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출간일 | 2019년 03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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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56쪽 | 445g | 152*210*20mm |
ISBN13 | 9788936452339 |
ISBN10 | 8936452339 |
출간일 | 2019년 03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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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56쪽 | 445g | 152*210*20mm |
ISBN13 | 9788936452339 |
ISBN10 | 8936452339 |
1980년 5월, 그날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다음 세대를 위해 새롭게 풀어 쓴 5·18 이야기 오늘의 청소년에게 5·18을 이야기한다. 5·18기념재단이 기획해 2년여 만에 세상에 내놓은 『5월 18일, 맑음』은 1980년 5월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5·18 이야기를 전하는 책이다. 하늘이 맑아서 더욱 슬펐던 그해 5월 18일부터 열흘 동안 펼쳐진 항쟁, 그리고 그날의 죽음을 기억하며 세상을 더욱 맑은 곳으로 만들고자 애써 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겼다. 가장 정확하고 객관적인 사실만을 다루어, 청소년들이 5·18을 올바로 이해하고 역사를 보는 안목을 갖출 수 있도록 했다. 복잡한 우리 현대사를 청소년들과 공유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우선 어려운 한자말이나 개념 들을 가능한 쉽게 풀어 썼다. 또한 5·18을 이해하는 데에 꼭 필요한 역사적 배경들, 특히 유신 시대와 6월 민주 항쟁 등에 대한 설명도 친절하게 담았다. 각 장 말미에는 아르헨티나, 프랑스 등 세계 각국의 사례들을 다채롭게 소개하여 5·18을 세계사적인 흐름에서 조망할 수 있도록 했다. 5·18기념재단이 소장한 귀한 사진 자료들도 이해를 돕는다. 역사를 공부하는 청소년들은 물론, 5·18을 영화나 소설 등으로 부분적으로만 접해 온 2, 30대 독자들에게도 좋은 길잡이가 될 책이다. |
책을 펴내며 들어가며 1부. 오월 그날,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1장. 봄을 기다리는 마음 2장. 화려한 휴가, 비극의 광주 3장. 시민군의 등장 4장. 힌츠페터와 투사회보 5장. 광주, 해방되다 6장. 도청에서 보낸 마지막 날 2부. 오월, 역사가 되기까지 7장. 진실을 찾는 여정 8장. 마침내 정의를 법정에 9장. 오월을 노래하고 쓰고 그리다 10장. 아픔의 연대를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가기-불의와 정의가 충돌할 때 5·18 민주화 운동 연표 주 참고 문헌 |
폭도. 참으로 무시무시한 단어다. 우리의 역사에는 폭도의 출몰이 잦았다. 그들을 가만 놔두었더라면 이 땅은 공산화 됐을 것이요, 지구상 최빈국으로 전락했을 수도 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 등은 결코 꿈조차 꿀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는 세상의 주장이다. 학창 시절 교과서가 아이들에게 이것이 진리라 말했다. 시중에서 접한 수많은 책이, 텔레비전을 틀면 만날 수 있는 많은 프로그램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건 한결 같았다. 그러나 진실이라 믿어온 많은 것들이 관점을 달리하면 거짓으로 돌변할 수도 있음을, 급격하게 변모하는 시대 속에서 난 배웠다. 역사는 고정된 무언가가 아니었다. 앞으로도 영원히 대중과 호흡하며 제 진면모를 선보일 것이다.
1980년 광주는 여전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민주화 운동이 되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했다. 평가를 달리해야 한다는 이들의 목소리가 여전히 존재하는 이 사건을 청소년들은 과연 얼마나 알까.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리므로 가급적 정규 교육 과정에서는 다루지 않는 게 답일 수도 있다. 현대사는 언제나 시험 범위에서 제외됐고, 그래서 아이들은 책을 덮었다. 비록 청소년은 아니지만 알고 싶다는, 알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책을 읽었다. 문득 제 집 벽에도 총탄 자국이 있다던, 광주 출신 친구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가장 우선적으로 눈에 들어온 건 희생이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갔는지가 눈에 선히 그려졌다. 폭도라고 하기엔 너무도 어린 아기, 교복 차림의 학생, 임산부. 모두가 죽음 앞에서 평등했다. 그들은 처음엔 자신이 죽으리란 걸 알지 못했다. 무지한 죽음의 뒤를 따른 건 충분히 죽음을 인식한 이들의 죽음이었다. 평범한 내 주변 사람들이 영문도 모른 채 죽는다는 걸 그들은 가만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지 않는다면 다음에는 내가 죽을 차례가 오리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마땅한 무기도 없었고, 군사 훈련을 받은 것도 아닌 그들이 승리할 가능성은 무척이나 적었다. 예상대로 끝까지 싸운 이들 대부분이 사망했다. 살아남은 이들 또한 괴로웠다. 눈 앞에서 사람이 죽는 걸 보았다. 제 자신도 모진 고문에 시달렸다. 아픈 몸, 빨갱이라는 낙인. 5월 18일 이전으로 그들은 결코 돌아갈 수 없었다.
충성이란 무엇일까. 다음으로 든 생각이다. 1980년에도 법은 존재했다. 세상 그 어떤 법도 사람을 죽일 것을 명하지는 않는다. 아마 1980년대 우리나라의 법도 그랬을 것이다. 그렇지만 법은 사람을 지켜내지 못했다. 오히려 법의 이름으로 사람을 죽이기도 했다. 믿고 싶지 않지만 광주를 철저히 짓밟음으로써 승승장구한 사람들도 있었다. 나치에 충실했던 사람들은 자신은 국가의 충직한 공복이었을 뿐이라며 변명했다. 검소한 말단 공무원. 주어진 명령을 영혼없이 받아들인 이들 덕에 사람이 죽었다. 태생적으로 국가가 악해서? 개개인의 책임감 있는 행동이 비극을 막을 수 있다. 깨어 있어야 한다는 말이 여느 때보다 절실히 다가왔다.
고립된 광주를 지켜낸 것도, 잊혀져 가던 광주에 민주화라는 이름을 붙여준 것도 사람이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함께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꼈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폭력 앞에서 의기소침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몇몇은 움직였다.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나머지를 일으켜 세웠고, 마침내 역사를 새로 썼다. 여전히 그들은 끝을 선언치 않았다. 비극의 현장에 연대하며 제 아픔을 긍정적으로 승화시키는 곳이면 어디든 마다 않는다. 많은 게 달라진 듯하나 변한 건 실상 얼마 아니 되는 시대다. 그들은 연대할 대상이 너무도 많아 서글프다.
이 책이 청소년들에게 어찌 읽힐지. 그저 영화였더라면 참 좋았을 영화 <택시 운전사> 생각이 난다. 엄정한 시선으로 5월 18일을 바라보는 것과는 별개로, 다음 세대에게는 5월 18일이 믿기지 않는 소설처럼 느껴졌으면 좋겠다. 현실에는 결코 존재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무언가로.
지난해, 우연히 뉴스 기사를 읽고 경악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2019년 촛불 집회 당시 엄청난 군 병력과 탱크, 장갑차 등으로 무력 진압을 하려고 했던 문건이 드러났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무력시위로 변질될 때를 대비한 병력이라고는 하지만 촛불을 들고 질서를 지키며 평화적인 시위를 했던 시민들에게 이런 ‘거리를 쓸어버릴 만한’ 군 병력이 가당키나 할까요. 그 이야기를 듣고 ‘만약’을 상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약 어디에선가 작은 충돌이라도 일어난다면, 거리에 있는 수많은 시민들을 ‘폭도’로 만들어버리는 건 정말로 쉬운 일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만약’을 상상하면서 자연스레 떠오른 것은 1980년 5월의 광주였습니다.
“열받아서 몰입이 잘 된다”는 이유로 근현대사를 열심히 공부했지만, 성인이 되기 전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했습니다. 이후, 교과서보다는 문학이나 만화, 영화, TV 시사 프로그램 등을 통해서 조금씩 조금씩 알아갔지요. 식민 통치를 받고, 수차례 전쟁을 겪고,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가 되기까지 대한민국의 역사는 아픈 역사 투성이지만, 가장 가슴 아픈 역사는 국가가 국민에게 폭력을 휘두른 사건들이었습니다. 그중, 가장 가까운 과거의 역사인 5.18은 너무나 깊게 새겨진 숫자였습니다.
<5월 18일, 맑음>은 그날의 기억을 사실대로 전달함과 동시에, 역사를 어려워하는 학생들과 함께 읽을 수 있도록 쉽고 친근하게 기술한 책입니다. 광주에서 벌어졌던 열흘간의 항쟁뿐 아니라, 운동이 발발하기 전 대한민국의 상황, 그리고 5.18 이후 현재까지의 노력 등을 꼼꼼하게 담았습니다. 또한, 각 장마다 민주주의, 국가 폭력 등과 같은 키워드를 조금 더 정확하게 설명하는 한편, 세계 속에서 5.18과 유사한 풍경을 그려낸 일들을 함께 소개하기도 했지요.
책은 어렵지 않게 편안하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사소한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사소해 보이는 일들은 5.18의 진실을 하나하나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최초 사망자가 우연히 길을 걸어가던 청각장애인이었다는 것과, 그해 공수부대에서 수개월 동안 강도 높은 훈련과 세뇌가 이루어졌다는 것은, 당시의 상황이 눈뜨고 보기 힘들었던 무차별적인 폭행과 진압이었다는 점을 반증합니다. 영화 <택시 운전사>에도 등장했던 독일인 기자 ‘힌츠페터’는 “베트남 전쟁에서 종군 기자로 일할 때도 이렇게 비참한 광경은 본 적이 없다(82쪽)”고 말했다고 하지요. 어떤 설명을 하든 그때의 상황과 같을 수 있을까요. 편안하게 읽을 수 있게 만들어진 책은, 그 생생한 역사의 눈물 때문에 결코 편안하게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서술한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꾸만 몸이 떨렸습니다.
“원망스럽다, 이런 것들은 별로 없었어요. 기왕에 나는 죽겠다고 생각을 했고, (……) 당신들은 살아서 다음에 제대로 이야기해 주겠지. (……) 10년이 갈지, 100년이 갈지. 그거야 모르지만은 언젠가는 이 얘기가 나오겄지, 그렇게 생각을 했죠. (122쪽, 양인화, 당시 시민군의 증언)”
하나하나 기억할 것들을 마음에 담았습니다. ‘들불야학’을 통해 노동자를 교육하다가 민주화운동을 이끌게 되었던 ‘윤상원’ 열사의 이름과, 생생하게 남은 증언의 주인공들, 시위에 참여하고 시위를 도왔던 사람들과, 남모르게 눈물 흘리며 현재까지도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유족들을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리고, 책의 후반부 ‘아픔의 연대를 향해’를 통해 기억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었습니다. 아픈 역사를 단지 역사적 사실로만 남겨두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끊임없이 끌어올려 현재의 상황을 꼼꼼히 따져보는 것.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나갈 청소년들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조언이 아닐까 싶습니다.
● 35쪽,
국가의 그 누구에게도 국민의 인권을 마음대로 줄일 권리는 없습니다. 대통령일지라도 예외는 아닙니다. 국가의 모든 권력은 국민이 만든 법에서 나오고 국민은 누구나 그 법의 지배를 받기 때문입니다. 대통령 역시 국민의 한 사람이며 그가 가진 권력은 국민들에게 잠시 위임받은 것일 분입니다.
유신 공화국에 살던 사람들이 바란 민주주의는 그렇게 추상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권력자의 눈치를 보지 않고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는 것, 미니스커트를 입는 것 같은 사소한 일부터 소신대로 신문 기사를 쓰고 양심에 따라 재판을 하는 것, 일한 만큼 대가를 받는 것 같은 작지만 소중한 자유와 권리를 지키고자 했지요.
● 56쪽,
공수 부대는 한층 더 잔혹하고 무차별적이었습니다. 이성을 잃은 듯 사무실이나 주택, 여관까지 마구 들어가 곤봉으로 때리고 대검으로 찔렀습니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잡혀 오면 남녀를 가리지 않고 속옷만 입게 한 채 마치 군대에서 하듯 ‘뒤로 취침’ ‘앞으로 취침’ ‘좌로 굴러’ ‘우로 굴러’ 등을 시키며 기합을 주었지요. 따라 하지 않거나 조금이라도 구령에 늦을 경우 여지 없이 곤봉을 휘둘렀습니다. 가톨릭 사제조차 “옆에 총이 있었다면 쏴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라고 느낄 지경이었습니다. 공수 부대와 함께 시위 진압을 맡은 경찰 간부마저 시위대에게 “제발 집으로 돌아 가라, 공수 부대에게 걸리면 다 죽는다”라며 울먹였지요.
● 98쪽,
“몸이 약해서 보기에 그 헌혈허시면 안 되겠다고 그러면 막 화를 낸 거예요. 내가 죽어도 이럴 때 피 한 방울도 안 주면 내가 시민이 아니지 않냐. (……) 그때 인간으로 태어나서 가장 슬펐고, 또 가장 인간으로서 감동적인 순간들을 너무 많이 체험을 한 거죠.”
헌혈 행렬에는 시위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려웠던 가정주부나 젊은 여성들이 특히 많았습니다. 그 와중에 안타까운 일도 생겼습니다. 전남여성 3학년 박금희 학생이 광주기독병원에서 헌혈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다 총을 맞고 사망한 것입니다. 박금희 학생은 헌혈했던 병원으로 다시 실려 오고 말았습니다.
● 107쪽,
만약 어느 도시에서 치안이 사라진다면, 즉 경찰이 모두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잘못을 저질러도 처벌할 사람이 없다면? 남의 집 담을 넘는 도둑들, 은행마다 들이닥쳐 자루 한가득 돈을 실어 나르는 강도들, 내키는 대로 거리에 불을 지르며 화를 푸는 이들로 도시는 큰 혼란에 빠질지도 모릅니다.
계엄군이 시 외곽으로 철수한 21일 이후부터 다시 진입해 들어온 27일까지 광주는 사실상 치안이 사라진 ‘무정부 상태’였습니다. 군인도 경찰도 없었지요. 하지만 광주는 혼란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와 정반대였습니다. 도시는 무척 안전했습니다.
● 121쪽,
“도청 정문을 나설 때, 한편으로는 비겁하게 나 혼자만 살기 위해 빠져 나가는 것 같은 심정과, 또 한편으로는 저 많은 젊은이들이 아까운 목숨을 잃는 운명의 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자꾸만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닦아도 닦아도 눈물은 걷잡을 수 없이 자꾸만 흘러내렸다.”
많은 시민이 쉽게 발길을 돌리지 못했습니다. 집으로 돌아간 사람도 있었지만 남아 있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도청 YMCA 건물에 있다가 집으로 가라 하면 도청으로 가고 도청에서 가라 하면 다시 YMCA로 돌아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누구에게도 쉽지 않은 선택이었습니다. 도청에 남은 그 누구도, 돌아가는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비겁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