 얼굴들을 속속들이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운 독서가 될 것이다. |
박완서 선생을 기억하며 추천의 글 오정희 강화길 _ 꿈엔들 잊힐 리야 권지예 _ 안아줘 김사과 _ 비행기와 택시를 위한 문학 Literature for Uber and Flight 김성중 _ 등신, 안심 김 숨 _ 비둘기 여자 김종광 _ 쌀 배달 박민정 _ 그리고 나 백가흠 _ 저는, 오마르입니다 백민석 _ 냉장고 멜랑콜리 백수린 _ 언제나 해피엔딩 손보미 _ 분실물 찾기의 대가 3 바늘귀에 실 꿰기 오한기 _ 상담 윤고은 _ 첫눈 마중 윤이형 _ 여성의 신비 이기호 _ 다시 봄 이장욱 _ 대기실 임 현 _ 분실물 전성태 _이웃 정세랑 _ 아라의 소설 정용준 _ 연기가 되어 정지돈 _ 보이지 않는 조경란 _ 수부 이모 조남주 _ 어떤 전형 조해진 _ 환멸하지 않기 위하여 조해진 천운영 _ 봄밤 최수철 _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자의 죽음 한유주 _ 집의 조건 한창훈 _ 고향 함정임 _ 그 겨울의 사흘 동안 |
21 정지돈 / 보이지 않는
안았다 버렸다 굽이치는 긴 문장을 오랜만에 본다. 무엇이 진실인지 우리는 알 수 없고 생존자? 폴 오스터의 말이 지금으로서는 최고의 힘을 갖는다. 장 주네의 간결하고 담백한 문장을, 청년 폴 오스터의 화려한 쇼맨십의 언어로 옮기는 것을 (가뜩이나) 에드워드 사이드는 분명히 내켜하지 않고 문제로 삼았을 번역의 틈새를 다룬다.
어느 순간부터 번역서를 읽는다는 건 특히 문학에 있어 번역자가 읽은 작품을 읽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답답하고 아쉽다면 원어를 배우고 익히는 수밖에 없다고 접어둔 부분을, 소설가는 다시 집요하게 생각한다.
22 조경란 / 수부 이모★
누군가의 조카였던 기억은 희미하지만 미혼의 이모라는 정체성이 내 상당부분을 차지하기에 읽는 내내 마음이 쓰였다. 가난과 더부살이. 방이 없다며 독립하는 조카를 보며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여동생이 시집가기 전까지 한방을 썼었다. 조카가 한명만 쓸 수 있다고 가정하는 딱 그 크기의 작은 방에서 어찌 함께 지냈을까 싶다. 방에 머무는 시간이 적었던 동생이 아무래도 희생한 부분이 많았을 것이다.
집안의 기둥도 아니면서 돈 새는 곳마다 막느라 바빴을 이모. 그 이모의 사치품인 가죽 바바리코트를 주인공이 물려받는다. 조카 예뻐해도 다 소용없다는 말이 어쩌면 사실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던 즈음에 만나 더 예리고 아팠다. 수부(秀富) 이모는 자기 삶이 아닌 환경적으로 각인되고 부여된 역할의 막힌 생을 살았다고 볼 수 있을까. 30평의 자가 마련이 다인. 그게 어디야, 같은 멘트는 하면 안 되겠지만.
23 조남주 / 어떤 전형
언제부턴가 대학에 가고 입시를 치르는 게 부모와 사설학원의 몫이 되어버렸다. 온갖 전형과 서류와 명분과 구실들. 번잡하고 눈치껏 융통성을 발휘해야 하는 일에 약한 나는 글러먹은 세상이다. 이 작은 나라에서 굳이 넓은 나라의 입시제도를 따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학부모가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나만 모자라고 망치면 되니까. 추천서와 상장 스펙 등 입시비리로 가득한 이 나라에서 한배를 타지 않은 자 누구인가.
24 조해진 / 환멸하지 않기 위하여★
남녀의 권력 관계가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다. 먼저 대학에 자리 잡은 여자는 어린 후배에게 가기 위해 자신을 버린 남자의 생명줄을 심판할 재판대에 오른다. 판사일 것 같은 위치지만 그녀가 찬성하지 않아 탈락하면 평생 둘의 관계는 묶이고, 마지막 한 수를 놓은 자신의 손을 오래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 끊을 수 없는 환멸이라는 시간의 벌과 구속에 또다시. 그렇게 해서라도 응징을 하겠다면야..
25 천운영 / 봄 밤
옛날이야기 같다. 갓난아이를 둘러맨 계집애가 따라온다고 건넛방에 (귀한) 이불을 내주는 두 노인. 집주인 할머니도, 노년의 동거인도 봄밤이다. 아이라는 새로운 시간이 그들 사이로 파고들어 이제 괘종시계 밥 주는 일을 깜박하나보다.
26 최수철 /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자의 죽음★
단편의 극적 스릴과 반전이 들어간 멋진 소설이다. 한사람을 이루는 수많은 평가들과 의견 대립과 입장 차이에도 그는 그냥 그였을 것이다. 잠자리에서 아내를 엉겁결에 안은 (팔베개) 포즈 때문에 심장마비를 일으키는. 그의 본심은 묻히고 그의 성격에 대한 아내의 말만이 공허하게 메아리친다. 우리는 무엇에 대해 제대로 알기나 하는 걸까.
27 한유주 / 집의 조건
안전하고 볕 잘 들고 집주인과 갈등 없는 집을 구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앞에 어떤 사람이 살았는지 요즘 같은 세상에는 알 길이 없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이 큰일임을 아는 이때, 엘리베이터도 없는 오층이 숨차고 어지럽게 느껴진다. 소장한 책들이 주인이 되어서야..
독서실 이용자와 대화를 나누다가 안전에 대해 느끼는 온도차를 극명하게 느낀 적이 있다. 남자와 여자가 다르고, 딸을 둔 보호자와 아들을 둔 보호자가 다르다는 것을. 누군가는 고민해보지 않았을 문제를 염두에 두어야 하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게 이끈다.
28 한창훈 / 고향
이것저것 정리하고 비어있던 고향집으로 하향하는 남자는 집의 습기와 악취와 곰팡이에 괴롭고 시달리는 아내를 대신해 충동적으로 방바닥을 파본다. 그곳에 들어앉은 집안의 어두운 역사. 밀고와 연좌로 폭삭 주저앉은 뒤 다시 일어서지 못한 집안 내력. 이제 두 내외는 편히 잠들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렇게 빈 시골집이 많지 않겠지.
29 함정임 / 그 겨울의 사흘 동안
소설의 J는 함정임이고 소설가P는 박완서 선생님이다. 둘의 생전 특별한 관계(에디터와 작가를 넘어선 모녀 같은)를 회고하며 부모의 유업을 잇는 카뮈의 딸과 소설가의 딸을 연결짓는다. 카트린과 호원숙은 부모의 마지막 집에서 작품과 추억들을 지키며 문서 작업을 이어간다. 후배 작가는 먼 곳에서 고국의 선배 작가의 장례를 애도한다. 향긋한 잎과 나무 고목을 기억하며.
11 손보미 / 분실물 찾기의 대가3
사무용품처럼 자잘한 것들이 계속 사라지면 찝찝하고 신경이 쓰일 것 같다. 습관적으로 그런 것을 가져가버리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잃어버린 물건을 회수하고자 탐정을 고용했는데 오히려 다리를 다친 탐정의 잔심부름을 하게 된다. 고객이 잦은 요청에 짜증낼 때 팔과 다리가 불편해 남의 도움 없이는 꼼짝 못했던 터라 마냥 웃을 수 없었다. 기본적인 생활을 혼자 해낸다는 것에 대해 생각이 머문다.
12 오한기 / 상담
자전적인 경험을 토대로 환상적인 이야기를 펼치는 작가일까? 예민한 성장기와 알 것 다 아는 시기에 부모의 빚을 감당해야하고 그 그림자에 쫓긴다면 은행털이를 꿈꿔봄직하지 않겠는가. 다행히? 그는 은행원이 되지만. 은행에는 돈이 많다. 젊은 시절 남의 돈을 만져 돈 독(피부과 트러블)이 오른 적이 있었다. 남의 돈은 돈으로 보이지 않던 순박한 시절. 지금은? 은행원들이 고객의 돈을 횡령하고 빼돌리는 일이 아주 드물지 않다.
돈이 아닌 도서관 (중고!)서적 털이범이 된 은행원. 이 기밀을 아는 소설 속 작가는 목숨을 지키고자 용의자를 거론하지 않는데 <곰 사냥>의 이미지는 결코 머리에서 지울 수 없을 듯하다.
13 윤고은 / 첫 눈 마중
내리는 눈을 아무나랑 맞거나 눈사람이 만들어진 거리를 노바디와 걷고 싶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여자는 남자의 마음을 보다 확실하게 얻고(확인받고) 싶었던 걸까. 모든 것을 보는 관점과 해석 핀트가 다른 이성끼리 오래, 어울리기 힘들 것이다. 곧 지워질 ‘펑 예(고)’ 글을 올리고 원하는 댓글을 바삐 찾으며 마음 조렸을 그녀가 스친다. 숙취음료에 별별 의미 두지 말고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들이대요!(말이 쉽지ㅋ)
14 윤이형 / 여성의 신비★
읽는 내내 <붕대감기>가 떠올라 한 번 더 감기거나 덜 감아 남거나 모자란 관계들을 곱씹게 된다. 관계의 여지와 미지와 종지부... 글쓰기의 정점에 오른 시기에 절필을 선언한 작가가 휴지기를 잘 보내고 있는지 안부가 궁금해진다.
아파보니 돈벌이가 새삼 중요하다. 보험 적용되는 병만 골라 아플 수도 없는 노릇이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어떤 걸 구매하며 영위하는지는 벌이와 직결된다. 소설을 읽으며 주인공에 나를 빗대어 미혼이고 아이가 없어 나만 싫어하면 되는 상황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다른 관계, 특히 가족의 확장이 현재와는 조금 다른 나를 도모하지 않았을까 묻고 또 묻던 와중에 읽어 아쉬움과 잡념을 끊어낼 수 있었다.
요리와 육아에서 손 떼고 싶은 마음까지는 그래도 대안을 찾을 수 있기에 나은데.. 가장 가까운 친구와 담을 쌓게 되는 상황에는 한숨이 나오고 한없이 외로워졌다. 연애하고 헤어지고 결혼하고 애 낳고 기르고 이혼하는 낱낱을 공개하는 리얼 예능이 판을 치는 세상이다(모든 걸 보아 넘길 듯하다). 삶의 기틀과 운영 방식이 모두 같지 않을 텐데 거두는 엄마의 손길과 모성과 인내와 양보를 강요하는 나쁜 사회에서 죽지 않고 우울증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사는 비법은 어디에 없을까. 이래저래 연락이 끊긴 옛 친구들과 구운밤을 오순도순 나눠먹고 싶어진다. 살아는 있니?
15 이기호 / 다시 봄
레고 박스가 그렇게 비싼지 처음 알았다. 충동구매이고 과도한 지출이니 환불받아 마땅하지만 아들의 눈물 앞에 가게로 더 걸어가지 못할 것 같다. 봄밤에 눈물 바람인 아들, 그런 거 갖고 싶은 것도 사실 한때고 나중에 들어갈 목돈에 비하면 적은 비용일 텐데... 까짓 거 없어도 그만인. 울어봤던 그가 아들의 눈물을 외면하는 일은, 신이여 제발 거두소서. 가난과 검소와 근검절약의 대물림이 지독히 싫어!
16 이장욱 / 대기실★
몸 이곳저곳이 아프면서 우울감과 건강염려증과 노이로제가 세트로 들러붙는다. 아슬아슬하게 마음 챙김을 하며 버티는 가운데 이 소설을 읽으니 좀 통쾌하다. 병을 진료한다는 의사들을 정기적으로 만나다보면 그들의 허술함이 보인다. 의과 대학과 인턴과 레지던트 과정 수료가 부여한 의사 가운을 입지만 그들이야말로 늘 하는 일을 반복적으로 하는 한때 기술자이자 중인으로 분류되었던 사람들이다.
그러고보니 환자가 앉는 의자는 왜 죄다 임시적이고 볼품없고 안정감이 없을까. 환자가 자신을 마찬가지로 읽을 수 있음을 모르고.. 다른 의사를 찾아가기에 “게으르고” 해서 다시 찾아감을 알기나 할까. 예민하고 섬세한 환자는 의사가 괴팍하거나 모자란 사람임을 단번에 알아보고 불신한다. 소설의 마지막에 김모 씨가 의사를 향해 돌진하는 건 설마 아니겠지. 손이나 떨지마, 이 새끼야 이러면서.
17 임현 / 분실물
눈이 나쁜 사람에게 안경은 신체 일부요 확장 기관이다. 안경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안경을 덧써 시야가 골뱅이로 바뀌는 일도 있었다. 뒀다고 생각했던 곳에 그것이 없을 때가 불시에 발생한다. 마흔이 가까워서야 안경을 여러 개 두고 쓰게 되었다. 그러면 잃어버린 안경을 찾기가 훨씬 편하고 어중간한 시간대에 안경점을 찾아 애먹지 않아도 된다.
눈에도 노화가 빨리 온 나는 시력이 사람의 성격을 바꾼다는 데까지 생각이 이른다. 사람을 인지하고 기억하는데 쓰는 대표적인 식별기관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멀리서 아는 척을 해도 모른다. 가까이 다가와야 겨우 알아본다. 어쩔 수 없이 정확히 보지 못함은 나에 대한 믿음과 확신도 한풀 꺾이게 한다.
18 전성태 / 이웃★
내가 괴로우니까 세상을 괴롭게 보는 듯하다. 어쩌지 못하겠는 사람들이 눈에 속속 보여 오지랖을 떤다. 소설을 읽고 나니 아파트 주차장에 세워진 하얀 캠핑카가 떠오른다. 억소리나는. 주변과 비교하며 주변을 탓하며 나의 우월성과 나음을 자의로 판단하고 고조되는 기분이란 유치한 줄 알지만 다른 이의 결핍과 비양심을 보며 그래도 나의 상태와 우리 가족에 안도하게 되는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나도 자연을 훼손시키고 보호지대를 침범하려들면서 남이 남긴 쓰레기와 악취에는 눈살을 찌푸린다. 딸들만 데리고 야영하는 남자를 불쌍히 여기다가 캠핑 물품을 완전 구비하고 자연보호에 나선 이웃남자를 부부는 달리 보기 시작한다. 익숙하고 편한 마음에서 찔리고 불편한 마음으로 갈아탄다.
19 정세랑 / 아라의 소설★
여러 소설 중에서 박완서 선생님이 구체적으로 언급되는 소설이라 특별했다. 쉽게 읽히는 대중소설과 장르소설과 페미니즘 소설의 전면에 선 정 작가다. 가볍고 명랑하고 단순하다고해서 한 수 아래로 취급하기보단 이 작가가 얼마나 더, 또 어떻게 선배 작가의 뜻을 이어받아 작품세계를 확장해갈지 지켜볼 일이다.
어린 여자 이름을 가졌다는 이유로, 온갖 공격에 시달리는 저급한 인터넷문화와 말의 홍수에 환멸이 든다. 여성 작가의 글을 두고 적어도 여성 독자들끼리 벽을 치고 물어뜯는 소모전만은 하지 않기를 바란다. 여성 창작자에게 유독 가혹한 (여성) 독자들을 봤기에 하는 말이다. 목소리내기와 지면 확보, 사라지지 않기 위해 오늘도 전투 자세로 쓸 창작자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다(이러면서도 사실 알아보려 ‘노력’하는 수준이다).
20 정용준 / 연기가 되어
얼마나 풀리지 않고 근심 걱정이 많으면 입에서 담배 연기가 숨 쉴 때마다 뻐금뻐금 나올까. 왜 술을 먹고 꼬장을 부려 절친을 잃는지. 주인공은 일순 아무것도 곁에 없는 한심한 삶이 되어버린다. 먼지가 되어 사라지고 싶게.
1 강화길 / 꿈엔들 잊힐 리야
모호하게 인상만 던져주고 피해버리는, 폭력에 은근한 폭력성으로 맞서는 화법이 매력적일 때도 있으나 때론 좀 지나친 함구로 다가오기도 한다. 외조부모님이 첫 데이트와 격렬한 부부싸움을 모두 일본어로 한 이유는, 아픈 역사를 공유한다는 암시일까. 서사를 뜯어버리니까 채우는 재미도 있지만 미로가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2 권지혜 / 안아줘★
어깨 회전근개에 문제가 생겨 머리를 빗는 것도 등에 파스를 붙이기도 곡예가 되어버린 요즘 누군가를 팔 벌려 안는 일은, 말을 넘어선 그 자유로운 포옹-포용에 마음이 자꾸 쓰이던 중에 읽어 더 기억에 남는다. 그 팔로 남의 딸을 (떠)안으려는 용기가 갸륵하면서도 무엇을 대신한 사랑(존재)에 다소 회의적이라 염려스럽기도 하다.
3 김사과 / 비행기와 택시를 위한 문학
신예 작가로 한참 떠들썩했던 김사과. 호들갑스럽게 불러내지 않음이 소설가에게는 이로울까. 2018년에 무슨 일이 있었던가? 이 소설이 쓰인 시점? 내 경우 아직 실직 전이고 몸의 관절도 망설을 부리기 전이었는데. 아니지, 나갔다하면 상처입고 돌아와 울었던 것 같고..
그 후 코로나19가 닥쳐 카뮈의 <페스트> 읽기 열풍이 불은 뒤로 쥐에 대한 언급이 남다르게 느껴진다. 소설의 끝에 유령 쥐까지. 감옥과 쥐를 말할 때는 현재 수감 중인 L들과 P를 떠올렸다. 소설가는 바스키아 그림에서 이런 상상이 발동한 것일까. 디스토피아.. 묵시론.. 멸망 이전의 왕국과 대도시들을.
4 김성중 / 등신, 안심★
앞으로 장이 서는 목요일이면 돈까스가게를 유심히 바라보며 웃을지도 모르겠다. 등신들이 안심하는 화해 성찬 음식이라니. 극렬한 전쟁을 한바탕 치르고 나선 길, 주인공은 파운데이션과 첨삭 펜과 어려운 철학 용어들과 인터넷 쇼핑으로 상처를 “지혈”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지금 근무하는 곳이 아파트단지고 이용자 외 자주 보는 사람들이 학‘부모’이다보니 그들의 가정을 가끔 상상하게 된다. 그들도 자식을 끈으로 겨우 맞는 “평온한 밤”과 “다섯 글자 화해”를 치를지.. 금가고 불투명해진 유리의 상태로 얼마나 가정을 지킬 수 있을까.
5 김숨 / 비둘기 여자
습하고 무덥던 지난여름 내내 침대에서 지내면서 비둘기 이동 동향과 울음소리를 정확히 알게 됐다. 에어컨 실외기에 앉아 울어대는 소리가 무척 거슬리고 싫었다. 새소리인 줄(비둘기도 새 맞지만^^) 잘못 알고 있을 때는 신경이 안 쓰였는데 아무래도 비둘기에 대한 편견(유해동물)이 있는 듯하다. 경제적으로 무능하고 “이동 수”가 없지만 비둘기(를 닮은 아내)를 애정했던 남편을 향한 미안한 마음을 드러내는 것일까, 아니면 자기혐오의 라이터 불빛을 쏘아 올리는 것일까.
6 김종광 / 쌀 배달
봉사라는 말에 눈이 번쩍 뜨인다. 남을 돕고 살지는 못하고, 봉사자라는 직분으로 소정의 월급을 받고 지낸다. 한 달에 두 번 쉬고, 평일에는 여섯 시간, 주말에는 무려 여덟 시간을 일하지만 ‘봉사’라 앓는 말도 못한다. 코로나19로 영업이 중단됐던 시기에는 무급 처리되었고, 휴관일 제외하고 봉사료가 일당으로 계산돼 일원 단위로 입금되기도 했다. 입금이 그 사람의 스케일을 결정한다고 둘러대도 될까. 내가 이걸 먹어도, 사도되나 싶다. 병원비도 솔직히 걱정된다. 그래서 도움이 필요한 노인을 노동이든 금전이든 돕는 손길은 두말 필요 없이 비범하고 인간애에 속한다.
7 박민정 / 그리고 나
보육원을 작은 군대나 개를 풀어놓는 살벌한 곳이자 아이들이 외로움을 적의로 드러내는 공간으로 그려도 무방한가. 지금의 이야기라고 믿고 싶지 않다. 여전히 고아 수출국임을 고발하고자 쓴 날카로운 글일까. 소설을 읽다가 왜 우리는 비현실적으로 완벽한 여자 인형을 가지고 노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보모 아주머니는 무슨 도살한 고기에 찍는 푸른 마크마냥 아이들의 머리를 제멋대로 잘라놓는지 살벌하고 소름 끼쳤다. 불편한 잠자리와 밀착 관심과 온기 없는 보호시설은 어딘가 도살장 같다.
8 백가흠 / 저는, 오마르입니다
영문학을 전공한 내 주변에는 영어권 외국인과의 교제에 대체로 개방적이었다. 이십년 전에도 언어는 연애 가능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살 부대끼며 사는 사람과 영어회화 교재의 말만 하고 살 자신이 없었다. 전달하지 못한 말이 가슴에 쌓이는 게 막 보이고 생각만 해도 숨 막혔다. 주인공은 여자 하나만 보고 멀리서 왔지만 사랑의 유효기간을 넘기지 못한다. 권태와 환멸과 일방적으로 굳게 닫힌 문. 오마르의 수진이 떠나버려 그는 갈 곳이 없다!
9 백민석 / 냉장고 멜랑콜리
냉장고 하면 레이먼드 카버의 어느 단편이 떠오른다. 관계 개선의 여지 없음과 무기력의 끝을 보여주던. 카버의 글과는 다르지만 하루키의 단편과 비슷해 끌렸다. ‘양철 드럼통’이 된 사내의 사연은? 삼십대 중반까지만 해도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출렁거려 내 가슴에는 2리터짜리 생수통이 들어 있다고 여겼었다. 냉동고와 함께 전자제품(의 말썽)에 속 끓이며 눈물 흘리는 주인공은 아마도 사물에게서 자신을 보았거나 분통 터지는 숨은 마음(계속 싸워야 하는 삶)이 불쑥 튀어나와 그러는 게 아닐까 싶다.
10 백수린 / 언제나 해피엔딩★
공저인 짧은소설집 <<멜랑콜리/해피엔딩>>이 9와 10의 상반된 단어들을 조합한 것인가보다. 불과 얼마 전에 읽었음에도 5줄 정도 봤을 때야 내용이 기억났다. 조금씩 ‘꿈의 디테일’을 버리며 길을 영영 놓칠까 봐 두려운 주인공. 소설 속 인물은 전공과 미래 꿈과는 무관한 대학 행정 직원으로 일하는 중이다. 창문 없이 임시로 지어진 부실한 공간 같은 학과 사무실은 그녀의 현재 상태와 닮았다. 시간의 흐름을 알 수 없고 연장선을 그을 수 없는 막막함과 초조함을 암시한다. 한국 대학은 비정규직 직원들이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도록 그들의 직분을 계속 바꾼다(짜증나는 장난질). 온라인으로 수업이 이루어지는 이때, 그들의 지위나 자리는 예전보다 못할까, 나을까.
주인공은 남자친구와 자꾸 끝으로 치닫던 마음을, 뜻밖에 학과 소속 강사와 차를 나눠 마시며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암울하게 먹칠하지 않기로 바꿔먹는다. 차한잔의 예기치 못한 온기와 대화가 덜컥 겁먹고 후두둑 떨어지던 마음을 막아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