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따 저것 보시게… 땅, 저렇게 땅이 널려 있는데 어찌해서 우리 엄마는 왜 호박 한 포기 심어 먹을 땅 한 줌이 없다고 하시는 걸까. 네 요놈, 우리 엄마 어지럽히는 땅덩이, 요놈 하고 저도 모르게 한 오큼을 움켜쥐었다.
그런데 어라, 움켜쥐면 쥘수록 그 흙이 뽀르르 손가락 사이로 죄 빠져나간다. 아, 그렇구나. 이 땅이란 사람이 움켜쥐면 쥘수록 다 빠져나가 우리 엄마가 잠꼬대에서까지 ‘땅, 땅’ 그러셨던가 보구나. --- p.36
“엄마, 머슴이라는 거 그게 뭐냐구. 그 어린것의 목을 새끼줄로 칭칭 묶어갖고 질질 끌고 가는 그 머슴이라는 거 말이야, 그게 뭣 하는 짓이냐구, 응? 엄마… 난 무섭단 말이야. 사람들이가 무서워, 응? 엄마.”
버선발의 그 해맑은 두 눈이 사뭇 불그죽죽해지도록 뜨거운 눈물이 회오릴 치다가 서글픔과 함께 두려움이 범벅이 된 비지눈물이 뚝뚝. --- p.54
뜻밖에도 할아버지가 불쑥 가로막으며 “여보게, 자네 그 발바닥 좀 보세” 그러신다. 버선발은 얼김에 발바닥을 들어 보였다. 발바닥을 이리저리 들어 보시더니 “어허, 이건 도통 알 수가 없구먼. 이건 깨비의 발바닥이 아닌데. 틀림없이 일에 못이 박인 자국이 또렷한 사람의 발바닥인데 참말로 알 수가 없구먼” 그러신다.
버선발은 달려가면서 혼자 웅얼댔다.
‘마음밖에 줄 게 없어 아예 빈 솥을 훌쩍 빼주시는 이, 그런 이를 일러 배포라고 한다더니 저 할아버지야말로 참짜 배포, 저 우람한 묏줄기(만고강산)에 비길 배포, 아 그런 어먹한(위대한) 배포이시구나.’ --- p.123~124
버선발은 앉은뱅이인 꼴에 어찌어찌 엉덩이를 들더니만 두 다리를 세우려고 안간(있는 힘을 다한) 몸부림이다. 그것은 어찌 보면 까치까치 여름 햇살에 달구어진 모래밭, 거기에 냅다 버려진 굼벵이의 몸부림으로도 비길 수가 없는, 아, 그 안간 몸서리. 두 다리를 세우려고 하다간 속절없이 주저앉고, 그래도 다시 세우려고 하다간 마치 모래 더미처럼 스스로 무너지고.
그래도 한사코 꿈틀, 또 움찔. --- p.130
어디서 누군가가 ‘지화자’ 하고 외쳐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마침내 버선발이 꿈실 일어나고 여기저기서 ‘얼쑤, 어기여차’라고 메겨대는 소리가 들려오는가 했더니 마침내 그 많은 굿패들이 한바탕 휘젓는데 누군가가 웅얼댔다.
“그래그래, 이게 바로 한판이구먼. 주어진 판은 깨고 우리 무지랭이 니나(민중)들의 판을 한사위로 일군다는, 아, 그 한판. 그렇지 그렇구말구. 바로 니나인 우리들의 한판이구말구.” --- p.131
모두가 가쁜 숨을 죽이고들 있는데 갑자기 바닷가 한 모퉁이에서 ‘얼러라’ 하는 소리에 이어 떵~ 하고 무언가가 울렸는데 그건 쌤말(단언)컨대 북소리는 아니었다. 누군가가 그 큰 바다를 마치 북으로 삼아 딱 한 술 짓찧는 발길질 소리 같았다. 아무튼지 그 발길질이 얼마나 되쌌던지 그 너른 바닷물이 쏜살보다 더 빠르게 쏴 하고 날아가버리는 게 아니냔 말이다. 그러니 어더렇게 되었을까.
어더렇게 되긴. 그 큰 바다가 짜배기(진짜)로 회까닥 없어져 땅이 돼버리고 말았다. --- p.150
그건 무슨 뜻이었겠는가 이 말일세. 사람에게서 그 내 거, 그 뚱속은 끝이 없더라는 갓대(증거)를 얻어냈을뿐더러 사람의 그 내 거라는 거, 그건 알로(사실)는 새시빨간 거짓이요, 나아가 끔찍한 썩물(부패), 거듭 말하면 뚱속 다툼 때문에 모든 목숨을 다 썩혀 죽이는 막심(폭력)으로까지 번져 끝내는 무지무지 끝이 없는 뺏어대기였다 그 말일세.
그렇기 때문에 그 내 거란 곧 거짓이요, 그 거짓은 곧 썩물이요, 따라서 사람들의 모든 그릇됨의 부셔(원수)인 막심이요, 더 나아가 그 내 거라는 것이 알로는 사람을 잡고, 이 맑디맑은 누룸(자연)을 쌔코라뜨렸을(망쳤을) 뿐만 아니라 갈마(역사)의 옳음, 온이(인류)의 끝없는 될끼(가능성), 누리(우주)의 하제(희망)까지를 죽이는 사갈(죄)이라는 것을 버선발이 갓대(증명)했으니, 여보게 자네 생각으론 그 버선발의 땅놀음, 그것은 어절씨구 무엇이었다고 여겨지나? --- p.196~197
참말로 모를 일, 참으로 앗딱 놀랄 일이다. 그 캄캄한 수챗구멍 저만치에 트릿한 불빛 같은 것이 흐느끼듯 가물가물한다. 저게 무얼까 하고 기를 쓰고 다가가 만지려다가 버선발은 그만 그레글(넋살을 빼앗긴 듯 얼얼) 놀라고 말았다. 그게 바로 그 무시무시한 깐나에 맞선 버선발 어머니의 눈빛이 아닌가 말이다. 이슬에 젖은 불, 젖은 눈 말이다. --- p.229
버선발의 가슴엔 퍼뜩하고 떼로 몰려가던 뜬쇠(예술가), 나간이(장애인), 그리고 이름 없는 니나들이 단 한 사람도 뒤로 물러선 이가 없었던 것이 떠오르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쿵쾅쿵쾅 얼얼해 있을 적이다.
흐르는 핏줄기 땜에 피범벅이 된 웬 나간이 한 분이 “아저씨, 나 좀 일으켜주세요. 나도 나가 끝까지 싸우려고 합니다” 하며 그 피투성이 팔을 내민다.
--- p.2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