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꼭대기 세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열대 우림의 숲우듬지 생태학을 개척한 생물학자의 삶과 모험
열대의 식물은 놀랄 만큼 역동적이다. 덩굴식물은 놀랍게도 수백 미터 가까이 되는 나무 꼭대기 위까지 뻗어 나간다. 교살자무화과나무는 숙주 나무를 감싼 다음 질식시켜 버린다. 거인가시나무는 잎과 잎꼭지 모두 수천 개의 가시로 덮여 있어 피부를 찢어 놓을 뿐 아니라 상처 낸 피부 위에 화학적 독소까지 뿜어낸다. 이런 식물을 갉아 먹고 사는 곤충들 역시 만만치 않다. 가시와 독소로 무장한 나무라 할지라도 많은 수의 곤충이 서식한다. 한편 곤충이 갉아먹었던 식물의 잎은 더 이상 손상을 입지 않기 위해 갉아 먹힌 부위에 독소를 분비한다. 곤충들은 독소 섭취를 최소화하기 위해 구멍이 난 잎들을 피한다. 열대 우림은 공격과 방어가 끊임없이 펼쳐지는 격전지와 같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나무 아래가 아닌, 나무에 올라야만 제대로 볼 수 있다.
『오늘도 나무에 오릅니다』는 열대 우림, 그중에서도 맨 꼭대기 층인 숲우듬지에 매혹된 한 과학자의 이야기다. 숲우듬지는 접근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수백 년 동안 과학적 연구의 손길이 닿지 못했던 세계였다. 저자인 마거릿 D. 로우먼은 숲우듬지 연구의 선구자로서, 나무를 직접 기어올라야만 했던 시절부터 현재까지 활발하게 숲우듬지 연구에 힘쓰고 있다. 그 덕분에 대부분의 접근 기술을 시험 가동했으며, 탐사 장비의 발전 과정을 현장에서 목격할 수 있었다. 저자는 열대림의 숲우듬지에서 독특한 방식으로 생명을 이어가는 온갖 동식물의 생태를 꼼꼼히 기록했다. 또한 정글 속에서 겪은 모험담은 물론이고 육아와 연구를 병행해야 했던 여성으로서의 고충을 생생하게 담았다.
처음부터 나무에 오를 생각은 아니었다
미국에서 영국, 호주, 아프리카, 파나마까지. 어쩌다 세계 곳곳 나무에 오르게 되었나?
자연 세계에 대한 끊임없는 호기심은 저자를 미국에서 영국으로, 또 지구 반대편에 있는 호주로 이끌었다. 열대 우림이 미지의 현상으로 가득한 블랙박스나 다름없던 때였다. 호주는 인도네시아에 뿌리를 둔 열대 식물상과 남극 및 뉴질랜드에 뿌리를 둔 온대 식물상이 만나는 흥미로운 곳이었다.
호주로 간 저자는 열대 우림 속에서 숲의 바닥이 아닌 숲우듬지를 연구하게 된다. 숲우듬지에 생물 다양성이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직접 나무에 오를 생각은 없었다. 원숭이를 훈련시켜 올려보낸다든지 카메라를 도르래에 설치해 쓴다든지 하는 대안도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어떤 방법으로도 정확한 자료를 수집하기가 어려워 결국 나무에 오르기로 했다. 나무 꼭대기에 올라갈 마땅한 방법이 없었던 시절이기에 등산용 로프를 이용해 직접 나무에 오르기 시작한다. 저자의 숲우듬지 연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후 더욱 안전하게, 많은 사람이 함께 연구할 수 있는 대안을 찾다가 북미 최초의 숲우듬지 통로를 설치하며, 아프리카에서 이루어진 최초의 협동 프로젝트에서 라도데시메(래프트)를 이용하고, 파나마에서는 건설용 크레인을 이용해 연구했다. 드론과 항공위성 사진의 등장으로 연구가 훨씬 수월해진 오늘에 이르기까지 마거릿 D. 로우먼은 숲우듬지 연구를 위한 기초를 앞장서서 닦아왔다.
여성 생물학자,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나는 내가 어머니이고 아내임을 좋아했다. 그러나 내 영혼은 과학을 향한 열정도 지니고 있었다.”
열대 우림 생태계에 매료되는 바람에 고향에서 1만 6000킬로미터 떨어진 호주까지 혈혈단신 날아온 마거릿 D. 로우먼. 과학자가 되기 위해 인생의 절반을 바쳤지만, 결혼과 출산 이후 예상하지 못했던 어려움에 부딪힌다.
1970년대의 호주 퀸즐랜드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 뚜렷이 구분되어 있었다. 시어머니는 미용실에 갈 때는 아기를 봐주었지만 도서관에 갈 때는 도와주지 않았다. 저자는 『우먼스 위클리』 사이에다 『생태학』을 끼워 넣고, 집안 장식과 관련된 최근의 유행을 들여다보는 척하면서 『생태학』에 실린 과학 기사들을 훑어보기도 했다. 아들은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여자는 의사가 될 수 없다’고 말했으며, 남편은 가족용 차를 몰고 도서관에 가는 일은 그만하면 좋겠다고 충고했다.
어려움은 일터에서도 계속되었다. 저자는 남성 동료들보다 훨씬 난처하고 곤란한 문제를 겪어야 했다. 59명의 남성 과학자들과 떠난 아프리카 탐사에서도 꿋꿋하게 연구했지만, 배탈이나 샤워 같은 기본적인 문제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아이를 데리고 일할 때는 수유, 더러운 기저귀 같은 골칫거리들과 씨름하고, 숲속에서 우유병 젖꼭지를 잃어버리기도 했다. 아기가 덮고 있는 양털 담요에 구더기가 바글거리고 있는 걸 발견한 적도 있었다.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도 저자는 생태학이라는 발판에서 발을 떼지 않기 위해 애쓴다. 이는 묘하게도 숲우듬지 그늘의 억압된 상황을 이겨내고 우듬지 나무로 자라기 위해 인내하는 새싹의 모습과 겹친다.
“음지에서도 어린나무로 자라 틈새를 노리는 종을 내음성 또는 음지내성이라 부른다. 우리가 표시해두었던 내음성 묘목들은 이제 35살이 되었는데도 겨우 12.7센티미터밖에 자라지 않았다. 그늘진 숲 바닥에서 살아남아 비집고 들어갈 틈새를 ‘기다리는’ 그들의 능력은, 내 생각에는 식물 세계의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이다.”
열대 우림의 신비한 생태 이야기
개미 정원, 거꾸로 자라는 식물, 자살하는 나무… 열대 우림의 숲 꼭대기에서 만날 수 있는 세상
호주의 동부 열대우림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미국, 파나마, 아프리카, 벨리즈까지 흥미진진하게 이어진다. 이 책은 신비로 가득 찬 나무 꼭대기 세상의 생태계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특정한 꽃을 수분시키기 위해 수많은 위험을 무릅쓰고 먼 거리를 날아다니는 삽주벌레, 자기 몸의 수천 배나 되는 생명체도 겁 없이 공격하는 아프리카 군대개미, 죽기 전 딱 한 번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는 자살나무(타치갈리아 베르시콜로르), 개미들이 여러 식물의 씨앗을 나무 중심부에 심고 돌보아 만든 미니어처 정원….
특히 저자가 좋아하는 나무는 무화과나무다. 이 나무는 다른 나무들과 달리 숙주 나무에 싹을 틔우고 위에서 아래로 자라며, 그러한 방식으로 자기 입지를 성공적으로 확보한다. 저자는 ‘과학 하는 여자’로서 무화과나무를 통해 위안을 얻었다고 고백한다.
“이 나무는 불굴의 의지와 독특한 생존 방식으로 치열한 경쟁이 이루어지는 열대 우림 속에서 자신이 뿌리 내릴 공간을 확보해 나간다. 다른 나무들과 달리 위에서 아래로 뻗어 나가는 무화과나무의 능력은 늘 소중한 가르침으로 느껴졌다. 남들이 덜 간 길로 가면 또 그 나름의 이점이 있다는 가르침. 현장생물학을 하는 여성으로서 나는 그러한 진실을 새삼 확인한다.”
우리 모두 살면서 도전을 경험한다
“낙엽은 잎의 종말이 아니다. 그것은 또 다른 시작이기도 하다.”
한 그루의 우거진 나무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치열한 경쟁을 거쳐야 한다. 저자는 그것을 ‘지상 최대의 제비뽑기’라고 표현한다. 세상으로 퍼져나가기 위해 끊임없이 장애물을 넘고 길을 개척해야 하는 하나의 새싹, 그중에서도 척박하고 힘든 환경에 떨어져 자라나는 새싹의 운명은 그대로 우리 삶의 은유로 다가온다.
우리 모두 살면서 어려움을 만난다. 진로, 관계, 그밖의 일상 곳곳에서 도전을 경험한다. 답답하고 두려울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매료된 과학을 선택했던 여성 과학자의 모습은 우리에게 말을 건네는 것 같다. 당신과 내가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고. 당신의 꿈과 열정을 지켜나가길 바란다고.
“사회의 오해와 편견과 싸우며 겨우 나무의 밑동에 다다른다. 하지만 땀과 눈물을 훔치며 정상에 이르는 순간 모두 보상받는다. 나무와 숲이 모두 보이는 그 광경으로.” _김산하(생명다양성재단 사무국장) 추천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