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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의 빛

여우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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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02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292쪽 | 264g | 115*205*20mm
ISBN13 9788937439698
ISBN10 8937439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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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라이플의 스코프로 들여다보는 사람들의 얼굴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L은 그것이 내가 집중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모아 둔 돈이 정리되는 대로 비행기를 타고 북극으로 갈 것이다. 혼자 눈밭을 걸어간다. 그리고 적당한 언덕을 골라 자리를 잡은 뒤 오로라를 기다린다. 그다음에…… 무엇을 해야겠다는 계획은 아직 없다. 다만 그 빛 아래에 누워 한때 듣던 음악을 떠올리거나 그동안 내 표적이 되었던 사람들의 얼굴을 기억해 보면 괜찮을 것 같다. 그럴 수 있을까? 북극에서는 오로라를 ‘여우의 빛’이라 부른다. 좋은 이름이다. L은 여우의 빛을 보기 전에 죽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럴지 모른다. ---「여우의 빛」중에서

때로 꿈속에도 비가 내린다. 양철 지붕 위에 내리고, 옥상 장독대 위에 내리고, 버려진 구두 안에도 내린다. 듣고 있으면 내게 최면을 걸듯 입을 연다. 잡음은 길고 규칙적이다. 어느새 내 머리 위에도 비가 내려앉는다. 꿈은 거미줄처럼 이어진다. 비는 아주 단순한 선이다. 그 속으로 손을 내민다. 손금을 두드리는 빗줄기. 혈관을 두드리는 빗줄기. 손바닥에 비를 모은다. 둥그렇게 고인다. 입체가 된다. 손바닥을 얼굴 쪽으로 기울여 고인 빗물을 천천히 마신다. 비릿한 냄새를 코에 남기고 물은 몸속으로 흘러 들어간다. 나는 따라갈 수 없다. 하지만 눈물이, 콧물이, 오줌이, 땀이 되기 전까지 나는 그것을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아침마다 꿈속에서 마신 물을 버렸다. ---「아케이드」중에서

어느 날부터 병실이 미세하게 한쪽으로 기울어져 간다. 나는 몸으로 느낄 수 있다. 기울어진 곳의 끝에는 아마 어딘가로 연결된 구멍이 있을 것이다. 병실이 기울어 있다는 것을 알고 난 뒤부터 몸 안에 담긴 피가 내내 불안하다. 끊임없이 흔들린다. 흔들리면서 애써 균형을 잡으려 한다. 피와 함께 생각이 한쪽으로 뭉친다. 풀리지 않는 매듭이 된다. 갑갑하다. 참을 수 없이. 맨몸으로 사막을 향해 걷는 여행자. 그 지친 발걸음과 메마른 목젖처럼 나는 어쩔 수 없는 갑갑함을 호소한다. 아무도 들어줄 사람이 없다는 건 알고 있다. 그래서 더욱 갈증을 느낀다.
---「프리마 돈나」중에서

줄거리 줄거리 보이기/감추기

여우의 빛
‘나’는 시력이 점차 감퇴하고 있는 킬러다. 어느 날 조직으로부터 한때 나의 ‘멘토’였던 L을 죽이라는 통보를 받지만 나는 실패한다. 조직은 나에게 마지막 기회를 준다. 나는 조각조각 떠오르는 L과의 기억들을 억누르며 그를 기다리지만 그는 나타나지 않는다. 결국 나는 L의 집을 직접 찾아가게 되는데…….

마이 퍼니 발렌타인
트럼펫을 구매하고 싶다는 전화를 받고 ‘나’는 먼지 쌓인 트럼펫을 꺼내어 닦는다. 구매자에게 중고 트럼펫을 전하기 전 마지막 날, 트럼펫을 처음 배우기 시작한 초등학교 때의 기억부터 매일 밤 트럼펫 연주회 상상을 하며 잠들었던 군악대 시절, 트럼펫 연주로 사랑을 고백했던 대학 시절까지 트럼펫에 담긴 기억들이 담담한 어조로 펼쳐진다.

애플 시드
휴일 아침, 빨간색 캐리어를 든 난쟁이가 ‘나’의 집으로 찾아온다. 다음 날 새벽, 나는 난쟁이가 두고 간 캐리어를 열고 비어 있는 그 안으로 들어간다. 캐리어 안에서 내가 목격한 것은 길게 이어진 개미의 행렬. 개미들을 따라가자 오래된 극장 하나가 나오고 나는 텅 빈 좌석에 앉아 스크린을 바라본다. 내가 캐리어 밖으로 나올 때까지, 어쩌면 나온 뒤에도 스크린 속 장면들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로커룸
‘나’는 건강이 좋지 않은 노인 밑에서 열쇠를 만들고, 잠긴 문을 여는 일을 하는 열쇠공이다. 결혼 5년 차에 접어든 아내와는 이혼을 앞두고 있다. 어느 날 아내의 연인으로 짐작되는 남자에게서 아내의 사진을 빌미로 돈을 요구하는 메시지를 받고 나는 장비를 챙겨 남자의 집으로 간다. 무사히 카메라를 챙긴 뒤 현관문 쪽에서 인기척이 들려온다. 어둠 속에 숨어 있는 나의 앞에 남자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서 있다.

야간 비행
‘나’와 ‘아내’는 지난해진 관계를 바로잡기 위해 바닷가 휴양지로 패키지여행을 떠난다. 객실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탁 트인 전망이지만 나는 어느 날 아침, 화장실에서 물이 샌다는 것을 발견한다. 수리를 요청하기 위해 호텔 프런트에 내려갔을 때, 어머니와 함께 여행 온 남자를 만나고 그와 밤 바닷가에서 맥주를 마신다. 처음 만난 사이인 내게 남자는 자신에게 찾아온 사랑의 시작과 끝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드라이브 미
‘나’가 서른 살에 만난 마흔 살의 연인 ‘그녀’는 모든 면에서 나를 앞서는 사람이었다. 도로를 부드럽게 질주하는 자동차처럼 그녀는 모든 것이 자연스러웠다. 그녀의 전 남편이 집으로 찾아와 소동을 벌인 다음부터 나는 ‘얼룩이 된 기분’을 느끼게 되고 자연스레 그녀와 멀어진다. 시간이 흘러 나 역시 그녀의 나이였던 마흔이 되고, 반복되는 삶이 어쩌면 자연스러움이 아니라 권태인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아케이드
‘나’는 건축 자재를 수출하는 회사에 다니는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 그녀와 포켓볼을 치던 날, 정삼각형으로 모여 있는 당구공처럼 모든 것이 완벽했던 날, 그녀는 바로 다음 날 갑작스럽게 출국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나는 그녀를 기다리며 그녀의 것이었던 건축물 사진집을 꺼내어 읽는다. 완벽한 구조의 건축물과 달리 그녀와 나는 계속해서 어긋나며, 모든 것을 지워 버리는 모래 바람과 같은 관계가 되어 간다.

프리마 돈나
‘나’는 아무런 전조도 없이 시작된 병으로 기약 없는 병원 생활을 시작한다.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져 가는 나를 위로하는 것은 외부의 목소리들이다. 창밖 아이들의 목소리, 병문안을 온 지인들의 걱정, 그리고 보험 가입을 권유하는 마케터의 기계적인 목소리. 나는 뒤늦은 병문안을 왔던 친구에게 전화를 거는데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목소리는 친구가 아닌 그의 아내, 가수로 알려져 한때 나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던 사람이다. 나는 그녀에게 노래를 청하게 되고 또 한 번 끝없는 공상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그들을 어쩌면 삶의 우연성과 폭력성에 지친 인물들로 볼 수도 있을까. 혹은 그런 점을 이미 잘 알고 있기에 그것을 수용하고 유희하는 인물들로 볼 수 있을까. 답은 저 두 질문들 사이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한편으로는 삶의 우연성과 폭력성에 지친 모습을 보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그것을 유희한다. 그것이 바로 삶의 기술임을 이동욱의 소설 속 인물들은 잘 알고 있다.
- 송종원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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