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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사람 김원봉이오

리뷰 총점9.8 리뷰 9건 | 판매지수 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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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19년 04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320쪽 | 428g | 크기확인중
ISBN13 9791189166816
ISBN10 118916681X

카드 뉴스로 보는 책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임시정부 수립, 의열단 창설 100주년 기념
국내 최초 김원봉 역사 인물 소설 출간


2019년은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그리고 항일 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의열단’ 창설 100주년을 기념해 북로그컴퍼니에서 약산 김원봉을 주인공으로 한 역사 인물 소설『밀양 사람 김원봉이오』를 출간했다. 1919년 11월, 중국 길림에서 만들어진 항일 무력독립운동 단체 ‘의열단’은 조선총독부 등의 관공서 폭파와 일본고관 암살 등을 주로 행했다. 일본 경찰이 의열단이란 말만 들어도 오줌을 지릴 정도로 의열단의 활약과 명성은 드높았다. 그 의열단을 만든 이는 약산 김원봉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다. 해방 후 이념의 대립과 친일 세력들의 득세 속에서 김원봉은 월북을 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정보도 평가도 참 인색한 시절을 보냈다.

영화 [암살] [밀정], 드라마 [이몽]으로 재조명되고 있는
약산 김원봉의 불꽃같은 삶과 투쟁 이야기


이 소설은 김원봉의 시각에서 자신의 활동을 회고하는 형식을 갖는다. 김원봉이 회고하며 말해주는 자신의 삶, 투쟁, 우리 민족의 항일 투쟁과 민족혼 그리고 독립. 의열단 단장으로서, 황포군관학교 장교로서, 조선의용대를 만든 사람으로서 임시정부 군무부장으로서의 김원봉을 삶을 쉽고 재미난 소설로 만나게 될 것이다.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작가의 말_ 뒤늦은 소환
지도로 보는 김원봉 일생

프롤로그 _해방이 되어도 해방은 오지 않았다

1. 소년독립군, 조국 해방을 꿈꾸다
일장기를 똥통에 빠뜨린 소년독립군
동화학교에서 덕화학당으로
중국 유학길이 망명길이 되다
실패로 돌아간 일본 대표 암살 계획
3.1만세운동이 일어났지만……
독립을 위한 유일한 길, 의열투쟁
임시정부가 세워졌으나 이승만은 실망만 주었다

2. 의열투쟁에 명운을 걸다
의열단을 결성하다
특별한 훈련법
의열단 1호 여성단원, 현계옥
드디어 1차 거사를 실행하다
부산경찰서와 밀양경찰서에 폭탄을 투척
식민통치 심장인 총독부에서 터진 폭탄
일본 육군대장을 저격하라
남다른 청년, 김산
폭탄 전문가 마자르
혁명 정신을 담아낸 조선혁명선언
일본 경찰 황옥 경부
황옥은 밀정일까, 아닐까
일본을 놀라게 한 황궁 앞 폭탄 투척
성공과 죽음을 바꾼 나석주

3. 중국 혁명전선에 참여하다
중국 지도자, 손문과 만남
황포군관학교에 입교하다
중국 국민혁명군 정치부 소위로 임관
비밀스런 태양
장개석이 벌인 북벌과 청당운동
민족협동전선을 세우다
중국 민중봉기에 함께하다
배신한 단원을 처단하다
운명으로 만난 동지 박차정
신간회 해체에서 얻은 교훈
민중 속으로
박차정과 결혼

4. 독립운동 진영을 하나로
만주사변과 들끓는 반일감정
윤봉길 의거를 돕다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를 세우다
통일전선결성회의 결성
임시정부가 빠진 민족혁명당
분열, 그리고 조선민족혁명당
조선민족혁명군, 중일전쟁에 나서다

5. 해방이다, 광복이다!
조선의용대 창설
적군을 교란시킨 심리전
전투에서 부상 입은 박차정
조선의용대, 화북으로 이동하다
임시정부, 광복군 창설
박차정, 영원한 안식을 얻다
조선의용대와 광복군이 이룬 단일대오
최동선과 재혼
일본 군대에서 탈영한 장준하
광복, 그리고 28년 만에 돌아온 조국

에필로그 _영원한 디아스포라

부록_ 김원봉 연보
_ 세상에 알려진 의열단 거사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역사란, 기록하는 역사가가 현재 서 있는 자리에서 필요한 사람을 불러내는 소환이다. 소환은 언제나 까닭이 있게 마련이다. 우리는 그동안 약산 김원봉을 소환할 수 없었다. 밀양 사람이지만 해방조국에서 북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므로, 조선의용대가 팔로군으로 갈 때는 사령관이면서도 같이 가지 못했다. 하지만 해방조국에서 북으로 갔다는 사실 때문에 공산주의자로 몰렸고, 우리 현대사에서 폐족이 되어버렸다.
그 때문에 이봉창, 윤봉길 의거보다 훨씬 이전에 일으킨 박재혁, 김익상, 김지섭, 김상옥, 최수봉, 나석주를 비롯한 수많은 의열단 의거도 제대로 소환되지 못했다. 일제가 내건 현상금이 임시정부 김구 주석보다 두 배나 많은 의열단장으로, 조선의용대 사령관으로, 광복군 부사령관으로, 임시정부 군무부장으로 일제와 맞서 싸운 투쟁도 모두 삭제되고 말았다.
해방조국에서 남북 단일대오를 이루어내기 위해 북으로 갔고, 북에서 ‘남북정치지도자연석회의’를 이끌어낸 일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역사가 되어버렸다. 일본을 몰아내는 단일대오를 위해 국민당이든 공산당이든 누구와도 손잡은 일은 남쪽에서 공산주의자로 몰렸고, 북쪽에서는 장개석 스파이로 몰렸다. 모두와 손잡으면 모두와 벗이 되지만 그 모두가 편을 나누어 갈라서면 모두에게 적이 되고 마는 운명을 약산을 통해 절절히 보게 된다. ---「작가의 말」중에서

손일민 선배가 찾아오라는 반약여관은 압록강을 향해 팔을 벌리듯 옆으로 기다랗게 펼친 모습이다. 손 선배는 일장기 똥통 사건 때 우리 집으로 직접 나를 찾아와서 처음 알게 되었다.
“밀양 사람 어깨를 한 뼘이나 높인 기특한 녀석이 바로 너구나!”
나를 보자마자 허리를 덥석 끌어안아 번쩍 들고는 이마를 부비며 연신 고맙다고 했다. 그날로 나와 세주는 손 선배가 이끄는 청년단에 들어갔다. 청년단이 남천강변에서 하는 체력 훈련도 같이 하고 주먹싸움도 배웠다.
손 선배는 4년 전 중국 망명길에 올랐는데, 중간에 일본 경찰에게 붙들려 평양경찰서에서 1년 동안 갇힌 일로 온 밀양에 명망이 자자했다. 손 선배가 옆에 서 있는 사람을 소개해주었다. 백야 김좌진 장군이라고 했다.
“밀양 사람 김원봉입니다.”
“밀양 일장기 똥통 의거를 일으킨 소년투사 약산을 이제야 만났구려, 반갑소.”
나는 허리를 조금 숙이고 김좌진 장군이 내미는 손을 마주 잡았다.
김좌진 장군은 충청도 홍성 사람이다. 나보다 아홉 살이 많은데도 말을 놓지 않았다. 열다섯 살에 집안에서 부리던 노비를 모두 해방시키고 풀려난 노비가 먹고살 수 있도록 땅까지 나누어 주었다. 군자금을 모으다 일본 경찰에 붙들려 2년 반이나 형무소에 갇히기도 했다. 소문만으로도 고개가 절로 숙여질 사람이다. 풍모도 장군님이라고 불러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당당함을 풍겼다. ---「동화학교에서 덕화학당으로」중에서

의열단이 일으킬 첫 거사가 정해졌다. 한날한시에 폭탄을 투척하기로 했다. 조선에 사는 모든 왜적은 폭탄을 맞고, 모든 관청은 파괴되어 결국 일제가 맥을 못 추고 쫓겨 가는 그림을 그렸다.
상해에서 중국 사람으로부터 구입한 폭탄을 영국 사람 보일에게 부탁해 단동으로 날랐다. 폭탄을 궤짝 맨 아래에 깔고, 책을 얹어서 위장했다. 일부는 국내로 수입되는 수수가마니에 감추어 들여갔다.
국내로 들어간 모든 단원은 각각 자기 위치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모든 준비가 착착 진행되었다.
공동 책임자인 곽재기는 거사를 일으킬 동지와 자금을 모아나갔다. 5파괴로 정한 조선총독부, 동양척식주식회사, 매일신보사, 각 경찰서, 기타 왜적 주요 기관과 7가살로 정한 조선 총독 이하 고관, 군부 수뇌, 매국노, 친일파 거두, 밀정, 반민족 토호열신마다 한꺼번에 폭탄을 던지려면 많은 사람이 필요했다. 사람을 모으는 일에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1차 거사를 실행하다」중에서

미리 연통해둔 대로 부산역에는 나를 데리러 온 사람이 있었다. 그를 따라 동래성이 멀찍이 보이는 민가로 갔다. 저녁술을 놓고 세수를 마쳤는데 약수 형님이 기척도 없이 문을 확 열어젖혔다.
“발소리도 없이 오는 걸 보니 밤손님 다 되셨소.”
“거사는 성공했다는구나.”
약수 형님이 내가 가장 궁금해할 소식을 알려주었다. 부산경찰서장은 그 자리에서 죽었고, 박재혁은 중상을 입었다고 했다. 부산경찰서가 크게 파손되었고 일본 경찰 두 명도 부상을 심하게 입었다고 했다. 폭탄을 던진 게 아니라 경찰서장과 마주 앉은 상태에서 터트렸다는 말에 왜 퇴로 확보를 사양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폭탄이 실패해 총을 쏘려면 최대한 가까이 붙어야 한다. 네댓 걸음만 떨어져도 몸을 비틀어 피하면 명중시키기가 어렵다.
박재혁은 폭탄을 손에 쥐고 터트려서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한부상을 당했고, 치료가 되어도 어차피 사형을 받아 죽을 목숨이라며 식사를 거부한다고 했다. 가슴을 파고들어 심장을 도려내는 통증이 훅 밀려왔다. ---「부산경찰서와 밀양경찰서에 폭탄을 투척」중에서

지난 1923년 1월 12일에 의열단원 김상옥이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져 일본 경찰을 죽이고 거사를 성공시켰다. 그 후 피신을 다니다 22일 5백여 명이나 되는 일본 경찰에 둘러싸였다. 일본 경찰 수십 명을 죽거나 다치게 한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번 거사는 김상옥에 대한 복수도 겸하고 있다. 모든 준비는 완벽하다. 총독부와 동양척식주식회사, 전국 경찰서에서 동시에 폭탄이 터지고 왜적과 친일파를 처단할 날이 눈앞에 왔다. 이번에야말로 불발탄과 시간 끌기도 없이 일사불란하게 해치울 조건이 다 갖추어졌다. 김상옥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북경에 왔다는 황옥이 오히려 의열단과 합심하고 복수에 앞장서게 되었으니 김상옥 동지가 주고 간 숙제를 풀어간다는 희열이 차올라 가슴이 두근거렸다. ---「황옥은 밀정일까, 아닐까」중에서

거사 실패 소식을 들은 한 달 뒤쯤 김지섭에 대한 재판 소식이 들려왔다. 김지섭은 재판정에서 일제가 조선을 강점한 일이 왜 죄인지, 총독 통치가 얼마나 악랄한지를 당당하게 밝히고 일제에 항거하는 일이 정당함을 소리 높여 주장했다. 김지섭은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얼마 뒤 옥중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죽음을 맞았다.
“빌어먹을 왜놈. 가만두지 않을 테다.”
김상윤은 치미는 오열을 누르지 못했다. 단원 모두 비탄에 빠져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부산까지만 오면 어떻게든 돌아올 수 있었을 텐데.”
유자명 말대로 황옥과 함께한 거사 때도 감시망을 피해 돌아왔으니 마음만 먹었으면 무사히 복귀했을 김지섭이다.
“자꾸 나이 말씀을 하시더니 무슨 일을 해서라도 지진으로 희생당한 동포를 위해 영혼을 달래고, 꼭 복수를 하려는 마음이었나 보오.”
내 말대로 모두 김지섭이 돌아오지 않은 까닭을 이해하게 되었다. 황옥과 함께한 거사를 실패했다는 자책이 누구보다 컸던 김지섭은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나갔다. ---「일본을 놀라게 한 황궁 앞 폭탄 투척」중에서

1932년 4월 초, 임시정부에서 주석을 맡고 있는 백범이 보냈다는 사람이 나를 찾아왔다. 지금은 임시정부를 백범 혼자서 지키고 있다고 해도 과한 말이 아니다. 양반 귀족 출신이 아닌 백범이 주석이다보니, 후원금도 거의 모이질 않는다고 한다. 이름만 거창하지 돈도 없고 조직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단체로 작아졌다.
의열단이 임시정부와 척을 진 사이는 아니지만 그동안 서로 무언가를 주고받을 일도 없었다. 그런데 임시정부에서 의열단에 처음으로 도와달라는 손길을 내밀었다. 백범이 쓴 편지도 없이 사람만 왔는
데, 비공개로 대화하기를 원했다. 빈방에 둘만 마주 앉았다.
“주석께서는 애먼 의열단에 피해가 가지 않기를 바란다고 하십니다.”
의열단이 나섰다고 하지 말라는 말이다. 의열단에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뜻이라고 했으나 그 뜻만 들어 있지는 않다는 눈치를 못 챌 내가 아니다. 레닌주의정치학교를 연 뒤로 의열단 전체가 공산주의자로 몰리고 있으니, 의열단 도움을 받았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크게 들어 있다고 짐작했다.
하지만 독립이라는 대의 앞에서 파벌 따위는 있을 수 없다. 빛이 되었든 그림자가 되었든 성공만 된다면 어떤 자리라도 마다할 까닭이 없다는 대답을 주어서 보냈다. ---「윤봉길 의거를 돕다」중에서

졸업식이 끝나고 뒤풀이 자리에서 이육사가 직접 지은 시를 한 수 읊었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
이육사가 평소답지 않게 부끄러워했다. 제목이 무엇이냐는 내 물음에 조금 머뭇거리더니 ‘광야’라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제목으로 마침맞소.”
나는 이육사 손을 잡고 감동을 전했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가 바로 광야다. 또한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바로 광야이니, 이육사가 시로 지금 우리를 가장 잘 표현했다.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우리만이 내달릴 광야. 비록 지금은 춥고 바람도 불지만 거칠 것 하나 없는 완전한 자유에 도달하는 그 광야가 바로 우리가 달려갈 광야라고.
---「임시정부가 빠진 민족혁명당」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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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봉과 조선 청년들,
중국땅에서 의열단을 창설하다


“자유는 우리가 쏟은 힘과 우리가 흘린 피로 이룬 혁명으로만 얻어지는 것이오.”
1919년 11월 9일, 중국 길림 파호문 밖 중국인 반씨 집에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조선 청년들이 모여들었다. 밀양 사람 김원봉, 윤세주, 한봉근, 김상윤과 달성 사람 이종암, 함경도 사람 강세우 등이었다. 살을 에는 길림의 칼바람도 조국 독립에 대한 그들의 열망을 막을 수는 없었다. 독립을 위해서라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그들은 왜적을 암살하고 일제 시설을 파괴하면 조선 민중이 폭력 의거를 일으켜 일본을 타도하고 광복을 이루리라 믿었다. 의열투쟁은 총을 수천 자루 구하지 않아도, 사람을 수천수만 명 모으지 않아도 되는 가장 효율적이며 효과적인 무장독립운동이었다.
밤을 꼬박 새워가며 의열단이 나아갈 강령과 공약을 정하고 난 아침, 김원봉은 그날을 이렇게 회고한다.
“1919년 11월 10일 아침을 난 평생 잊지 못할 게다. 우리는 머리를 단정하게 자르고 양복을 쫙 빼입고 의열단 창단식을 열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우리는 독립을 위해 싸우는 신사임을, 대의를 위해 목숨 던지는 의로운 사람임을 겉으로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의열투쟁은 신사라면 꼭 해야 하는 일이다. 우리가 폭탄을 던지고 왜적을 저격할 때마다, 조선 백성은 독립이 온다는 희망을 더욱 키울 것이고 독립 의지도 더욱 강하게 다질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의열투쟁을 사명으로 삼아야 하는 까닭이다. 의열투쟁으로 백성에게 희망을 안겨줄 수만 있다면 목숨 하나 버리는 일은 영원한 안식을 얻는 완전한 구원이라는 내 말을 깊이 받아들여준 단원 모두가 무척이나 고맙다.”

영화 [암살] [밀정], 드라마 [이몽]으로 재조명되고 있는
약산 김원봉의 불꽃같은 삶과 투쟁 이야기!!


1905년, 일제에게 외교권을 빼앗겼을 때 김원봉은 고작 여덟 살이었다. 외교권 박탈이 무엇인지 그것이 가져올 미래가 어떤 것인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몇 년 뒤 밀양 보통학교 시절 일장기를 몽땅 걷어다 변소에 빠뜨리는 등 저항을 행동에 옮기며 소년독립군의 면모를 갖춰갔다. 일본 군대보다 더 센 군대를 양성해야 독립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에, 중국에 있는 독일학교 덕화학당에 유학을 떠났을 때 그의 나의 열아홉이었다. 이때만 해도 이 길이 기나긴 망명길이 될 줄은 그도 몰랐다.

덕화학당, 금릉대학을 거쳐 두 달 몸담았던 신흥무관학교에서 의열투쟁만이 조국 독립에 이르는 유일한 길임을 깨달은 그는 동지들을 규합, 1919넌 11월 의열단을 창설한다. 의열단 이름만 듣고도 일본 경찰이 오줌을 지릴 정도로 의열단의 무력투쟁은 불꽃처럼 뜨겁고 활발했다. 조선총독부, 밀양경찰서, 부산경찰서, 종로경찰서, 동양척식주식회사, 조선식신은행 등 일제 기관을 가리지 않고 타격했다. 일본 육군대장 등을 비롯한 요인 암살 시도도 끊임없이 전개했다.

뿐만 아니라 중국 국민당과 공산당이 함께 만든 황포군관학교에 입학해 정식 군사교육을 받은 후 중국군 장교로 활동했다. 이를 바탕으로 조선의용대를 창설하고 중국 민중 봉기에 조선 청년들을 이끌고 참가하여 혁혁한 공을 세운다. 중국 각지에 흩어져 있던 독립운동 단체의 통합을 끊임없이 시도, 조선민족혁명당을 만들고 임시정부의 국무부장이 되어 한국 독립운동사에 한 획을 긋는다.
1945년 해방이 되어 28년 만에 고국에 돌아오지만, 날선 이념 대립과 친일파의 득세, 우익청년단체의 끊임없는 테러와 암살 시도로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 특히 친일경찰 노덕술에게 체포되어 뺨을 맞는 수모를 겪자 “해방을 위해 중국에서 일본놈과 싸울 때도 이런 수모를 당하지 않았는데, 해방조국에서 친일파 경찰 손에 수갑을 차이고 말로 다 못할 수모를 당하다니.”라고 탄식하며 이 나라와 민족, 자신의 앞날이 순탄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닫는다.
조국의 완전한 해방은 남한만의 정부 수립이 아닌 남과 북이 하나 된 단일대오를 이루는 것이라 여긴 그는 남한에서는 더 이상 통일 활동이 불가능하다고 판단. 1948년 월북을 감행하는데......

소설 『밀양 사람 김원봉이오』는 단순히 김원봉과 의열단의 활약상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적인 면모(동지들에 대한 뜨거운 애정, 거사 후 목숨을 잃은 동지들에 대한 회한, 배신한 동지를 처단할 때의 갈등, 아내이자 동지인 박차정과의 사랑 그리고 이별의 아픔 등)를 생동감 있게 그려내, 소설로서의 읽는 재미를 배가시켰다.
또한 일제 강점부터 해방 전후까지 역사적 일들을 연도와 함께 자세하게 기술하고 김원봉과 의열단의 연보, 활동 내력 지도, 세상에 알려진 의열단 거사 등을 자세히 실어, 한국 근현대사 공부에 좋은 교재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올해는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의열단 창설 100주년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김구, 안창호, 이봉창, 윤봉길 등의 독립운동가들 정도만 알려져 있었다면 의열단은 그들의 활동을 있게 한 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소설은 그동안 한국에서 금기시되었던 의열단과 단장 김원봉의 이야기를 아주 담담하게, 그러나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독립이라는 열망 아래 불꽃처럼 타올랐던 이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우리 모두의 오늘이 과거에 빚지고 있다.”는 걸 가슴 뜨겁게 느끼게 됩니다. 지금의 한국을 있게 한 100년 전 역사를 제대로 알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꼭 추천합니다.
-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

이 소설 『밀양 사람 김원봉이오』는 의열단이 펼쳤던 의거 현장에서 약산이 모든 것을 스케치하듯 단원들의 행동과 의식세계를 생동감 있게 전달해주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마치 당시의 현장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1920년대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에 큰 획을 그은 의열단 투쟁에 이어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교장, 조선민족혁명당 총서기, 조선의용대 총대장, 한국광복군 부사령관,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 겸 한국광복군 군무부장 등을 지내며 일평생 독립운동을 펼쳤던 약산의 활약상과 인간으로서 느끼는 고뇌를 세심하게 보여주는 걸작이다.
- 이준설 (‘밀양의열기념관’ 학예연구사)

회원리뷰 (9건) 리뷰 총점9.8

혜택 및 유의사항?
구매 소설로 본 김원봉!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y***j | 2020.08.21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8월 광복절을 맞아 관련 서적들을 살펴보던 중 김원봉이란인물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유일하게 소설형식으로 구성된책이여서 한 인물에 대한 드라마틱한 이야기 전개가 기대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더불어 이 소설에는 김원봉 연보가첨부되어 년도별 관련활동과 그 시기의 국내외 상황이 정리되어 있어 이해에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한 인물의 불꽃같은 삶과 투쟁을 그린 역사;
리뷰제목
8월 광복절을 맞아 관련 서적들을 살펴보던 중 김원봉이란
인물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유일하게 소설형식으로 구성된
책이여서 한 인물에 대한 드라마틱한 이야기 전개가 기대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더불어 이 소설에는 김원봉 연보가
첨부되어 년도별 관련활동과 그 시기의 국내외 상황이 정리되어 있어 이해에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한 인물의 불꽃같은 삶과 투쟁을 그린 역사인물소설이 많이 출간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댓글 0 이 리뷰가 도움이 되었나요? 공감 0
파워문화리뷰 밀양사람 김원봉이오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스타블로거 : 골드스타 A***n | 2019.12.23 | 추천6 | 댓글3 리뷰제목
   일제강점기와 독립운동에 대한 책을 읽는 것이 퍼즐을 찾아 끼우는 일임을 알았다.숙연한 역사이기에 감히 쾌감이라는 말을 붙이기가 조심스럽지만.학교에서도, 그 어디에서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진실들을 스스로 마주할 때 짜릿함이 있었다.  역사 소설 <밀양 사람, 김원봉이오>에서도 동일한 감동과 전율을 느꼈다.  김원봉은 어렸을 때부터 항일의식;
리뷰제목

 

 

 

일제강점기와 독립운동에 대한 책을 읽는 것이 퍼즐을 찾아 끼우는 일임을 알았다.

숙연한 역사이기에 감히 쾌감이라는 말을 붙이기가 조심스럽지만.

학교에서도, 그 어디에서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진실들을 스스로 마주할 때 짜릿함이 있었다.

 

역사 소설 밀양 사람, 김원봉이오에서도 동일한 감동과 전율을 느꼈다.

 

김원봉은 어렸을 때부터 항일의식을 고취하면서 성장했다고 한다.

친구 세주와 함께, 소학교에서 행사에 쓰려고 한 일장기를 화장실 똥통에 빠트린 사건은 밀양에서 유명하게 알려졌다.

 

약산의 할아버지는 중국어, 일어에 능통한 역관이었다고 한다. 할아버지 덕분에 조선을 둘러싼 주변국의 동향에 대해서 어렸을 때부터 밝을 수 있었다.

또한 고모부가 황상규라는 분인데 이분은 임시정부의 임원을 하게 되는 인물이다.

 

올해는 임정, 삼일운동 100주년임과 동시에 의열단 창립 100주년 이기도 하다.

약산 김원봉은 중국에서 의열단을 조직하고, 일제를 무력화 시키는 투쟁 운동에 돌입하기로 결심한다.

 

 

의열이란, 맹렬히 정의를 위해 싸운다라는 뜻.

의열단은 삼일운동이 실패로 돌아간 후에, 무장 투쟁만이 저항의 방법이라고 판단하게 되었다. 궁극적인 목표는 군사를 양성하는 것인데 그렇기 전까지, 조선과 중국, 일본에서 일제의 지도자와 기관을 공격하는 것을 결의하였다.

강령은 구체적이고 심플하고 확실했다. 5파괴, 7척살 이라는 것이다.

 

쳐부술 대상으로 조선총독부, 동양척식주식회사, 각 경찰서, 기타 왜적주요기관, 일제 기관 언론을 정했다.

처단할 대상으로 조선 총독과 고관, 군부 수뇌, 매국노, 친일파 거두, 밀정 등 7척살을 선정했다.

 

밀정은 상해를 비롯한 중국으로까지 침투해 들어왔고, 김원봉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의열단은 완전하고 철저하게 점조직처럼 운영되는 방침을 정하였다.

주의를 기울였음에도 이후에 밀정이 몇 차례 있었지만, 비교적 조직을 무사하게 유지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의열단 단원들은, 김원봉의 최측근과 지도부를 빼고는 서로 얼굴을 모르는 일이 많았다.

거사를 준비하기 위해 임박해서 모일 때나 서로 얼굴과 이름을 밝히게 된다.

 

박시백의 역사만화를 통해서 접했던 박재혁 단원의 이야기를 소설 형식으로 자세하게 접했다. 역사책에 몇줄로 기록된 것을 넘어서, 김하늘의 글은 의열단원들을 살아있는 인물로 생생하게 그리고 있었다.

 

그래서 소설의 본연의 재미를 느끼면서, 감동과 역사적인 사실까지 전달받게 된다.

    

35에서 박재혁 부분에서 울컥했었는데,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이 소설로 접하면서 그때의 숙연함이 되살아났다.

부산경찰서에 폭탄을 던져서 경찰서장을 척살하는 데 성공했다. 거사의 방법부터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은 것이었고, 자신도 폭탄 파편에 부상을 입은 채 감옥에 수감되었다

어차피 사형을 예감한 박재혁은 단식처럼 음식을 거부함으로써, 감옥에서 순국하셨다.

 

또한 잘 몰랐던 김지섭 대원의 의거도 이 작품으로 소상히 알게 되었다.

 

19239월에 관동대지진이 발생했다. 일본은 자경단을 중심으로 조선인들을 무참히 살해하여서 알려진 것만 6000명의 조선인이 학살되었다.

의열단은 가만 있을 수 없었다. 김지섭이라는 외국에서 살던 의열단원이 스스로 자진하여 의백 김원봉을 찾아왔다. 그는 일본 동경의 심장부에서 폭탄을 던지고 요인을 암살하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의열단의 계획과 지원을 거쳐서 김지섭은 도쿄에 잡입하는 데 성공했다. 애초의 목표는 제국 의회가 열리는 국회장에서 폭탄을 투척하는 것. 그런데 첩보가 들어갔는지 갑자기 제국의회가 취소되었다.

김지섭은 여기서 포기할 수 없었다. 자신에게는 의열단이 마련해준 폭탄 3정이 있었다.

그래서 급하게 황궁 거사로 변경된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의 폭탄은 모두 불발되었고 그는 즉각 경찰에게 잡혔다.

재판과정에서 김지섭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투척의 정당성과 조선의 투쟁의지를 떳떳하게 밝히는 진술을 하였다.

그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유가 밝혀지지 않은 죽음을 맞았다.

 

김하늘 작가는 김원봉의 시선을 빌려서, 김지섭 열사가 관동대지진으로 무고히 희생당한 조선인을 애통해 했다고 적었다.

 

이 대목에서 마음이 무너지는 듯 했다.

박재혁, 김지섭. 그밖의 많은 의열 단원들. 20, 30대의 젊은 청년들이 자신의 목숨보다 의거를 성공하는 것을 더 중히 여겼다.

 

이들 한명 한명의 시도는 실패한 일도 있었지만, 결코 의미 없지 않았다.

아니 너무도 소중한 가치들을 띄고 있었다.

  

 

일제의 만행이 극에 달하면서 조선인들은 신음하고 있었다.

젊은 의열단원들의 무장 투쟁은, 치기어린 혈기에 행한 것이 아니었다.

누구보다도 조국을 사랑하고, 나라의 독립을 뜨겁게 희망하였기에 자신의 목숨을 아깝게 여기지 않았다.

때로는 서로 먼저 하겠다고 하여서 김원봉이 말리거나, 순서를 정해주는 일도 비일비재 했다고 한다.

 

영화 암살의 후반부에서 김원봉은 촛불을 밝히면서 대원들 한명한명의 이름을 부른다.

잊혀지겠지요?’라고 힘없이 말하는 대목에서 코끝이 찡했었다.

독립운동가에 서열이나 그런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비록 실패하였더라도, 그들이 가졌던 의로운 용기는 너무도 고귀한 것임을 느꼈다.

 

의열대원들의 모습을 묘사하는 대목들이 무척 신선했다.

목숨을 건 일이고, 늘 일제의 감시를 받는 일이다.

그럼에도 거사를 계획할 때부터, 이후의 평가 때까지 의열단원들은 전혀 경직되지 않았다.

유쾌하게 대화를 하는 장면들이 많았고, 유머와 위트까지 있는 모습을 곳곳에서 만났다.

차츰 나는 이러한 묘사에 동조하게 되었다.

의무적인 일, 긴장이 존재하는 일이지만, 김원봉과 의열단에게는 당당함, 여유로움이 늘 있었다.

 

숱하게 동지들을 잃는 경험을 하는 김원봉의 마음도 잘 묘사되고 있었다.

서로 뜻을 규합해 하는 일이었지만, 대원을 떠나보낼 때 언제나 아파하고 비통해했다.

아픔을 씻을 시간도 없이, 또 앞으로 전진하기 위해서 다음 투쟁을 계획하게 된다.

김원봉의 심중에는 언제나 조국을 위해 죽은 대원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동지로 남아야 겠다는 다짐으로 다음 행보를 이어갔다.

 

뜻밖에 연결되는 역사적인 인물들이 나올 때는 놀라웠다.

 

인맥을 통해서 20대에 김좌진 장군을 만났었다고 한다. 1930년대 만주사변 이후에 김원봉은 의열단을 멈추고 중국과 손을 잡아 군사학교를 세우게 되었다.

이때 조선혁명군사 정치학교를 설립했을 때 시인 이육사가 입학하게 된다.

 

이육사는 군사학교 졸업식에서 스피치로 시 하나를 창작해 동료들 앞에서 읽었다.

이 시가 광야였다. (윤동주와 더불어) 좋아하는 시인인 이육사 이야기가 정말 흥미롭고 소름 돋았다.

 

김원봉은 동지들과 함께 진취적인 독립운동, 투쟁을 이어갔다.

그의 쾌활한 모습을 통해서, 암흑의 시대에 한번도 독립을 포기하지 않았음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의열단 이라고 하면 약간의 선입견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젊은 혈기에 무모하게 감행했다던가, 무조건 폭력을 지향했다든가 그런 지레짐작.

하지만 의열단은 무턱대고 폭탄 투척을 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치밀하게 계획을 했다.

일을 맡을 사람을 정하는 것부터, 확실하게 타게트만을 노리는 것까지. 그들이 함부로 생명을 경시했던 것도 아니었다.

 

무기를 옮기다가 발각되어 실패해도, 폭탄이 불발하여 실패해도, 그리하여 동지만 잡혀가고 죽임을 당해도.

의열단은 포기하지 않았다.

약산을 중심으로 서로 민주적이고 평등한 관계를 지향하고자 했다.

여성 대원 현계옥도 처음으로 대원으로 합류하게 되었다.

 

박재혁, 김지섭으로 대표된 의거들을 통해서 의열단의 대원들이 서로 끈끈한 믿음으로 형성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심전심. 단장 의백의 마음이 대원의 마음이고, 대원의 바램이 곧 김원봉의 마음이었다.

 

 

한명, 한 명의 열사들. 실패한 것도 포함한 각각의 의거 義擧.

 

그들이 모두 진정 소중하게 여겨져, 가슴이 저릿해서 한동안 책장을 덮어야 했다.

이러한 일들이 소중하지 않다면, 우리의 역사에서, 무엇이 중요한 것일까.

 

최근에 일본의 화폐의 인물이 바뀌었다는 뉴스를 들었다.

자세한 이름은 잊었는데 과거의 제국주의와 식민 침략을 정당화한 학자, 지도자가 선정되었다고 한다.

이런 소식에 울분이 들었다.

분개하기 이전에, 이제는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가 화폐에서 우리의 독립운동가를 홀대하면서 남의 나라를 왈가왈부 할 수 없다는 것.

 

우리의 현대사를 이제는 역사의 주류로 이끌어 내야 할지 않을까.

 

근대사, 현대사, 독립운동사.

그 속에서 김원봉 의백과 의열단의 일들도 빠트려서는 안 될 거라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조금 가벼운 얘기를 꺼내자면

김원봉 진짜 사기 캐릭터 아닌가 싶었다. ^^; 

 드라마 이몽을 보면서 유지태가 멋있게 나와서 좀 과하다 했었드랬다.

 

상해에서 자신의 신분을 숨기면서 활동하는데, 누가 봐도 유지태는 빛이 나고 눈에 띄었다.

키가 훤칠하게 커서도 그랬고 눈빛이 반짝반짝 빛났다.

 

그런데 약산도 실제로 키가 크고 잘 생기고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소설에서 박차정과 연애하는 모습에는 설레이기까지 했다.

밀정에 시달리고, 일제가 어마어마한 상금 백만원을 걸었다는 김원봉.

당시에 경성의 집 한 채가 천원이었다. 신고하면 포상금으로 집 천 채를 사는 금액이었다.

 

체포대상 1호였던 김원봉이 어떻게 10년 넘게 자신을 보전하면서 활동할 수 있었을지.

이러한 면면들도 역사적인 상상력을 자극하게 한다.

 

역사소설이라는 장르와, 김원봉의 활약이 무척 잘 어울리는 멋진 작품.

밀양 사람 김원봉이오이다.

 

 

책에서

 

누가 가장 앞장서느냐를 놓고 소리까지 지르며 한 치도 양보가 없었다.

먼저 죽겠다는 고집을 아무도 꺾으려 하지 않았다. 1차 거사에 성공하면 순식간에 군인과 경찰에 에워쌓여 끌려갈 테니, 거사 성공이 곧 죽음이나 마찬가지다.

죽음을 향해 서로 먼저 가겠다는 세 동지를 보고 있으니 비감이 절로 솟았다.

 

천하의 정의의 사 를 맹렬히 실행하기로 함이라는 의열단 공약 1조가 저 청년 동지 모두를 이 자리에 모이도록 했으나, 육상대회에 나간 선수처럼 죽음이라는 결승선을 향해 서로 먼저 내달리겠다는 이 상황이 너무도 아프고 아프다.

(179)

 

 

유자명 말대로 황옥과 함께한 거사 때도 감시망을 피해 돌아왔으니 마음만 먹었으면 무사히 복귀했을 김지섭이다.

자꾸 나이 말씀을 하시더니 무슨 일을 해서라도 지진으로 희생당한 동포를 위해 영혼을 달래고, 꼭 복수를 하려는 마음이었나 보오.”

내 말대로 모두 김지섭이 돌아오지 않은 까닭을 이해하게 되었다. 황옥과 함께한 거사를 실패했다는 자책이 누구보다 컸던 김지섭은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나갔다.

(165)

 

 

졸업식이 끝나고 뒤풀이 자리에서 이육사가 직접 지은 시를 한 수 읊었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굉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가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 千古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254)

 

 

댓글 3 6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6
구매 김원봉이오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j******4 | 2019.11.05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책 표지에 나와있다시피 영화 암살이나 밀정을 통해서 약산 김원봉 선생에 대해 알게되었다그동안 왜 역사 교과서에서 들은 기억이 없나 했더니 월북해서 그렇다고 한다이렇게 목숨바쳐가며 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썼는데 이해가 되지않는다그래서 이 책이 발간 되자마자 구입했다우리 역사에서 잊혀져선 안되는 인물중 한명이라 생각한다 소설형식이라 지루하지 않고 술술읽힌다재미있게;
리뷰제목
책 표지에 나와있다시피 영화 암살이나 밀정을 통해서 약산 김원봉 선생에 대해 알게되었다
그동안 왜 역사 교과서에서 들은 기억이 없나 했더니 월북해서 그렇다고 한다
이렇게 목숨바쳐가며 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썼는데 이해가 되지않는다
그래서 이 책이 발간 되자마자 구입했다
우리 역사에서 잊혀져선 안되는 인물중 한명이라 생각한다 소설형식이라 지루하지 않고 술술읽힌다
재미있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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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9건) 한줄평 총점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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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평점4점
불꽃같은 삶! 김원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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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j | 2020.08.21
구매 평점5점
역사공부를 더 해보려고 구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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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 | 2020.04.23
구매 평점2점
어느 책 뒤에 적힌 인물 약력을 보는 듯 허술한 느낌. 큰 인물을 담기엔 부족한 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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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 | 2019.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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