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장메뉴
주요메뉴


소득공제
미리보기 공유하기

로야

: 제15회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작

리뷰 총점8.4 리뷰 21건 | 판매지수 144
베스트
소설/시/희곡 top100 1주
정가
13,000
판매가
11,700 (10% 할인)
YES포인트
이 상품의 수상내역
8월 얼리리더 주목신간 : 귀여운 방해꾼 배지 증정
MD의 구매리스트
8월 전사
쇼핑혜택
1 2 3 4 5

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19년 04월 19일
쪽수, 무게, 크기 288쪽 | 408g | 145*210*20mm
ISBN13 9791161570532
ISBN10 1161570535

이 상품의 태그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나의 상처는 무엇인가?
그토록 상처 입은, 나는 누구인가?
한국문학의 가장 먼 곳에서 온 가장 가까운 이야기


2019년 제15회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작 『로야』가 나무옆의자에서 출간되었다. 2005년 제정되어 『미실』(김별아), 『아내가 결혼했다』(박현욱), 『스타일』(백영옥), 『보헤미안 랩소디』(정재민), 『저스티스맨』(도선우) 등 화제작을 배출해온 세계문학상이 올해는 처음으로 해외에서 응모한 작품을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200여 편의 응모작 중 으뜸으로 뽑힌 대상의 주인공은 밴쿠버에 사는 한국계 캐나다인 다이앤 리(한국 이름 이봉주)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성장해 20대 후반 캐나다로 이주하여 스무 해 가까이 살고 있는 그는 생애 처음 써낸 소설 『로야』로 세계문학상 최초의 해외 거주 한인 수상자로 기록되었다.

『로야』는 캐나다 밴쿠버를 배경으로 중산층의 삶을 사는 한국계 캐나다인 여성이 교통사고 후유증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오랜 세월 감춰온 자신의 근원적인 상처를 들여다보며 삶을 회복해가는 이야기다. 심사위원들은 “한 문장도 건너뛸 수 없게 만드는 치밀한 문장과 심리적 현실을 재현하는 긴장감 있는 서사가 언어예술로서의 소설을 증명해 보이는 작품”이라 평하며 그의 수상이 “한국 문학의 저변을 넓히는 새로운 가능성이 되기를 기대”했다. 모국을 떠나 해외에 정착한 ‘경계인’이라는 그의 정체성은 『로야』에서 “너무나 익숙한 것을 아주 낯설게 만들어버리고, 생소한 삶을 조금도 불편하지 않게 받아들이게 만드는 능력”(심사위원 방현석)으로 발휘된다. 한국문학의 저변 확대는 이처럼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고 낯선 것에서 보편적인 것을 읽는 새로운 시선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을 터이다.
‘로야’는 소설 속 화자의 딸 이름으로 ‘꿈’이나 ‘이상’을 뜻하는 페르시아어다.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들어가며

1부
1. 발생 incidence
2. 후퇴 retreat
3. 정전 blackout
4. 방해 obstacle
5. 위로 up/comfort
6. 인과 causality

2부
7. 변형 metamorphosis
8. 무지 nescience
9. 연결 connection
10. 각성 awakening
11. 애착 attachment
12. 착각 delusion
13. 우연 coincidence

갇히며

작가의 말
추천의 말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통증은 빠른 시간에 끔찍한 강도로 나를 덮쳐 왔다. 모든 움직임에 제약이 가해졌다. 불안감으로 눌렸던 목과 어깨는 단숨에 뻣뻣해지더니 어느새 돌덩이처럼 딱딱해졌다. 굳어진 어깨와 연결된 팔은 팔꿈치에 고통을 저장하고 손목에 이르자 순환을 포기했다. 덩그러니 남은 손은 전해지지 않는 감각과 혈류로 인해 심한 무력감을 느꼈다. 펴지지 않는 손가락에 무거운 추가 달렸다. 허리 아래 모든 신체 부분이 고통의 소리를 질렀다. 남편은 나의 고통에 동참하지 못했다. 그는 등과 팔의 통증을 언급했지만 고통의 정도나 출처에 관해선 자신 없어 했다. 아이 또한 팔과 어깨가 아프다고 하다가 난 괜찮아, 맑고 밝은 그곳, 높은 곳의 영혼으로 원상 복귀했다. --- p.49

죽은 외할머니는 단정했고 외할머니가 타고 간 상여는 예뻤다. 그게 왜 슬픈 일인가. 엄마는 외할머니가 죽는 것을 보지 못해서 죽고 난 후의 일들을 보지 못해서 저렇게 울고 있는 모양이었다. 엄마가 직접 봤다면 죽음은 슬픈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았을 텐데, 나는 엄마에게 외할머니의 죽음을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해 주고 싶었지만 엄마는 나에게 그럴 기회를 주지 않았다. 내 안에 담긴 말이 많았지만, 할 수가 없어서, 말은 눈물로 흘러나왔다. 자신의 엄마가 땅에 묻히는 것을 보지 못한 엄마는 가슴 한 부분을 툭 찢어 내 어딘가에 묻었다. 그 안에 나도 함께 묻었을 거라고 흙먼지가 날리는 마당에서 엉엉 울며 생각했다. --- p.94~95

아이가 알프레드 웡을 기억하고 있다. 물론 아이는 알프레드 웡을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노트에 적어 둘 정도로 기억해야만 하는 일일 줄은 몰랐다. 아이는 단순히 기억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미스터리로 접근했다. 아이의 기록과 기억과 접근과 미완 혹은 완결에서 난 길을 잃고 말았다. 우리한테서 멀리멀리 떨어져 있기를 바라는 것은 이미 우리 가까이에 와 있고, 부정이나 부인은 보호의 장막일 수 없으며, 신중의 밀도는 너무나 엉성하고, 아이 손이 내 손안에 있다 해도 아이 눈은 세상을 향해 있고, 놓쳤다면 차라리 좋았을 그 손은 벌써 놓는 법을 알고 있다. --- p.132

엄마가 우리를 이끈 곳은 시신 안치실이었다. 엄마는 이미 와 본 듯 익숙한 발걸음으로 냉기가 감도는 방 안으로 쓱 들어갔고, 직원으로 보이는 사내가 벽에 달린 여러 개의 손잡이 중 하나를 쑥 잡아당겨 아빠를 끌어냈다. 아빠는 정갈하게 누워 있었다. 아빠를 가까이 보려고 다가가려 하자 엄마가 나를 막았다. 잠깐만, 하더니 엄마는 아빠에게로 향했다. 그러고는 아빠의 얼굴을 자신의 얼굴로 비비고 손으로 문지르고 입김을 불어 체온을 옮겨 주었다. 엄마의 행동은 무의미했지만, 동시에 거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내가 아빠의 차가운 시신을 두려워할 거라 생각하는 걸까, 아빠가 죽었다는 것을 모르게 하고 싶은 걸까, 아빠를 보호하려는 걸까, 나를 보호하려는 걸까. --- p.153~154

어디에 발을 디뎌도 푹푹 빠지는 진흙탕이었다. 어디에 손을 짚어도 헤어날 수 없는 구렁텅이였다. 한 발짝만 더 가면 세상 끝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만 같은 변방에서 가정 폭력을 제재하려고 경찰이 올 리 없었다. 그곳에선 득실거리는 깡패와 양아치들이 경찰을 이미 바쁘게 하고 있었다. 경찰이 온다 해도 눈 하나 꿈쩍할 아빠가 아니었다. 엄마와 아빠를 떼어 놓을 수 있고 나와 동생을 구해 줄 수 있다면 나는 경찰이든 법원이든 그들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싶었다. 가족 내부에서 수호자 역할을 해야 할 부모가 위협자 역할을 한다면 외부에 있는 수호자라도 우리를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도와줘야 했다. 누구든 우리를 도와줘야 했다. 누구도 우리를 도와줄 수 없다면, 이런 끔찍한 세상에 태어난 건 너무 잔인한 일이었다. --- p.169

그 순간 올 것이 왔다는 느낌 내지 더는 안 되겠다는 느낌이 온몸을 덮쳐 왔다. 더는 숨을 수도, 도망칠 수도, 방어할 수도 없었다. 봇물 터지듯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투명한 유리가 지금의 나와 그때의 나 사이에 있다 해도 그 유리는 분명 장벽이었다. 견고하던 유리 장벽이 산산이 깨지더니 나를 살펴보던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내가 되었다. 변호해야 하는 아빠를 없애고 설명해야 하는 나를 없앤 그곳에 여덟 살의 내가, 열여섯 살의 내가 있었다. 자그마한, 눈이 반짝이는, 채워지지 않아 늘 허기진, 아무렇지도 않은 척해서 늘 답답한, 겁에 질려 울먹울먹하는, 어린아이가 있었다. --- p.173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여전히 내가 자신의 울타리 안에 있는 것처럼 함부로 대하는 엄마를, 내가 만든 울타리를 마치 자신이 만든 것인 양 무례하게 대하는 엄마를, 막아야 했다.
“와 이카노, 야가?”
“엄마야말로 내 말을 제대로 들은 적 있었어? 내가 말한다 해도 알고 싶어 하지도 않잖아? 내가 말 못 한 게 얼마나 많은지 알아?”
“니 말 잘했다. 니가 엄마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했는지 아나? 니가 말을 곱게 안 해서 마음 아팠던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것아!”
나는 엄마를 이길 생각이 전혀 없는데 엄마는 날 언제나 이겨야 할 상대로 대한다. 지지 않으려 한다. 내가 아프다고 말하면 자신은 나보다 세 곱절은 더 아프다고 말해야 하는 사람이다. --- p.200

‘사랑해’를 쓰는데 찔끔찔끔 나오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사랑해’가 나의 유언이라면 이보다 더 적절한 유언이 없을 거란 생각에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이 났다. 사랑하는 이들을 두고 내가 떠날 수 있을까, 어찌 그들을 떠날 수 있을까. 그들에게 나눠 줄 사랑이 한없이 많았지만, 그들로부터 받을 수 있는 사랑도 한없이 많았다. 받을 수 있는 사랑을 생각하자 욕심이 불끈 났다. 주먹을 불끈 쥐었다. 죽음에 관한 요망한 생각을 몰아내야 했다. 난 받을 자격이 있고, 어떻게 해서든 받을 것이다.
--- p.258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교통사고 후유증이 촉발한 과거의 기억, 상처 입은 어린아이와의 대면

남편과 여덟 살 딸과 함께 캐나다 밴쿠버에서 순조로운 일상을 영위하던 ‘나’는 어느 날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한다. 대형 사고였지만 사고 현장에서 멀쩡하게 걸어 나올 수 있었을 만큼 부상은 가벼웠다. 외상이 없으니 회복도 신속할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도 몸이 나아지지 않자 ‘나’는 체력과 정신력의 한계에 부딪힌다. ‘나’는 자신을 한계에 몰아넣은 것이 자신의 취약 부분, 바로 부모와의 관계임을 더딘 회복 과정에서 깨닫는다.
중년에 접어든 ‘나’와 남편은 각자의 고국을 떠나온 지 스무 해가 넘었으며 이들의 나고 자란 가족은 모두 고국에 있다. 폭력 가정에서 자란 ‘나’는 성인이 된 후 부모와 물리적 거리를 두며 살아 왔다. 그러다 교통사고로 인해 체력과 정신력이 밑바닥에 떨어지자 위로받지 못한 어린 자신을 만나게 되고, 아직도 질기게 연결된 부모와의 정서적 거리를 경험한다. 교통사고가 ‘나’ 자신을 밑바닥까지 가라앉게 한 동시에 의식적으로 지워온 겁에 질린 어린아이를 만나게 해준 셈이다. ‘나’의 회복은 이 아이와의 대면에서부터 시작된다.
지난 세월 동안 ‘나’는 상처받은 자신을 위로하는 것보다 자신에게 상처 준 부모를 이해하는 것에 온 힘을 써왔다. 아프다는 소리를 누구에게도 안 했다. 심지어 자신에게도 한 적이 없었다. 참고 이해하는 것이 부모를 사랑하고 자신이 자라는 방식이었다. 폭력 가해자였던 아빠는 고인이 되었지만 그의 존재는 여전히 ‘나’의 원 가족 삶 속에 있고, 엄마는 죽은 아빠를 거듭 끄집어내며 자신의 희생에 대한 보상을 끊임없이 요구한다.
‘나’는 폭력 피해자인 엄마는 마땅히 보상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여 무엇이든 아낌없이 주었지만, 자신이 밑바닥에 있을 때도 당신을 보살피지 않는다고 퍼붓는 엄마를 보며 지금껏 믿어왔던 피해자와 가해자의 이분법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딸과 엄마, 말하지 못하는 자와 듣지 못하는 자

1부와 2부로 나뉘어 13장으로 이루어진 소설은 화자의 회복 과정을 따라가며 그 내적, 외적 변화를 치밀하게 그린다. “엉덩이 밑에서 등 중간까지 굵은 바늘을 꽂아 넣는 것 같은” 선명하고 날카로운 최초의 통증 이후, 발작 기침과 앞가슴뼈 통증으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끔찍한 시간을 지나기까지 ‘나’는 현재와 과거, 현실과 꿈,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들며 숱한 감정의 격랑을 경험한다. 이때 현재의 가족인 남편과 딸은 ‘나’의 고통을 진정시켜주고 ‘나’를 일어나게 하는 힘이라면, 원 가족인 엄마 아빠는 신체적 질환 속에서 더 생생히 떠오르는 상처의 근원지다, 특히 엄마는 현재 시점에서 화자가 정서적, 감정적으로 가장 두려워하고 힘겨워하는 존재다.
소설은 서사의 상당 부분을 화자가 엄마에게 느끼는 감정, 엄마와의 관계에 할애한다. 그것은 엄마가 화자에게 보낸 문자메시지가 소설을 열고 닫는 구실을 하는 것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아내와 자식에게 폭력을 휘둘렀던 아빠는 이미 고인이 되었기에 ‘나’로서는 원망도 미움도 떠나보내고 “잘 다듬어진 이해와 치밀하게 얽힌 감사”만을 느끼는 데 반해 엄마는 여전히 ‘나’의 삶에 부당하게 개입하고 침입함으로써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고국에서 혼자된 엄마는 더욱 가련한 모양새로 죽은 아버지 뒤에 숨어서 책임은 회피하고 권리만을 챙기려 든다.
‘나’를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엄마가 ‘나’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엄마와의 관계에서 ‘나’는 늘 ‘말하지 못하는 자’이고 엄마는 늘 ‘듣지 못하는 자’다. 소통이 되지 않는 일방적인 관계는 자주 실망과 염증을 낳고 지친 마음은 자발적 후퇴에서 관계의 철수까지 생각하게 한다. 소설의 말미에서 ‘나’는 막힌 숨구멍을 틔우기 위해 엄마에 대한 미련을 보내는 듯싶다가 난데없이 도착한 엄마의 메시지로 인해 보낸 미련을 다시 주워 담는다. 엄마는 그렇게 ‘나’의 곁에 끈질기게 존재한다.

전쟁터에서 낙원으로, 위험 속에서도 가족은 진화한다

화자가 성인이 되어 캐나다에서 이룬 가족은 이상적이라 할 만큼 완벽하고 조화롭다. 부부는 애정과 신뢰로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고 아이는 그 울타리 안에서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유롭게 자란다. 그린벨트로 보호받는 숲과 강을 지척에 둔 안락한 보금자리에서 그들은 무엇을 하든 똘똘 뭉쳐 있으며, 다정하고 예의 바른 이웃은 누구도 그들의 삶을 방해하지 않는다. 화자가 나고 자란 한국에서의 가족이 전쟁터였다면 캐나다에서 이룬 가족은 낙원이라 불릴 법하다.
‘나’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이 ‘낙원’을 지키고 어떠한 위험도 자신들의 울타리를 침범하지 않기를 바라지만 이미 현실은 가까이에서 위험이 닥칠 수 있음을 증명한다. 딸 로야와 같은 수영 클럽에 디니던 중학생이 총기 사고로 목숨을 잃었고, 그들이 전에 살던 동네에서도 총기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그들이 겪은 교통사고 역시 가족 모두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었던 사건이었다. 위험에 대한 화자의 불안과 강박은 아이 손을 놓치고 아이를 잃어버리는 꿈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딸아이가 주변에서 일어나는 죽음과 사고를 자기만의 시각으로 의식하고 있다는 사실이 화자에게는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죽음은 외부에만 있지 않다. 남편의 고국 이란에서 시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한결같이 진중하고 확고하던 남편이 흔들린다. 남편 역시 ‘나’처럼 나고 자란 가족 내에서 권리는 없고 책임만 떠안으며 살아왔지만 ‘나’와는 달리 부모와의 관계에서 생긴 상처가 응어리로 남지는 않았다. 그런 남편마저 부친의 죽음으로 나약한 상태에 빠진다.
소설에는 여러 형태의 죽음이 등장한다. 현재의 죽음과 과거의 죽음이 있고, 어린 죽음과 나이 든 죽음이 있다. 가깝든 멀든 죽음은 무언가를 남긴다. 어떤 죽음은 좋은 것만을 유산으로 남기고 어떤 죽음은 훗날 ‘나’를 찾아와 위로를 보내기도 한다. 시간 속에서 죽음은 삶에 깃들고 삶은 이어진다.

쇼스타코비치, 말러, 차이콥스키: 음악이 주는 카타르시스

『로야』에는 고전음악과 관련된 인상적인 장면이 몇 차례 나온다. 화자의 가족은 음악 애호가로 주말마다 음악회를 찾는데, 음악은 가족을 결속하면서 ‘나’의 삶에 드리운 고통과 죽음과 불화를 감싸고 폭발시키고 해방시킨다. 사고 후 처음 찾은 음악회에서 들은 쇼스타코비치의 마지막 현악 사중주는 ‘나’로 하여금 “불편함과 불안함과 무서움을 지나 우울과 슬픔에” 다다랐다가 “여러 껍질이 벗겨져서 한결 가벼워진 느낌으로 부유하게” 한다. 시아버지의 죽음으로 슬픔에 빠져 있을 때 말러의 부활 교향곡은 고인을 모셔 와 눈물과 미소로 지난 삶을 축하하는 의식이 된다. 차이콥스키 1812년 서곡을 들을 때는 “환희의 축포”인 듯 “절망의 폭격”인 듯 쏟아지는 대포알 소리가 ‘나’의 부모와 겹쳐지며 가슴을 내려치는데, 엄마와 ‘나’는 같은 곡에 다른 의미로 숨이 멎는다. 작가의 음악적 소양이 서사에 녹아들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아름다운 장면들이다.

여성 서사의 눈부신 성취, 가장 내밀한 동시에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

『로야』는 인물의 생각과 감정을 집요하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묘사한다. 여성이 자신의 내면을 이토록 정교하게 탐구하고 해석하는 것은 여성 서사의 눈부신 성취다. 화자의 강박은 오랫동안 숨기고 감추어온 것에서 비롯되었으므로 그것을 드러내 보이고 ‘아프다’고 말함으로써 회복은 시작된다. 이는 작가의 쓰는 행위와 연결된다. 다이앤 리는 자신이 그대로 투영된 이 소설을 통해 “나는 왜 쓰는가? 나의 상처는 무엇인가? 그토록 상처 입은, 나는 누구인가?”를 묻고 답한다. “오래된 질문이자 모든 작가의 출발점이다.”(심사위원 김별아) 그리고 이야기는 여전히 열려 있고 진행 중이다.
작가는 “어떤 형태의 삶을 살든 가장 협소하고 내밀한 부분은 시공간을 초월해 유사하다. 가장 협소한 곳에 가족이 있고 가장 내밀한 곳에 자신이 있다.”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로야』는 한국문학의 가장 먼 곳에서 온 가장 가까운 이야기, 가장 내밀한 동시에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라 하겠다.

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캐나다 국적 다이앤 리의 『로야』는 한국문학의 변경(frontier)이 새로이 도래했음을 고지한다. 속지주의로는 한국문학이 아니지만 속문주의로는 한국문학인 이 까다로운 이중성은 밴쿠버의 중간계급으로 오른 한국계 여성과 이란계 남성의 가정을 다룬 작품의 전개에도 깊이 참여한다. 작품 속 현재인 밴쿠버 이야기는 이민 전 그들 각자가 과거에 겪은 고국 이야기와 간단없이 교착하거니와, 새로운 가족을 구성하기 위한 변경의 실험으로 흥미로운 전자보다는 마음의 사막을 횡단하는 여주인공 ‘나’의 촘촘한 회상으로 드러나는 한국의 폭력적 가부장 가족의 풍경에 직핍한 후자가 고갱이다. 장편으로서는 드물게 좁다란 이 작품은 구경, 우리의 유구한 가족주의가 어떤 변경에 도착했음을 예리하게 일깨우던 것인데, 사적인 것이 공적인 것으로 전환되는 서사의 반전이 종요롭다.
- 최원식 (문학평론가)

예민하고 우아한 내러티브, 상처와 치유의 여성 서사가 클래식한 느낌을 준다. 스토리텔링은 풍부하고 내면의 탐문은 묵직하다.
- 은희경 (소설가)

소설을 읽는 동안 『로야』가 발휘하는 흡인력이 뛰어난 문장에서 비롯된 줄 여기기 쉽다. 소설을 덮고 나서도 쉽게 가시지 않는 독특하고 강렬한 여운의 실체는 달리 있다는 사실을 나 역시 뒤늦게 깨달았다. 다이앤 리의 놀라운 능력은 너무나 익숙한 것을 아주 낯설게 만들어버리고, 생소한 삶을 조금도 불편하지 않게 받아들이게 만드는 능력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한국에서의 이야기와 우리에게 생소한 제3국에서 만난 이민자들의 서사를 바라보는 작가의 전복적 상상력을 통해 우리는 삶의 다른 국면을 마주하게 되었다.
- 방현석 (소설가·중앙대 교수)

한 문장도 건너뛰기 힘든 소설의 밀도가 인상적이었다. 단단하게 웅크린 작은 이야기들 안에 정교하게 쌓아놓은 마음의 가닥들은 예상치 못한 긴장력으로 소설의 서사를 추동한다. 소설 『로야』는 장편이 반드시 큰 이야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매력적인 예다.
- 정홍수 (문학평론가)

좀 다르게 생각해보기로 한다. 모두가 달려가는 방향이나 속력과 상관없이, 이야기만이 이야기할 수 있는 무엇이 있지 않을까? 『로야』는 이질적이다. 지금까지 한국 소설이 맹렬하게 달려 다다른 지점과 별개의 자리에 있다. 소재나 배경만이 아니다. 물리적으로 가장 먼 곳에 있지만 아무 데로도 떠나지 않았다. 나는 왜 쓰는가? 나의 상처는 무엇인가? 그토록 상처 입은, 나는 누구인가? 오래된 질문이자 모든 작가의 출발점이다. 다만 지금은 잊었거나, 잊었다고 착각하고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
- 김별아 (소설가)

『로야』는 자신의 삶을 온전히 회복하려는 한 여성의 이야기이다. 집요하고 아름다운 문장을 따라가면 결국은 상처가 있는 어두운 웅덩이와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로야』가 매력적인 이유는 화자가 미치도록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는 데 있다. 여성 스스로 자기 자신을 긍정하고 사랑하게 되는 것, 그것은 모든 여성이 원하는 것이 아닐까. 『로야』는 여성은 원래 태생부터 완전한 인간형이었음을, 하나의 우주였음을 인식하게 만드는 놀라운 작품이다.
- 강영숙 (소설가)

『로야』는 은폐된 것들이 점거한 마음에서 비롯된 자기기만의 고백록이자 ‘척’들의 합에 다름 아닌 한 인생의 막다른 진술서다. 일상은 드러난 것과 숨겨진 것의 일시적 균형 상태에 지나지 않는다. 균형은 사소한 사건에도 쉽게 깨진다. 나에겐 이 소설이 바로 그 ‘사소한’ 발단이었다.
- 박혜진 (문학평론가)

회원리뷰 (21건) 리뷰 총점8.4

혜택 및 유의사항?
교통사고 후유증이 촉발한 과거의 기억 상처 입은 어린아이와의 대면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YES마니아 : 플래티넘 스타블로거 : 수퍼스타 수*니 | 2020.12.31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남편과 여덟 살 딸과 함께 캐나다 밴쿠버에서 순조로운 일상을 영위하던 나는 어느 날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한다 대형 사고였지만 현장에서 멀쩡하게 걸어 나올 수 있었을 만큼 부상은 가벼웠다 외상이 없으니 회복도 신속할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도 몸이 나아지지 않자 나는 체력과 정신력의 한계에 부딪힌다 나는 자신을 한계에 몰아넣은 것이 자신의 취약 부분 바로 부모와의;
리뷰제목

남편과 여덟 살 딸과 함께 캐나다 밴쿠버에서 순조로운 일상을 영위하던 나는 어느 날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한다 대형 사고였지만 현장에서 멀쩡하게 걸어 나올 수 있었을 만큼 부상은 가벼웠다 외상이 없으니 회복도 신속할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도 몸이 나아지지 않자 나는 체력과 정신력의 한계에 부딪힌다 나는 자신을 한계에 몰아넣은 것이 자신의 취약 부분 바로 부모와의 관계임을 더딘 회복 과정에서 깨닫는다

중년에 접어든 나와 남편은 각자의 고국을 떠나온 지 스무 해가 넘었으며 이들의 나고 자란 가족은 모두 고국에 있다 폭력 가정에서 자란 나는 성인이 된 후 부모와 물리적 거리를 두며 살아왔다 그러다 교통사고로 인해 체력과 정신력이 밑바닥에 떨어지자 위로받지 못한 어린 자신을 만나게 되고 아직도 질기게 연결된 부모와의 정서적 거리를 경험한다 교통사고가 나 자신을 밑바닥까지 가라앉게 한 동시에 의식적으로 지워온 겁에 질린 어린아이를 만나게 해준 셈이다 나의 회복은 이 아이와의 대면에서부터 시작된다

지난 세월 동안 나는 상처받은 자신을 위로하는 것보다 자신에게 상처 준 부모를 이해하는 것에 온 힘을 써왔다 아프다는 소리를 누구에게도 안했다 심지어 자신에게도 한 적이 없었다 참고 이해하는 것이 부모를 사랑하고 자신이 자라는 방식이었다 폭력 가해자였던 아빠는 고인이 되었지만 그의 존재는 여전히 나의 원 가족 삶 속에 있고 엄마는 죽은 아빠를 거듭 끄집어내며 자신의 희생에 대한 보상을 끊임없이 요구한다

나는 폭력 피해자인 엄마는 마땅히 보상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여 무엇이든 아낌없이 주었지만 자신이 밑바닥에 있을 때도 당신을 보살피지 않는다고 퍼붓는 엄마를 보며 지금껏 믿어왔던 피해자와 이분법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1부와 2부로 나뉘어 13장으로 이루어진 소설은 화자의 회복 과정을 따라가며 그 내적 외적 변화를 치밀하게 그린다 엉덩이 밑에서 등 중간까지 굵은 바늘을 꽂아 넣는 것 같은 선명하고 날카로운 최초의 통증 이후 발작 기침과 앞가슴뼈 통증으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끔찍한 시간을 지나기까지 나는 현재와 과거 현실과 꿈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들며 숱한 감정의 격랑을 경험한다 이때 현재의 가족인 남편과 딸은 나의 고통을 진정시켜주고 나를 일어나게 하는 힘이라면 원 가족인 엄마 아빠는 신체적 질환 속에서 더 생생히 떠오르는 상처의 근원지다 특히 엄마는 현재 시점에서 화자가 정서적 감정적으로 가장 두려워하고 힘겨워하는 존재다

 

소설은 서사의 상당 부분을 화자가 엄마에게 느끼는 감정 엄마와의 관계에 할애한다 그것은 엄마가 화자에게 보낸 문자메시지가 소설을 열고 닫는 구실을 하는 것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아내와 자식에게 폭력을 휘둘렀던 아빠는 이미 고인이 되었기에 나로서는 원망도 미움도 떠나보내고 잘 다듬어진 이해와 치밀하게 얽힌 감사만을 느끼는 데 반해 엄마는 여전히 나의 삶에 부당하게 개입하고 침입함으로써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고국에서 혼자된 엄마는 더욱 가련한 모양새로 죽은 아버지 뒤에 숨어서 책임은 회피하고 권리만을 챙기려 든다

나를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엄마가 나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엄마와의 관계에서 나는 늘 말하지 못하는 자이고 엄마는 늘 듣지 못하는 자다 소통이 되지 않는 일방적인 관계는 자주 실망과 염증을 낳고 지친 마음은 자발적 후퇴에서 관계의 철수까지 생각하게 한다 소설의 말미에서 나는 막힌 숨구멍을 틔우기 위해 엄마에 대한 미련을 보내느 듯 싶다가 난데없이 도착한 엄마의 메시지로 인해 보낸 미련을 다시 주워 담는다 엄마는 그렇게 나의 곁에 끈질기게 존재한다

댓글 0 이 리뷰가 도움이 되었나요? 공감 0
구매 파워문화리뷰 로야/다이앤 리/나무옆의자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ES마니아 : 플래티넘 박*주 | 2020.01.06 | 추천4 | 댓글1 리뷰제목
  p. 60그 순간 깨달았다. 부모가 되는 순간은 나의 부모가 어떠한 사람인지 명확히 알게 되는 순간임을. 부모 됨은 냉혹한 판결의 자리임을. 넘쳐나는 보상을 받게 될지 철저한 배상을 해 줘야 할지 판가름 나는. 나에게 내려진 판결문은 잔혹했다.  2019년 초여름 만난 <로야> 속 구절. 그대로 각인되어 떠오르고 또 떠올랐다. <로야>를 읽는 동안;
리뷰제목

 

 p. 60

그 순간 깨달았다. 부모가 되는 순간은 나의 부모가 어떠한 사람인지 명확히 알게 되는 순간임을. 부모 됨은 냉혹한 판결의 자리임을. 넘쳐나는 보상을 받게 될지 철저한 배상을 해 줘야 할지 판가름 나는. 나에게 내려진 판결문은 잔혹했다.

 

2019년 초여름 만난 <로야> 속 구절. 그대로 각인되어 떠오르고 또 떠올랐다. <로야>를 읽는 동안 계속 나를 마주하는 기분이 들었다. 읽고 나서 몇 번이고 리뷰를  쓰려할 때마다 리뷰가 아닌 내 이야기로 가득채울 것 같아 쉽게 써지지 않았다. 그래서 미루고 미루다 새해를 맞아  다시 읽고 리뷰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로야>는 캐나다 밴쿠버에서 남편과 딸 아이와 지내고 있는 다이엔 리의 자서전 같은 소설이다.  하지만 작가만의 특수한 경험과 감정이 주가 아니라 부모의 딸로서, 또 한 아이의 엄마로서 공감할 수 있는 말들이 담겨 있었다. 소설이지만 허구 속에서 상상하는 느낌이 아니라 내가 아는 누군가의 이야기처럼, 내 이야기인 것처럼 빠져들어 하나가 되었다. 

 

1. 부모를 마주하다.

 

<로야>에서 제일 공감이 되었던 부분이 엄마가 된 후 자신의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절실히 알게 되었다는 부분이었다. 나 역시 그랬기 때문이다.

p.67

 

종신형이다. 이것이 내가 받은 판결문이다. 앞으로 푹 고꾸라졌다. 내 안에 꽂힌 바늘이나 칼은 이제 목덜미까지 깊숙이 찌른다. 숙일 수도 없는 목을 책상 위로 떨어뜨린다. 백 년의 냄새가 난다. 고통은 고문이 된다. 그렇게 한참을 앉아 있었다. 

매년 연말 남편과 딸 셋이서 음악회를 다녀오는 주인공. 그런데 그 해에는 음악회를 다녀 오던 중 블랙아이스 때문에 차기 미끄러져 교통사고가 난다. 다행히 차만 크게 다쳤을 뿐 다들 무사했다. 하지만, 오직 주인공만이 겉으로는 외상도 없는데 온 몸이 너무 아팠다. 누가 만지기만 해도 고통스러울 만큼.

자상한 남편의 배려로 치료에만 전념하려 하지만, 나아질 기색이 없다. 보통은 큰 사고가 나면 엄마를 찾기 마련인데 주인공은 연락을 미루고 미룬다.  "솔직히 말해서, 엄마한테 얘기했다가 내가 듣고 싶은 말을 못들을까 봐, 그게 두려워서 못 하겠어. 이미 너무 아픈데 엄마가 나를 더 아프게 할까 봐, 겁나.(p.57)" 

엄마에게 전화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힘들었던지 빗속을 헤매고 다니는 꿈까지 꾸고 나서 겨우 전화를 해서 엄마에게 들은 이야기는 "아빠가 하늘에서 도왔네(p.66)"였다. 엄마를 때리고 딸과 아들도 때리던 술독에 빠져있던 그 아빠가 도왔다는 말에 주인공은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리고서 엄마는 터키 여행 상품 봐 둔게 있다며 "계좌는 똑같데이, 엄마 요가 간다(p.67)"라며 전화를 끊는다.

아빠는 주인공이 임신 3개월일 때 암으로 돌아가셨다.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와 장례를 치르고 나서 엄마가 손 놓고 있던 살림들을 치우느라 고생한다. 뭉친 배를 움켜지고 청소하는 그녀에게 엄마는 베란다도 정리해야한다 한다. 그러면서 매운탕이 먹고 싶다며 2인분을 시켜야해 평소에 못먹어 먹고 싶다며 매운탕집에 간다. 매운 것도 못 먹고 임산부라 더더욱 조심해야 하는 딸은 콩나물 반찬에 겨우 밥을 넘기는데 혼자 매운탕 2인분을 게걸스럽게 뚝딱하는 엄마였다.

p.199

내가 졸라서 이 세상에 태어난 것도 아니고, 내가 엄마를 낳은 것도 아니다. 엄마는 자신이 해야할 일들은 까맣게 잊고 내가 해야할 일들만 꼬치꼬치 따졌다. 의무를 저버리고 권리만을 챙기려 하는 엄마 앞에서 나는 권리엔 손도 못 대고 넘쳐나는 의무에 헉헉대야만 했다. 엄마는 여전히 가엽고 불쌍하지만, 엄마를 향한 나의 자비심엔 한계가 있었다. 한계가 있는 자비심은 인내심이다. 쌍방이 아니라 늘 일방인 관계에 염증을 느끼며 나의 인내심은 도전 받았다.

 

아빠에 대한 이야기는 1부 후반즈음에 구체적으로 등장한다. 주인공이 고등학생 때 친구 연주와  있다 자전거에 치이는 사고를 당한다. 연주가 택시부터 병원까지 함께 해 준다. 그저 형식적으로 쓰는 것인 줄 알고 아빠 연락처를 썼는데 정말 아빠가 오자 당황한다.

 p. 114

"친구가?"

철 냄새 사이로 행여나 술 냄새가 날까 봐 조마조마했다.

"네."

연주의 얼굴엔 넘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은 결연함과 미안함이 가득했다. 내 울음 안에는 초조함이 가득했다.

연주는 이렇게, 아빠를 본 최초의-또한 마지막인-친구가 되었다. 내가 숨겨 왔던 것의 유일한 목격자였다. 내가 숨기고 있는 것을 연주가 보지 못하기를, 만약에 봤다면 제발 묻지 말기를, 제발 아무말도 하지 말기를, 제발 모른 척해 주기를, 나는 바라고 또 바랐다. 

주인공에게 아빠는 감추고 싶은 존재였다. 동업하기로 한 사람이 배신하면서 집이 망하면서 아빠도 망가졌다. 열여섯살 때 일이었다. 아빠는 술을 먹고 엄마를 질질 끌고 다니며 때렸다. 그런 아빠의 모습에 "경찰을 부를 거야!"라고 소리친 주인공. "뭐라고? 경찰? 이게 죽을라고 환장했나!" 돌덩이 같은 아빠 손이 내 머리를 내리쳤고 나는 그대로 쓰러졌다.(p.169) 그리고 나서 아빠는 주인공의 공부방을 부숴버린다. 어려운 시간 동안 안식처 같던 공간까지 부숴버린 아빠였다.

 

주인공에겐 부모란,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보살핌이 필요한 어린 시절에도,  아이를 낳고 몸이 힘들어 산후 조리를 도와줄 이가 필요했을 때도 기꺼이 그 역할을 해 줄 아빠도 엄마도 없었다. "있었지만, 없었다."

 

p.249

동생과 내가 자신만의 가정을 이뤘을 때 빠져나온 울타리의 실체를 볼 수 있었다. 빠져나온 울타리는 허술하고 엉성했다. 당연히 경계가 명확하지 않았고, 안에 든 것은 다 빠져나가고 없었다. 저런 곳에서 우리가 자랐다는 사실이 각자의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부터는 고통이 되었다. 각자의 배우자와 자식에게는 우리의 고통을 어느 정도 감출 수 있었으나 우리 자신은 그때의 기억에서 놓여날 수 없었다. 타인에게 감출 수 있는 것은 정작 본인에게 지워지지 않는 것이다. 

 

 

2. 어린 나를 마주하다.

 

1부에서는 교통사고의 고통은 주인공이 도움이 필요할 때 손을 잡아주지 않았던 부모에게 받았던 상처를 되살아났다면, 2부에서는 그 고통 속에 있던 어린 나를 마주한다.

 

 2부는 남편의 아버지가  돌아가실 것 같다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주인공이 남편의 아버지를 바바준 어머니를 마마준이라 부르기에 여기서도 그 호칭을 쓰려고 한다. )

p.148

아버지가 되기에 적당한 나이는 있을지 모르나 아버지를 잃기에 적당한 나이는 없다.

 남편은 이란 출신으로 부모님은 계속 그곳에서 지내시고 있었다. 항상 남편이 자신의 가정을 이끌어가는 존재였는데 아버지의 죽음에 힘들어하는 남편을 위로하고 지켜주려 애를 쓴다. 바바준을 보러 가려고 비행기 티켓을 준비한 다음날, 바바준의 죽음을 알리는 전화를 받는다. 평소 바바준은 자신의 죽음에 불필요한 의식이 없기를 바랬다. 그런 뜻에 따라 장례식도 하지 않고 그저 지인들에게 식사 대접만 하기로 했고 남편도 이란에 가지 않기로 한다. 

매년 봄마다 가기에 이미 일 년 전 참석을 확정해 놓은 연주회가 다가 왔다. 바바준이 돌아가셨는데 음악회에 가려니 안 될 일 같았으나, 음악을 좋아했던 바바준이었기에 이 음악회를 가는 것이 그를 기릴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해 남편의 동생 가족까지 함께 음악회에 참석한다. 바바준이 남편 돌 때 했던 넥타이를 메고 바바준을 모시는 마음으로 음악회에 참석한다.

 p.159

안단테 모데라토의 2악장이 연주될 때 난 바바준을 봤다. 바바준은 남편과 아이 사이에 앉아있었다(생략) 바바준을 바라보고 있는데 남편이 나를 바라봤다. 남편의 눈에 투명한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우리가 주고 받은 시선 안에 바바준이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부활절 아침 남편 동생 가족들과 베이비백립스를 가져다 놓고 웃고 울며 바바준을 보낸다.

그러면서 차츰 주인공의 몸도 좋아지고 있었다. 마음에도 새살이 필요함을 느껴 카이로프랙터인 닥터 쿠션을 찾기로 한다. 출산 후 몸이 회복되지 않아 신랑이 수소문해서 가서 치료받은 곳이었다. 닥터 쿠션의 진료는 특이했다. 팔을 올리게 해서는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향하게 한 후 터치하면 팔이 움직이지 않거나 아래로 툭떨어지게 했다. 듣도 보도 못한 방법이었다. 그런데 두 번째 세션 날, "여덟 살 때 뭔가 있었군요" 하며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열여섯 살 때 엄마와 아빠'를 기억하게 한다. 꽁꽁 감춰두었던 상처가 밖으로 터져 나왔다.

p.173

난 그 당시의 아빠도 그 이전의 아빠도, 아니 그 어떤 시절의 아빠도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생략) 모호하지만 든든히 일반화할 수 있는 가부장적 아버지 안에 아빠를 숨기고 나를 숨기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결국 숨길 수 없었다.

p.173 그 순간 올 것이 왔다는 느낌 내지 더는 안 되겠다는 느낌이 온 몸을 덮쳐왓다. 더는 숨을 수도, 도망칠 수도, 방어할 수도 없었다. 봇물 터지듯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생략) 변호해야 하는 아빠를 없애고 설명해야 하는나를 없앤 그곳에 여덟 살의 내가, 열여섯 살의 내가 있었다. 자그마한, 눈이 반짝이는, 채워지지 않아 늘 허기진, 아무렇지도 않은 척해서 늘 답답한, 겁에 질려 울먹울먹하는, 어린아이가 있었다.

(생략)

지나간 시간 안에서 과거를 재해석했다. 재해석된 과거 안에서 나는 무참히 상처 입은 어린아이를 지웠고, 관용으로 가득 찬 어른을 세웠다. 그 어른이 아빠를 용서했다고 믿었다. 하지만 과거는 해석을 거부한 채 시퍼런 눈을 뜨고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의식이 어린 아이를 지우는 동안 무의식은 그 어린아이를 숨겨 주고 있었다. 

 

3. 나의 로야를 마주하다.

로야는 주인공의 딸 이름이다. 페르시아어로 '꿈'이나 '이상'을 뜻하는 예쁜 말이다. 주인공에게 지금의 가정은 말그대로 로야였다.

 p.127

늘 자진해서 보살피는 사람이다. 이기적이지 못해 마음껏 누리는 것을 겁내는 사람이다. 나는 그게 딱해서 나의 것을 없애고 그의 자리를 만들어 준다. 나 또한 마음껏 누리는 것에 서툴지만, 남편보다는 이기적이라 자진해서 보살피는 것은 가족으로 제한할 줄 안다. 그러니 내 안에 없앨 수 있는 자리가 남편보다는 많다. 남편도 나도 맏이로 태어나 자랐다. 우리는 자신을 없애서 타인을 즐겁게 하는 방법을 배워야 했다. 나고 자란 가족 내에서 나와 남편이 쓴 면류관엔 권리는 없고 책임만이 존재한다.. 서로 그것을 알아서 적어도 우리가 만든 가족 내에선 책임도 권리처럼 영광스럽게 대한다영광스러운 그것, 포괄적으로 정의하자면, 사랑이다. 

 

가족들에게서 보살핌을 받기보다 책임지는 역할을 해왔던 남편과 주인공은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울타리가 되어 주었다. 둘 사이에 태어난 딸 로야에게 정성을 다하는 따뜻한 부모이다. 부모로부터 사랑 받지 못하면 그게 트라우마가 되어 자식에게도 못한다고들 하는데 이들은 자신의 가정을 사랑을 가득담아 든든한 보금자리로 만들어 냈다.

 

 p. 223

남아 있는 날들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지만, 얼마가 됐든 흔쾌히 살아 낼 수 있고, 이들과 함께라면 꼭 살아보고 싶고, 내일이 끝이라면 사십구 일째에 태어나, 이들을 꼭 찾아서, 다시 이들과 살고 싶은, 그런 날이었다. 유별나다고 여기지 않았고 오히려 고결하다고 생각했다. 자꾸자꾸 죽어도 자꾸자꾸 태어나 자꾸자꾸 이들과 사는 건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이상적인 가정이있을까? 싶을 정도로 감탄이 절로 나왔다. 자꾸자꾸 이들과 살 것이라는 말. 너무나도 예쁘고 아름담게 다가왔다.

 

엄마가 갑자기 바뀐 것도 아니고 어린 시절의 상처가 완벽히 아문 것도 아니지만, 지금의 가정 안에서 사랑으로 서로를 아끼고 새로운 로야를 찾는 모습이 진한 여운을 남긴다.

p.278

 "당신과 나의 우주가 어긋나지 않아 다행이야."

"동감이야. 얼마나 많은 우연이 겹쳐야 어긋나지 않을 수 있는지, 헤아리기도 불가능하니까."

그와 함께하기 전의 세월이, 그와 함께한 세울이, 단순한 우연이 아님을 안다. 우연이라고 치부해 버리면 안 된다는 걸 안다. 흔한 존재가 고유한 존재로 남기 위해, 평범한 존재가 비범한 존재로 남기 위해, 미세한 존재가 거대한 존재로 남기 위해, 우연은 필연이 되고 그 안에서 우리는 행복하게 남는다. 남기 위해 죽고 죽은 뒤에 남는다. 로야가 남고 로야의 로야가 남는다.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남는다.

 

 

격하게 슬프거나 고통을 쥐어짜거나 하는 장면도 없는데 읽다 문득문득 눈물을 흘리는 나를 발견했다. 주인공의 엄마 정로로 무심한 엄마는 아니지만, 지금 엄마 대신 시어머니의 손을 빌려 육아를 하는 상황인지라 한 번 씩 엄마의 따스함이 그리워질 때가 많아 서글플 때가 있다. 이런 저런 사연도 있어 주인공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 같은 순간도 많았다. 아빠와의 이야기에서도 가족을 때리거나 술을 마시는 아빠는 절대 아니지만, 나 또한 자랑스럽게 아빠를 얘기할 수 없는 순간들도 많았기에 공감이 되었다.

나 역시 내가 자고 나란 울타리를 벗어나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나서야 그 실체가 좀 더 객관적이고 명확히 보이는 것 같았다. <로야>에서도 이야기했듯, 부모 역시 그러고 싶어 그런 부모가 된 것은 아님을 이해한다.

p.175

모든 아이가 그러하듯 그도 넘여졌고, 상처가 아물기 전 또 넘어지기도 했던 아이였다. (생략) 누구나 넘어진다. 나의 아빠도 나의 엄마도 한때 넘어져 울던 아이였다. 우는 아이가 제대로 위로받지 못하면 그 아이는 다른 아이를 울리기도 한다.

 넘어지고도 아무렇지 않은 척 숨기고만 자란 우리들이기에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고 또 누군가를 상처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었다. 더 늦기 전에 나의 아픔도, 내 남편의 짐도, 부모님의 아픔도 함께 털어내고 자꾸자꾸 또 같이 하고 싶은 사이가 되도록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시간이었다.

우리 모두의 '로야'를 위해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만든 가정에서 생겨난 존재. 딸 아이. 상처받고 컸던 우리 세대와는 다르게 사랑만 가득 주고 싶은 존재.  

p.272

 

태어나 보니 전쟁터였던 나와 남편의 근원지와 달리 로야는 자신이 낙원을 근원지로 가졌다고 호언장담한다. (생략) 자식이 주는 기쁨이 부모의 노고를 위로하는 것이라면 기쁨이 노고보다 커서 이 또한 빚인 것 같다.

 

주인공은 아이를 잃어버리는 꿈을 꾸며 생각하는 내용도 정말 공감이 갔다.

p.123

'엄마, 잠깐만.'

마음속으로 들은 말이었다. 그 뒤의 말이 '안녕'이었는지 '저기서 봐'였는지 모르겠다.

(생략)

내가 이뤄 낸 모든 것이 감쪽같이 사라진 느낌이었다. 자력으로 이룬 것이 아니라 천운을 빌려 가까스로 이뤄낸 것을 순식간에 잃은 느낌이었다.

상상도 하기 싫지만, 정말 모든 것이 사라지는, 천운까지 빌려 얻은 것을 잃는 기분일 것 같았다.

 

우연히 발견한 아이의 노트에 적혀있던 부모로서는 아이가 의미를 담지 말고 지나가길 바랐던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다.

p.132

우리한테서 멀리멀리 떨어져 있기를 바라는 것은 이미 우리 가까이에 와  있고, 부정이나 부인은 보호의 장막일 수 없으며, 신중의 밀도는 너무나 엉성하고, 아이 손이 내 손안에 있다 해도 아이 눈은 세상을 행햐 있고, 놓쳤다면 차라리 좋았을 그 손은 벌써 놓는 법을 알고 있었다.

p.133

부모가 특별히 무언가를 해 주지 않아도 아이 스스로 무언가를 특별하게 해내내는 모습을 볼 때 저 아이는 어디서 생겨났을까, 아이의 근원을 헤매는 낯선 황홀함을 느낀다. 사실 활홀함 속엔 내 능력의 경계와 한계가 어리둥절히 들어 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영역에 있는 아이를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어 놓은 가능성의 경계와 한계가 거부감이나 저항 없이 스스륵 열리고 와르르 무너질 수 있음을 목격한다. 열리고 무너진 그곳에서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내가 함부로 손대선 안 되는 영역이었다.

마냥 어리던 아이가 자라가는 모습도 나를 당황하게 하기도, 나를 성장시키기도 하는 한 부분인 것 같아 공감이 갔다. 혼자 무언가를 하면 대견하다가도 나를 떠날 것 같은 불안감도 동시에 느껴지니 말이다. 그렇다고 아이만의 영역은 함부로 손을 대선 안된다는 이야기를 마음에 담아둔다.

 

또 공감이 갔던 표현이 있다.

 p.230

어찌 완벽하지 않은 아이가 있겠는가. 완벽하지 못한 부모더라도 그들의 아이는 완벽하다. 그러고 보면 모든 부모는 한때 완벽한 아이었다. 그 완벽한 아이에게 완벽하지 못한 부모가 있었다. 

완벽한 아이였던 우리들이 환경에 의해 상처를 받으며 크기도 했지만, 아이들에게는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는 부분이었다. 우리 아이의 아이 또  그 아이의 아이가 타고난 본연의 완벽함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게 말이다.

 

처음에는 엄마와의 갈등을 다룬 소설로만 생각했는데, 한 세대와 그 다음 세대, 또 그다음 세대까지 연결해 보는 긴 호흡이 필요한 소설이었다. 근원으로부터 지금의 나, 그리고 미래까지 연결하는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너무 세세하거나 추상적인 묘사를 부담스러워 하는 편인데도 <로야>의 묘사는 빠져든다. 시간이 뒤섞여 있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데 <로야>의 시간에는 몰입이 된다. 나도 이 가정을 자꾸자꾸 다시 태어나도 함께하고픈 가정으로 만들어보겠다는 다짐을 하며 글을 마친다.

댓글 1 4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4
가족의 멍애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기* | 2019.11.22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사랑이 결핍된 가정에서 태어나 독립했지만, 부모라는 허울로 자식을 지배하고 종속하려는 가족의 멍애. 그 실체를 본 소설이다.부부간에 사랑이 결핍된 채 가정을 꾸려 자녀를 낳았다. 첫 딸이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사업 실패로 집안이 송두리째 날아갔다.친척이 다니던 회사에 근무하며 아내는 공장 식당에서 일을 시작했다.사업 실패로 울화병에 걸린 아빠는 술만 먹었다 하면 아내를;
리뷰제목

사랑이 결핍된 가정에서 태어나 독립했지만, 부모라는 허울로 자식을 지배하고 종속하려는 가족의 멍애. 그 실체를 본 소설이다.

부부간에 사랑이 결핍된 채 가정을 꾸려 자녀를 낳았다.

첫 딸이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사업 실패로 집안이 송두리째 날아갔다.

친척이 다니던 회사에 근무하며 아내는 공장 식당에서 일을 시작했다.

사업 실패로 울화병에 걸린 아빠는 술만 먹었다 하면 아내를 개 패듯 한다.

이를 말리려는 자녀들까지 주먹질이 멈추지 않는다. 첫 딸의 얼굴이 찢어지는 상황에서도 그 폭력이 멈추지 않았다.

첫 딸이 중학교에 들어가며 공부에 흥미를 느끼자 남동생과 함께 방을 쓰기가 불편해졌다.

아빠는 큰맘 먹고 창고 한구석에 구들을 놓고 알록달록 예쁜 벽지로 방을 꾸며주었다.

하지만 술이 문제였다. 어김없이 엄마를 구타하던 날, 말리는 딸아이에게 화풀이를 할 겸 자신이 만드어준 방을 모조리 부숴버린다.

이런 환경 속에서도 살기 위해 공부를 한 딸은 국립대학교에 입학해 학비를 벌며 학업을 마쳤다.

지긋지긋한 한국을 벗어나기 위해 유학을 택했고, 거기에 이란 출신의 남자를 만나 캐나다에 정착했다.

지옥 같은 가정에서 탈출했지만 악마같았던 아빠의 급작스러운 암 투병, 그리고 3년이라는 짧은 기간을 보내고 세상을 떠난다.

남편에게 사랑을 받지 못했던 엄마는 아이들에게 불안정한 애착을 가진다.

그 시대 엄마들이 그랬던 것처럼 아들에겐 끔찍하지만 딸에겐 감정을 폭발시킨다.

다른 집 자녀들과 비교하고, 음력인 아빠의 제삿날을 핑계로 딸을 닦달한다.

오히려 엄마 자신이 피해자라는 것을 강조하며 딸을 조종하고 억압한다.

이렇게 엄마와 통화하는 날이면 딸의 감정은 방전되어 공항상태에 빠진다.

피해자 탈을 쓰고 딸을 조정하며 감정을 갉아먹는 엄마를 어떻게 해야 할까?

부모라는 존재가 한없이 가깝기만 한 것도, 친근한 것도 아니다.

이런 엄마가 있다는 것, 자체가 버거운 현실이지만 딱히 해결책은 없다.

이런 악순환의 반복 속에 딸은 온몸이 마비 증상을 나타낸다.

마비 증상들의 원인은 내 속에 있는 상처 받은 아이, 그 아이를 치료하지 못한다면 이 지옥같은 삶도 탈출하지 못할 것이다.

딸은 조금씩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지만, 그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일상을 반복한다.

답답하고 어렵기만 한 엄마의 존재를 해결하지 못한 채 소설은 끝난다.

뭔가 확실한 해결책을 기대했던 독자라면 조금은 실망스러울 것이다.

내가 그 입장이 되었더라도 딱히 엄마가 죽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해결책이 안 보인다.

엄마가 상담을 통해 변하지 않는 한, 그녀는 내면 아이를 끌어안고 살아야 할 것이다.

누군가는 현실을 극복하거나 초월적인 신앙을 같지 않은 한 가족의 굴레는 끊어지지 않을 테니까....

댓글 0 이 리뷰가 도움이 되었나요? 공감 0

한줄평 (3건) 한줄평 총점 10.0

혜택 및 유의사항 ?
평점5점
보여주거나 보여주지 않거나... 가슴 속에 가로세로 수없이 난도질 된 상처는 밖으로 끄집어
1명이 이 한줄평을 추천합니다. 공감 1
y*******0 | 2019.05.07
구매 평점5점
역시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군요 다이앤 리 작가님의 앞날을 항상 응원합니다
3명이 이 한줄평을 추천합니다. 공감 3
YES마니아 : 로얄 w*****l | 2019.04.26
구매 평점5점
기대됩니다
1명이 이 한줄평을 추천합니다. 공감 1
8*****9 | 2019.04.24
  •  쿠폰은 결제 시 적용해 주세요.
1   11,700
뒤로 앞으로 맨위로 aniAlarm