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과 슬픔에 지친 이에게 건네는 따뜻한 위로
소중한 누군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 남겨진 이의 마음은 어떨까요? 특히나 매일 함께 생활하던 할머니를 잃은 손녀의 마음은 어떨까요? 이 세상 모든 빛이 사라지고 모든 소리가 잦아든… 끝없는 어둠 속을 살아가는 느낌이지 않을까요? 그 어둠과 슬픔 속에서 이 그림책은 시작합니다.
민들레 한 송이가 달을 올려다보는 까만 밤, 아이의 작은 목소리가 들립니다.
‘할머니 어디 있어요?’
책장을 펼치면 다시 까만 어둠과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할머니를 찾는 아이의 작은 목소리가 다시 들립니다. 무수히 많은 별들이 총총 빛나는 밤하늘, 아이는 그 안에 할머니가 있지 않을까 불러 봅니다. 할머니는 죽으면 밤하늘의 별이 되고 싶다고 말했거든요. 밤마다 할머니가 도란도란 읽어 주던 [빨간 모자][별주부전][아기 돼지 삼형제] 혹시 그 안에 할머니가 있지 않을까 그림책 속 친구들에게도 물어봅니다. 할머니를 찾으러 어디든 갈 수 있거든요. 여기저기 할머니와의 행복한 시간이 담긴 추억을 떠올려 보지만 아이는 할머니를 쉽게 찾을 수 없지요. 혹시나 꿈에서 할머니를 만날 수 있을까 잠을 청합니다.
어느새 까만 밤이 지나고 방긋 해가 떠오릅니다. 환한 햇빛이 할머니의 꽃밭을 비추고 세상은 노란 빛으로 물듭니다. 그때 아이에게 할머니의 웃음소리가 들립니다. 그리고 그렇게 그리던 할머니를 찾게 되지요. 바로 할머니의 보물에서요. 과연 할머니의 보물은 무엇일까요?
마지막에 할머니를 찾은 아이의 행복과 안도감은 고스란히 독자에게도 전달됩니다. 길고 어두웠던 할머니를 찾는 여정은 짙은 어둠과 슬픔 속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할머니와의 추억을 되새기며 아이의 상실감은 조금씩 치유가 되고 있던 거지요. 어쩌면 할머니를 찾아 다니던 아이의 여정은 돌아가신 할머니를 기억하고 간직하기 위한 과정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여정을 통해 아이도, 독자도 따뜻한 위로를 얻게 됩니다. 눈 앞에서는 사라졌지만, 할머니는 함께 했던 기억들 속에 영원히 존재하는 거니까요.
[할머니 어디 있어요?]는 소중한 누군가를 잃은 이들에게 따뜻하게 비추는 햇빛과 같은 위로를 건넵니다. 누군가의 생명은 죽음과 함께 끝이 납니다. 하지만 그의 삶은 남아있는 우리들에게는 계속 이어질 테니까요. 아이는 마지막으로 할머니에게 약속합니다. 할머니의 소중한 보물을 앞으로는 자기가 가꾸겠다고요. 슬픔과 절망의 시간을 지나면 평안과 희망을 꿈꾸는 순간이 찾아올 것입니다. 지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여러분에게도요!
생태 그림책 전문 작가 안은영의 새로운 이야기
안은영 작가는 생태 전문 그림책 작가로 활동하며 지금까지 많은 그림책을 펴냈습니다. 대표작인 [알아맞혀 봐! 곤충 가면 놀이]는 곤충들의 애벌레부터 직접 키우고, 변태 과정을 살펴보고, 곤충 사진을 찍고, 곤충 사체를 수집하며 만들었습니다. 또한 [같을까? 다를까? 개구리와 도롱뇽]은 알에서부터 개구리, 도롱뇽이 될 때가지 직업 키우면서 관찰한 내용을 담았습니다. 이처럼 안은영 작가는 사진이나 영상을 보고 그리는 게 아니라 직접 오랫동안 곤충이나 식물을 관찰하고 그 경험을 토대로 그림책을 만듭니다. 이러한 그녀의 진정성과 장인 정신은 그림책 곳곳에 자연스럽게 묻어나옵니다.
이번에는 아주 새로운 그림책을 지었습니다. 표지부터 너무 생경해서 안은영 작가를 아는 독자라면 다시 작가 이름을 다시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 책 역시 작가가 직접 겪은 경험을 토대로 한, 진정성 있는 이야기라는 점은 변함이 없습니다.
[할머니 어디 있어요?]는 안은영 작가가 돌아가신 어머님을 기리며 지은 그림책입니다. 어머님이 투병 생활을 하실 때부터 심한 불면증을 겪었습니다. 돌아가신 이후에도 한동안 잠을 잘 수가 없어 어두운 밤에 깨어 있을 때가 많았지요. 이 책의 까만 밤 장면은 여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잠을 못 자고 지새우던 밤, 어머님으로 인해 좋았던 일과 미안한 일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담아 그림책을 만들었습니다.
그림책 곳곳에 어머니와의 추억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죽으면 별이 되고 싶다고 한 어머님의 바람, 북쪽 고향에 언젠가 가보고 싶다고 한 어머님의 아쉬움, 손재주가 좋아 옷이든 그림이든 뚝딱 만드셨던 어머님의 솜씨…. 무엇보다 엄마가 가장 아끼시던 꽃밭. 특히 이 꽃밭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지요. 작가의 본가 앞에는 어머님이 손수 가꾸시던 꽃밭이 있었는데,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일부러 꽃밭을 피하고 신경 쓰지 않았다고 합니다. 꽃밭을 보면 자꾸 어머님이 떠올랐기 때문이지요. 그러다 이듬해 봄, 햇볕이 가득 마당을 비춘 날, 어김없이 새싹이 솟아오르는 걸 보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마음이 찡했습니다. 당장 소매를 걷어 올리고 꽃밭을 손질하고 화분에 씨를 뿌렸습니다. 탐스러운 모란꽃이 피고, 싱그러운 매발톱이 피어나니 꽃밭에서 어머님을 만난 착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애써 외면했던 어머님의 보물이었는데, 그 안에서 꽃들은 스스로 싹을 틔우고 자라고 있던 것이지요. 작가는 그 이후, 어머님의 죽음과 대면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습니다.
어쩌면 [할머니 어디 있어요?]는 안은영 작가가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 사랑을 담아 하늘에 띄우는 편지와 같습니다. 이런 작가의 진심이 담겨, 이 책이 더 울림이 크고 여운이 깊게 남습니다.
어둠 속에서 찾은 한 줄기 희망을 고스란히 표현한 그림책
안은영 작가는 기획뿐 아니라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도 남다른 장인 정신을 갖고 있습니다. 모든 그림을 직접 손으로 그리거나 만들지요.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최근에는 많은 작가들이 컴퓨터로 그림을 그리거나 보정을 합니다. 물론 작가마다 맞는 작업 스타일이 있어요. 하지만 안은영 작가는 손으로 그려야만 독자들에게 진심이 전달된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 작업에 대해 굉장한 애정과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책에 따라 맞는 채색 기법을 찾으며 수채화, 아크릴화, 펜화, 콜라주, 바느질, 판화 등 다양한 기법으로 작업해 왔습니다.
[할머니 어디 있어요?] 역시 많은 시도와 고민 끝에, 스텐실 기법으로 작업했습니다. 공판화의 한 종류인 스텐실은 원하는 그림의 모양을 오려 낸 후, 그 구멍에 물감을 넣어 그림을 찍어 내는 기법을 말합니다. 우선 바탕을 검은색 먹물과 아크릴 물감으로 칠한 다음에 그 위에 스텐실 기법으로 그림을 그리고 얇은 선은 아크릴 물감으로 덧칠했습니다. 이 책을 스텐실로 작업한 이유는, 붓에 물감을 묻혀 단번에 칠하는 것과 달리 수많은 작업을 통해 그림이 완성되어 정성이 많이 들어가는 기법이기 때문입니다. 점점이 모여 면을 채우고 강약을 조절해서 명도와 색감을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붓질 한번에 정성을 쏟아야 하지요. 어쩌면 어머님을 그리며 만든 책이기 때문에 더 많은 정성과 공을 들여 만들었는지도 모릅니다.
슬픔이 가득한 앞장면들에서는 색을 최대한 절제하고 검은색 배경으로 표현했습니다. 할머니를 찾는 여정이 진행될 수록 검은색에 조금씩 색감이 얹혀지는데, 이는 점점 할머니와의 추억에서 위로 받는 아이의 마음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특히 할머니를 찾아 따뜻한 위로를 받은 마지막 장면은 환하고 따뜻한 노란색으로 표현하여 감정을 더욱 절정에 이르게 도와줍니다. 이처럼 안은영 작가의 정성이 가득 담긴 그림은 이야기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 꽉 채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