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신이 내 몸 안에 한 가지 분자만 원하는 양만큼 무한히 자동 생성되도록 해준다면 포도당보다 아미노산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사실 포도당으로는 아미노산을 만들 수 없지만, 아미노산으로는 포도당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포도당으로 만들 수 있는 모든 분자를 아미노산으로도 만들 수 있고, 일단 하나의 아미노산이 충분히 만들어지면 다른 아미노산과 질소화합물도 모두 만들 수있다. 한 가지 아미노산이 무한히 공급되면 ATP 생산을 위해 굳이 산소를 마실 필요도 없다. 유산소 호흡을 통해 굳이 힘들게 ATP를 만들지 않아도, 넘치는 아미노산을 이용하여 무산소 호흡으로 ATP를 만들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산소 호흡의 생성물인 젖산이나 알코올은 유산균이나 효모가 그렇게 하듯 그냥 배출하면 된다. 그 생성물들을 배출하는 데에 드는 비용이, 우리 몸에서 산소를 이용하는 데에드는 비용보다 훨씬 적을 것이다. 정말로 이렇게 된다면, 생명체로서 인간의 개념과 설계가 완벽하게 바뀔 수 있다. 그 정도로 아미노산 단 하나의 분자는 생명현상에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_35~36쪽
아미노산 중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은 무엇일까? 여러 식재료의 단백질에서 아미노산의 조성 비율을 살펴보면 보통 글루탐산, 아스파트산, 류신, 라이신, 프롤린, 아르기닌이 많다. 이 중에서도 글루탐산이 가장 흔한 편이다. 아미노산은 총 20가지이므로 그 조성 비율을 산술적으로 평균하면 각각 5퍼센트가 평균치인데, 글루탐산은 단백질의 15퍼센트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흔하다. 밀 단백질인 글리아딘에는 44퍼센트, 토마토 단백질은 37퍼센트 이상이 글루탐산이다. 밀에 많으니 빵과 국수 같은 밀가루 제품에도 글루탐산이 많다. 우유에 많으니 치즈, 요구르트 등 유가공품에 많고, 콩에 많으니 콩나물, 두부뿐만 아니라 된장, 고추장, 간장 등 콩 가공식품에도 글루탐산이 많다. _50쪽
식물에서 광합성이 시작되는 색소인 엽록소와 동물의 혈액에서 산소를 운반하는 물질인 헤모글로빈은 전혀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둘 다 글루탐산에서 만들어진다. 엽록소의 핵심 구조물을 포르피린(porphyrin)이라고 하는데, 포르피린은 8개의 글루탐산으로 만들어진다. 글루탐산 2개가 결합하여 아미노레불린산이 되고, 포르포빌리노겐을 거쳐 프로토포르피린이 된다. 포르피린 구조의 중심에 마그네슘이 있으면 식물의 엽록소가 되고, 마그네슘 대신 철이 있으면 헤모글로빈이 된다. 포르피린 구조 중심에 어떤 미네랄이 붙느냐에 따라 역할이 바뀌는 것이다. _62쪽
엄마와 아이도 글루탐산을 좋아한다. 임산부는 태반을 통해 배 속에 있는 아이에게 글루탐산을 전달하고, 출산 후에는 모유를 통해 글루탐산을 제공한다. 모유에는 20가지 아미노산이 들어 있는데, 그중 글루탐산의 함량이 가장 많다. 특히 단백질 형태로 결합하지 않은 유리(free) 아미노산 중에서는 50퍼센트 정도가 글루탐산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양이다. 모유 100밀리리터에는 유리 글루탐산이 21.6밀리그램이 들어 있는데, 이는 우유의 1.9밀리그램보다 10배 이상 많은 양이다. 아이는 모유의 유리 글루탐산을 맛보며 감칠맛에 익숙해진다. 모유를 먹이던 아이에게 처음으로 모유 대신 우유를 주면 잘 먹으려 하지 않는다. _71~72쪽
우유를 발효하여 치즈로 만드는 이유는 간단하다. 치즈를 만드는 과정에서 우유에 있는 수분과 탄수화물(유당)이 많이 제거되고 단백질이 농축되며, 미생물이 발효하는 동안 그 단백질이 분해되어 유리
글루탐산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우유의 단백질 함량 비율은 3.6퍼센트지만, 치즈가 되면서 수분이 감소하고 단백질의 비율이 36퍼센트로 10배 늘어난다. 단백질 분해율은 0.2퍼센트에서 13.5퍼센트로 약 67배 증가하여, 혀로 느낄 수 있는 글루탐산이 600배 증가한다. 그러니 치즈의 감칠맛은 우유와는 비교할 수 없이 높다. 이것이 세상에서 그렇게나 다양한 치즈가 사랑받는 비밀이다. _78쪽
생리학자들에 따르면, 위의 수용체가 글루탐산을 감지하면 단백질 분해효소인 펩신과 위산의 분비를 높이는 신호를 보낸다고 한다. 글루탐산이 위에서의 단백질 소화 기작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글루탐산 신호는 단백질이 풍부한 음식을 먹었을 때 포만감을 느끼도록 하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이러한 기능들은 우리가 왜 글루탐산의 감칠맛이 풍부한 식재료를 그토록 선호하는지 설명할 수 있다. 게다가 위에 글루탐산이 들어올 때는 반응이 있어도, 다른 아미노산에는 반응이 없다. 즉, 위에서의 단백질(아미노산)의 감각은 전적으로 글루탐산에 의존한다. 글루탐산이 단백질 감각의 선봉장인 셈이다. _84쪽
어떤 물질이 신경전달물질로 쓰이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주변에 흔하지 않은 분자여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주변에 흔하면 원하지 않는 순간에도 나트륨 채널이 아무렇게나 열릴 것이고, 그것은 통제되지 않는 재앙이다. 예를 들어 아세틸콜린은 질소에 3개의 메틸기(-CH3)가 붙은 드문 형태의 분자다. 그래서 신경전달물질로 쓰이는 것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런데 뇌에서 주로 쓰는 신경전달물질이 글루탐산이라는 점은 언뜻 보면 당혹스럽다. 아미노산 중에 가장 흔한 것이 글루탐산인데, 어떻게 그 흔하고 평범한 물질을 뇌에서 신경전달물질로 쓸 수 있을까? 그 이유를 자세히 알아가다 보면, 뇌의 창의적인 활용 능력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_116~117쪽
지금은 음식과 맛이 넘치는 시대다. 사람들은 배가 고프지 않아도 맛있는 음식을 찾아 먹는다. 적당히 배고픔을 해결한 정도에서 먹기를 멈추지 않고, 더 이상 위가 늘어나기 힘들 때까지 먹기도 한다. 음식을 너무 많이 먹어서 비만 등 온갖 질병에 시달리면서, 또 뭔가 몸에 좋은 것을 챙겨 먹어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우리는 왜 음식을 먹어야 하는지, 음식이 우리 몸에 들어가 어떤 작용을 하는지를 알기보다는, 그냥 무작정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지만을 따지려 한다. 그러니 음식에 관한 온갖 헛소문에 마구 휘둘리는 것이다. _153쪽
식품의 첫 번째 역할이 몸의 에너지(ATP)를 만들 연료(포도당)를 공급하는 것이고, 두 번째 역할은 세포막(지방)이나 나트륨펌프(단백질)와 같은 부품을 만들 분자를 제공하는 것이다. 식물이라면 포도당만 있으면 뭐든 만들 수 있지만, 우리 몸은 직접 합성하지 못하는 필수지방산이나 필수아미노산, 비타민과 미네랄을 식품으로 공급받아야 한다. 자동차를 운행하려면 주기적으로 휘발유를 넣어주고 부품을 교체해야 하듯이, 우리는 우리 몸을 운행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연료와 부품을 공급해야 하는 것이다. _155쪽
사람의 몸에서 합성할 수 없는 9가지 아미노산인 류신, 이소류신, 라이신, 메티오닌, 발린, 트레오닌, 트립토판, 페닐알라닌, 히스티딘을 필수아미노산이라고 한다. 그런데 필수와 비필수의 구분은 정말 애매하다. 메티오닌은 몸에서 합성이 안 되므로 필수아미노산이라고 한다. 그러니 반드시 음식으로 섭취해야 한다. 시스테인은 메티오닌만 있으면 쉽게 만들어진다고 비필수아미노산이라고 한다. 하지만 시스테인도 메티오닌이 없으면 우리 몸이 아무 때나 스스로 합성할 수는 없으므로 ‘필수’의 조건을 갖추긴 했다(반드시 음식으로 메티오닌이나 시스테인을 섭취해야 한다). 그러니 필수/비필수 구분은 정말 당혹스러운 것이다. 우리 몸에 더 중요한 영양소는, 필수아미노산이 아니라 글루탐산처럼 쉽게 만들어지는 아미노산이다. 아무리 ‘필수’라고 해도 비필수아미노산인 글루탐산보다 다양하고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없다. 우리는 그동안 몸에서 많은 기능을 하는 물질보다는 비타민처럼
단지 몸에서 생산되지 않는 성분에만 너무 과도한 관심을 가졌다 _171~172쪽
그동안 자연과학에는 너무 세분화되고 전문화된 지식만 많았다. 갈수록 세밀하게 쪼개기만 하지 그것을 종합해서 전체적인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은 별로 하지 않았다. 그래서 전문 지식은 많아졌지만 인간과 자연에 대한 종합적 이해력은 퇴보한 것이다. 식품과 영양에 대한 지식도 그렇다. 사람들은 보통 흔한 영양소보다 흔하지 않은 영양소를 특별히 대접한다. 하지만 어떤 영양소가 흔하다는 건 그것이 우리 몸에 가장 기본적인 물질이라는 뜻이다. 가장 기본적인 것을 제대로 이해하는 게 훨씬 의미 있는 일이다. 가장 기본적인 것이 가장 소중하다. _261쪽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