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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일 바쿠닌

미하일 바쿠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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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 top100 4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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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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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2년 05월 14일
쪽수, 무게, 크기 703쪽 | 900g | 152*223*40mm
ISBN13 9788993985771
ISBN10 89939857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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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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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 이태규
전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 일했으며, 논문으로 「그람시 문화정치의 재구성 ― 일상성, 대중문화의 주체를 중심으로」(2001)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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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출구를 거부당한 미하일의 격정은 자기 삶에서 맺고 있는 모든 개인적이고 정치적인 관계 속에서 분출됐고, 강렬하면서도 기이한, 그러면서도 파괴적인 개성을 형성시켰다. 그리고 그 개성이야말로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들면서도 동시에 매혹시켰다. 또한 그 개성은 19세기 중반의 유럽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 p.50

책보다는 사람들과 나누는 교류 속에서 언제나 많은 것을 체득하는 명석한 두뇌를 가진 미하일은 독일 형이상학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온 스탄케비치의 후일담에서 열심히 지식을 빨아들였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낭만적 이상주의를 대체할 확실한 철학적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다. --- p.52

“제 성격에는 근본적인 결함이 있습니다. 그것은 환상적인 것에 관한, 별나고 괴이한, 그래서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모험을 향한 사랑입니다. 그 모험은 끝도 없이 펼쳐진 거대한 수평선에 가 닿을 수 있는, 또한 예측할 수 없는 종착지를 향한 것입니다.” --- p.69

바쿠닌가의 젊은이들에게 프레무키노는 바로 고향 그 자체이자, 낭만주의적 정신의 본질이었다. ‘외부’ 세계의 거친 현실에서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는 이곳의 목가적인 평화로움 속에서는 그 누구라도 아무런 근심 없이 황홀한 영혼의 ‘내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었다. 낭만적인 이상주의는 본질적으로 귀족주의적인 것이었다. …… 프레무키노의 비옥한 토양은 이런 관대함을 넉넉하게 제공했다. …… 미하일은 죽는 날까지 귀족주의자로 남았다. …… 낭만주의 시대의 진정한 아들인 미하일은 일생 동안 가혹한 현실이라는 평범한 빵을 외면하고, 자신만의 환상 속에 있는 달콤한 사탕과 양념만 계속 씹은 것이다. --- pp.70-71

미하일은 광란의 바다가 자아내는 신기하고도 거대한 장관에 사로잡혀 갑판에서 거의 들어갈 줄 몰랐다. 평화로운 러시아 해안은 자꾸만 멀어졌다. 그때부터 폭풍우는 미하일이 선택한 운명이 됐다. 보른홀름 섬의 높이 솟은 절벽과 반쯤 무너진 성곽은 하이네의 낭만주의와 월터 스코트의 《해적》을 떠올리게 했다. 날씨는 언제 그랬냐는 듯 화창해졌다. 바다 위에서 보는 일출과 일몰, 달밤은 장엄했다. --- p.140

게르첸, 투르게네프, 바쿠닌의 세대는 유럽이 제2의 조국으로, 모든 점에서 우월한 조국으로 보였다. 이 세 사람은 프랑스어와 독일어를 거의 모국어처럼 사용했다. 물론 서로 다른 점이 무척 많았지만, 이 세 사람은 30대가 됐을 때 자기 자신을 러시아인보다는 오히려 유럽 시민이요 세계 시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 바쿠닌은 대다수 사람들이 10대에서 30대 사이에 겪고 지나가는 단계에 평생 머물러 있었다. 이런 점에서 영원한 청년기가 아니라 영원한 유아기의 비밀을 즐긴 셈이었다. 반역의 대상을 무엇으로 결정하느냐는 이차적인 문제였다. 그것은 대략 일시적인 조건이나 동기에 따라 결정되기도 했고, 반역을 정당화하려고 내세우는 주장은 한층 더 우발적인 침묵이나 다름없었다. 목적이나 반역을 위해 내세우는 이유와 별개로 반역하고자 하는 순수한 본능은 미하일 바쿠닌의 성격에서 훨씬 잘 표현되고 있었다. --- pp.162-163

바이틀링의 손은 모든 사람을 반대했고, 무력을 통한 국가 전복과 부의 몰수를 설교했다. “공산주의의 모든 적들을 사정없이 공격할 것”을 처음 주장한 인물일 것이다. 바쿠닌은 이 “숭고한 정신”의 이상주의와 무모한 야만성의 결합 속에서 자신의 격정적인 성격과 비슷한 무언가를 발견했다. 이 만남은 바쿠닌을 사변적인 철학자에서 현실적인 혁명가로 완전하게 전환시켜준, 바쿠닌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였다. 러시아 귀족이 국제 프롤레타리아트의 하인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때부터 사회적 또는 정치적 질서의 폭력적 전복은 미하일 바쿠닌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목적이 됐다. --- p.183

바쿠닌에게 마르크스는 언제나 좀 이질적이고 어딘가 모르게 반감을 일으키는 존재로 남아 있었다. 거기에다 엄격하고, 지나치게 신중하며, 계산적이기까지 했다. 바쿠닌은 순수한 사고를 토대로 적극적으로 과학적 사회주의를 실천했다. 바쿠닌에게는 감정을 띠지 않은 것은 어느 것도 바람직한 게 아니었다. 러시아 귀족과 유대인 변호사의 아들 사이에는 단순히 기질상의 차이만 있는 게 아니라 전통과 사상에서도 공통된 배경이 없었다. 그러므로 두 사람은 애초부터 서로 이해할 수도 그렇다고 해서 좋아할 수도 없었다. --- p.192

바쿠닌은 프루동이 “공론만 일삼는 부르주아 사회주의자들보다 그 행동과 직관에서 몇 백 배나 더 혁명적이다”라고 썼다. 프루동은 생시몽주의자와 푸리에주의자들의 감상적인 낙관주의와 공상에 기초한 백일몽을 하늘 저 편으로 날려버렸다. 과감하게 현존 질서의 세 가지 훁요한 기둥인 신, 국가, 사유 재산을 공격했다. …… 권위를 향한 바쿠닌의 타고난 반항을 진정한 아나키즘의 강령으로 변형시킨 장본인은 프루동이었다. --- p.194

바쿠닌의 성격은 합리적인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에 속한다. 바쿠닌의 야망은 불분명한데다 비현실적이기까지 했다. 글은 활력으로 가득 차 있지만 일관성이 결여돼 있었다. …… 심지어 죽기 전부터 이미 고국을 제외한 몇몇 나라에서는 전설이 됐다. 바쿠닌이 정치적 웅변이 살아 있는 전통으로 자리 잡고 있는 나라에서 성장했다면 역사상 가장 뛰어난 웅변가 중 한 사람이 됐을 것이다. 바쿠닌은 공개 석상에서 연설할 수 있는 기회가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 상황, 그것도 모국어로는 단 한 번도 연설할 수 없는 상황 속에 살았다. 아주 드물기는 했지만 그런 기회가 올 때면 그 우람한 체구와 불같은 열정은 청중을 최면 상태로 몰아넣었다. --- p.211

미하일 바쿠닌만큼 한 개인의 인생과 사상이 세계에 강력한 영향을 끼친 사람도 드물지만, 그런 사람 중에서 미하일 바쿠닌만큼 자신의 견해에 관해 혼란스럽고 불완전한 기록을 남긴 사람도 드물다. 바쿠닌은 글을 많이 쓰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글이 논리적 정합성을 갖추고 있지는 않았다. 타고난 기질 탓에 순간순간 떠오르는 영감에 따라, 그리고 문어보다는 구어에 의지해서 글을 썼다. --- p.242

첫째, 바쿠닌은 부르주아지가 명확하게 반혁명적 세력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과 미래의 혁명을 향한 희망은 노동 계급에 달려 있다는 점을 믿었다. 둘째, 혁명의 전제 조건은 오스트리아 제국의 해체와 중부 유럽과 동유럽에서 자유 슬라브 공화국 연방을 건설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셋째, 최후에는 농민, 특히 러시아 농민이 혁명을 성공시키는 데 결정적인 세력이라는 사실이 입증될 것이라고 믿었다. 이 세 가지 개념은 이 무렵 바쿠닌이 하고 있는 모든 행동의 기초였다. --- p.246

기질로 보면 마르크스보다는 바쿠닌이 대의제를 거부하기가 더 쉬웠다. 러시아 귀족으로 태어난 바쿠닌에게는 정치적 지혜를 발휘할 수단으로 표결이라는 형식을 받아들일 마음이 애초부터 없었다. 바쿠닌은 자유를 사랑했지만, 평등에는 불쾌감을 갖고 있었다. 평등은 바쿠닌에게 하나의 선전 문구요 이상일 뿐이지 결코 살아 있는 신념인 적이 없었다. --- p.249

민족주의자로서 바쿠닌은 슬라브 민족주의를 지지했지만 같은 열정을 독일의 민족주의를 위해 불어넣지는 않았다. 반면 국제주의자인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슬라브 민족주의를 비난했지만, 여기에 상응하는 독일 민족주의에는 비교적 관대했다. 민족주의와 국제주의 사이에 놓인 쟁점에 관해서 역사는 아직도 최종 판단을 내리지 않고 있다. 또한 어쩌면 역사는 여전히 중부 유럽의 슬라브인 문제에 관해 마지막 말을 하지 않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찌됐든 1918년에는 바쿠닌이 승리했다. --- p.255

이론상으로는 절대 자유의 주창자요, 그때는 물론 그 뒤에도 공산주의의 경직된 규율을 가장 혹독한 말을 사용해 비난한 바쿠닌, 그 바쿠닌이 자신의 혁명 활동을 조직화하면서 보이는 모습은 자기 자신의 원칙을 정면으로 거스를 뿐 아니라 교조적이고 전횡을 일삼는 마르크스가 가진 가장 극단적인 야심을 훨씬 능가하려 하고 있다. --- p.265

바쿠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도 러시아로 인계되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을 정도로 두려워했다. 러시아에서는 애초부터 자비를 기대할 수 없다. 만약 굴욕을 당할 수밖에 없다면 조국의 인민들이 아니라 낯선 사람들 앞에 있는 게 낫다. --- p.290

그 시대의 다른 모든 급진주의자들이나 혁명가들과 바쿠닌을 구분하게 하는 것이 바로 태생적으로 갖고 있는 이런 솔직한 성격이었다. 게르첸은 러시아 인민을, 그리고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각각 이상화했다. 그러나 게르첸은 농노에게서 자신의 사상을 가져온다는 것을 상상하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마르크스가 직공한테서 그러지 못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자신은 귀족이었는데도 이전에 농노이던 인물과 신분의 차이를 뛰어넘은 채 관계를 맺는 일은 계급의식에서 충분히 자유로운 바쿠닌이기에 가능했다. --- p.375

바쿠닌은 늘 성급하게 일했다. 언제나 혁명이 임박했다고 생각했으며, “임신 3개월을 9개월로 착각했다.” 인내심을 가지라고 조언하던 오가료프는 또 다른 직유형 표현을 사용해서 바쿠닌을 묘사했다. 혁명과 사랑에 빠진 바쿠닌은 마치 아직 미숙한 어린 소녀가 사랑에 빠진 것 같다고 했다. --- p.380

바쿠닌 자신의 설명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바쿠닌은 마르크스가 쓴 창립 선언문을 읽고 감탄해 마지않았다. 새로운 사상에 열광하는 바쿠닌의 천성대로 공감을 표시하고 기꺼이 도움을 줄 생각을 분명히 했을 것이다. 오해는 지원의 본질 때문에 생겼다. 매사 꼼꼼한 것과 질서를 선호하는 뚸르크스는 절대적으로 충성과 복종을 바치지 않는 사람의 협력은 필요 없었다. 근본적으로 규율을 싫어하는 바쿠닌은 자신이 끌고 갔으면 끌고 갔지 결코 남을 따라갈 인물은 아니었다. 바쿠닌은 인터내셔널을 도우려 했다. 그러나 그 도움은 자기 방식대로 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줄 수 있는 도움이었다. --- pp.435-436

《혁명가의 교리 문답》은 민족주의가 혁명의 동인이라는 점을 미하일이 처음으로 부인한다고 선언하는 문서이자 아나키즘의 신조가 명확하게 윤곽을 드러낸 첫 문서다. 이 문서는 “모든 현존하는 종교, 정치, 경제, 사회 제도를 급진적으로 파괴”하고 “자유, 이성, 정의, 노동을 기초로 한 보편적인 사회를 수립”하자고 요구함으로써 바쿠닌의 진정한 의도대로 시작하고 있다. --- p.451

“지금 같은 중앙 집중화된 국가들이 존재하는 한 세계 평화란 불가능할 것입니다. 권위와 정복이라는 권리에 따라 강제로 조직된 통일체들의 폐허 위에서 우리는 지방에서 코뮌으로, 코뮌에서 국가로, 국가에서 유럽합중국으로 자유로운 연방을 구성함으로써 아래로부터 자유롭게 조직된 통일체가 일어날 수 있도록 중앙 집중화 된 국가의 파멸을 바라지 않으면 안 됩니다.” --- p.465

“저는 공유를 싫어합니다. 공유는 자유의 부정이고, 저로서는 자유 없는 인간성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공산주의자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공산주의는 본질적으로 국가에 이익이 되는 것이라면 사회의 모든 힘을 한 곳으로 집중시키고, 그것을 통째로 집어삼키고, 또한 국가의 수중에 모든 소유를 집중시키는 방향으로 반드시 나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저는 국가의 폐지를 원합니다. …… 저는 어떤 권위라도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 권위를 가지고 위에서 아래로 조직되는 방식이 아니라 자유로운 연합으로서 아래에서 위로 조직되는 사회와 집산체적 소유 또는 사회적 소유를 목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p.478

“그래서 저는 이런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우리와 함께 자유, 정의, 평화를 수립하기를 바라는 사람, 인간성의 승리와 인민의 완전한 해방을 바라는 사람은 우리와 함께 모든 국가를 파괴하고, 모든 나라의 자유로운 생산자 연합이라는 세계 연방을 국가의 폐허 위에서 수립하기를 소망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 p.481

네차예프하고 다르게 바쿠닌은 동료들에게 아주 너그럽고 친절했다. 네차예프와 달리 오직 말로만 인정사정없었다. 무엇보다도 바쿠닌이 지닌 주요한 특성은 자신이 수행할 수 없는 것을 진심으로 설파하고 다니는 인간적인 모순이었다. 동시대 인물 중에서 바쿠닌처럼 복잡하고 당혹스러운 성격을 지닌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다. --- p.546

바쿠닌은 시민들에게 무장하자고 호소했다. 일단 막혀 있던 열정이 봇물처럼 터지고 싸움이 시작되면 무장한 세력들은 폭도로 변할 것이라고 바쿠닌은 확신했다. 심지어 반항하는 국민군에게 마취제를 놓을 계획도 세우고 있었다. 동료들은 당황했다. 이미 시가지에 내걸린 그 선언문에 서명한 장본인들이고, 그 선언문은 끝에 “무기를 들어라!!!”라고 호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p.561

“1월 2일. 지갑 텅 빔. …… 21일, 수중에 53프랑 70상팀 있음. 24일, 주머니에 20프랑. 25일, 커피 없다. 28일, 프랑초니 마담에게 편지, 내일쯤 답장이 올 듯. 어떤 내용일까? 한 푼도 없나? 200프랑? 300프랑? 400프랑? 29일, 프랑초니 마담한테 300프랑 받다. 파리는 28일 항복하다. 부르바키, 스위스에 들어오다. 니나(가정부)에게 25프랑 주다(2월 1일까지 20프랑 더 줘야 함). 마리에게 40프랑 주다(2월 4일까지 208프랑 더 줘야 됨). 베톨리에게 55프랑 주다(25프랑 더 줘야 함).” --- p.567

미하일 바쿠닌과 칼 마르크스는 자신만의 명성과 교의를 지니고 19세기 후반의 혁명 운동을 주도한 주역이었다. 경쟁 관계에 있던 두 사람은 비슷한 영향을 받고 성장했다. 두 사람 모두 토대는 헤겔에 놓여 있었다. 두 사람 모두 혁명을 긍정과 부정, 보수와 진보 사이의 헤겔식 반정립의 산물로 인식했다. 또한 두 사람은 부정이 긍정을, 진보가 보수를 파괴함으로써 새로운 질서가 완성된다고 믿었다. 이 점에서 마르크스는 “파괴를 위한 열정은 또한 창조적인 열정이다”라는 바쿠닌의 언명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 있었다. --- p.600

바쿠닌의 자유 개념은 철저히 분석해보면 극단적인 개인주의였다. 그것은 낭만적 신조의 필연적인 귀결이었다. 그리고 어떤 극단도 두려워하지 않는 기질에 제대로 부합하는 결론이었으며, 개인의 자기주장 속에서 자연스런 출구를 발견했다. 바쿠닌은 이론상으로는 자유의 가장 열광적인 옹호자였으며, 역사상 가장 완벽한 개인주의자였다. --- p.601

국가를 향한 바쿠닌의 혐오는 인간 개인의 본성에 관한 자신의 신념에서 직접 나온다. 그리고 “권위에 관한 모든 행사는 왜곡되고, 권위에 관한 일체의 복종은 인간에게 굴욕감을 안겨준다”고 말했다. 바쿠닌은 “모든 신학과 마찬가지로 국가는 인간을 근본적으로 옳지 못하고 사악한 존재로 가정”하기 때문에 국가야말로 “인간성에 관한 가장 악명 높고, 가장 냉소적이며, 가장 완벽한 부정”이라고 여겼다. --- p.603

바쿠닌의 교의는 일련의 기사, 논문, 소책자에서 발췌해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저작들은 대부분 특수한 경우나 특정한 목적을 고려해 쓴 것이고, 대부분 완성되지 않은 형태이며, 만약 바쿠닌이 자기 글을 수정할 여력이 있었다면 최종 수정본은 사라졌을 수도 있기 때문에 저술의 대부분은 일관성을 결여한 채 모호한 내용을 담고 있다. 바쿠닌은 말과 개성이라는 알기 어려운 재능에 의존해서 당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 인물들이 겪는 운명을 똑같이 겪었다. 생전에 자신을 알던 사람들에게 항상 보여준 압도하는 듯한 힘찬 모습을 후대에 전해주기란 불가능했다. --- p.607

“나는 평생을 시시포스의 역할을 수행하며 보냈고, 끊임없이 자신의 어깨 위에서 무너져내리는 정치 혁명과 사회 혁명을 준비하며 살았다.” --- p.609

“전세계에 딱 세 명만 살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중 두 명은 나머지 한 사람을 억압하려고 힘을 합치려 들 거야.” --- p.661

바쿠닌은 자신의 젊은 손님과 마지막 제자라고 할 수 있는 이탈리아 노동자들과 함께 여전히 혁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럴 때면 두 눈이 빛나면서 “활기가 넘치고, 날카로우면서 매력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바쿠닌은 미래보다는 과거에 관해 더 많이 이야기했다. --- p.670

모든 철학자는 인간을 전체 민중의 일부가 아니라 개인으로 다루면서 방향을 잘못 잡았다고 바쿠닌은 설명했다. 회고록을 읽으려는 사람들을 위해 회고록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모든 민족은 혁명의 본능을 잃어버렸다. 순종적이고 무기력해지다 보니 자신들이 가진 것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겁을 집어먹고 있었다. 바쿠닌은 병마를 털고 일어설 수만 있다면 집단의 원리를 토대로 한 윤리학에 관한 논문을 쓸 생각이었다.
--- p.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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