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드리드, 세계적인 미술관들이 즐비한 도시
『스페인 예술로 걷다』가 찾는 첫 도시는 스페인 수도인 마드리드다. 이곳에는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프라도 미술관, 티센보르네미사 미술관,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이 있다. 세 미술관은 각각의 위치를 연결하면 삼각형이 만들어져 ‘예술의 골든 트라이앵글(Golden?Triangle or Art)’이라고도 불린다.
스페인 국립미술관인 프라도 미술관에서는 벨라스케스, 뒤러, 고야, 보스 등을 만날 수 있다.
프란시스코 데 고야(Francisco de Goya)는 오랜 세월 궁정화가로 지내면서 막대한 명성과 재산을 쌓은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성공한 삶에 머물지 않고 조국 스페인의 참혹한 현실에 가닿았다. 당시 스페인은 무능한 왕 카를로스 4세와 사치스러운 왕비, 그리고 그들의 권력을 등에 업은 재상 마누엘 데 고도이 때문에 병들어 있었다. 마누엘 데 고도이는 외세까지 끌어들였는데, 그 대상은 바로 프랑스 나폴레옹 군대였다. 나폴레옹 군대는 1808년 민중 봉기를 일으킨 스페인 국민들을 무차별 학살했고, 고야는 이 사건을 [1808년 5월 3일]이란 그림에 담았다.
티센보르네미사 미술관에서는 카라바조, 홀바인 2세, 렘브란트, 드가의 그림을 볼 수 있다.
렘브란트 판 레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의 자화상은 우리 삶에서 멀지 않아 우리를 감동시키는 경우다. 한때 출셋길로만 달려가는 듯했던 렘브란트의 인생은 [야간 순찰]로 내리막길에 들어섰다. 평단에서 이 작품을 평가 절하했던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이 작품은 렘브란트의 최고 작품으로 꼽힌다. 재산 탕진과 파산, 아내와 아들의 죽음이 이어지면서 렘브란트의 말년 삶은 가난하고 외로웠다. 그럴수록 그의 예술은 더욱 성숙해지고 깊어졌다. 늙어 가는 화가는 하루하루 일기를 쓰듯 자화상을 그렸다. 어느 인생이든 평탄하기만 한 경우는 없을 것이다.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도 있다. 게다가 우리 모두는 늙고 죽는다. 그런 점에서 렘브란트의 자화상은 우리를 감동시킨다.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에서는 피카소의 유명한 작품 [게르니카]를 감상할 수 있다.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는 파리 만국박람회에 전시할 벽화를 제작하던 중인 1937년에 바스크 지방의 소도시 게르니카에서 일어난 비보를 접했다. 1936년 스페인에서는 인민전선의 총선 승리로 좌파 정부가 들어섰는데, 이에 반발한 프랑코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다. 1년 후 프랑코 군부를 지원하던 독일이 게르니카를 폭격했고 무고한 시민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 소식을 접한 피카소는 벽화 주제를 게르니카의 참상으로 바꾸었다. 이후 [게르니카]는 명성을 얻었고 스페인 정권을 장악한 프랑코 정부는 피카소에게 [게르니카]를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피카소는 독재 정권이 있는 조국에는 [게르니카]를 줄 수 없다고 거절했다. [게르니카]가 조국 스페인으로 돌아간 때는 독재자 프랑코도, 독재자를 반대하던 피카소도 모두 세상을 떠난 1981년이었다.
톨레도, 돈키호테와 엘 그레코의 도시
마드리드에서 한 시간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톨레도는 현대 도시와는 전혀 다른 고풍스러운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중세 도시다. 마드리드 이전의 스페인 수도였기 때문에 역사적 유적과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무엇보다도 이곳에서는 중세의 유명한 ‘브로맨스 커플’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를 만날 수 있다.
『돈키호테』의 저자 미겔 데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는 불행한 삶을 살았다. 어린 시절은 아버지의 빚 때문에 떠돌아다녔고 젊은 시절에는 이탈리아에 주둔한 스페인 해군에 입대했다가 부상을 당해 왼팔을 평생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제대 후 귀국 과정에서 해적에게 붙잡혀 5년간 알제리에서 노예 생활을 했다. 고국으로 돌아와 우여곡절 끝에 『돈키호테』를 써서 유명해졌지만 돈은 벌지 못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책 판권을 헐값에 출판사에 넘겼던 것이다.
『돈키호테』는 처음에는 기사문학에 심취한 나머지 스스로 기사라고 믿게 된 돈키호테로 인해 벌어지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웃음을 자아내는 ‘유머 소설’로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곧 이 소설의 가치가 재평가되기 시작했다. 『돈키호테』는 스페인 정치·사회·종교의 풍자, 신분과 남녀 차별이 없는 사회로 나아가려는 새 흐름의 포착, 자유와 정의를 위해 싸우는 이상주의자의 모습이 부각되면서 위대한 문학작품으로 격상되었고, 현재는 최초의 근대 소설로 불린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작가 밀란 쿤데라는 “모든 소설가는 어떤 식으로든 세르반테스의 자손들”이라고까지 말했다.
톨레도에서 놓쳐서는 안 되는 또 다른 예술가가 엘 그레코(El Greco)다. 그는 스페인 화가로 알려져 있지만 원래는 그리스인이다. ‘엘 그레코’란 이름 자체가 그리스인이라는 뜻이다. 톨레도에는 엘 그레코 미술관이 있을 뿐 아니라 여러 장소에 엘 그레코 작품들이 흩어져 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 산토 토메 성당에 소장된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이다. 신앙심이 깊고 선행을 많이 쌓았던 백작이 죽자, 성 스테파노와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하늘에서 내려와 그의 매장을 손수 도왔다는 전설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이 그림이 그려진 진짜 목적은 돈이었다. 백작이 자기 사후에 많은 금액을 기부하기로 성당 측에 약속했지만, 백작의 후손들이 그 유언에 따르지 않았던 것이다. 성당은 소송을 걸었고, 결국 승소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던지, 그림까지 그려서 신도들에게 ‘백작처럼 성당에 헌금과 기부를 많이 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가르친 것이다.
그라나다, 알함브라 궁전과 이슬람 문화의 도시
그라나다 장은 이번 개정판에서 새로 추가된 내용으로, 알함브라 궁전의 지도와 동선, 역사와 주요 유적지 정보, 장소에 얽힌 여러 이야기들, 기타 곡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에 대한 일화 등을 꼼꼼히 수록하고 있어 여행자들에게 좋은 안내자 역할을 해준다.
사람들이 그라나다를 방문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알함브라 궁전이다. 이슬람풍으로 지어진 이 궁전이 유럽 땅인 스페인에 세워진 데에는 역사적 이유가 있다. 스페인은 중세 때 이슬람 세력의 지배를 받았다. 스페인을 통치한 마지막 이슬람 왕조가 나스르 왕조로, 그 궁이 바로 알함브라 궁전이다.
현재 남아 있는 알함브라 궁전 유적지는 크게 4구역, 알카사바, 헤네랄리페, 나스르 궁전, 카를로스 5세 궁전으로 나눌 수 있다. 알카사바는 군사 요새로, 알함브라에서 가장 오래된 유적이다. tvN에서 방영된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에서 유진우(현빈 분)가 게임 퀘스트를 수행하기 위해 들어간 지하 감옥이 여기에 있다. 헤네랄리페는 나스르 왕조 왕(술탄)들의 여름 궁전으로 아름다운 정원을 중심으로 이국적인 건물들이 형성되어 있다. 나스르 궁전은 알함브라의 하이라이트로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장소다. 술탄의 후궁을 사랑한 젊은이의 가문 사람들이 몰살당한 아벤세라헤스의 방도 볼 수 있다. 카를로스 5세 궁전은 가톨릭 왕국이 이슬람 세력을 몰아낸 뒤 르네상스풍으로 지은 건물이다.
바르셀로나, FC 바르셀로나와 가우디, 영화 [향수]의 도시
현재 스페인에서 가장 ‘핫’한 도시는 바르셀로나다. 유네스코에서 선정한 세계문화유산인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i)의 건축물들이 한데 모여 있기 때문이다. [카사 밀라], [카사 바트요], [구엘 공원], [사그라다 파밀리아] 등이 다 바르셀로나에 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성가족 성당)은 1883년부터 착공되기 시작해 현재까지 지어지고 있는 미완성 작품이다. 가우디는 자신의 생전에 건물을 완성시키지 못할 것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서두르지 않았다. 오히려 명작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후대 건축가에게 바통을 넘겼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탄생의 파사드, 수난의 파사드, 영광의 파사드, 이렇게 3개의 파사드로 이루어져 있는데, 가우디가 직접 완성한 것은 탄생의 파사드뿐이다. 수난의 파사드는 호세프 마리아 수비라치에 의해 1954년에 착공되어 1976년에 완성되었고, 영광의 파사드는 2002년에 착공되어 가우디 사후 100주년인 2026년에 완공될 예정이다.
탄생의 파사드에는 예수의 탄생 장면, 헤롯 왕의 병사들이 예수를 제거하기 위해 사내 아기들을 죽이는 장면, 그들을 피해 성가족(요셉, 마리아, 아기 예수)이 이집트로 도망가는 장면, 성모 마리아의 대관식 장면 등이 있다. 수난의 파사드에는 최후의 만찬, 유다의 입맞춤, 에케 호모Ecce Homo(빌라도가 가시면류관을 쓴 예수를 가리키며 군중에게 외친 말로 ‘이 사람을 보라’라는 뜻이다), 베로니카(형장으로 가는 예수의 얼굴을 수건으로 닦아 준 성녀로 그 수건에는 예수의 얼굴이 찍혔다고 한다), 십자가 처형 장면 등이 새겨져 있다. 실내에는 영광의 파사드가 완성되면 사용될 문이 전시되어 있는데, 문 표면에 주기도문이 여러 나라 말로 새겨져 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옵소서”라고 쓰인 한글도 볼 수 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안으로 들어가면 천장은 꽃 모양, 기둥은 나무 모양을 하고 있어 마치 숲에 있는 것 같다. 특히 네 면을 장식하는 스테인드글라스의 색깔이 초록색에서 파란색으로, 파란색에서 붉은색으로, 붉은색에서 다시 노란색으로 바뀌는데, 숲 속 사계절의 변화를 반영한 것이다.
또한 축구 팬이라면 바르셀로나에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게 FC 바르셀로나 기념품 가게일 것이다. 도시 곳곳에서 FC 바르셀로나 엠블럼이 새겨진 상품들을 발견할 수 있어 신기할 정도다. 일개 축구팀에 대한 열렬한 지지는 카탈루냐 독립운동과 관련 있다. 카탈루냐 여행자들은 건물 여기저기에 내걸린 줄무늬 깃발을 볼 수 있는데 바로 카탈루냐 독립기인 에스텔라다(Estelada)다. 스페인은 중세 말 카스티야 왕국의 이사벨 1세와 아라곤 왕국의 페르난도 2세의 결혼으로 형성되었다. 이후 스페인의 중심이 카스티야로 이동하면서 아라곤이 있던 카탈루냐 지방은 소외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이에 카탈루냐 사람들은 오랫동안 독립을 갈망해 왔다. 그러나 카탈루냐 독립운동은 역사적으로 철저한 탄압을 당해 왔고, 특히 프랑코 독재 정권 시기에는 카탈루냐어의 사용마저 금지당했다. 2017년 카탈루냐 자치정부는 독립을 선언했다가 자치권마저 박탈당했지만, 여전히 중앙정부로부터 독립할 날을 갈망하고 있다.
바르셀로나 고딕 지구에서는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향수]의 촬영지 산 펠립 네리 광장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이곳은 동시에 프랑코 독재 정권이 내전 당시에 무고한 사람들을 처형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스페인 사람들의 삶과 역사, 문화를 만나는 여행
또한 이 책은 피게레스에서는 초현실주의 예술가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 세계와 그가 직접 지은 달리 극장미술관을, 빌바오에서는 실업률 20%에 이르는 죽어가던 도시를 되살려낸 구겐하임 미술관을 소개해 준다.
마드리드, 톨레도, 그라나다, 바르셀로나, 피게레스, 빌바오 등 스페인 도시 곳곳에서 예술, 문학, 영화를 만나는 인문 여행은 스페인 사람들의 삶과 역사, 문화를 제대로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동시에 스페인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색다른 시각을 알려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