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유쾌하면서도 강박적인 열정을 품고 해부학, 화석, 조류, 심장, 비행 기기, 광학, 식물학, 지질학, 수류水流, 무기 등 여러 획기적인 분야를 탐구했다. 그리하여 르네상스인의 전형이 되었고, 그의 말마따나 “자연의 무한한 조화들”이 서로 조화롭게 엮여서 경이로운 패턴을 만들어낸다고 믿는 모든 사람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가 되었다. 과학과 예술을 결합하는 그의 능력은, 정사각형과 원 안에 팔다리를 활짝 뻗은 완벽한 비율의 남자를 그린 「비트루비우스적 인간 Vitruvian Man」을 통해 단적으로 드러난다. 이러한 능력 덕분에 그는 역사상 가장 창의적인 천재가 되었다.--- pp.17~18
우리는 레오나르도에게서 배울 점이 많다. 예술, 과학, 기술, 상상력을 결합하는 그의 능력은 예나 지금이나 뛰어난 창의성을 위한 공식으로 알려져 있다. 남들과 조금 다른 것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느긋함도 마찬가지다. 그는 사생아, 동성애자, 채식주의자, 왼손잡이였고 쉽게 산만해졌으며 때때로 이단적이었다. 15세기 피렌체가 번영을 누릴 수 있었던 건 이런 사람들을 기꺼이 포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레오나르도의 끈질긴 호기심과 실험 정신을 거울삼아 우리 자신과 우리 아이들에게 기존 지식을 수용하는 것을 넘어 거기에 의문을 제기하는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 상기시켜야 한다. 또한,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법과, 어느 시대에나 있는 창조적인 사회 부적응자와 반항아처럼 남과 다르게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 p.27
「그리스도의 세례」를 통해 베로키오는 레오나르도의 스승에서 동업자가 되었다. 그는 레오나르도에게 입체화 기법을 비롯한 회화에서의 조각적 요소를 가르쳤고, 움직일 때 몸이 어떤 식으로 뒤틀리는지 익히도록 했다. 하지만 레오나르도는 유화물감을 얇게 덧칠해 완성한 반투명하고도 탁월한 묘사, 남다른 관찰력과 상상력을 통해 예술을 완전히 새로운 경지로 끌어올렸다. 저 멀리 지평선의 옅은 안개부터 천사의 턱 아래 그림자, 예수의 발에 닿는 물에 이르기까지 레오나르도는 화가가 관찰 대상을 변형하고 전달하는 방식을 새롭게 정의했다. --- p.88
레오나르도가 이 그림을 완성하지 못한 다른 이유, 더 근본적인 이유도 있다. 그는 구상을 현실화하는 것보다는 구상 자체를 좋아했다. 이 작품을 맡기며 엄격한 계약서를 작성했던 그의 아버지와 다른 사람들은 진작 알고 있었겠지만, 스물아홉 살의 레오나르도는 현재에 집중하기보단 미래에 의해 쉽게 산만해졌다. 그는 근면함을 훈련받지 못한 천재였다. --- p.120
그는 소우주인 인체와 대우주인 지구를 같은 선상에 놓는 고전적 비유를 사용했다. 도시는 순환하는 체액과 배출해야 할 노폐물을 가진, 숨을 쉬는 유기체였다. 그는 최근 인체의 혈액과 체액 순환을 연구하기 시작한 터였다. 비유적 사고를 통해 그는 유통부터 폐기물 처리에 이르기까지 도시에 필요한 최고의 순환 체계가 무엇인지 고심했다. (…) 레오나르도의 다른 공상적 설계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시대를 너무 앞선 이 구상은 현실화되지 못했다. 루도비코는 레오나르도의 도시 비전을 채택하지 않았지만, 이 경우 레오나르도의 제안은 기발할 뿐 아니라 합리적이기까지 하다. 그의 계획 중 일부만이라도 실행되었다면, 그것은 도시의 속성을 완전히 바꾸고 역병 발생을 억제하고 역사를 바꿨을지도 모른다. --- pp.146~147
현존하는 7200페이지 이상의 노트는 레오나르도가 기록한 전체 분량의 4분의 1 정도로 추정된다. 하지만 500년의 세월이 흐른 이 기록은 스티브 잡스와 내가 회수할 수 있었던 1990년대 잡스의 이메일과 전자 문서보다 훨씬 높은 비율이다. 레오나르도의 노트는 창조력 응용의 기록을 낱낱이 제공하는, 그야말로 놀라운 뜻밖의 횡재라 할 수 있다. (…) 좋은 종이는 비쌌기 때문에, 레오나르도는 대부분 페이지의 가장자리까지 꽉 채워 사용하려 했다. 각 페이지마다 최대한 많은 내용을 담았고 언뜻 무관해 보이는 다양한 분야의 내용을 뒤죽박죽 섞어놓았다. 그는 몇 달 전, 혹은 몇 년 전 작성한 페이지로 되돌아가 자신이 진화하고 성숙한 만큼 그 내용을 다듬기도 했다. 「황야의 성 히에로니무스」를 나중에 다시 채색하고 이후 그리게 될 작품들을 오랜 시간에 걸쳐 다듬었던 것처럼.--- pp.150~151
레오나르도는 밀라노에서 재능뿐 아니라 멋진 외모, 근육질 몸매, 다정한 성격으로 유명해졌다. 바사리는 레오나르도에 대해 “그는 눈에 띄는 아름다움과 무한한 우아함의 소유자였으며 빼어난 미남이었고 그의 남다른 존재감은 고통받는 영혼들에게 위안을 선사했다”라고 표현했다. (…) 무엇보다 그는 자신이 가진 것을 타인과 나누는 사람으로 유명했다. “그는 너무 너그러워서 부자든 빈자든 간에 모든 친구를 먹이고 재웠다”라고 바사리는 전한다. 그는 부나 물질적 소유를 중요시하지 않았다. 자신의 노트에 “물질적 풍요만 추구할 뿐 인간에게 자양분이 되고 가장 신뢰할 만한 재산인 지식에 대한 욕구가 전혀 없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점점 불어나는 식솔을 부양하는 데 필요한 것 이상의 돈을 벌려고 애쓰기보다는 지식 추구에 더 많은 시간을 쏟았다. “그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 일을 거의 안 했지만 늘 하인들과 말들을 거느렸다”라고 바사리는 전한다. --- pp.178~179
‘비트루비우스적 인간’의 눈빛은 거울을 들여다보는 사람처럼 강렬하다. 어쩌면 이것은 실제로 거울을 들여다보는 장면이리라. 이 그림에 관한 책을 저술한 토비 레스터Toby Lester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것은 레오나르도의 이상화된 자화상이다. 그는 자신의 정수만 남긴 채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자신의 치수를 측정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영원한 인간의 희망을 구현했다. 그것은 세상 만물의 거대한 섭리 속에서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알아낼 능력이 우리에게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었다. 이 그림을 사변의 행위라고, 레오나르도가 ?예술가이자 자연철학자이자 모든 인류의 대표자로서 ?자신의 본질에 관한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미간을 찌푸린 채 스스로를 응시하는 모습을 그린 형이상학적 자화상이라고 생각해보자.”
레오나르도의 「비트루비우스적 인간」은 예술과 과학을 결합하여 유한한 인간의 존재란 무엇인지, 거대한 우주 섭리에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지와 같은 영원한 질문을 고찰하는 한 순간을 구현한다. 또한 이것은 인간 개개인이 지닌 존엄, 가치, 이성을 높이 평가하는 인문주의적 이상을 상징하기도 한다. 우리는 정사각형과 원 속에서 지구적인 것과 우주적인 것의 교차점에 나체로 서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정수를, 그리고 우리 자신의 정수를 확인할 수 있다. --- pp.213~214
레오나르도가 「비트루비우스적 인간」을 그렸을 때, 그의 머릿속에는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진 다양한 아이디어가 넘쳐났다. 그것은 원과 같은 면적의 정사각형 작도, 인간이라는 소우주와 지구라는 대우주의 유사성, 교회 건축에서 정사각형과 원의 기하학, 기하학적 형태의 변화, ‘황금분할’ 혹은 ‘신성 비례’라 불리는 수학과 예술이 결합된 개념 등이었다.
그는 이런 주제에 대해 고민하면서 순전히 자기 경험과 독서에만 의존하지 않고 친구 및 동료와의 대화를 통해 생각을 키워나갔다. 여러 학문 분야에 발을 담갔던 많은 사상가들과 마찬가지로, 레오나르도에게 사고의 발전이란 협력을 통해 가능한 것이었다. 미켈란젤로처럼 늘 고뇌에 차 있던 예술가들과 달리, 레오나르도는 친구, 동료, 제자, 조수, 궁정 일꾼, 사상가 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것을 즐거워했다. 그의 노트를 통해 그가 생각을 나누고 싶어 했던 수십 명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그와 가장 가까운 친구는 지식인들이었다.
이렇듯 서로 생각을 나누고 함께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과정은 밀라노 궁정 같은 르네상스 시대의 궁정을 드나듦으로써 더 촉진되었다. 스포르차 궁정에서 급여를 받던 사람 중에는 악사와 공연자뿐 아니라 건축가, 의학 연구자, 다양한 분야의 과학자도 있었다. 이들은 레오나르도가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배우고 끝없는 호기심을 채우게끔 도왔다. 뛰어난 시작詩作보다는 아첨으로 유명했던 궁정 시인 베르나르도 벨린치오니는 루도비코가 보살피던 다양한 인재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루도비코의 궁정은 예술가로 가득하다. 꿀 냄새를 맡은 벌처럼 모든 박식한 학자들이 그에게 모여든다.” 그는 레오나르도를 가장 위대한 고대 그리스 화가에 비유했다. “그는 피렌체에서 아펠레스Apelles를 이끌고 이곳으로 왔다.” --- pp.214~215
레오나르도가 그저 경험의 제자로만 남았던 것은 아니다. 그의 노트에서 그의 진화를 확인할 수 있다. 그는 1490년대부터 책에서 지식을 흡수하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경험적 증거뿐 아니라 이론적 체계의 인도를 받는 것이 중요함을 깨닫게 되었다. 더 중요하게는, 이 두 가지가 긴밀하고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맺고 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20세기의 물리학자 레오폴트 인펠트Leopold Infeld는 “우리는 레오나르도에게서 이론과 실험의 상호 관계를 제대로 평가하려는 극적인 시도를 확인할 수 있다”라고 썼다. --- pp.233~234
다양한 분야의 패턴을 알아보는 본능과 더불어, 레오나르도는 과학 연구에 유용한 두 가지 능력을 발전시켰다. 그것은 광적이라 할 만큼 잡다한 호기심과 무섭도록 극성맞고 날카로운 관찰력이었다. 레오나르도의 다른 부분들이 대체로 그렇듯, 이 두 가지도 서로 연결되어 있다. 할 일 목록에 “딱따구리의 혀를 묘사하라”라는 말을 적을 정도의 인간이라면 누구든 호기심과 예리함을 지나치게 많이 타고났다고 할 수 있겠다.
아인슈타인과 마찬가지로, 레오나르도의 호기심은 보통 사람이라면 열 살을 넘긴 시점부터 궁금해하지 않는 현상을 주목했다. 하늘은 왜 푸른가? 구름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왜 우리의 눈은 직선으로밖에 보지 못하는가? 하품은 무엇인가?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일상의 시시한 현상을 놀라워하게 된 이유는 어릴 적 말을 늦게 배운 탓이라 했다. 레오나르도의 경우, 이러한 재능은 자연을 사랑하는 아이로 자란 동시에 기존 지식을 지나치게 주입받지 않은 덕분일지도 모른다.
그가 호기심을 가지고 노트에 적어둔 다른 주제들은 더 야심 찼고 탐구 관찰력을 필요로 했다. “눈을 움직이게 하는 건, 그래서 한쪽 눈의 움직임이 반대쪽까지 움직이게 하는 건 어떤 신경인가” “자궁 속에 있는 인간의 시작을 묘사하라.” 딱따구리와 더불어, 그는 “악어의 턱”과 “소의 태반” 같은 것도 살펴보고자 했다. 이런 일들은 엄청난 노력을 들여야만 가능했다.
그의 호기심은 날카로운 눈썰미의 도움을 받았다. 그는 우리가 대부분 놓치는 것들을 알아차렸다. 어느 날 밤 건물들 뒤편으로 번개가 번쩍 내리치는 것을 목격했는데, 바로 그 순간 건물들이 평소보다 작아 보였다. 그는 일련의 실험과 통제된 관찰을 통해 물체는 밝은 곳에서 작아 보이고 안개나 어둠에 싸여 있을 때 커 보인다는 것을 밝혀냈다. 한쪽 눈을 감고 있으면 두 눈을 다 뜨고 있을 때보다 사물들이 덜 입체적으로 보인다는 것을 발견한 뒤에는 그 이유를 알아내려고 했다. --- pp.238~239
기계를 연구함으로써 레오나르도는 뉴턴보다 앞서 기계론적 시각으로 세상을 보게 되었다. 그는 우주의 모든 운동이 '인간의 팔다리, 기계의 톱니, 인간의 혈액, 강물 등' 동일법칙에 따라 이루어진다고 결론 내렸다. 이러한 법칙 간에는 유사성이 존재한다. 한 영역의 운동은 다른 영역의 운동과 비교될 수 있고 그것을 통해 패턴이 드러난다. “인간은 기계, 새는 기계, 온 우주는 기계다.” 레오나르도의 장치들을 분석한 마르코 치안키의 말이다. 레오나르도를 비롯한 인물들이 유럽을 새로운 과학 시대로 인도하는 동안, 레오나르도는 점성술사, 연금술사처럼 원인과 결과의 비기계적 해석을 믿는 이들을 조롱했고 종교적 기적을 사제의 영역으로 강등시켰다. --- p.263
레오나르도는 역사상 가장 잘 훈련받은 자연 관찰자 중 한 명이었지만, 그의 관찰력은 상상력과 충돌하기보다는 긴밀히 협조했다. 예술과 과학에 대한 그의 사랑처럼, 관찰력과 상상력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그가 가진 천재성을 구성하는 씨실과 날실이 되었다. 그는 통합적인 창의성의 소유자였다. 진짜 도마뱀에 다양한 동물의 신체 부위를 덧붙여 용을 닮은 괴물을 만들어내듯, 그는 사교장에서의 속임수든 상상화든 간에 자연의 세부 사항과 패턴을 파악한 다음 그것을 상상력의 산물과 버무릴 수 있었다.
놀랍지도 않지만, 레오나르도는 이 능력과 관련된 과학적 근거를 찾으려 했다. 해부학 연구를 하면서 인간의 두뇌 지도를 제작할 당시, 그는 이성적 사고 능력과의 밀접한 상호작용이 가능한 상상 능력이 뇌실 속에 함께 존재한다고 봤다. --- p.341
「성모와 실패」 그림들은 타블로이드 신문 크기에 불과하지만 그 그림들에는, 특히 랜스던 버전에는, 레오나르도 특유의 천재성이 반영되었다. 어머니와 아들의 머리카락은 모두 윤기 있고 단단하게 말려 있다. 신비롭고 안개 자욱한 산에서부터 흘러 내려오는 강물은 마치 지구라는 대우주를 두 인간의 몸속 핏줄과 연결해주는 동맥 같다. 레오나르도는 성모의 얇은 베일 위에 비친 햇빛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도 알고 있었는데, 성모의 피부보다 베일을 더 엷게 표현하되 햇빛이 그녀의 이마 꼭대기에 닿아 반사되도록 했다. 햇빛은 성모의 무릎 옆에 그려진 가장 가까운 나무의 잎들을 선명하게 비추지만, 레오나르도가 선명도 원근법에 관한 글에서 설명한 것처럼 나무들은 멀어질수록 덜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또한, 예수가 기대고 있는 암석의 퇴적층은 레오나르도의 과학적 정확성을 잘 반영한다. --- pp.399~400
레오나르도의 지도들은 그가 이룩한 위대하지만 과소평가된 혁신의 또 다른 사례다. 그는 정보를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새로운 방법들을 고안했다. 레오나르도는 파치올리의 기하학 관련 저서에 삽화를 그려주면서 완벽한 명암으로 인해 삼차원처럼 보이는 다양한 다면체 모형을 완성했다. 공학과 기계학에 관한 노트 기록에서는 절묘함과 정확성을 갖춘 기계장치를 그림으로 그리고, 다양한 부품을 따로 떼어낸 장면까지 추가했다. 그는 복잡한 기계장치를 분해해 각 부분을 따로 그린 최초의 인물 중 하나였다. 해부도에서도 마찬가지로, 근육과 신경과 뼈와 장기와 혈관을 다양한 각도에서 그렸고 이 모든 것을 여러 겹으로 묘사하는 방법을 개척했다. 이것은 몇 세기 뒤의 백과사전에서 등장하는 인체의 여러 층을 나타낸 투시도와 비슷하다. --- pp.441~442
그의 열정과 호기심이 얼마나 다양했는지 보여주는 마지막 증거로서, 말들이 스케치된 페이지의 뒷면을 보면 그가 당시 이외에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거기에도 활기 넘치는 말 머리가 그려져 있지만, 바로 그 위에는 지구와 태양과 달이 표시된 태양계의 섬세한 도해와 우리가 달의 여러 모습을 보게 되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투영선들이 있다. 그는 달이 공중에 떠 있을 때보다 지평선에 걸려 있을 때 더 커 보이는 착시를 분석했다. 그는 오목렌즈를 통해 보면 물체가 더 커 보인다며 “이러한 방식을 통해 대기를 정확히 모방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적었다. 그 페이지의 가장 아랫부분에는 정사각형과 잘린 원 같은 기하학 도형이 그려져 있다. 레오나르도는 기하학 도형을 같은 면적의 다른 형태로 바꾸고 원과 동일한 면적의 정사각형을 작도하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끝없이 애썼다. 심지어 거기 그려진 말도 경외심과 존경심을 품은 표정이다, 레오나르도가 그 대단한 정신의 증거들을 자기 주변에 흩뿌려놓은 것이 새삼 놀랍다는 듯이. --- p.466
레오나르도의 모습으로 짐작되는 모든 초상화 중 가장 유명하고 눈부신 작품은, 레오나르도가 붉은색 초크를 사용해 왼손 해칭으로 직접 그린 인상적인 그림이다. 이탈리아 토리노에 보관되어 있어 ‘토리노 초상화’라고 불리는 이 작품은 너무 많이 재생산되어, 이것이 레오나르도의 실제 자화상이든 아니든 간에, 우리가 생각하는 레오나르도의 이미지를 규정하게 되었다. 여기에는 턱수염이 길고 머리가 곱슬곱슬하고 눈썹이 덥수룩한 노인이 그려져 있다. 머리카락의 날카로운 선은 부드러운 스푸마토 기법으로 묘사된 뺨과 대비를 이룬다. 부드러운 그림자와 직선 및 곡선의 해칭을 통해 입체적으로 표현된 코는 약간 휘어 있지만, 레오나르도의 노인 낙서에서처럼 심한 매부리코는 아니다. 레오나르도의 많은 작품에서처럼, 이 얼굴에는 강인함과 연약함, 체념과 조급함, 운명론과 단호한 결의 등 볼 때마다 다르게 느껴지는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 있다. 지친 눈은 사색에 잠긴 듯하고 아래로 내려간 입꼬리는 침울하다. --- p.573
「모나리자」를 거의 제일 마지막에 그려진 작품으로 보고, 예술과 자연의 교차점에 서는 능력을 키우는 데 한 평생을 바친 인생의 정점으로서 탐구하는 것이 이치에 맞을 듯하다. 포플러 패널 위에 수년에 걸쳐 여러 겹의 글레이즈를 얇게 덧입혀 완성된 이 작품은, 레오나르도가 가진 천재성의 여러 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실크 상인의 젊은 아내의 초상화로 시작한 그림은, 옅은 미소의 미스터리를 통해 전달되는 인간의 복잡한 감정을 묘사하고 우리의 본성과 우주의 본성의 연관성을 찾아가는 여정이 되었다. --- pp.601~602
리자의 얼굴에 빛이 닿는 방식과 관련해 다른 작은 특이점이 있다. 레오나르도는 광학 관련 글에서 환한 빛에 노출되었을 때 동공이 작아지는 데 걸리는 시간을 연구했다. 「음악가의 초상」의 경우, 크기가 다르게 표현된 양쪽 눈의 동공은 그 그림에 움직임의 감각을 부여했고, 레오나르도가 그림에 사용한 밝은 빛과도 잘 어울렸다. 「모나리자」의 경우, 리자의 오른쪽 동공이 약간 더 크다. 하지만 오른쪽 눈은 오른쪽에서 들어오는 빛을 더 직접적으로 향하고 있고(고개를 돌리기 전에도 광원을 향해 있었다), 그러므로 오른쪽 동공은 더 작아야 한다. 「살바토르 문디」에서 수정 구체의 굴절을 제대로 묘사하지 못한 것처럼, 이것도 단순히 실수일까? 아니면 교묘한 속임수일까? 레오나르도는 20퍼센트의 인구에게 발생하는, 좌우 동공의 크기가 다른 동공부등 증상을 알아챌 만큼 관찰력이 좋았던 걸까? 아니면 그는 쾌락 역시 동공 확장을 유발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리자의 한쪽 동공을 반대쪽보다 더 빨리 확장시킴으로써 리자가 우리를 보게 되어 느끼는 기쁨을 표현한 걸까?
어쩌면 이건 너무 사소하고 중요하지 않은 내용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것을 ‘레오나르도 효과’라고 해두자. 그의 관찰력은 너무도 예리해서 좌우 크기가 다른 동공 같은 모호한 이상異狀조차 우리로 하여금 그가 무엇을 발견했고 무슨 생각을 했을지, 어쩌면 과하다 싶을 정도로 깊이 고민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이것은 좋은 현상이다. 그의 주변에 머묾으로써 우리는 동공 확장의 원인 같은 자연의 세세한 사항을 더 유심히 관찰하고 새삼 경이로움을 느끼게 된다. 모든 세세한 것까지 인식하고자 하는 그의 욕망에 자극받아, 우리는 그와 똑같이 행동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 pp.611~612
레오나르도는 광학 연구를 통해 빛이 눈의 한 지점에 모이지 않고 망막 전체로 들어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중심와’라고 알려진 망막 중심부는 색과 미세한 부분을 잘 파악하고, 중심와의 주변부는 그림자와 흑백의 음영을 잘 파악한다. 우리가 어떤 물체를 똑바로 쳐다보면 그것은 선명하게 보인다. 하지만 주변 시야를 이용해 곁눈질하면 물체는 마치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약간 흐릿하게 보인다.
이런 지식을 이용해 레오나르도는 손에 잡히지 않는 웃음, 너무 열심히 보려 하면 오히려 안 보이는 웃음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리자의 입꼬리에 그려진 아주 가느다란 선은, 해부도 페이지의 꼭대기에 그려진 입술에서처럼 약간 아래로 처져 있다. 그 입을 똑바로 쳐다보면 우리의 망막은 이 미세한 부분과 선을 인식하게 되고, 따라서 리자는 웃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입에서 눈길을 돌려 눈이나 뺨이나 그림의 다른 부분을 쳐다보면, 우리는 리자의 입을 주변 시야로만 보게 된다. 입꼬리의 작은 선은 흐릿해지지만 여전히 그곳의 그림자는 보인다. 이러한 입가의 그림자와 부드러운 스푸마토 기법 때문에 리자의 입꼬리가 살짝 위로 올라가 미묘한 미소를 짓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그 결과, 굳이 보려고 애쓰지 않을수록 더 환하게 빛나는 미소가 완성된다. --- pp.618~619
레오나르도와 관계된 일이 늘 그렇듯, 그의 예술과 인생, 그의 출생지부터 이제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는 신비로운 베일이 드리워져 있다. 우리는 딱 떨어지는 선으로 그를 묘사할 수 없고,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다. 레오나르도 역시 「모나리자」를 그런 식으로 그리고 싶지 않았으리라. 약간은 우리의 상상에 맡겨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도 알고 있었다시피, 현실 속의 윤곽선은 필연적으로 흐릴 수밖에 없고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약간의 불확실성을 남겨둔다. 그의 삶에 가까이 다가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가 이 세상에 접근하며 사용했던 방법과 똑같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이 세상의 무한한 경이에 감탄하며.--- p.652
왕성한 지식욕을 가진 박식가들은 물론 많았고, 르네상스 시대에도 많은 르네상스인이 배출되었다. 하지만 그중에 「모나리자」를 그린 사람은 없었다. 동시에 수차례의 해부를 통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해부도를 그리고, 수로 변경 계획을 구상하고, 지구에서 달까지의 빛의 반사를 설명하고, 심실의 작동 원리를 알아내려고 막 도살한 돼지의 뛰는 심장을 열어보고, 악기를 디자인하고, 야외극을 기획하고, 화석을 통해 성서 속 대홍수 이야기에 반론을 제기하고, 그런 다음 대홍수 그림까지 그린 사람은 더더욱 없었다. 레오나르도는 천재이면서 그 이상이었다. 그는 모든 창조물과 우리가 그 안에서 차지하는 위치까지 이해하고자 했던 보편적인 지성인의 전형이었다. --- pp.655~656
인생의 어느 시점부터 우리는 대부분 일상적인 현상들을 골똘히 생각하지 않게 된다. 파란 하늘의 아름다움에 잠깐 감탄할지는 몰라도, 왜 하늘이 그런 색인지 더는 궁금해하지 않는다. 레오나르도는 궁금해했다. 아인슈타인도 마찬가지였는데, 그는 또 다른 친구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자네와 나는 우리가 태어난 이 세상의 놀라운 수수께끼 앞에 호기심 많은 아이처럼 서 있는 일을 멈춰서는 안 되네.” 우리는 모든 것을 신기해하던 어린 시절 모습을 잃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고, 우리 아이들도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 p.6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