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취했으니까 하는 말인데……”로 시작하는 고백과
그런 고백을 덩달아 취한 눈으로 들어주는 사람,
그 사이에 놓인 술잔,
점차 뜨끈뜨끈해지는 마음의 온도.
---「내가 취했으니까 하는 말인데……」중에서
얇은 와인글라스에 와인을 따라내고, 손으로 빙글빙글 돌려보자.
이러면 와인의 향이 열리고 맛이 좋아진다……
라기보다는, 나와 날 마주하고 있을 당신에게 점차 최면을
거는 느낌으로.
내 마음의 비무장지대에 당신을 한 발자국씩, 들여보내는 느낌으로.
---「내가 취했으니까 하는 말인데……」중에서
24시간 누군가에게 열려 있는 존재란 없다.
그리고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당장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할 이유도 사실은 없다.
내가 그럴 수 없는 것처럼,
제주도의 주유소 사장님도, 내 곁의 사람들도, 나의 연인도.
---「당신을 24시간 사랑할 순 없어요」중에서
나란히 술에 취한 채, 술잔을 꼭 붙잡은 채 다짐한다.
우리 직장인 김 모 씨, 이 모 씨, 박 모 씨 하지 말자.
명함 하나로 설명되는 사람 하지 말고, 자판기처럼 계속 뭔가를 뱉어내야
하는 사람 하지 말자. 우리는 누군가의 자식이고, 누군가의
반려자일 것이고, 누군가의 부모가 될 테니까.
우리는 우리만의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니까.
그러니까 좋은데이, 올 거야.
---「술맛 나는 JOB소리들」중에서
텅텅 빈 시골집에서 할머니가 혼술을 즐긴다면, 그 술은 뭘까?
소주는 할머니보단 할아버지 쪽에 어울리고, 맥주는 어딘가
젊고 차가운 느낌이다. 외국이라면 와인이나 위스키를
마신다는 상상을 할 법도 하지만, 조그맣고 귀여운
우리나라 시골 할머니에겐 너무 화끈하잖아!
그러니까, 아무래도 따뜻한 안주에 구수한 막걸리 한 잔 정도가 아닐까?
---「마음에 마음을 저금합니다」중에서
‘소주나 한잔 하자’는 말에 굽어져 있던 척추에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월급을 받으면 소주를 마셔도 이런 소주를 마실 수 있게 되는구나!
사회에 한 발 내딛은 진정한 어른이 된 기분이 들어 자못 경건한 마음으로 술잔을 넘겼다.
그날의 기억 때문인지 화요는 지금도 ‘어른의 술’ 같은 느낌이다.
술이야 당연히 어른이 마시는 것이지만, 허리를 곧게 펴고 마셔야 하는 술 같은 느낌이랄까.
---「눈물이 고이는 곳에 사람이 있었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